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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휴식
 최경주  | 2005·12·21 21:48 | HIT : 2,297 | VOTE : 251 |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찬바람이 겨울 대목에 목청높이는 유흥업소 전단지나 매일 아침 전철 입구에 쌓여있는 무료 신문지를 날린다. 목을 잔뜩 움츠리고 김씨를 따라 현장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타고 일하던 7층으로 올라갔다. 김씨가 흔들거리며 내 앞을  걷는다. 굳은 목과 어깨, 겨드랑을 바짝 붙이고 반쯤 석고가 되어 걷고 있다. 그의 오른 손에는 이쑤시개처럼 얇은 담배가 타고 있다. 뒤통수의 떡진 머리와 군데군데 코킹 묻은 등짝 귀에 걸린 파란 마스크 끈을 보니 남이 내 뒤를 보면 저러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둘이 걷고 있는 복도에는 수은등 빛에 꽉 찬 먼지가 반짝이고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걸린 어둠과 마구 잘라 논 검은 천 조각 같은 그림자들이 눈길 닿는 곳마다 펼쳐진다.
김씨가 창가에 놓인 간이 소변 통에 서서 담배를 물고 일을 보며 천정을 훑어본다. 내 차례가 되어 소변을 보는데 김씨는 지퍼를 올리며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점심을 먹고 한 시간 가량 유일하게 쉴 곳은 그 곳 뿐이다. 창고는 너무 작아 두 사람이 서서 옷을 갈아입을 정도의 공간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쉬는지 모르겠다. 김씨를 따라 베란다로 나가니 부평역 근처의 시가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주변의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대부분 모텔들이다. 모텔들 이름도 가지가지다. 특히 우리가 베란다에 기대어 앉으면 정면에 보이는 것이 ‘실낙원’이란 곳이다.
‘실낙원’이라? 아직 짐정리를 하지 않은 조합 사무실의 내 책상 책꽂이에 밀턴의 ‘실낙원’이 꽂혀 있다. 가끔 중간 중간 펴서 읽기는 했지만 읽어본 페이지는 다 합쳐도 십여 페이지 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 ‘와타나베 준이치’의 ‘실낙원’ 상권은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깔끔한 문장과 극도로 절제된 예리한 심리 묘사가 지금도 기억난다. 하권은 읽지 못했다. 애초 헌책방에서 한 권만 샀기 때문이다. 중년 남녀의 ‘불륜’에 대한 내용인데 죽음으로 그 값을 치러야 한다. 나는 돈이 없어 ‘불륜’만 봤고 약 먹고 죽는 중반은 인터넷에서 줄거리로 봤다.
왜 모텔들의 이름을 저런 고상한 이름을 쓸까? 모를 일이다. 저 모텔이 주말이면 밤낮으로 왜 매진이 되는지도. 하지만 저 건물들이 어떻게 지어 졌는지는 잘 알고 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도 맨 위층은 ‘나이트클럽’이고 그 아래 세 개 층은 ‘다중 영화관’이다. 짓고 나면 첨단일지 몰라도 그 전에는 혹독하고도 비인간적인 작업환경이다. 마무리 공사하고 물청소 하면 모든 노동의 과정은 사그리 지워지고 들어간 비용만 그럴듯하게 보일 것이다. 표 끓어 팝콘 씹으며 영화를 보면서 혹은 모텔 안에서 뭔가를 하면서 굳이 애써 떠 올릴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김씨가 담배 연기를 뿜으니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오늘은 여기서 쉬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럴 줄 알았다.’ 그의 천진스런 웃음에 나는 ‘우린 죽었다’는 표시로 혀를 쭉 내밀었다. 유일한 휴식공간인 햇볕이 드는 곳에 찬바람이 쓸고 있다니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 추위를 맨몸으로 버티어야 하다니. 오늘 영하 9도라고 했나? 7도 모르겠다. 체감온도가 한 20도 될 것 같다. 우린 말없이 화장실로 갔다. 아직 타일도 붙이지 않은 곳이지만 그래도 바람도 소음도 없다. 두 장의 손바닥만 한 스티로폼을 들고 구석에 깔고 앉아서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햇볕 드는 베란다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견딜만하다. 어디선가 종이 타는 냄새가 난다. 아마도 다른 일꾼들이 어느 구석에서 종이라도 태워 몸을 녹이고 있는 모양이다.
현장에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지난 10월 한 달간 현장에 나갔었다. 그때는 추위에 대한 낌새도 느끼지 못했는데 몇 십 년만의 강추위라니. 11월 중순경 조합사무실에 복귀하여 지난 주 총회를 마무리 하고 다시 현장에 나온 것이다. 날이 추워 이 달까지 쉴까 했는데 경제적 형편도 그렇고 또 그렇게 늘어지는 모습도 싫어 일이 생기자마자 나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추위에 제대로 걸렸다. 그래도 나는 예전부터 추위에는 그럭저럭 버텨 왔는데 바짝 마른 김씨는 십여 년을 현장이 굴러다녔는데 추위에 여전히 민감하다. 십여 년 전 말쑥한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 왔을 때 그를 내 손으로 끌고 현장에 데리고 나갔었다. 몇 칠 지나지 않아 곧 나는 사무실로 들어왔고 그는 나 없이 긴 현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생각만 하면 미안한 마음이다. 현장에 적응도 하기 전에 무대 뒤 어지러운 세트장 같은 현장에 던져놓고 몰라라 했으니.

추운데 문자는 자주도 날라 온다. 대부분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 관한 실시간 펼쳐지는 투쟁 상황이다. 농성 아니면 침탈, 집회와 회의들이다. 세상은 이 평화로운 휴식 추위 그리고 공사 중인 화장실에 두 사내가 몽상에 젖어 있는 순간에도 치열하게 투쟁을 하고 있다.
우보 정말 요번 겨울은 추위가 장난이 아니군요. 건강 잘 챙기세요. 이번 글은 비교적 짧은데, 읽기에 적당하고 내용도 참 좋습니다.

05·12·21 23:02 삭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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