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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출근길에 이 책을 읽자" - 프레시안
     | 2008·02·11 10:29 | HIT : 3,644 | VOTE : 725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209134226

 "월요일 출근길에 이 책을 읽자" 
  [화제의 책] 창간 10주년 맞은 <삶이 보이는 창> 
 
  2008-02-09 오후 8:08:32    
 
 
 
 
 
  가난한 사람일수록 악착같이 글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 있는 자의 편을 드는 기록만 남게 된다. 결국 뒷날의 역사가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에 열광하는 투기꾼의 시대로 오늘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소외된 가난한 이들은 역사에서도 사라진다.


  
  가난한 사람들의 글쓰기
 
  하긴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먼 훗날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봐줄지를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어차피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인데, 펜대를 놀리는 자에게 밥을 던져 주는 것은 먹을거리가 남아도는 이들이다. 따라서 대개의 기록이 강자의 눈높이에 맞춰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일이면 역사가 될 오늘자 신문만 펼쳐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 힘 있는 자들의 기록이 쌓여갈수록, 사회 전체의 표준은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휜다. 그런데 상식과 표준을 다루는 사법 행위와 교육 활동은 아무래도 기록에 의존해서 이뤄지기 마련이다. 거의 모든 기록이 힘 있는 자들의 편에서 쓰여 졌다면, 결과는 뻔하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손해 보는 것은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아이들은 힘 있는 자를 위한 정의와 부자를 위한 상식을 보편적 진리로 배워야 한다. 그 결과, 가난한 아이들은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스스로를 배반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난과 차별의 화풀이를 엉뚱한 곳에 하게 된다.


  
  글쓰기를 신비화하지 말자…"시인은 지식인이 아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많이 배운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고상한 일"이라는 통념이 걸림돌이다. 가난해서,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글을 쓸 엄두를 못 내곤 한다.
 
  그러나 이런 통념은 거짓이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로 이익을 누리는 이들은 글쓰기로 밥을 버는 이들뿐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밭을 갈거나, 기계를 돌리는 등의 생산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남들보다 더 많은 밥을 챙겨 먹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글쓰기가 마치 대단히 신비한 재능이 필요한 일인 양 꾸미곤 했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 제사장, 혹은 무당이 스스로를 신비화해서 기득권을 누린 것과 마찬가지다.
 
  통념과 달리, 글쓰기는 '수준 높은 정신활동'이 아니다. '정신활동'임에는 분명하지만, 높은 수준의 지식과 사고력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이들 중에는 지식의 양과 깊이, 생각하는 힘이 평균 이하인 경우도 제법 있다.
 
  그래서 시인이자 소설가인 장정일은 자신의 책에서 "시인은 지식인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글을 다루는 기예의 최고봉인 시 쓰기에 능하다 해서, 대단한 교양인으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거꾸로 이는 대단한 교양인이 아니어도, 괜찮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난한, 그래서 많이 배우지 못한 이들이 글을 쓰지 못하게끔 가로막는 걸림돌은 따지고 보면 실체가 모호한 것이라는 뜻도 된다. 글은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삶이 보이는 창>…중국집 배달원, 배관공, 봉제사가 글을 쓰는 잡지
   
  그리고 여기, 가난한 이들이 쓴 글이 있다.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중국음식점 배달 노동자가, 시골에서 밭을 가는 농사꾼이 글을 썼다. 이들의 글이 아주 많이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최근 60호를 낸 격월간지 <삶이 보이는 창>에 관한 이야기다.
 
  진보적 생활문예지를 표방하는 이 잡지가 첫 호를 낸 것은 1998년 1월이다. 그러니까 이제 딱 10년이 됐다.
 
  IMF 외환위기로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났던 당시, 서울 구로동에서 노동자 문예운동을 하던 이들 몇몇이 모였다. 서로의 주머니를 털어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잡지를 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까닭에, <삶이 보이는 창>은 여느 매체와 달리 사주(社主)가 없다.
 
  '배관공, 봉제사, 노점상 등이 쓴 글을 모아 낸 잡지를 누가 사서 읽을까' 싶지만, 이 잡지는 지난 10년간 한 번도 결호를 낸 적이 없다. 넉넉히 돈을 대주는 사주가 없는 대신, 잡지를 아끼는 필자와 독자들이 작은 도움이 모여 지난 10년을 무사히 건너게 하는 디딤돌이 됐다.
 
  <삶이 보이는 창>을 통해 세상과 대화를 시작한 필자들이 느끼는 이런 각별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3년 전부터 <삶이 보이는 창> 편집인을 맡아온 박일환 시인이 <프레시안>과 만난 자리에서 전한 이야기다.
 
  "<삶이 보이는 창>에 연재됐던 글 중에 '닥트공 최 씨 이야기'라는 게 있어요. 닥트공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세요? 함석판 같은 것으로 환풍관을 만들어 시공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일을 하는 최경주라는 분이 꾸준히 글을 썼는데, 반응이 좋아서 책으로 묶어서 냈어요. 그런데 이 책이 문화예술단체에서 우수 도서로 뽑혔습니다. 그래서 2000권이 한꺼번에 팔렸죠. 최경주 씨는 100만 원을 조금 넘는 인세를 받았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달 월급도 안 되는 돈이겠지만, 최 씨에겐 큰 돈이었습니다. 당시 최 씨는 갓 셋째 아이를 낳은 데다, 일감도 없어서 형편이 어렵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뒤, 최 씨가 저희 통장에 50만 원을 입금한 거예요. 깜짝 놀라서 전화를 했더니, '후원금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셋째 분유값도 없을 텐데'라고 했더니, '모유 먹이면 됩니다'라며 웃더군요.
 
  이런 분들의 도움으로, <삶이 보이는 창>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공장마다 생겨난 노동자 문예반의 기억
 
  <삶이 보이는 창> 필자들 중에는 최 씨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삶이 보이는 창>에 대한 애정과 겹치는 경우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토록 글쓰기에 열정적일까. 박일환 편집인의 대답이다.
 
  "저는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 당시를 자주 떠올립니다. 노동조합이 생긴 공장마다 노동자 문예반도 함께 생겼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이 썼던 시와 생활 글 중에 뛰어난 작품도 많았지요. 글쓰기를 향한 노동자들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겪고 느낀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지요. 노동이 힘겨울수록, 이런 열망은 더 거세집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여건만 되면, 언제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사람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정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중얼거린다. 요컨대 사람은 언어활동 없이는 버틸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중얼거림이 손으로 옮아가면, 글이 된다.
 


  '이총각'이라는 이름의 여성 노동자
 
  이런 글쓰기는 대개 쑥스럽다.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를 다룬 경우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는 화려한 명품의 시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내용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에 꾸역꾸역 담아 뒀던 이런 이야기를 지면에 쏟아낸 뒤, 삶에 대해 자신감을 얻었다는 이들이 많다. 글쓰기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다면, 이런 경우일 게다. 그리고 <삶이 보이는 창>에 기고한 평범한 필자들 가운데 이런 경험을 한 이들이 종종 있었다.
 
  "내 이름은 이총각입니다. 저 총각도 아니고, 그 놈의 총각도 아니고, 이총각입니다. 물론 여자입니다. 여자가 왜 이총각이냐고요?
 
  …아무튼 태어나던 그날부터 나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내리 두 딸만 낳았던 어머니는 죽든지 말든지 젖도 물리지 않았습니다. 외할머니는 갖다 버려도 시원치 않을 몹쓸 것으로 취급한 채 돌아서시면서, 다음 번에 아들을 낳으려면 '총각'이라고 이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차면서 무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특히 결혼식 때 '신부 이총각' 하는 소리를 떠올릴 때면 진저리가 쳐졌어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킥킥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어야 할지 아득했거든요."
 
  <삶이 보이는 창> 2001년 6,7월호(21호)에 실린 "내 이름은 이총각"이라는 글의 일부다. 한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이름 때문에 겪었던 마음고생에 대해 쓴 글이다. 이름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소개한 이 글은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자기 얼굴을 가꾸듯 사람살이가 이름에 대한 자신감도 주는 것 같아요.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면 그 이름이 좋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삶을 살면은 다른 사람들 입으로부터 그 이름이 더럽혀지니까요. 사람들 이름을 기쁜 마음으로 많이 부르며 살고 싶답니다"라는 내용으로 끝난다.
 
  누구나 이런 작은 콤플렉스 한두 가지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콤플렉스는 밝은 곳에서 떳떳하게 공개하는 순간,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다. 공개적인 글쓰기는 이런 작은 콤플렉스들을 치유하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사연이 담긴 <삶이 보이는 창>은 이런 글쓰기를 위한 아늑한 사랑방이 돼 왔다.


  
  IMF로 '퇴근길 새우깡'이 끊긴 목수 이야기
 
  굳이 노동운동가들이 창간한 잡지라는 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다보면 일터에서 겪은 사연은 빠질 수 없다. 밥을 버는 일은 누구에게나 절박한 과제다. 따라서 밥을 구하는 일터는 가정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를 던져 주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삶이 보이는 창>이 주로 다룬 내용이 이런 일터의 사연들이다.
 
  "이른 새벽 눈을 떴다면 첫 버스를 타고 구로동 114번 구 종점 언덕으로 가보라. 그곳에는 어제의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내일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시커먼 작업복 잠바에 귀를 가릴 수 있는 모자를 눌러쓴 채 찌그러진 깡통 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털어내며 몸을 파는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 내가 있다.
 
  난 목수다. 인테리어 목수라고도 하고 내장 목공이라 불리기도 하는 일용직 노동자다. 무궁화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을 비롯하여 두 평 남짓 되는 동네 분식집까지 목자재가 들어가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필요로 하는 20년 경력의 배테랑급 기술자다. 삐까번쩍 룸살롱, 야시시한 안마시술소, 쉘 위 댄스? 무도회장은 물론이거니와 재벌 회장의 저택 또는 별장, 대형 백화점, 대기업 사무실, 강남의 초호화 빌라 등등 수많은 곳들이 내가 박은 못들과 톱질들로 꾸며진 공간들이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난 개털이다. 90년대 중반까지는 소위 건설경기에 힘입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할 정도로 일거리가 넘쳐났고 그만큼 벌이도 괜찮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일거리가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고 퇴근길에 막내 놈 좋아하는 새우깡 한 봉지는 빠뜨릴 수 없는 일과였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찍고 목포, 군산, 진도, 제주도까지 공사 현장이 있는 곳이면 겨울 지리산 골짝까지 전국 팔도를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IMF 이후에는 거짓말처럼 일거리가 뚝! 이었다. 일거리가 없어지자 일당은 절반으로 삭감되었고, 노동 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 오후 4시에 먹는 새참도 끊겼고, 퇴근길 새우깡도 끊겼다. 그동안의 벌이로 조금 모아두었던 통장 잔고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렇게 2000년 새해 벽두를 맨몸 맨살로 맞이했었다.…."
 
  <삶이 보이는 창> 2006년 3, 4월호(49)호에 실린 글의 도입부다. 목수 한정희 씨가 "인테리어 목공의 노동일기"라는 제목으로 썼다. 끝까지 읽어봐도, 그저 평범한 이야기다. 눈물을 쏙 빼놓는 슬픈 사연이나, 수다거리로 삼을만한 특이한 이야기도 없다. 하지만 이웃집 아저씨에게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이런 이야기가 실리는 매체는 흔치 않았다. 이런 글이 실리는 잡지의 존재 자체가 이미 가방끈이 긴 자들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통념에 대한 명쾌한 반박이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객공띠기' 아내
 
  하지만 우리네 일터의 풍경은 그저 구수한 수다만으로 풀어내기엔 너무 각박하다. 아니 살벌하다. 일하는 사람은 그저 소모품 취급당하기 일쑤다. 두 달마다 한 권씩 쌓이는 이 잡지를 펼칠 때마다, 이처럼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일터 풍경을 고스란히 만나게 된다.
 
  "…적은 월급마저도 제대로 갖다 주지 못해서 아내가 집에서 부업으로 반찬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시작한 5원 떼기 일! 눈썰미가 있어 웬만한 일을 하니 B급 미싱사로 봉제공장에 나간다.
 
  봉제공장으로 출근하는 아내를 보면 울화통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봉제공장이라는 곳이 근로기준법은 고사하고 월급이라도 제대로 받으면 좋은 회사다. 그러다보니 이를 악용한 사장들은 월급을 몇 달째 체불한 채 문을 닫고 다른 곳에 딴 공장을 버젓이 차려놓고 일을 하지 않나, 돈이 없어 월급 50%만 주겠다는 등 횡포가 심하다. '당장 관둬!'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오다가도 돈 못 벌어주는 내 처지가 떠올라 애써 외면하고 만다. 다시 되새겨 가슴 속에 묻어 버린다.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고 다른 공장을 알아보고 있던 마누라에게 전에 공장에 같이 다니던 동생이 찾아 왔다. "언니 아직도 놀아? 그러면 내가 객공띠기를 하고 있는데 16일까지 수출물량이 나가야 되니까 일 좀 해주라"는 것이었다. '객공띠기'는 물량이 나가야 할 날짜에 나가지 못하면 일당을 주며 일을 시키는 임시직으로, 월급은 늦게 줘도 객공띠기 일당은 먼저 지급하는 것이 봉제공장 관행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 공장에서 객공띠기를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다. 몇 번씩이나 오라 가라 하면서 약속을 밥 먹듯 어기는 사장에게 지친 아내는 압력을 주어서라도 받아낼 수 있을까 하여 당시 노조 사무장을 하고 있던 내게 공장을 찾아가자고 했다.
 
  …총파업 준비에 바쁜 일정을 보내던 중 아내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바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에 갔더니 아내는 엉덩이와 대퇴부 관절, 그리고 다리가 반 이상이 빨갛게 부은 채 누워 있는 것이었다.
 
  …사장실에서 약속한 돈을 안 준다고 하여 '왜 못주냐'고 강하게 항변하는 아내와 수금이 안 돼서 그런다는 사장 간에 말싸움이 일어났다. 사장이 도망가는 것을 막으려던 아내가 힘에 밀려 1층으로 밀려 내려왔다. 화가 났지만 힘으로 막을 수는 없는 아내가 사장의 멱살을 잡았는데, 젊었을 때 유도를 했다는 사장이 아내를 쇠파이프가 널려 있는 작업장에 매쳐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1층 철재공장은 파이프가 위태롭게 쌓여져 있었고 들어오는 문 쪽으로는 선반이나 밀링 가공 후 잘려져 있는 쇠 찌꺼기가 널려 있었다. 그런 곳으로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아내는 정신적인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점점 말이 없어지면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열심히 다니던 성당에도 발을 끊고, 이상한 소리를 하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쳤을 때 머리도 다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MRI도 찍고, 보약도 먹여보고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방종운 씨가 자신의 아내가 겪은 사연을 담아 보낸 글의 일부다. <삶이 보이는 창> 2006년 1, 2월호(48호)에 실렸다. 봉제공장에서 '객공띠기'로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던 아내가 사장에게 항의하다 오히려 크게 다친 이야기다.


  
  "세월이 지나도 더럽게 쪽팔린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런 억울한 일을 계속 참고 지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잡지에는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일터의 관행에 맞서기 위해 몸을 던졌던 이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겪었던 목 메이는 사연도 함께 담겼다.
 
  "…두 손과 두 발이 뒤로 한 줄로 묶인 이른바 통닭구이 상태에서 일주일을 버티면서 그런 상태에서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육체가 굴욕 속에 놓여지면 정신도 굴욕적으로 되는 모양이다. 마음은 단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틀은 굶었다. 밥 냄새를 견딜 수가 없었다. 밥 냄새가 그렇게 구수하고 창자를 뒤틀다 못해 거의 끊을 지경까지 이르게 한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절감했다.
 
  교도관이 이중의 문을 열고 식구 통으로 넣어주고 가는 죽 한 그릇.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가득 담긴 밥그릇의 윗부분만 살짝 핥으면 저들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뱀의 대가리처럼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쳐들었다.
 
  신체구조상 손은 전혀 쓸 수가 없으니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핥을 수밖에 없는데 어느새 몸뚱이는 기어서 밥그릇으로 가고 있었다. 한번만 핥기로 했는데, 그 한번이 무너지면 애써 지키려 했던 게 뭔지도 잊게 된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다가 어느새 반을 핥았다.
 
  이걸 어쩌지. 저것들이 알 텐데…. 자존을 버린 인간은 쥐의 교활함만 남는다. 엎자. 그럼 쏟은 줄 알겠지. 쏟은 걸 도로 담아서 양을 측정하진 않을 거고…. 낄낄낄… 만세다. 그 후로도 두 번을 더 그랬던 것 같다. 죽이 엎어져 축축한 마룻바닥이 찝찝하긴 했지만 그땐 내 완전범죄에 쾌재를 불렀었다.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그 일이 세월이 지나도 더럽게 쪽팔린다.…"
 
  노동운동가 김진숙이 감옥 안에서 겪은 사연이다. "시커먼 깡보리밥에 쥐똥이 콩처럼 섞여 있던" 한진중공업 도시락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하는 글의 일부다. "눈물의 밥, 각성의 밥, 투쟁의 밥"이라는 제목으로 <삶이 보이는 창> 2003년 6, 7월호(33호)에 실렸다.
 
  주머니가 비어 있다고, 자존심까지 빈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힌 노동운동가는 극심한 배고픔 앞에서 자존심을 꺾어야 했다.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쥐똥 섞인 밥을 던져주며 혹독한 노동으로 내모는 이들에게 분노했던 그였기에, 더욱 참혹한 기억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철거민이 알코올 중독에 내몰린 사연
 
  가난한 이들에게 식은 밥 한 공기 던져 주는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려던 이들에게 맞선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싸움은 너무 참혹했던 탓에 상처도 많이 남겼다. 그런데 이런 상처에 대해선 누구도 입에 올리기를 꺼렸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이들일 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했다. 어쩌면 이런 상처만 똑바로 살폈어도, 이른바 진보 진영의 위기가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삶이 보이는 창>을 뒤지다보면, 이른바 민중운동 진영이 겪은 상처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잡지 1998년 6,7월호를 펼치면, "생의 한가운데"라는 글이 있다. 철거민 두 명의 죽음에 관한 글이다. 술과 경마에 깊이 중독됐던 한 명은 아내를 극심하게 학대하다 결국 아내에게 살해당했다. 역시 알코올 중독자였던 다른 한 명은 자살했다. 철거민의 생존권을 위한 싸움에 온 몸을 내던졌던 이들 두 명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 것은 이들과 부대끼던 다른 철거민들의 모습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대목을 옮겨 본다.
 
  "…철거촌에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철거촌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생활에 대해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생활은 나가서 하고, 잠자리만을 이곳에서 한 소수의 철거민들은 더욱 번민하게 되어 철거촌 안과 밖, 그 어느 쪽에도 충실할 수 없는 사람들로 변해갔다. 그 와중에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쪽저쪽 관계없이 약삭빠르게 처신을 한 사람들만 좀 더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철거 싸움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커졌던 이들은 같이 행동해야 할 사람들의 파렴치한 모습 속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게 된다. 그 갈등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4년 만에 사람이 달라졌다. 경마에 손을 대고, 폭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그냥 일반인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회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나름의 인식을 갖고 있던 그들은 다 잊고 평상인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힘들어 했을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철거민들은 이미 그들의 고마움을 잊어가고 있었고, 또한 지도부들도 당면한 과제에 매몰되어 그들에게 신경을 써 주지 못했으니 그들의 외로움과 배신감이 얼마나 컸겠는가. 자연 두 사람은 더 큰 소외감을 느끼고 술로써 세월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경마장에 가기 위해 온갖 거짓말로 아내를 우려먹었지만 날품팔이하는 아내의 수중에 무슨 돈이 얼마나 있겠는가…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들어온 사람을 한잠도 못 자게하며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며 때리고 부수는 남편의 행패에 아내는 결국 자신도 모르게 남편의 심장에 칼을 박고 만 것이다.…자신이 죽으면, 태워서 선산에 뿌려달라는 유서까지 써 놓고 심신의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고통스럽게 술을 목구멍에 붓고 또 부어버림으로써 생을 마감해 버렸다."
 


  일터로 향하는 창문에 비친 <삶이 보이는 창>을 기대하며
   
  강제 철거에 맞선 싸움 속에서 사회의 모순에 눈 뜬 철거민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실망 속에서 망가져 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하다.
 
  그런데 머릿속 생각과 눈앞의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해 괴로워하다 망가져가는 모습이 썩 낯설지 않다. 생활세계에 깊이 뿌리박지도, 젊은 날 품었던 꿈을 치열하게 쫓지도 못한 채 방황하다 주위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스스로를 다치게 했던 사람의 예는 흔하다. 이제는 중년이 된 386세대가 10년 전에 이 글을 좀 더 많이 읽었다면, 역사는 조금 달라졌을까? 물론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노동자, 민중이라고 막연하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하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일터 풍경을 조금 더 섬세하게 살폈더라면, 아무래도 오류가 적었으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박일환 편집인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삶이 보이는 창>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거듭 이야기했다.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기자는 <삶이 보이는 창>은 출근길에 읽어야 할 잡지라는 생각을 했다. (<삶이 보이는 창> 지난호는 대부분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박 편집인은 홈페이지가 활성화돼, 보다 많은 이들이 <삶이 보이는 창>을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삶이 보이는 창> 홈페이지 바로 가기)
 
  일터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하루를 보내기에 앞서, 다양한 이웃의 일터 풍경을 머리에 담아둔다면 하루가 조금 더 풍성해지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설 연휴가 끝난 월요일 아침, 출근 길 버스 창문에 <삶이 보이는 창>이 비치는 풍경을 떠올려 본다. 
   
 
 
  성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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