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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붉은 첫눈   조회 : 1046   
분류
시선
지은이
황인산
펴낸이
2014년 12월 24일
판매가
8,000원

 

도서 소개
시를 읽으며 이렇게 어깨가 다 들썩이고 코끝이 맵고 미친놈처럼 실실 웃음이 나온다. 이용악 신경림 시인의 뒤통수에 제대로 한 방 날리는 시인의 출현이다. 시큰둥하게 시를 읽어가다 경악을 하게 만드는 황인산의 시들, 시여 축하한다! 편편이 넉살과 해학과 풍자다. 눙치고 어르다가 따뜻하게 품어 안는다. 아직도 이런 시, 이런 삶이 살아 있다. 고맙다 황인산!
―이영진 시인

정교하게 시력을 재고 고요히 안경을 조제해내는 그의 내면에는 이쪽과 저쪽, 가깝고 먼 시절의 풍경들을 종횡하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황인산식 렌즈로 투과하는 투박한 정경들 덕분에 우리는 부박한 생을 들여다보는 시력을 선명하게 맞추는 날이 올 것이다.
―유정이 시인


2009년 제15회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황인산의 시집 『붉은 첫눈』이 출간되었다. 심사평에서 “삶과 사물을 깊이 있고 폭넓게 인식하려는 그의 시들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시적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평을 들었던 그의 시는 속도와 능률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오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안경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시인은 마치 우리 삶을 둘러싼 풍경들을 ‘제대로’ 조망하도록 시력 교정을 하는 듯하다. 일상의 속도를 늦추면서, 왜곡된 서사를 펼쳐 보이면서, 때로는 넉살과 해학과 풍자로 눙치고 어르면서 고요히 안경을 조제하듯 언어를 투명하게 갈고 닦는다. 유정이 시인의 말 그대로 “황인산식 렌즈로 투과하는 투박한 정경들 덕분에 우리는 부박한 생을 들여다보는 시력을 선명하게 맞추는 날이 올 것이다.”


첫눈인 듯 붉은, 풍경들

시집은 총 4부로 되어 있는데 1 · 2부는 그가 본 세상의 풍경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3 · 4부는 그가 자신의 내면 풍경을 드러낸 시라고 일단 구분해볼 수 있다. 시인이 바라본 세상의 풍경들은 한마디로 뭔가 왜곡되어 있다. 시에 등장하는 풍경이나 사람들은 어딘가 무너져 있거나 잘못되어 있다.
염전을 일구며 살던 한 피난민 할아버지가 어느 날 간첩으로 몰려 “내레 간첩이 아니야요”라는 양심의 말을 폐유 덩이로 써놓고 바다에 빠져 죽은 이야기(「황해 물 다 마시고 간 사내」)가 있고, 동네 미니슈퍼 아줌마가 대형 자본에 의해 파산하고 그 자본이 경영하는 마트에 입사하여 일하는 풍경(「이마트 미니슈퍼 아줌마」)이 있다. 또한 여전히 방치된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인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는 「동거인 신원」이란 작품도 있고, 용산 참사로 망루에서 타 죽은 이들의 원혼이 채 위로를 받기도 전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는 풍경(「이 편한 세상」)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런 풍경 뒤편에 있는 폭력의 진원지에 대한 현장 보고서도 있다. 그곳에는 병역을 피하기 위해 생니를 뽑은 한 연예인의 모습이 있고(「강아지풀」), 시민의 자발적인 항거를 차단하던 ‘명박산성’이 있다(「벽을 드나드는 사람」).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집이다.
등짐 진 살림살이 침대는 왼쪽 팔에 끼고
이사하고 있다.
허공에 발 담그고 눈맞춤 없이 걷고 있다.
염천炎天을 향해
염천다리 위
낡은 구두 한 켤레 가지런히 남겨두고
종이 박스 펼쳐 누운 자리
동사한 침대 주인.
침대가 제 주인을
이사시키고 있다.
―「동행」전문

이 시는 앞에서 말한 것들을 형상화하고 있는 시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는 한 침대회사의 역설적인 광고 문구처럼 여기 한 노숙자가 자신에게는 침대와도 같은 종이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고 있다. 그는 ‘타는 듯 더울 것만 같은’ 염천(炎天)다리에 자리를 잡고 노숙을 하는데 결국 낡은 구두 한 켤레만 남기고 동사하고 만다. 거꾸로 된 세상, 뒤집어진 세상 속에서 인간은 인간으로 살지 못하고 하나의 폐품으로 사라져간다.
뿐이랴, 그런 죽음은 도시의 아파트에도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도시 생활 사십 년에 이리 차이고 저리 찌들려/ 상처 깊은 곳에서는 누런 고름이 흐르고/ 심한 곳은 녹슨 뼈가 살을 뚫고 나와/ 노을보다 붉은 피를 제 몸에 바르고”(「불혹의 중산 아파트」) 있고, “용산 재개발 4구역 남일당 건물” “아직도 얼음 속에 묻혀 있는 주검”(「에베레스트 오르다」)도 빙벽이 되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비극과 비참함은 여전히 그대로다. 한마디로 성한 곳이 없으며 말짱한 사람이 없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어떻게 이렇게 아픈 사람과 아픈 풍경만 모아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갑갑하고 막막하다. 그의 심안은 일반적인 눈을 통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격렬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시와 이야기의 안쪽

3, 4부에서는 그러한 점을 더욱 웅변해주고 있다. 여기에 묶인 시들은 그런 풍경들을 시인이 어떻게 다스리고 있으며 어떻게 받아 안아 자기 안으로 육화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봄 봄 봄」에서 보여주는 서로의 “몸뚱어리를 얽어매고 정”다운 풍경들은 역으로 침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현대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문으로 읽힌다. 그의 내면은 굳이 현대사회의 허망한 속도 겨룸이나 부의 축적에 들뜨지 않는다.
또한 폭 삭은 충청 지역 방언으로 사람살이의 풍경들을 담은 「이장님의 부부싸움」, 「벌초」, 「새살새살」 등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시집의 3, 4부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어디를 펴서 읽어봐도 빙긋이 웃음이 배어나온다. 그의 내면에는 사람살이의 아름다운 평화가 깃들어 있다. 고향 친구가 농사지어 보낸 땅콩을 택배로 받고는 시골 친구의 옹색한 살림살이를 떠올리고 동시에 그 친구의 정성을 떠올리며 “덜 자란 것” “썩어 보이는 것”도 버리지 못하는 모습(「토산불알」)이나, 주꾸미 먹으러 가자는 부모님을 따라 마량포구에 갔다가 그날은 주꾸미가 “빈 소라껍질로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아” 대신 우럭을 먹고 돌아온 사연이지만 결국 어린 손주가 보고 싶은 부모님의 나들이 계획이었음을 잔잔하게 담아낸 시(「마량포구」) 등이 그 적절한 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시인이기에 우리가 이른바 현대적 삶의 특징이라고 하는 냉혹한 경쟁과 비인간적인 냉대를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에게 다시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그냥 지나치는 사물과 풍경, 그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려는 뜨거운 심성이 녹아 있는 심안으로 우리의 눈먼 삶을 교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 이쯤해서 따라 해보세요. 두 손을 쭉 뻗고 양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작은 원을 만들어 일정 거리의 사물을 그곳에 넣어보세요. 뚜렷한 목표물이 없으면 당신의 먼 미래를 집중하거나 당신이 만들어놓은 봉분을 보세요. 그리고 한쪽씩 눈을 감아보세요. 어때요?

보이지 않는 세상을 찾지 마십시오.
당신의 뇌 속에 확실히 저장돼 있습니다.
오른손잡이의 주 시력은 오른쪽에 있는데 자꾸만 왼쪽으로 보려 한다고 세상이 왼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습니다.
―「시력검사표」부분

시에서처럼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물을 집중하여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의 사물 너머에 어려 있는 생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니고 있을 때 우리는 이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름으로 빛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황인산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그 한 예를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가난한 시절에 참 고마운 일을 마치 묵언수행 하듯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 소개
황인산

1963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제15회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풀밭’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안내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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