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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이들과 노래로 연대하다 - <한겨레21>
     | 2011·12·05 11:18 | HIT : 2,432 | VOTE : 380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863.html
고통받는 이들과 노래로 연대하다

[2011.11.23. 제887호]


[2011 만인보] 농성장 찾아다니며 노래하는 가수 김성만씨
춥고 서러운 이웃곁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 지난 11월15일 저녁 서울 중구 환구단 입구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장기농성장에서 노동가수 김성만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1980년대가 민중주의의 폭발기였다면, 그 가운데에는 민중문예운동이 있었다. 민중의 이름을 내건 문학·미술·음악 등이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고, 시대의 아픔과 함께했다. 그 시절 민중문화와 대중문화는 사이좋게 공존했다. 하지만 동유럽의 실존사회주의가 몰락한 1990년대 이후, 민중문예운동은 시나브로 설 자리를 잃었다. 사람들은 ‘민중’이라는 말에서 경직된 촌스러움을 보았다. 민중가요를 부르던 대학생들은 더 이상 민중가요를 부르지 않았다. ‘민중문학’ ‘민중미술’은 시대착오적 용어가 되었다. 그사이 대중문화의 완전독점 시대가 열렸다.

열 여섯에 들어간 공장

그 많던 민중문예 일꾼들은 어디로 갔을까. 몇몇은 생계의 막차를 타고 문예판을 떠났고, 또 몇몇은 ‘문화비평가’로 직함을 바꿔 달고 새 시대에 안착했다. 그러나 길은 걷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끊기지 않는 법. 다 떠나고 황량한 민중문예판을 아직도 떠나지 못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오늘도 철거 현장에서, 비정규직 장기 농성장에서 노래와 그림과 시로 춥고 약한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다.

여기, 노동가수 김성만씨가 있다. 노동가수라는 말에는 ‘노동가요를 부르는 가수’라는 뜻과 함께, ‘노동자 가수’라는 뜻도 포개어 있다. 그는 노동가요를 부르는 노동자 가수다. 그가 노동가수라는 것이 그가 무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적어도 노동세계에서는 ‘나가수’ 못지않은 유명한 가수다. 지금도 그가 만든 노래들이 집회와 시위, 농성 현장에서 자주 불린다. 대표적인 곡이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다. “나의 손 높이 솟구쳐 차별 철폐를 외친다. 쓰러진 또 하나의 동지를 보듬어 안고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철폐 연대의 발 맞춰 굳세게 더 강하게 당차게 나선다. 가자!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단결 투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꼭 찾아오리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만들어달라 해서 공부 끝에 만든 이 노래가 비정규직들의 ‘십팔번’이 될 줄은 그도 몰랐다. 사실 그는 이 노래를 만들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정규직분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 더 가슴이 아프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이 노래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다행스럽고 고마웠죠.”

비정규직의 가슴을 울린 그지만, 그의 삶도 신산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서울 왕십리의 판자촌에서 신문배달과 우산팔이를 하며 자랐다. “대학생 선생님들이 와서 가르치던 한울야학에 다녔어요. 공부를 배우러 갔는데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는 거예요. 학교를 다니지 못한 채 공장에 취업하는 학생이 많아서 그랬던 거죠. 그 때문에 야학 선생님들이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어요.”

가난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78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공장에 들어갔다. 이듬해에는 삼익악기 조각반에서 일했다. 그 일로 조각가를 꿈꾸기도 했다. 일과 꿈은 너무 멀었다. 친한 야학 선생님이 책 한 권과 김민기씨의 <공장의 불빛> 테이프를 선물해줬다. 그 노래 테이프를 닳도록 들었다. 이후 갑작스레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했다. 서울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의 집단 주거지인 성남 광주대단지였다. 그 뒤 성남 ‘새로나가구’에서 가구 목수일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서 적의를 거두지 않았다.

연대의 노래가 선물한 아내

  

» 김성만씨는 “농성장을 찾아다니며 노래로 연대하는 일을 그저 즐거워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1982년 일하다 손가락을 다쳤다. 산업재해였다. 당시 산재 처리를 담당한 근로감독관을 일주일이나 쫓아다닌 끝에 겨우 산재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로선 큰돈인 26만원이었다. 그 돈으로 기타를 샀다. 저녁마다 공장 기숙사에서 홀로 기타를 연습했다. 그것이 삶을 변화시킬 줄은 그땐 알지 못했다.

“산재를 당한 게 음악을 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되었어요. 저는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한 적이 없거든요. 독학한 셈이죠.” 산재 이후, 그는 기계 다루기가 겁이 났다. 결국 공장을 그만두고 성남 모란시장에서 장돌뱅이로 지냈다. 그 사이에도 한번 불타오른 음악에 대한 열정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1984년 성남에 있던 노래패 ‘다영글’에서 활동하며 노동자 기타교실과 노래교실을 열었다. 얼마 안 되는 재능이라도 있다면 나누고 싶었다. 교습실인 성남주민교회 지하실에서 3년여를 보냈다. 1987년 6월 항쟁의 함성은 성남의 노래패들에게도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고양된 사회운동 환경에 맞게 노동자 노래패를 비롯한 아마추어 노동자노래운동이 좀더 전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당시 노래패로 유명한 ‘새벽’이 직접 와서 교육했어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열정이 있던 시기였죠.”

그는 파업 농성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기 발로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연대의 노래였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1990년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성남전자 파업 현장에 가서 노래를 가르쳐주었어요. 바로 옆에 있던 성남전자 자회사인 콘센트 제조회사 삼영전자도 파업을 벌였어요. 2년 동안 삼영전자 창립식에 가서 노래를 부른 인연도 있고 해서 가봤죠. 삼영전자가 남자 300명, 여자 2700여 명이 있던 조합이라 연대를 안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가 공연을 했죠. 나중에는 조합 집행부가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삼영전자 노동자이던 지금의 아내가 그때 저를 보고 반한 거예요. 전 그때 인기가 많아서 아내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웃음)”

파업은 실패로 끝났지만, 조합 집행부는 여름휴가 때 그를 강원도 양양의 낙산해수욕장으로 초청했다. 그는 기쁘게 응했다. 양양에 도착했는데 지금의 아내가 그를 마중 나왔다. 그에 대한 호감을 고백할 길이 없던 여자와 그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한 남자. 그날 저녁,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나랑 결혼할래?” 그녀는 주저 없이 그러겠노라고 말했다. 1년 연애 뒤, 둘은 그렇게 결혼했다. 연대의 노래가 그에게 평생의 반려자를 선물했다.

부를 여력이 없는 곳에 찾아가자



» 지난해 10월에 내놓은 음반과 책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1991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 1돌 노동자 노래 공모에 그가 응모한 <불패의 전사들>이라는 노래가 대상을 받았다. 그는 노래를 하고 노래를 만들고 싶은 꿈이 이뤄지는가 싶어 행복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그해 아내와 함께 시작한 아동복 장사가 망해 1억5천만원의 빚을 졌다. 광주대단지에 불하받은 땅도 은행에 넘어갔다. 경기도 이천의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방으로 이사했다. 다행히 옮겨서 연 작은 아동복 가게가 장사가 곧잘 돼, 빚을 갚으며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아내에게 미안하죠. 저는 가게일보다 밖으로 나다니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어려울 때도 파업노동자들이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저녁에 차 끌고 가서 노래를 가르쳤거든요. 저녁에 손님이 없으면 틈틈이 노래를 만드느라 가게일은 뒷전이었고.”

그렇게 만든 노래 가운데 70여 곡을 골라 지난해 10월 음반도 냈다. 인터넷 카페(cafe.daum.net/sungmansong)에 썼던 노래와 삶의 이야기를 엮어 책도 같이 냈다.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삶이보이는창 펴냄)라는 같은 이름의 앨범과 책 속에서 그는, 온몸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모든 싱어송라이터가 그러하겠지만, 이런 글은 그가 가수이자 시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가사와 선율은 잊어버릴 수 있지만 춤과 리듬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지독하도록, 문신처럼 새겨진다. …사랑을 할 때면 선율로 나누지 말고 리듬으로 나누기를 권하고 싶다. 리듬은 함께 호흡하는 것이고, 함께 보폭을 맞춰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 현장이나 투쟁 현장에서 노동자 노래패를 하며 두들겨맞고 갈고닦아져 만든’ 그의 노래들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로 오롯하다. “쓰레기를 치우다 쓰레기가 되었다. 그저 낮은 밑바닥에서 울부짖었다.…청소만 하다가 내가 청소됐다. 부여잡고 매달려서 애원도 했다. …비정규직 희망이 없다. 외주엔 내일이 없다. 노예로 몸부림쳤다. …내가 살아서 알몸뚱이로 분노에 벌벌 떨었다.”(<비정규 아줌마>)

대교 학습지 해고노동자, 이랜드 비정규직,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 르네상스 호텔 청소노동자,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대우자동차판매노조, 콜트·콜텍, 현대 성폭력 노동자 등 숱한 농성장에서 그는 노래로 연대했다. 모두 하나같이 그에게 공연비를 줄 형편이 안 되는 농성장이었다. 심지어 이랜드와 쌍용차 현장에는 가수가 오직 그뿐이었다. 경찰에 연행되어 유치장 신세를 진 것도 몇 차례. 그래도 그는 그저 즐거워서 한 것 뿐이란다. "즐겁지 않으면 못하죠.(웃음) 가야할 곳에 간 것뿐이구요. 부를 여력이 없는 곳인데 직접 찾아가야죠.”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노래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에게 좋아하는 가수를 물었다. "빅토르 하라에게서는 투혼을, 밥 말리한테선 흥겨움을, 장사익에게선 소리를 배우고 싶어요."

38살의 열정으로 살고 싶어

지난 11월15일 저녁 7시, 초겨울의 찬 바람이 부는 서울시청 앞 재능교육 농성장. 청바지와 점퍼 차림의 그가 마이크를 잡았다.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를 위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거리강연의 앞풀이 공연이었다. 노래하는 동안은 젊은 열정으로 살고 싶어서 38살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40대 후반의 노동가수. 자신의 노래가 가난한 사람에게 술한잔이 되었으면(<한 그루 노래를 위하여>) 좋겠다는 그가 온 몸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를 들으며, 38살보다 젊은 기자는 생각했다. ‘나는 과연 온몸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가.’ 갑자기 발밑이 서늘했다. 술 못하는 그를 붙잡고 소주를 마시고 싶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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