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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허영구


노동운동가. 현재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최명아동지추모사업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 『그래, 우린 노동자요』, 『진보정치를 위하여』, 『노동의 불복종』 등이 있습니다.


풀과 함께 자란 채소들
 칼럼니스트  | 2010·08·29 10:17 | HIT : 4,201 | VOTE : 781 |
풀과 함께 자란 채소들

며칠 전 주말농장 10평에 가을배추와 무를 심었다. 나머지 20여평은 이래저래 관리를 못하다보니 풀밭이 되었다. 어제 비가 간간히 내리는 가운데 낫으로 풀을 벴다. 텃밭 가꾸는 얘기를 책으로 펴낸 한 도시농부는 밭에 풀은 무서운 기세로 자라는데 그 모습이 해일 같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김을 매주고 퇴비나 비료를 주고 가끔 약도 뿌려주는 채소보다 풀은 정말 잘 자란다.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룬다. 채소들은 냉해를 입었지만 풀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연에 순응하거나 조화로운 삼을 사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농사꾼이 된 철학교수 윤구병씨는 세상에 ‘잡초는 없다’는 책을 낸 바 있다. 풀을 제대로 뽑아주지 않으면 채소들은 억센 풀 섶에 묻혀 무르거나 벌레들의 밥이 되고 만다.

올해는 작년보다 욕심을 부려 10평을 더 빌렸고 자투리 땅 10평까지 해서 전체 30여평에 갖가지 씨앗을 뿌렸다. 열매채소로 가지, 고추, 토마토, 오이 묘를 사다 심었다. 호박과 옥수수는 씨를 뿌렸다. 잎채소로 엇가리 무와 배추, 상추, 쑥갓, 근대, 상추, 아욱, 들깨씨도 뿌렸다. 이웃에서 준 토란과 파도 심었다. 뿌리채소로 당근도 뿌리고 감자와 고구마도 심었다. 또 이웃에서 나눠준 부추도 심었다. 모두 20여 종의 채소를 심었다. 차 트렁크 뒤에는 아예 농기구와 씨앗 봉지를 싣고 다닌다. 언제든지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씨앗을 뿌린 뒤 며칠만 지나면 흙을 뚫고 나오는 씨앗들의 향연이 싱그럽고 신기하다. 사람들이 뿌리는 채소는 씨앗을 흙으로 덮어두기 때문에 뿌리보다는 싹이 먼저 땅을 밀고 올라온다. 그러니 야생의 씨앗은 누가 흙을 덮어주지 않기 때문에 땅에 뿌리부터 박는다. 당연히 야생이 강하다.

올해는 늦봄까지 추위가 계속돼 일찍 심은 작물은 냉해를 입었다. 오이는 얼어 죽었고 고추나 가지 등은 자라는데 고생을 했다. 호박은 발아하는 데만 한 달 가까이 걸렸다. 거기다. 척박한 땅인데도 불구하고 퇴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곳에서는 채소들이 영 신통치 않다. 그래서 여름에 캔 감자는 정말 새알만했고 가지는 토양이 좋은 밭으로 옮겨 심었다. 작년에는 2~3일에 한 번 씩 호박잎을 들치면 제법 통통한 호박을 땄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던 가지나물도 작년만큼 즐기지 못했다. 작년보다 땅도 넓어졌고 종류도 많은데다 퇴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이웃들은 이런저런 소리를 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땅을 덜 착취한 셈이다.

농장 전체를 주말농장으로 불하란 탓에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빈다. 10여평 남짓한 땅에 들이는 정성들이라 모두 잘 자란다. 거기다 퇴비나 비료까지 주면 과 영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농사짓는 즐거움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더 크게 느낀다. 8월 말경이면 여기저기서 가을채소를 심는다. 옛날과 달리 씨앗을 직접 뿌리기보다 대부분 묘를 사다 심을 수 있기 때문에 채소 농사도 쉽게 할 수 있다. 가을비가 내린다. 미리 심어둔 배추와 무가 튀기는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화창한 가을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하늘을 행해 잘 자랄 것이다. 작년에도 무와 배추를 심었는데 퇴비가 부족한 탓에 배추가 매우 질겼다. 섬유질만 남은 것처럼 먹는 데는 편하지 않았다. 일종의 야생이 된 셈이다. 말끔하고 아싹아싹한 채소는 보기에는 좋지만 화학비료나 농약이 많이 뿌려진 채소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채소는 완전한 유기농채소일 수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퇴비는 인공으로 만들어진다. 억세지만 풀과 함께 자라는 채소들이 더 자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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