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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함바 여주인 서씨
 최경주  | 2006·02·12 21:17 | HIT : 2,122 | VOTE : 208 |
함바 여주인 서씨



흙모래가 깔리며 조경작업이 들어간 아파트 공사현장에 해가 질 때면 노동자들이 하나둘, 혹은 승용차들이 줄지어 현장 출입문을 빠져나간다. 저녁 바람에 비산방지 망이 바람에 떨고 야번을 보는 노인네가 현장 불 단속할 시간이면 공정에 쫒긴 야간 근무자들이나 하루 일을 정리한 관리자도 피곤한 눈을 비비며 현장을 한다.
언 달빛이 깊어 갈 무렵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자 굶주린 쥐는 물러나며 식당 쓰레기통을 물려준다. 고양이는 입맛을 당기는 비린내 나는 식당 주방 안을 기웃거리며 벽 밑을 긁다가 덧없는 욕망임을 알고 이내 몸을 돌려 현장 사무실 쪽으로 간다.
식당 창유리에 두껍게 낀 성에가 엷은 보랏빛 보안등 빛을 막고 중앙 난로 옆에 주인 여인 서씨는 홀로 난로를 쬐고 있다.
“이런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놈!”
난로 옆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중년부인 서씨는 주먹을 쥐었다가 펴고는 치를 떤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 최사장에게 함바 뒤 화장실 앞에서 대놓고 당한 생각을 하면 차마 이 늦은 시간에 잠이 오지 않는다.
“망할, 이놈 모가지를 어떻게 물어뜯나!”
서씨는 분함과 억울함을 어찌 해보지 못하고 홀로 몸서리친다. 난로 불은 연신 타오르며 서씨의 곱슬머리와 피발이 선 눈 속에 파고든다. 서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놈의 목소리가 당체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너 자꾸 이러면 밥값이고 나발이고 없어! 지금 내가 얼마를 물린지 알아. 그까짓 푼돈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재수 없게 이른 아침부터 지랄이야! 망할. 카악 퉤이!”
거만하고 야비하고 둔탁한 목소리, 눈이 째진 검은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는 최씨의 고함소리가 몇 번이고 서씨의 귀가에 칼로 후비는 듯하다.
“일꾼들한테는 말 한마디 못하는 고는. 지금 여자라고 무시 하냐! 나 카드 돌려가며 밥해주고 있단 말이야! 내가 왜 그래야 돼! 이 멍청한 당신 때문이야! 능력이 없으면 공사를 하지 말지.”
비꼬는 서씨의 말투가 아침공기와 차갑게 흘러 최씨의 얼굴을 붉게 만든다.
“뭐, 뭐라고 지금 염장 질러? 이 여편네가 죽고 싶나?”
“여편네라니? 이양반이 여자라고 사람같이 안보이나? 앙!”
“여자가 사람이냐! 어디서 악다구니야! 그래 오늘 너 돈 오늘 다 받았다. 쌍!”
“뭐? 당신 지금 뭐라 그랬어!”
“잘됐다고. 이 망할 여편네야! 밥값 지금 한 번에 받고 있다고!”
“내 밥값을 떼먹겠다고. 그러고 보니 아주 작정을 했구먼. 최사장.”
“그래 작정했다. 내 욕먹고 돈 못준다. 당신 같으면 주겠어?”
“올거니? 최사장 이런 순간을 기다렸겠구만. 밥값 떼먹게.”
“정말 이 여편네 완전 독종이구만. 이 손 못 놔. 싸대기 한 대 올려 부치기 전에.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돈 일원이라도 주고 싶겠어. 밥 같지도 않은 밥 먹고.”
“뭐 이런 개.......”
“개, 뭐라고. 정말 이 여편네 말로 안 되겠구먼. 완전 개판이네. 너 이리와!”
서씨가 참지 못하고 욕설을 뱉어버리자 눈이 뒤집힌 최사장이 두꺼운 손바닥으로 서씨의 머리를 소리가 나도록 후려 쳤다.
“이런 개망나니 같은 놈. 어디서.”
서씨는 한 대 맞고 반사적으로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놈의 목을 휘어 감았다. 그 짜릿한 맛이란. 최사장 기겁을 하고 물러서며 손으로 목을 찍어 본다. 검게 그을린 목에 새빨간 핏빛 손톱자국이 서너 줄 시원스럽게 그어졌다.
“이 년이, 네 남편 놈도 못 잡은 버릇을 고쳐주마.”
“그래 남편 잡아먹었다. 오늘 너도 잡아 먹어주마. 이 개 상놈의 새끼야!”
최사장은 내친김에 여편네 서씨의 멱살을 잡고 식당 뒤쪽으로 끌며 연신 손바닥으로 때렸으며 서씨도 끌려가며 최사장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들었다. 사람들이 두 중년 남녀의 노골적인 개싸움에 하던 일을 멈추고 함바 뒤꼍으로 모여들었다.
“이놈아! 그래 죽여라!”
화장실 앞으로 한 사람씩 몰려들자 최사장은 더 이상 때리지 못하고 서씨를 떼놓으려고 벌건 얼굴로 안간힘을 썼다. 서씨는 돌같이 단단한 머리를 놈의 턱을 치받으며 다른 눈이 없을 때 당한 분풀이를 했다.
“최사장 지금 뭐하는 거야! 이게 뭡니까!”
새참을 먹으로 왔던 직영 김반장이 나타나 일갈을 했다. 최사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더 큰 낭패를 보기 전에 자리를 뜨려고 서씨의 배에 무릎을 대고 억지로 떼놓았다. 손을 휘두르는 서씨를 피해 서둘러 정문으로 빠져나가 차를 끌고 내뺐다.
태양은 타워 중간에 걸리고 살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 서씨는 헝클어진 머리와 달아오른 얼굴, 입술에 침을 튀며 욕지거리를 하였다.
“내 밥값을 떼어 먹어? 야이! 망할 놈의 새끼야! 천만에 말씀. 이 못난 거지같은 자식아! 내가 여자라고 얕잡아 보는 거지. 내 머리채를 잡아? 네 마누라를 그렇게 해라! 이 망할 자식아. 하도 어이가 없어 말이 다 안 나오네. 내 밥장사 이날까지 하지만 이런 일 처음 겪는다. 네가 너한테 뭘 잘못을 해냐? 이놈아! 양심 좀 있어라! 네가 가만있을 줄 아냐? 노무자들 임금 떼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놈. 네 놈이 어떻게 해왔는지 다 알아! 현장 출신이면 일꾼들 더 생각을 해야지 더 지독하게 피를 빨아먹는 놈. 아, 김반장님 글쎄 저 놈이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어르더라니 까요. 이게 말입니까? 밥 처먹은 거 밥값 달라고 한 게 잘못입니까?”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원! 최사장 갈수록 왜 그래 정말! 그나저나 참이나 먹읍시다. 일도 다 정리하자고. 지금 멍청하게 일할 때야! 돈 받아야지.”
현장 직영 반장인 김씨는 대학시절 아이스하키를 했다는 그 떡 벌어진 어깨를 으쓱 하며 흰 머리를 쓸어 넘기며 어이없는 얼굴로 혀를 찼다. 목수들도 옥상에서 일을 하면서 뻔히 내려다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 사장이라고 말을 못하고 망치질 하면서 눈이 보배라고 별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날이후 서씨는 설마 하던 안일한 생각을 접었다. 최사장 하는 꼬락서니를 봐서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놈은 돈이 궁하면 자기 할머니 고쟁이라도 벗겨서 손자 과자 값도 긁어 갈 놈이었다.
이 늦은 밤에 창밖으로 간간히 다니는 현장 밖 승용차 소리와 주정꾼들 지나치는 주절거림만 들린다. 밤에 내리는 서리만큼이나 서서히 걱정이 서씨의 정신을 좀먹는다. 묽은 콘크리트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점점 머리며 어깨가 스트레스로 굳어져 갔다. 염병할 갖가지 잡념들, 세속의 시비들이 불분명함으로 강기슭 물풀처럼 흐늘거리고 상어 껍질처럼 깔깔하게 마음에 걸리기만 한다. 느리게 혹은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망상들. 갑자기 튀어나오는 목소리들, 반찬 투정을 부리는 일꾼들의 짜증이 틈틈이 귀가에 어리고, 점심시간이며 시간에 쫓기어 일하는 아줌마들을 닦달하는 착각에 심장에 압박이 간다. 쫒기는 농지거리 던지는 젊은 관리자들의 권위가 자존심을 건드리고, 빛처럼 빠르게 혹은 느릿한 한겨울의 밤공기처럼 일상의 얽힌 기억들이 아픈 고통으로 가슴을 쥐어짜며 괴롭힌다.

올해는 무슨 일이든 힘없이 깨지는 쪽박처럼 밥맛없는 해다. 작년 말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하나있는 딸년이 서울에 있는 어떤 대학을 들어가지 못했다. 많은 문제가 있었겠지만 역시 운이었으리라. 딸년은 한사코 작년 초부터 심해진 아토피 때문이라고 우겨댔지만 그래도 서씨 생각에 자신의 운이 나빴기 때문에 딸년 시험운도 없다는 생각이 되었다. ‘다 운이 없으니 아토피에 걸린 것이다’ 딸이 자고 일어난 요 위에 긁어 피가 온 몸에서 나고 부스럼이 모래처럼 수분한데 무슨 공부가 되겠는가! 딸년은 그렇게 되고 날이 풀려 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밥값을 뜯긴 것이다. 밥장사 수십 년을 해보지만 이렇게 더럽게 밥값을 떼이기는 처음이다. 근래 노가다 판에서 밥값을 집단으로 떼이는 아직도 더러 있다지만 서씨는 자신이 이리 될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처음에는 그렇다고 치고 설마 했는데 연말에 와서 또 뜯기게 생긴 것이다. 초에 이천만원을 고스란히 뜯기더니 올 말에도 그만큼을 또 뜯기게 생긴 것이다. 이게 뭔 조화란 말인가? 한곳에서 두 번을 말이다. 서씨는 쇠 젓가락이라도 끊어버릴 듯 이를 악 물었다.
지난 해 말 막내 시동생이 사십 전에 장가를 가서 이제 뭔가 좀 풀리는가 싶더니 줄초상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동생 장가는 날 서씨는 몸매에는 안 맞다 싶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는 한복을 꺼내 입었다. 그날은 서씨에게 최고의 날이었다. 서씨는 자신의 자식이 결혼을 한 듯 들떠 하객을 맞았으며 그의 목소리는 온 종일 기쁨에 넘쳤 흘렀다.
“여러분 제 장남의 결혼식에 참석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시동생이라고요. 천만에요 내가 키우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보란 듯이요. 어떤 놈 하나 거들었습니까? 누구를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이날까지 쌀 한 톨 얻어먹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그런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직 나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지독한 년이란 말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 해주십시오. 오늘 서씨 장남이 장가를 간다고. 오늘은 서씨의 날이라고. 이 팔목이 쉴 날 없이 일해서 먹이고 재우고 입혀서 키운 내 핏덩이 보란 듯이 어른이 되는 날이라고.”
그녀는 결혼식장에서 많은 친지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그녀 또한 대갓집 맏며느리처럼 이중 턱을 치켜들었다. 식당음식은 손수 골랐으며 전장의 장수처럼 모든 일을 손을 쭉 펴 진두지휘했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오늘의 시댁 집안은 자신을 빼놓고는 이렇게 밥숟가락을 들고 있으리라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녀가 처음 시집왔을 때는 남편과 어린 시동생,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가 도봉동 개천가에서 허름한 판자 집에서 현관에 붙은 화장실을 개조한 방에서 샛방 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장일을 하는 남편 도시락을 싸주다가 오야지로부터 음식을 좀 할 줄 아니 새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장에 밥을 짓게 되었다.
남편은 애초 한 가정을 당당하게 이끌어 가기에는 부족한 가장이었다. 늘 현장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보대끼고 취해 있었다. 서씨에게 참으로 다정했으나 어려운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아가기에는 너무 예민한 감수성과 소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소주 한두 잔에 취하는 새색시 보다 말없는 순둥이,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의 고생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그녀 또한 그런 아버지 밑에서 살아 온 것이다. 그녀는 손톱 밑이 썩어 까맣게 변할 정도로 쉬지 않고 물일을 했다. 설거지와 야채를 다듬고 밥을 짓고 싸우며 돈을 받아야 했다. 여자인척 살아가기에는 그녀의 주어진 삶은 혼자 일구기에 벅찬 넓은 자갈밭 그 자체였다. 누군가 일구어야 할, 그것이 자신밖에 없는 것을, 가장인 남편은 술에 취해 있었고 시동생은 너무 어렸으며 시할머니 시어머니는 이미 몸 반쯤은 관에 담고 있었다. 가정을 버리고 도망치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컸으며 끊어지면 즉사하는 생명줄이었다. 그녀의 힘든 노동 덕분에 죽을 사람들 올바로 죽을 수 있었고 남 밥 먹을 때 죽이라도 들 수 있었다. 비록 시동생에게 아파트라도 한 채 얻어 주지는 못하고 변두리에 전세 빌라하나 얻어 주었지만 시동생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 이제 딸 하나와 자신만을 위해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다짐을 했는데 연달아 벌어도 시원찮은 돈을 뜯기다니.

‘최씨가 자빠졌다니’ 올 초에 부도를 낸 이사장이 자빠졌을 때보다 곱은 더 큰 충격이었다. ‘이 개자식’이란 최사장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을 그녀는 줄곧 쓰기 시작한 게 자빠졌다는 말을 듣고 나서 부터다. 결국 최사장의 자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녀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식당에 머물게 되었다. 실제로 최사장이 자빠진 시점은 서씨가 알기 전이었다. 체불 노동자들이 뭔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책임자급들이 모여 원청 사무실에서 난동을 부린 날 서씨는 최사장이 넘어갔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을 멈추고 사무실에 올라가 강하게 항의를 하였으나 현장 소장은 책임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들은 날, 서씨는 가슴이 답답해 숨이 막혀 청심환을 통째로 두 개를 씹어 먹었다.
그날 서씨는 자신의 머리를 벽에 박치기라도 하여 피를 쏟고 싶었으나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눈앞에 숱한 노란 식권이 나비 떼처럼 날아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식당 열린 문틈으로 귀신이 날아 빠지듯 홀연히 나가는 환상을 보았다. 뭔 일이 정신없이 일어났다 돌변하는 상황 속에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서씨는 이를 악 물었다.
얼마나 일을 뼈 빠지게 해서 처먹여 놨더니 이게 뭔가 싶었다. 거반 이년을 백여 명의 일꾼들을 먹여 놨다. 식사 때면 그들은 쉴 새 없이 밀려들고, 온몸은 땀에 젖어 정신 없이 밥 때를 보낸다. 한국인, 중국인, 저 동남아시아 사람들까지 탁자에 식기 판을 들고 오가는 노동자들이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그들의 말소리와 티브이 소리가 얽히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 된다. 아침, 오전 참, 오후, 오후 참이 끝나면 몸이 온 몸이 성한 데 없이 뻐근해 진다. 그렇게 일했는데 깔아 논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생겼다니. 더구나 봄에 그 일을 치르고 나서는 카드를 돌려 밥을 해 먹여 왔는데.
서씨는 갑자기 가슴속에서 구역질이 났다. 난로를 피해 몸을 돌리자 입과 콧구멍으로 쓴 위액이 흘러 나왔다. 문득 구역질을 하면서 몇 해 전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이 떠올랐다.
“거 봐! 당신은 욕심이 많다. 내 말했잖아 탈난다고. 그게 병이라니까.”
남편은 밝게 웃으며 말을 했다. 남편의 웃음소리가 귀가에 아련하게 멀어져 갔다. 그의 휘청거리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구역질을 멈추고 입을 팔소매로 문질렀다. ‘욕심이요. 내가? 그럴 리가? 아니지 난 결코 쓰러질 수 없어. 난 당신처럼 약하지가 않아’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와 다르게 흐려진 머리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힘겹게 걸어 티브이를 켰다. 티브이 안에서 방청객들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남편이 어느 날 가족만 남기고 홀연히 운명을 달리 했듯이. ‘자동차 사고래 딱 열흘 살았어.’ 그녀가 멍한 가슴으로 병실을 나오자마자 남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서야 ‘남편이 죽었구나!’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가슴, 그녀는 티브이 소리를 최대한 키웠다. 티브이 소리에 남편의 여위 모습은 사라졌다. 티브이 안에서 개그맨들이 삼육 구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찮은 너무도 하찮은 짓들, 자신은 생사를 헤매고 있는데, 저 치들은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돈을 벌고 있다. ‘그래 돈을’ 그녀는 울렁거리는 속을 붙들고 탁자에 손을 짚었다. 티브이 안에서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숫자놀음이 계속 되었다. 하나, 둘, 넷, 다섯, 여섯. 웃음소리, ‘놀면서 돈을 번다니,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저것도 직업이란 말인가? 그래 쉬운 것은 아니지, 돈 벌기가 그리 쉬울 수만 있다면, 하나, 둘, 셋, 넷’ 그녀는 무의식중에 수를 세었다. 그리고는 문득 머릿속에 구구단이 떠올랐다. 이이는 삼, 이이는 사, 이이는 오, 이이는 육, 이이는 칠. 그녀는 한 참을 그러다 그러는 자신을 보고 웃었다. 그녀의 웃음으로 식당 밖에 있는 고양이가 놀라 건축현장 어둠 속에 들어가 숨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경비가 손전등을 들고 현장을 돌다 식당에 다다라 창문을 통해 안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주인 여자가 머리를 풀고 엎드려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경비는 그녀가 귀신이 아니라 서씨인 것을 알고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혀를 찼다. 그는 경비실로 들어가 다른 경비를 보고 식당여자의 처지를 안타깝게 이야기 했다.

다음날 날씨는 영하 10도를 웃도는 추운 날씨였다.  
그녀는 체불 노동자들이 모이기로 한 날 아침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체불된 노동자들이 모이기로 한 날 아침 그녀는 우황청심환 한 알을 통째로 먹고 나갔다. ‘거지같은 최사장에게 당할 수는 없다.’ 서씨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다짐을 했다.
서씨가 처음 밥값을 떼인 게 봄철이었다. 지금과 똑같이 일 대부분을 맡은 하청이 자빠질 때 밥값을 그대로 안고 넘어간 것이다. 어떡하든 반 이상은 받아 냈지만, 그 동안 번 것은 헛것이 된 것이다. 이번 밥값도 혹시나 하면서 몇 번의 징후로 느낄 수는 있었지만 설마 했던 것인데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일은 봄철과 비슷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봄에도 건설노조가 개입하면서 그럭저럭 쉽게 해결이 되었다. 설마 한번 깨진 일이 되풀이 일어나랴싶어 그 장소에서 그대로 시작한 밥집이 겨울 중턱으로 갈수록 소문만 무성하던 일이 벌어졌다.
봄 체불 때에는 일꾼들이 싸움을 하는 것 같이 했다. 사무실 집기를 부수고 타워에 올라가 농성을 했다. 까마득하게 높은 타워에 셋이 올라가 악을 쓰는 장면이 티브이에 고스란히 나왔다. 타워 아래는 소방대원과 경찰들, 체불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고 돈 받을 사장들은 사무실 안에 들어가 소장을 닦달하였다. 그때 그녀는 타워 아래서 구름이 흘러 꼭 타워가 비스듬히 넘어가는 듯한 정경을 올려보며 자기 운명을 점치고 있었다. ‘과연 꼼짝없이 내 돈 삼천을 떼이는가 아니면 최대한 어떤 돌파구가 생겨 돈을 받아 낼 수 있는가?’ 하는. 운명은 그녀를 난처하게는 했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그녀는 더 큰 운세를 위한 시련으로 보고 힘을 내었다. 남들 타워타고 집회를 할 때 그녀도 앉아 있지만은 않았다.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동원해 노력을 했다. 무엇보다 집요하게 노조를 물고 늘어졌다. 그들의 체불 안에 밥값을 조금 부풀려 넣은 것이다. 체불 해결되는 과정에서 노조 덕에 일정금액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서씨는 여자로서 벅차게 남자들 틈에서 다시 머리를 싸매고 힘껏 굴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조건은 더욱 나빠졌다. 회사는 봄철에 너무 싶게 졌다는 반성과 함께 사운을 걸고 일전을 불사하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자신이 보기에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능력없는 하청이 일을 한 게 문제였다. 망할 놈들, 늑대 같은 놈들이 이번에 법으로 물고 늘어지다니.
체불싸움에 밥값은 개 값이나 같다. 체불과 관련이 없는 것이다. 여차하면 십 원도 못 건지는 거다. 이번에도 아직 말은 없지만 협상에 들어가면 노조나 회사 놈들은 외상 밥을 먹은 당사자들에게 넘기고 밥값은 언제든 쉽게 털어 내려 할 것이다. 밥값은 노동자의 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짐승 같은 놈들, 자기 새끼들만 생각하는 천벌 받은 놈들’ 서씨는 체불 노동자들이 강남에 있는 본사에 집회를 하기위해 대절한 버스에 올라탈 때 슬그머니 따라서 차에 올랐다. 위원장이란 작자가 약간 노리끼리한 눈으로 못 마땅한 눈치였으나 서씨는 체면을 차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가벼운 아양을 떨었다.
“위원장님 살려주세요. 이게 뭡니까? 벌써 두 번째입니다. 나 완전히 파산이고 빚쟁이 다 되었어요. 나 좀 살려주세요.”
“그런 소리 마시고요. 다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노동자들은 더 힘듭니다. 작업화 뜯어 먹고 살 지경인거 모르세요. 일당장이 입니다. 하루벌이 인생들이에요.”
“에이 무슨 말씀을. 말이 노동일꾼이지, 다 자기 집 있습니다. 까뒤집어 놓고 말하면 나보다 못한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다. 난 단칸 셋방입니다. 지금은 함바에서 먹고 잡니다. 이게 여자 몸으로 사는 꼴입니까? 귀신에 홀린 것 같아요. 저 이번에 해결 안 되면 식당에 불 싸지르고 자살해야 됩니다.”
“서사장님도 참. 함바가 밑졌다는 말도 있습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하여튼 이번에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일당 아니면 신경 못 씁니다. 벌써 소장 자빠지는 것 봤죠. 본사가 직접 나서서 이번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자살은 사장님이 아니라 제가 해야 될 판이에요. 저 뒤를 보세요. 굶는 사람도 있다잖아요.”
“알아요. 위원장님은 꼭 말씀을 이렇게 하신다니까. 밥값도 일당입니다.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으세요. 저 농담 아닙니다. 이번일 해결 안 되면 나는 뭔 짓이라도 합니다. 보세요. 거짓말인가, 꼭. 일냅니다.”
위원장은 손짓으로 그만하라고 말을 막고 서씨의 등을 밀었다. 서씨는 버스에 올라타 주변을 휘 둘러보고 목수, 철근 반장이 따로 앉아 있는 곳에 다가갔다. 철근 반장이 시큰둥하며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서씨는 속을 꾹 누르고 엉덩이 들이밀고 그 옆에 앉으며 팔꿈치로 옆구리를 꾹 찔렀다.  
“철근 김반장님 밥값 어떡케 할 거야? 나 피눈물 나와. 철근은 나중에 와서 처음 당하지만 나 두 번째요. 내 누차 말했지.”
“설마 밥값이야 떼먹겠어요. 드려야지요. 서사장님도 힘 좀 써 줘. 소장이니 뭐니 본사 임원들 식당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안면이 있잖아요.”
“돈이야 내가 받나 반장님들이 받아야지.”
“안 주는 돈을 어떡케 받아요?”
“노조가 있잖아 노조가. 머리를 써야지. 노조가 이 정도 발을 묻었는데 해결이 안 되겠어.”
서씨는 위원장의 눈치를 살피며 소근 거리 듯 말을 했다. 위원장은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버스는 서서히 출발을 하였다.
“잘 될지 모르겠어요?”
“노조를 믿으라니까. 내가 이미 겪어 봤잖아. 저 치들은 저게 업이야. 그래서 빨리 노조에 연락하고 목수 계단 팀 임반장을 재촉하게 한 게 나잖아. 돈 받으면 다 내 덕인 줄 알라고, 그러니 밥값 떼먹으면 안 돼.”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자 여기 도시락 하나 가지고 가서 굽실거리라고, 살기위해서는 기분을 잘 맞춰야 해. 저 위원장이 바로 우리 생명이야. 당신들 백 명보다 나아. 쥐뿔이나 소리나 지를지 알지 할 말을 할 때 하고 빠질 때 빠지는 것을 모른단 말이야.”
“말 하는 거 하고는. 서사장님이 위원장 해도 되겠네.”
철근 김반장은 한마디 하고는 가까이에 쌓아 놓은 도시락 중에서 두개를 꺼내 물 한통을 들고 위원장에게 가기위해 서씨를 건너 자리를 나왔다.
서씨는 몸을 뉘로 뉘였다. 그녀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 위원장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 놈들은 타협을 모르는 독한 놈들이란 인식이 그에게 깊게 새겨져 있었다. 봄에 놈들은 젊은 놈 셋을 타워에 올려 보냈다. 그리고 아래서 협상을 통해 해결을 끌어내었다. 그때 그녀는 순진하게 밥값을 요구하다 돈을 완전히 챙기지 못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에 결국, 나이 사십 갓 넘는 위원장에게 애걸하다시피 매달려 반쯤 해결한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밥값을 따로 넣지 않을 것이다. 눈치를 보니 노조에서도 밥값이 부담스럽다고 노골적으로 몇 번의 이야기를 거들먹거리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번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었다. 노조가 아니라도 받을 다른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대안은 반장들을 구슬리는 것이다. 어차피 마지막에 가서 밥값을 주고 안 주고는 노조가 아니라 놈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위원장은 도시락 한 개를 반쯤 비우더니 덮어두고 일어나 담배를 꺼내 물고 뒤 좌석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일꾼들에게 자신에 찬 말을 하고 뒤로 가는 것을 눈을 감고 외면했다. 서씨는 위원장이 뒷자리로 지나가자 직영반장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돈 받기 힘들겠어?”
서씨 말에 바로 건너에 있던 중국인 잡부가 눈이 크게 뜨고 자신이 있는 쪽을 보았다. 서씨는 일없으니 눈감으라고 손짓을 했다. 잡부는 눈을 꾹 감고 못들은 체 했다.
“뭔 헛소리? 싸우러 가는 초장부터.”
김반장은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네 까짓 게 뭘 아냐는 말투였다. 그런 얼굴을 보는 서씨는 오히려 현장에서 쓰레기나 치우는 김반장이 한심해 보였다. 그녀는 달래듯 김반장에게 듣기 좋게 이야기를 했다.
“소장이 일주일 봐달라고 한 거 안 봐줬다면서요?”
“그건 또 어떡케 알았어. 비밀인데.”
서씨는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추어 김반장에게 말을 했다.
“비밀이요? 무슨 얼어 죽을 비밀 여기에 지금 비밀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순진하니, 원.”
서씨는 김반장을 한심하듯 비웃었다.
“반장들 회의하고 나오는 순간, 문턱 넘으면서 몇 놈 전화하는 것 못 봤어요? 네가 이름 하나씩 말해 볼까요? 최사장에게 보고하고, 건설회사 소장에게 보고한 반장들을? 경찰서에 전화나 안했나 모르지.”
그 말에 김반장은 쓴 입맛을 다셨다. 속으로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었으니, 어련하랴’하고 생각했다. 서씨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충 일을 맡아 들어 온 연줄을 따지면 다들 소장이나 최사장과 각별한 사이들이다. 이번 한번 일로 지난 몇 년, 앞으로의 인연을 끊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서로 돈을 받아야 하기에 양다리를 걸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 못 받을 것 뭣 하러 탔어. 이 시간에 새참이나 팔지.”
“반장님도 참, 내가 못 받는다고 했나요. 힘들 거라 했지. 내가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한 일주일 봐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거죠. 소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은 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누가 강경하게 밀어붙였어요? 철근 쪽 아니야?”
“그랬지. 근데 왜?”
“덩어리가 크잖아요? 그리고 철근 사장이 최사장 회사에서 이사잖아요?”
“그런데?”
“소장은 최사장 쪽에 최대한 책임을 물어 돈을 털려고 하는 거란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철근을 하청 회사쪽 떠 넘기는 거죠. 같은 회사니까. 소장 말은 철근은 원청이 책임질 일이 없다 이거지. 노조도 그건 뭐라고 말은 못하니까요. 노조에서도 좋은 거지. 어차피 체불이 금액이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싸우기 좋으니까요. 소장이 노린 것은 그거란 말이지요. 소장도 이번 일 만큼은 자기 손에서 해결하고 싶은 거지요. 안 그래요? 한 현장에서 똑 같은 문제가 반복해 일어나는데 그 목이 남아나겠어요. 철근은 그걸 알고 초장부터 싸움을 강하게 끌고 가려는 거란 말이요. 다른 일꾼들과 뭉텅이로 같이 해결해야 되거든. 까딱하면 돈 다 날아가지. 눈치 딱하면 나오는 건데.”
“그건 듣고 보니 그러네. 위원장한테 말해야 되나?”
“반장님, 저 여우같은 위원장이 그걸 모르겠어요? 만약 일주일 연기를 시켰는데 해결이 안 되면 어떡해요? 마음이야 있어도 전적으로 책임을 질수가 없는 거지요. 싸움 일주일 늦어지면 백 명 일당이 어디서 나오나요? 어차피 결론은 회사와 짓게 되어 있는데요. 저번에 초장부터 싸움 밀리면 끝이라는 위원장 말 못 들었어요? 그게 그 말인데.”
김반장은 서씨의 말에 혀를 찼다.
“그래서 말인데. 나도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사실 돈이 몇 프로나 나올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원청에서 책임이 없는 판에 억지 써서 받겠다는 건데. 일한 만큼 완전히 안 나올 거라는 거 뻔 한 거지, 그래서 모르긴 해도 반장들 자기 경비 뽑으려고 뻥 튀겨 올렸을 거란 말이지요. 김반장님도 그랬겠지만.”
“그래서, 밥값까지 올려 달라고.”
“그렇게 안하면? 반장별로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민사재판으로 받으라고요. 한번 민사재판 해 볼까요? 그때 가서 나 독한 년이라고 욕해봐야 소용없어요. 일꾼들은 싸우는데 나는 구경만 하라고. 꼭 그렇게 일을 해결해야겠습니까? 서로 좋은 방법으로 풀자는 거지요. 김반장님. 좀 도와줘요. 나도 살아야 야지요! 한두 푼도 아니고. 내 이 참에 돈 못 받으면 반장들 집에 있는 수저까지 압류 붙이고 말아요. 설마 하면 나중에 피 눈물 나지요.”
서씨는 눈을 치켜뜨고 김반장 옆구리를 꾹 찌르며 얼렀다.
“밥값은 갚아야지. 먹은 음식인데.”
김반장은 고개를 끄떡였다.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반장은 입맛을 다시며 뒤를 돌아보았다. 위원장이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씨가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다른 자리로 이동을 하자 김씨는 반백의 곱슬머리를 뒤로 넘기고 뻣뻣한 살갗의 볼을 두 손으로 문질렀다.
“지독한 년.”
김씨는 서씨가 머리를 쓰는 것을 보고 혀를 내 두르며 감탄을 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돈 다 뜯겨도 서씨만은 찾을 것이다. 실제 이 차에 탄 노동일꾼들 그다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반쯤은 될 것이다. 외국인들도 대놓고 싸우기에는 불법체류라는 딱지가 발목을 잡고 이미 돈을 중간에 탄 놈들도 있을 것이다. 일을 맡은 최사장에게 하도급을 받은 사장이나 팀장들이 자기 돈으로 해준 것도 있을 것이다. 벌써 일을 멈춘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 노조가 개입하면 걱정이니 어정쩡하게 노조에게 알리고 뒤로 소장과 면담을 계속해서 달리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혹시라도 어떤 방도가 없을까 했는데 최사장이 멍청하게 쉽게 결단을 하지 못했다. 이미 대충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일을 하는 사람도 꽤나 있다. 철근이 그렇다. 처음에는 한 발 빠져 있더니 노조가 직접 개입하고 나서니까 사장 혼자서 나서며 숟가락을 내밀며 적극적으로 변한 것이다. 집회를 한다고 해봐야 어디 껄렁한 놈 두어 친구 데려다 놓고는 자신은 일을 보러 다녔다. 그런 저런 것 생각하면 눈꼴시어서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 식당 사장인 서씨까지 나와서 은근히 자신을 어르고 있다니.
“에이 망할.”
김씨는 혀를 찼다.
김씨는 커다란 몸집을 들썩이며 자세를 이리 저리 바꾸어 앉았다. 스스로가 한심한 노릇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자기 인생이 아닌데 말이다. 엊그제 노조사무실에서 대책회의를 하고 난 후 집에 들어가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일꾼 영감 몇 이서 자기를 자꾸 닦달하는 것이다. 술을 한 잔씩 한 모양이었다. 사실 자신이 직영 반장은 했지만 다른 대마 오야지처럼 사람을 고용해 쓴 것은 아니다. 같은 일당을 뛰었는데 자꾸 자신에게 전화를 해 대는 것이다. 마누라도 돌아누워 구시렁거렸다. 김반장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일까 말까 하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자식 놈들이 담배를 끊으라고 압력을 주어서 마음먹고 줄이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처럼 담배를 끊을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오늘 만해도 벌써 오전에 두 대를 피웠다. 이것만 피우고 해도 자꾸 손이 간다. 벌써 몇 번을 담배를 피우려다 참고 있다. 뒤에서 두어 명이 피우니 구수한 냄새가 슬슬 나는 게 참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거기다 서씨까지 왔다가니 답답한 가슴이 더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서씨가 뭐래?”
오른쪽 통로 건너편에 있던 봉천동 김씨가 그 큰 눈알을 살살 굴리며 낮은 목소리로 김반장에게 몸을 기울이며 묻는다.
“뭐래기는 밥값 떼먹으면 내 숟가락까지 압류한단다.”
직영 김반장은 버럭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주변에 들리게끔 말을 하였다. 봉천동 김씨는 움찔하며 뒤를 돌아 함바사장 서씨를 힐끗 거리며 보니 못들은 체 하고 차창을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돈만 주면 밥값은 갚아야지.”
“돈 못 받으면 안 갚고?”
“그러니까 받아야지.”
“에이, 이 최사장 만나면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려야지.”
김반장은 결국 담배를 빌려 한 대 물었다.
“염병. 달리 할 일도 없고. 늙어 죽도록 일을 해야 먹고 살수가 있으니. 이 꼴 저 꼴 다 감수해가면서.”
“서씨도 안됐어. 여자 몸으로.”
봉천동 김씨의 말에 김반장은 코웃음을 쳤다. ‘머저리 같으니’ 김반장은 노동자들의 순진함이 늘 일을 이렇게 꼬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말 몇 마디 그럴듯하게 하면 금방 말에 녹아나 박수를 치는 인종들이 바로 노동현장에 일하는 순둥이 들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남 걱정하고 있네. 사는 건 자네나 나보다 나아 이 사람아!”
“그래도 여자잖아.”
일꾼들은 모른다. 장사꾼의 성깔을. 야무지지 못하면 노동일을 하는 사람 상대로 무슨 일을 하겠는가? 김반장은 올 초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다른 직종은 몰라도 지금 두 번째 체불을 이 곳에서 당하는 사람은 직영뿐이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감정상하지 않게 해결되었고 현장 소장도 자신을 붙잡아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 한 회사는 공사 까지고 자빠지고 최사장이 나중에 들어온 것이다.

처음 현장에 사고가 났을 때 누군가 노조에 연락을 했다. 사월 중순쯤 되었을 것이다. 일을 해결하러 온 노조에서는 나름대로 계산을 해 보건데 은근히 밥값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위원장은 함바 사장 서씨를 배제하고 몇 번 모임을 가졌다. 노조는 노동자들 임금에만 권한이 있다는 논리였다. 그걸 누가 꼬치꼬치 서사장에게 고한 모양이다. 세 사람 타워에 매달리고 현장 소장실에서 물량계산을 하면서 최종 선을 협상을 하는데 다고 짜고 서씨가 회의장에 들어온 것이다.
“나 오늘 죽을 거야. 소장님 내 돈 어떡케 되는 거야? 밥값은 줘야지.”
인사가 숨넘어가기 직전의 쇠 소리였다. 죽는다니? 설마 그럴 리가. 그냥 겁주는 말이겠지. 사람들은 인상을 썼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데 밥값까지? 라는 말이 역력했다. 소장이 잠깐 나가있으라고 말을 했는데 서씨는 막무가내였다. 그가 듣고 싶은 대답이 없는 한 나가지 않을 테세였다. 결국 한 젊은 기사와 나이어린 목수 팀장이 나서서 서씨를 달래 사람들이 지키고 서있는 사무실로 끌어냈다. 혹시나 돈을 못 받을지 모른다는 처지에 서씨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양반들아. 먹고 살자고 나와서 생 노동일을 일할 때 따뜻한 밥해줬으면 됐지. 밥값을 떼먹겠다는 거야. 앙. 이게 무슨 경우야. 당신들은 자식새끼가 있고 난 없어. 당신들이 돈 벌자고 나와서 이 생지랄 하면은 나는 놀면서 밥해 줬나? 어디 요즘 세상에 밥값을 안주려고 억지를 쓰나?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송장 치울 줄 알아. 나도 타워 탈거야. 이 노인네들아 웃지 마! 거짓말 같아? 당신들도 사람이면 이렇게 못해. 물론 내가 일꾼들한테 할 말은 아니야. 오죽 답답하면 내가 이러겠어? 경우가 틀렸다는 거야. 엉. 나도 막노동판에 나와서 무조건 내 돈만 생각하고 장사하지 않았어. 밥한 술 더 주려고 했지 내가 당신들에게 야박하게 장사했나. 어디 누가 입 있으면 말 좀 하지. 내가 틀렸나? 이런 개 같은 경우는 생전 처음보네. 어휴 더워. 나 혈압 있어. 아주 오늘 끝장을 내겠어. 그리고 나 앞으로 이 장사 안 할 거야. 아주 누가 죽나 보자고.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거야 뭐야. 엉, 일해야 되니까 밥해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벌써 세 달을 참아 왔는데. 이제 자빠지겠다고. 지금 깔아 논 밥값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삼천만원이 다 돼. 난 지금 집에도 못 들어가는 것 몰라. 당신들도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들을 것 아니야. 내가 여자 몸으로 나이 살이나 먹어서 지금 이게 할 짓이야? 나도 당신들만큼 나이 먹었고 체면도 있어. 이거 왜이래. 세상에 장사 몇 십 년에 이렇게 대책이 없는 현장 처음 봐. 아무리 노가다 판이지만 경우는 있어야지 최소한의 경우는 누구는 빚내서 밥해주고 누구는 떼먹으려고 악을 써. 내가 먹고 살만하면 번듯한 식당 차려서 돈 벌지 이 짓하겠어.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누가 입 있으면 말 좀 해 봐!”
서씨가 그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한손으로 치마를 걷어 올리고 엉성하게 매어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며 쉰 목소리로 한 풀이를 했다. 그 정도로 해서 결국 반 조금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 따지고 보면 일꾼들 밥만 해준 것이다. 서씨는 그때 그만 두려고 했으나 업자들 대부분이 바뀌고 소장도 지나가는 말이긴 하지만 이런 사고 두 번 나겠냐고 장담하는 바람에 그대로 눌러 앉게 되었다. 결국 이 젊은 소장의 장담이 멋지게 틀어지게 된 것이다. 두 번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서씨는 더욱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악이나 써서 해결하기에는 벅찬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돈을 다 주기는 했지만 회사로서는 크게 손해 본 것은 없었다. 자신들은 줄 돈 줬을 뿐이었다. 덤핑을 치고 들어온 하청업체와의 계약상에서 문제가 발생된 것이지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 몇 칠 시끄러웠을 뿐이다. 서씨는 그 사건 후로 관리자들과 더욱 친밀하게 지내려고 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특히 신경을 썼다. 결국 최사장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녀는 노조나 하청업체들 보다는 회사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노조와 함께 하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악을 쓰기 보다는 자신도 하나의 업자로서 일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하고 아니면 소장과 아니면 안면이 있는 이사들을 물고 늘어졌다. 사정도 하고 법적으로 대응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서씨는 이번일 해결되면 절대로 이곳에 남아 있지 않으리란 다짐을 했다. 위원장이 담배를 피우고 앞자리로 가기위해 통로를 지나치자 위원장 뒷모습을 보던 김씨와 서씨는 무심결에 눈이 마주쳤다. 둘의 어색한 눈길을 외면하고 차창으로 돌렸다. 버스는 찬 겨울바람이 부는 도로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이년 쯤 지나 현장에서 은퇴한 김반장이 우연히 의정부 입구 아파트 현장을 버스타고 지나다가 서씨를 보았다. 식당 밖에서 물을 버리고 있었는데 조금은 더 늙어 보였지만 여전히 기운차 보였다. 그때 돈을 완전히 떼었더라면 아마 다른 일을 했어야 했지만 일꾼들과 회사가 반씩 나누어 해결해 주었기에 그녀는 장사를 다시 해 나갈 수 있었다. 그녀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녀는 노조에도 회사에도 사정하지 않았다. 그녀 나름대로 치열하게 싸움을 했던 것이다. 회사 앞잡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 그렇지는 않았다. 직영밥값을 전해 주던 날 그녀는 고맙다고 김씨에게 소주를 따라 주며 눈물을 흘렸다. 어찌 그 뜨거운 눈물을 잊을 수 있으랴!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렇게 각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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