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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파~하하
 최경주  | 2006·04·06 00:15 | HIT : 2,182 | VOTE : 219 |
파~하하



기계실은 지하 4층에 있었다. 주차장을 질러 한참 걸어가야 모퉁이에 커다란 가고자한 기계실이 나온다. 아직 돌아가지 않는 먼지 쌓인 기계실에 아저씨와 내가 들어가니 우리 큰 그림자가 벽을 타고 우물쭈물 따라 들어온다. 아저씨와 내가 들어서는 기계실 안은 천장에 몇 개 걸린 등으로 어둠을 밀어내지만 조금은 역부족이라
“어이 왜 이리 어두워. 등 좀 두어 개 더 달지. 자식들 일하는 거 하고는.”
아저씨는 해죽이 웃으며 등을 탓하고 어디 앉아 쉴 곳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니 그림자도 주인 따라 둘러본다. 문 바로 앞이 넓어 거기서 쉬기로 하고 아저씨도 알루미늄 사다리를 세우고 자리를 잡아 앉는다. 나도 따라 앉자
“같이 쉬자 경주야.”
하며 내 그림자도 덩달아 아저씨 그림자 옆에 앉는다. 쌍꺼풀지고 출혈 된 눈이 동그랗고 얼굴은 주름이 깊게 겹겹이 낀 아저씨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또 한 대를 꺼내 나에게 권한다.
“쉬는 김에 팍 쉬자고, 열나게 해도 돈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파~하하.”
아저씨 그림자가 아저씨 따라 고개를 뒤로하고 파하고 입을 쩍 벌려 웃음을 터트린다. 담배를 내민 엄지와 검지는 두껍고 메말랐으며 파란 핏줄이 오밀조밀 감싸고 있었다. 이날 이때까지 오직 저 손가락과 발에 의지해 험하게 살아온 이력서 그 자체임을 알려 주는 것이리라.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그날의 모습이 언뜻 지나간다. 오십이 훨 넘은 나이에, 어느 날 먼지 쌓여 반짝거리며 날리는 어두운 기계실에서 이십여 년은 차이나는 후배에게 내 앞가림을 해준 지친 손가락으로 담배를 집어 권한다. 그리고는 ‘쉬었다 하자고’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내 그림자가 그런 내 생각을 하는 내가 의기소침해 보였든지 따뜻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나를 내려 본다.
“아니 저는 지금 감기에 걸려서요. 흡!”
손과 고개를 흔들며 콧물을 들이키고 아저씨가 내민 하얀 담배를 거절했다. 감기가 벌써 일주일은 넘었다. 알레르기성 감기다. 매년 봄 황사가 나올 무렵 터진 재채기와 콧물은 봄 꽃가루가 질 때까지 훌쩍거리며 살아야 한다.
아저씨는 위를 보며 담배를 납죽이 물고 반쯤 일어난 자세에서 여기저기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은단을 꺼내고 이것 보란 듯이 활짝 웃으며 흔들어 본다. 은단을 흔들자 벽에서는 아저씨 그림자가 내 그림자의 머리를 마구 때린다.
“그럼 이거라도, 술 담배를 작년 10월에 끊었다가 다시 피우는 고만, 파~하하.”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며 은단을 가지고 있다. 담배를 꺼날 때마다 이것 끊어야 할 텐데 라는 고민이 있을 것이다.
“아, 예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은단 통을 열고 흔들자 몇 알이 손바닥에 떨어져 구른다. 은단이 자기도 한자리하겠다고 온몸으로 흐릿한 전등 빛을 받아 자기 색을 나타내고자 한다.
난 이 약하게 빛나는 작은 은단 알만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아버지 주머니에서 몰래 꺼내먹던 그 맛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별 맛도 없었는데, 훔쳐 먹는 맛이 있었나? 먹을 게 별로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늘 꾀죄죄한 운동화에 시멘가루 떨어질 날이 없고, 씻어도 진이 빠진 살 거죽은 팔자에 타고난 노동일꾼이었던 아버지. 어린 나이에 어디 내 놓고 싶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철들어 가끔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부자지간이란 천륜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저 세상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그때 은단 몇 알 슬쩍 한 것을 탓하지는 않으시려는지.
아저씨는 말끝마다 즐거움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파~하는 최불암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집안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저씨는 또 웃음을 터트린다.
“내, 딸을 셋을 낳고 아들을 하나 낳는데, 이놈이 걸작이라. 파~하하.”
“학생인가요? 팽! 이놈의 콧물.”
“아니 지금은 놀고 있어.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떨어졌지. 파~하하. 놈 신발은 어찌나 크던지. 파~하하.”느닷없는 신발은 또 무슨 이윤가? 자식에 대해 내 세울 것이 신발밖에 없는 것인가? 나는 아저씨를 정면으로 보고 아저씨는 옆으로 돌아앉아 가끔 말끝마다 웃음과 함께 궁둥이를 들썩 거렸다. 스스로 하시는 말씀이 즐거우신 모양이다. 난 별로인데. 사실 내가 즐겁지 않다고 아저씨의 웃음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이가 없을 때 즐거운 듯 웃는 이 웃음은 이미 아저씨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이다. 기계실 위에 켜진 전등으로 아저씨가 턱을 들고 웃으시는 벽에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우리가 만들었지만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 커다란 기계실이 흑백 무성영화의 과장된 연기를 하는 익살 배우처럼 웃으시는 아저씨 때문에 노동 후에 얻어지는 소외감이 조금은 덜하다.
“그럼 학원에 다니겠네요. 다시 대학시험을 보려면?”
“시험은 무슨 얼어 죽을, 머리가 따라 줘야지. 내가 일 나오면 지에미하고 집에서ㅡ 잠 퍼 질러 자다가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놈은 나간다니까. 파~하하. 밤새도록 춤추고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다니. 제에미 시벌. 에비는 노가다 뛰는데. 이게 뭔 꼴인지. 파~하하.”
아저씨 말을 들으며 은단을 우물거리자 입안이 화하게 밝아진다. 아저씨 말에 속이 뜨끔해 벽을 보니 내 그림자 손가락질하며 나에게 일갈을 한다.
“너도 그랬어! 임마!”
아버지가 어디 습기 찬 현장구석에서 오야지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며 방황하는 내 걱정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 고학력 실업자도 많은데 아예 공부를 잘하지 못할 바에야 기술이나 확실한 거 배우는 편이 났겠네요.”
“글쎄 나도 그랬으면 하는데 놈이 싫다는구먼. 뭐 특전대에 지운을 한다나. 덩치는 어찌나 좋은지. 파~하하.”
아저씨가 특전대에 힘을 준다. 아마도 특전대라도 나와 세상에 특전대 명함이라도 내밀라는 부모로서 어떤 바람이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로는 자식이 덩치가 크다는 것은 최소한 어디 가도 맞아 죽지 않는다는 원초적인 만족감이 있는 수도 있고, 조금 전 신발도 그런 깊은 염원을 담고 있지 않을까.
“녀석 친구 놈들 몸이 좋아서 해병대니 공수니 지원을 갔거든 녀석도 빨리 군대나 다녀와서 정신이나 차렸으면 하는데, 그래도 지금 사고를 안치니 다행이지.”
“사고도 치나요?”
“지금은 아니고. 고 1때부터 경찰서에 들락거렸지. 요즘은 걸렸다 하면 사정없이 경찰서로 넘기데. 파~하하. 내 한 두 번 쫓아 다녔어야지. 부끄러워서. 나중에는 사위가 가고 동생이 가고 아주 정신이 없는 놈이라니까. 파~하하.”
“맞아야겠네요.”
“지금은 안 돼. 놈이 팔목을 잡으면 꼼짝 못하겠거든. 파~하하. 다 뜻대로 안되더라고. 파~하하.”
부모로서 자식을 한마디로 정리한 그 말. ‘다 뜻대로 안되더라고’ 그 말이 온 기계실을 휘감아 친다.
“파~하하.”
나도 웃고 그림자도 입을 헤벌리고 따라 웃는다.
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너무 빨라 잡을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많은 기억들이 스쳐간다. 자식이란 삶에서 무엇인가? 석가모니가 자식을 안고 말한 첫 마디가 ‘나의 업보여!’라고 했다는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가?
“하하. 아저씨 다 뜻대로 되면 자식이 아니죠. 킥킥.”
“그런가! 파~하하.”
웃을 때마다 들썩이는 아저씨 엉덩이로 아저씨 그림자가 춤을 추고, 아저씨 그림자에 내 머리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방아를 찧는다.
“놈 때문에 생돈 꽤 들어갔지. 파~하하.”
“그런 말씀하시고도 웃으시니 좋네요. 하하.”
“이게 웃는 걸로 보이나. 하기야 이렇게 안 웃었으면 뒤로 자빠졌지. 파~하하.”
아저씨를 따라 웃다가 재채기가 나오면서 콧물이 나오면서 콧물이 흘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당시 언젠가 어머니는 내 탓을 한 적이 있다.
“니놈 때문에 속 썩었어.”
세월이 뭔지 지금은 그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내 자식이 그 업보를 뒤집어씌울 때, 하나하나 생각이 나겠지. 그림자가 무릎을 안고 나에게 묻는다. ‘정말?’ 그래 그럴 것이다. 자식이란 내가 아버지에게 지은 업보의 거울이겠지.
“......”
한바탕 놀이가 끝난 빈 터 마냥 기계실 안은 먼지만 날린다. 콧물을 닦는 동안 아저씨는 더 이상 말을 안 하셨다. 괜히 부질없는 말을 했다고 후회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 텅 빈 마음을 누가 메워주랴. 오직 그러거니 하는 소탈한 마음이나 조금은 달래줄려는지. 아저씨는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아저씨가 금방 담배를 한 번 빨고 입을 다물자 코에서 서서히 담배 연기가 빠져 오른다. 건너편 벽에서는 아저씨 옆모습과 내 앞모습이 죽으나 사나 어쩌지 못하고 노동일로 먹고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그림자가 엉켜 있다.
“일해야지. 푸~.”
담배 연기와 긴 한숨을 함께 내 뿜고
“짤리면 아이엠에프에 갈 때도 없어. 파~하하.”아저씨 또 웃는다. 그림자도 벌떡 일어나 따라 웃고 먼지는 놀라 흩어진다. 잠깐 쳐진 등도 휘청휘청 더 밝아지며 내 마음도 일순간 가벼워진다.
아저씨는 웃음으로 우울한 마음을 털어 버리고 우두둑 소리 나는 무릎을 힘겹게 펴고 일어나 사다리를 들고 문 쪽으로 간다.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기계실에서 멀어져 간다.
나도 훌쩍이며 연장 통을 들고 일어서는데 무릎에서 두둑 소리가 난다.
“......”
그림자가 웃는다.
그래 나도 웃음을 배워야겠다. 어차피 오십 넘어서도 현장 생활 하려면 그보다 명약이 없을 테니. 기계실에서 퇴장하는 내 뒤로 꾸부정한 그림자가 내 발자국을 밟으며 사뿐사뿐 따ㄹ온다. 문을 빠져나가기 전에
“경주야!”
해서 뒤를 돌아보니 그림자가 어둠에 묻히고 손을 흔들어 댄다.

‘99년 3월 명동근처 은행 신축현장에서 일을 할 때였다. 지금은 그 은행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건물은 다 되어 발주처에 인계인수과정이었다. 옛 코스모스 백화점 개보수 작업을 하다 잠깐 마감작업을 하기 위해 그곳에 지원을 나간 것이다. 거의 마감이 끝난 상태로 벗겨진 페인트나 변경된 사사로운 작업뿐이어서 힘들지는 않았다.
점심시간에는 몇 층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회장실이 있는 층으로 몰려 올라가 낮잠을 즐겼다. 창밖으로 밝은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남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 멋들어진 곳에서 세상사를 고민하며 일을 해야 하는데. 고작 사무직들이 밟고 다니는 양탄자 위 벌러덩 누워서 낮잠을 자다니. 사실 그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 곳에 들어가 보겠는가!
별다른 기술이 필요치 않는 그 현장에서 성도 기억나지 않는 한 아저씨와 잡일을 하며 한 주일을 보냈다. 가끔 사적인 이야기도 하면서 그날 받은 일을 처리해 나갔다. 그곳에서 다시 코스모스 현장으로 복귀하기 한 이틀 전 지하 둘이 기계실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99년 4월에 쓴 글이다. 조합 글모임 회지에 있기에 타자를 친 김에 올려논다. 연맹신문에 돈받고 쓴 글이기도 하다. 한 3만원 정도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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