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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허영구


노동운동가. 현재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최명아동지추모사업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 『그래, 우린 노동자요』, 『진보정치를 위하여』, 『노동의 불복종』 등이 있습니다.


농경민과 유목민
 칼럼니스트  | 2009·10·25 20:34 | HIT : 5,163 | VOTE : 835 |
농경민과 유목민

어릴 때는 서울 와서 공부해도 고향 가서 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3남 3녀 6남매를 둔 부모님 입장에선 자식농사 잘 지으면 노후는 자식(손자․손녀)들과 오순도순 잘 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부모세대인 농경민의 희망이었다. 일제식민시기, 한국전쟁을 겪으며 경험했던 지독한 가난도 물러갔으니 더 부족할 게 없는 시절이다. 오래살고 볼 일이라는 얘기가 절로 나올만하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될 무렵엔 면소재지 전체에서 대학생이 손꼽을 만했다. 논 팔고 소 팔아서 도시에서 학교를 마친 자식들은 괜찮은 직장을 얻었다. 간혹 일류대학이나 고시라도 합격하면 동네어귀에 축하문이 걸리고 선거 때는 뱉지를 달기도 했다.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자식 대학 보내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대학생이거나 쉽게 대학생이 될 수 있다. 대학졸업장이 특별대우를 받는 시대는 지났다. 소득은 높아졌지만 자녀교육에 허리가 휘기는 대학생이 없던 시절보다 더하다. 비정규직노동자 1000만 명, 실업자 400만 명이 세계화를 추구하는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스스로 자립하기는 쉽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거쳐 비정규직노동자가 되고 어쩌다 정규직노동자가 되어도 고용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직장과 일터를 찾아 떠도는 현대판 유목인이 된다. 양떼를 먹일 풀이 없어지면 유목민들은 짐을 싼다. 오늘날 자본주의 벌판의 풀은 ‘돈’인데 돈 자체가 움직인다. 그래서 전통적 유목민보다 훨씬 더 빨리 이동할 수밖에 없다.

농촌도 이제 상업적 농업으로 바뀌었다. 돈이 안 되며 의미가 없다. 일천만 농민은 옛말이다. 실제 농민은 백 만 명도 안 된다. 60세 노인이 마을 청년회 회원인 곳도 있다. 도시자본에 팔린 땅으로 집나간 자식들이 돌아 올 곳은 없다. 유목민이 돼버린 농경민의 자식들은 언제나 이방인이다. 간혹 부모들이 도시의 자녀들에게 다가서 보지만 불일치 그 자체다.

농경민과 유목민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이다. 명절 때의 귀향이나 역귀성은 일시적일 뿐이다. 자식을 따라 도시에 올라온 부모들은 아파트가 그저 감옥처럼 느껴진다. 시골에는 노인들만 있는 동네가 많다. 독거노인도 늘어난다. 요양병원도 많다. 이래저래 유목인이 되어버린 자식은 농경민 부모에 불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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