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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휴식2
 최경주  | 2006·02·08 23:52 | HIT : 2,024 | VOTE : 205 |
어제는 눈이 내렸다. 이른 아침에 문을 나서는데 계단에 소북이 눈이 쌓여있다. 어둔 하늘에서 보안등 안으로 점점이 눈이 내리고.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방안을 굴러 다녔다. 눈사람을 아이 아니면 누가 만들겠는가! 나는 그 시간에 현장에서 점심을 먹고 11층 시멘가루 날리는 맨바닥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옷깃을 바짝 세워 귀를 덮고 쭈그려 앉아 쉬고 있었다.
“입춘이 지났는데 눈이라니.”
내 말에 김씨는 세운 무릎을 팔로 껴안고 깜빡 잠을 깨어 눈을 깜빡였다.
“조끼를 안 입고 왔더니 확실히 춥네.”
“등산복이요?”
“따뜻하거든, 내일은 더 춥다는데 꼭 챙겨 입고 와야지.”
“그런데 다리는 괜찮아요?”
“많이 나아졌는데 아직 붓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네.”
나는 안전화를 벗고 양말을 벗어 발목을 감은 압박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바깥쪽 복사뼈 주위가 부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이까짓 거야!”
2주 조금 넘어 쉬다가 현장에 나왔다. 영화관은 개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 ‘결혼 원정기’나 쥐라기 공원 후편쯤 되는 ‘킹콩’ 포스터가 붙여지기 시작했다. 나와 김씨는 10층 기계실 작업에 투입되어 좁은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고 힘을 썼다.
관람석에 의자들이 놓이고 영사실에는 기계들을 시운전 중이다. 지금의 영사기는 ‘시네마 천국’에서 나오는 기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첨단 장비다. 멜빵을 멘 노인이나 서정적인 꿈이 흐르는 눈을 가진 청년이 아닌, 챙이 긴 모자를 쓴 여성과 금귀고리를 청년들이 스위치를 조작한다.
건물청소 용역에서 나왔음직한 아주머니들이 진공청소기와 걸레들을 들고 다니고, 젊은 여성들이 몰려다니는 것으로 보아 준공이후 근무할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 이달 중순께 준공식을 할 것이다.
어제는 다른 이들 철야를 할 때, 아직 덜 나은 다리 때문에 침을 맞기 위해 주간만 하였다. 현장 입구에서 자칭 ‘재건대’라는 사내를 보았다. 어디서 난장을 벌인 모양이다. 마스크쓰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아직 숙취가 남아있고 눈 주위로 날카로운 물건으로 베인 듯한 몇 군데 상처가 보였다. 거머리가 양미간에 몇 마리 삐딱하게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얼굴에 가는 웃음을 흘렀다. 세상이 가소로운 듯, 조소하듯. 바지에 손 집어놓고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오늘은 유난히 추웠다.
어제는 다른 기계실에서 일을 하는 아저씨들이 구석진 방에서 안전관리 몰래 불을 피워 놓고 졸고 있는 김씨와 나를 불러 몸을 녹이게 했다. 오늘은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전씨와 내가 한판 신나게 구교, 신교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말의 발단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4일 백양사의 ‘지선스님’ 환갑이 있어 옛 친구들이 다 내려갔다는 말을 지나가며 했는데 스님이 무슨 환갑을 찾아 먹는가에서 신부와 목사의 의무와 입장차이로 이런 저런 쟁점 없는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김씨는 관심 없다는 듯 졸고 어제 불을 피웠던 아저씨는 간밤에 소주 4병을 마셨다며 하품을 하고 인천에 사는 머리칼이 반쯤 빠진 장로교 집사님은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열띠게 한마디씩 돌아가며 쉴 틈 없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쏟아내기 바빴다. 나는 근래 틈틈이 케이블을 통해 보았던,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장경동목사’의 설교를 섞어 가며 아는 체를 했다. 급기야 종교개혁에서 이스라엘 풍습까지 넘어가서야 우리의 논쟁을 끝났다. 작업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나나 김씨, 전씨가 인천에 사는 아저씨가 기독교든 아니든 불교신자든 시간이 되면 먼지 날리는 구석으로 들어가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사상과는 아무 관계없이 이 시대 날품팔이 하루 일당 인생인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부지런히 일꾼들을 나르고 여기저기서 뻐근한 몸을 기우뚱거리며 일꾼들이 작업장으로 몰려들었다. 장갑을 끼는 사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 연장통이나 자재를 들고 오는 사람, 마스크를 쓰는 사람, 우리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각기의 현장으로 흩어져 갔다. 우리가 쉬었던 자리에서 우리가 갈 때처럼 텅 빈 공간에 햇살만 들어와 창문을 그려내고 있었다.

오늘도 침을 맞기 위해 일찍 나왔다. 요즘 날이 많이 길어졌다. 조만간 이 추위는 거짓말처럼 물러가고 반팔 옷들이 나다니겠지. 이 춥디추운 겨울도 버티기 힘들지만 먼지 속 현장을 땡볕 같은 무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일 할 여름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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