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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자리 (권경우, 교수신문)
     | 2014·02·21 13:28 | HIT : 1,924 | VOTE : 498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8381

철학자의 자리


2014년 02월 10일(월) 15:07:22   
    
권경우 문화평론가  
  
우리 사회에서 지금처럼 철학이 대중과 가까이 호흡한 적이 있었던가? 인문학 위기라는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내건 기괴한 책들이 출판되고 있고, 심지어 인문학의 가치를 가장 폄훼하던 이들이 인문학을 융성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도 하나의 사례다. 그렇다 하더라도 철학자의 강연에 수백 명이 몰려들고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철학자’가 등장한 것은 분명 이 시대의 낯선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동시대 인문학자 중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과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사람이다. 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이자 인문학계의 ‘아이돌’이다.

대부분의 스타가 그렇듯이 그는 이제 책만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연장에는 수백 명의 팬들이 몰려든다. 저술과 강연만으로 1인 기업이라 할 정도다. 그는 단순히 미디어가 만들어낸 스타가 아니다. 최근 SNS 상에서 논란이 됐던 몇몇 칼럼들은 비판의 소지가 충분하지만,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많이 있다. 어쩌면 강신주에 대한 사랑과 미움의 양가적 감정이야말로 한국의 지식사회가 극복해야 할 모순 지점일지도 모른다.

강신주는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대학과 정부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런 점만 본다면 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대학 혹은 그 언저리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대다수 ‘지식인’에 비하면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강신주에 대한 대중의 환호는 이와 같은 대학의 붕괴, 즉 ‘지식인의 몰락’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의 ‘용기’는 그다지 지지를 얻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그를 마뜩잖게 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의 글이나 입장을 비판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그 바탕에는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깔려 있다.

강신주는 철학과 인문학의 이름으로 반제도, 반권력, 반자본주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의 비판 논리는 어느 순간 개인으로 치환된다. 그것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를 닮아 있다. 자신이 대학원을 옮겨가면서 지도교수와 싸워가면서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자본이나 권력 등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남들은 평생 한 권도 힘든 베스트셀러를 몇 권이나 냈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밖에 못 사느냐고 윽박지른다. 그 앞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눈물을 흘린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고 혐오하는 자기계발이나 힐링 담론의 멘토들을 닮았다. 무엇보다 강신주는 대중을 직접 만나지만 그들을 알지 못한다. 상대가 누구라도 즉석에서 해답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그/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할 뿐이다. 개인들의 역사, 즉 그들의 삶은 그의 앞에서 외면당하고 만다. 그에게 이제 철학은 권력이 됐다.

‘철학자 강신주’에 대한 안타까움은 ‘철학자 고병권’을 떠올리게 한다. 강신주가 ‘대중의 철학자’라면 고병권은 ‘거리의 철학자’이다. 두 사람 모두 디오게네스를 중요하게 언급하지만 정작 ‘철학을 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과정에서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펴낸 고병권의 책 『살아가겠다』(삶이보이는창, 2014)는 장애인들, 쌍용차 해고노동자, 밀양송전탑 현장 활동가 등을 만난 결과물이다. 물론 투쟁 현장을 찾았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철학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만나고 삶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깨달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만나는 개별적 주체들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능력’을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다.

강신주는 소설보다는 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 번에 진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진리를 얻기 위해 수백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을 읽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개별적 주체의 구체성을 견디지 못한다. 모든 것을 상담하지만 해답은 사실 하나다. 개별적 삶은 모두 자신의 진리를 말하기 위한 일종의 ‘사례’에 불과하다. 고병권은 삶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말한다. 책의 서문에서 “희망은 지금 사막을 뚜벅뚜벅 걷는 내 다리에 있다”라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닌 각각의 삶을 만나는 철학자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대한문 농성촌에서 봤다는 구절이 곧 철학(자)가 만나야 하는 삶인 것이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권경우 문화평론가·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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