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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장에 내리는 비
 최경주  | 2005·07·24 01:46 | HIT : 2,322 | VOTE : 206 |
현장에 내리는 비

일을 마치고 집에 갔을 때 어머니가 저녁상을 차리시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최초 ‘가정 파괴범’이란 사건을 말씀하셨다. 그네들이 특별가중처벌법에 의해 사형과 무기형이 선고되었는데 어머니 말씀 요지는 내가 짐작한 바와 달랐다. 그들이 재판을 받고 호송차에 올라타는데 부모들이 호송차로 달려가자 그 흉악무도한 친구들이 소리쳤다고 한다.
“엄마 오지마! 엄마 오지마! 엄마!”
어머니에겐 그것이 감동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어디까지 용서하는 것일까? 측정을 할 수 있을까? 설사 살인자라 할지라도 부모에게는 자식이다. 그 친구들은 야구방망이며 칼을 들고 가정주택에 들어가 피해자의 어머니며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을 하였다. 임산부라고 사정을 해도 그 짓을 했다. 그 사건은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가정파괴범이란 특별가중처벌법도 그때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죄, 인간만이 행하고 벌하는 이 죄는 무엇인가? 그걸 느끼기기 하나? 사상이 없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신의 형벌인가? 아니면 왜곡된 사회의 산물인가?

2월 말 쯤, 늦겨울 아침에 흐린 날씨가 결국 참지 못하고 오전 작업이 끌날 때쯤에 질퍽하게 비를 내리고 만다. 조달청 앞마당에 먼지를 일으키며 내리치자 금세 어두워진다. 정오에 지하 함바에서 승우와 김씨가 불 깡통을 들고 올라와 스티로폼을 깔고 바람이 안부는 안락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조달청 신축건물 2층에서 건너편 강남 터미널 뒤 가톨릭 병원이 어둠침침한 하늘 아래서 굳게 서 있었다. 멀리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지나쳐 갔다. 둘이 이런 저런 말을 주고받고 있는데 한 사내가 고개를 삐딱하게 숙이며 걸어와 불 깡통 한쪽에 앉았다. 승우가 그에게 스티로폼을 한쪽을 내 주었다. 사내는 엉덩이를 들고 옮겨 함께 나란히 앉았다. 멀리 번개가 치고 다시 천둥소리가 울려 현장을 통과한다. 승우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작년 연말 때인가? 아마 그럴 거요. 저 가톨릭 병원 앞길에서 삼중 충돌 사고가 일어났는데,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었어요. 술을 마시고 여기 숙소에서 잤는데, 사이렌 소리가 참 요란했지요. 그래 밖으로 나와 봤는데,”
승우는 스티로폼을 깔면서 느릿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승용차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는데, 바로 여기 숙소 앞까지 뜨거운 열기가 뻗치더라니까, 정말 무서운 밤 이였어요, 그날 잠을 못 잤다니까요. 그 이후로 난 숙소에서 잠을 안 잤으니까.”
그 말에 입을 씰룩이는 현장에서 처음 보는 젊은 친구가 한마디 거든다.
“폭삭 익었겠네요.”
“예? 폭삭? 아 예. 폭삭은 아니고 새까맣게 탔지요. 그런데 그런 끔찍한 말을 간단하게 하네요. 사람이 죽어있는 것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익었던 타던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보다 나은 사람인데요. 이브 날에 일하는 사람은 아마 우리 노가다밖에 없을 거요. 안 그래요? 형님?”
“글쎄.”
함께 점심을 먹고 자리에 같이 온 형님은 승우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 하는 눈치가 아니다.
“근데 댁은 무슨 일을 하는 거요? 여기 형님과 난 설비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 현장에 몇 개월 됐지만 댁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렇겠지요. 목수일이요. 한 삼일 째 됐나. 쿡 퉤!”
머리가 귀를 덮어 목까지 늘어진 반 곱슬머리다. 아담한 키의 이 사내가 주먹으로 입을 막고 기침과 가래를 뱉었다. 밥을 먹고 이런 모습을 보다니. 승우와 김씨는 소화 불량에 걸릴 것이다.
“비가 여기까지 들이치는구먼, 우리 잠깐 자리를 뒤로 뺍시다. 그래 승우가 이쪽으로. 나는 허리가 안 좋으니까 기둥에 기대려면 이쪽으로. 이 비가 산성비야. 근데 이놈의 현장은 청소도 안하나? 관공서 일이 이러니 다른 곳은 오죽 하겠어. 우리나란 아직 멀었다니까.”
김씨는 뭐가 불만인지 투덜거렸다.
“밖에는 우리만 있나 봐! 비가 와서 밥 먹고 다 들어간 모양이군. 근데 목수 양반은 비가와도 일을 합니까? 우린 지하에서 하는 일이라 상관없지만.”
“나도 지하에서 일을 해요. 쿡, 퉤이!”
“감기 걸렸나 봐요?”
김씨가 혀를 차며 물었다.
“예 항상 그래요. 고통이지요. 늘 함께 다녀요. 팔자거니 확. 퉤이! 하는 거죠.”
“아까 말입니다. 사람이 탔다는 것. 사람은 죽었는데 타 죽었냐는 거지요?”
다시 자리를 옮기며 생각을 했다는 듯 승우가 말꼬리를 달리 잡았다. 깊게 주름이 잡힌 그의 나이는 이제 스물 댓, 승우 또래로 보였다. 그의 얼굴에 뭔가 요동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친구 승우의 눈에는 잔뜩 찌푸린 얼굴, 불안정한 마음, 뭔가 뒤틀려 당장이라도 때려 부수고 자해라도 분위기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무료한 점심시간에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어 보였다. 욕구불만 덩어리와 남은 점심시간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면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승우는 고개를 끄떡여 보이며 혀를 찼다.
“쿡, 차가 부딪치면서 먼저 사람이 박살났겠지. ‘팍’하고 터지고 깨지고 꺾이고 타는 거죠. 큭큭.”
놈은 히죽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참 꼭 내가 박살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기는 하지만. 그건 그렇고 차에 불이 나기 전에 이미 사람은 승용차끼리 부딪치면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다쳤거나 죽었겠지요. 차가 부딪치면서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봐요. 처음에는 충격이 오고 ‘아니 이상하다’ 생각을 들지요. 원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한번쯤 겪잖아요, 사고 날 때 말이요. 그땐 이미 늦었겠지요. 영화처럼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일은 불가능 할 테니까. 그저 ‘어’ 하는 순간에 이미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안타깝게 느낌은 살아 있습니다. 차에 육중한 것이 부딪쳐 오고, 우함마가 벽을 치듯 말입니다. 몸이 쏠리는가 싶더니 유리창이 박살납니다. 보이는 거지요. 산산이 박살나면서 차가 구겨지는 겁니다. 무릎은 뒤로 꺾이고 머리는 파편화 되어가는 유리창에 부딪치겠지요. ‘와삭’하는 그런 느낌 귀에 들립니다. 아직까지 의식은 살아 있지요. 그 다음에 뭐가 느껴질까요?”
손짓을 해가며 승우가 그럴 듯하게 연출을 해 냈다. 진짜 그런 경우를 당해본 사람처럼.
“큭, 뭐가 느껴지겠어요. 퉤이! 영점 일초면 다 끝나는 일인데. 쿡.”
승우의 표현에 그 친구는 들뜬 목소리로 박수를 한번 치며 빠른 말로 승우의 말을 이었다. 그의 즐겁고 빠른 큰 목소리는 성대에 이 물질이 낀 것처럼 갈라져 나왔다. 듣기 불편한 그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날카로움이 사뭇 찌르고 들어온다. 이런 친구들은 분명 오랜 밑바닥 생활을 통해 자기 가치관이 나름대로 형성되어 있다. 마치 거친 육식동물처럼 일단 상대를 건들고 본다. 조용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하기 힘든 말도 거침없이 하고 반박을 하면 용납하지 않을 분위기다. 이런 친구들과는 가급적 논쟁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호기심 많은 승우는 이 친구의 가슴에 뭔가가 있어 보이는 것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다.
“영점 일초요. 말 잘했어요. 바로 그겁니다. 내가 그 영점 일초를 몸으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왜 형님한테도 몇 번 이야기를 했지요. 내가 구미에서 오층에서 떨어졌다가 그물에 걸려 살아난 이야기. 그래 그때 느껴 본 건데 떨어지는 순간 시간은 몇 초도 안 되지요. 그 짧은 순간에 수 만 가지 생각이 나요. 별의별 생각이 말이요. 영화 한편 지나간다니까요. 그래서 사고는 더욱 참혹한 거라니까요. ‘내가 죽어서 어떻게 장사를 지낼 것인가?’까지 하다못해 마누라와 처음 만날 때의 모습까지도.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생각이 날 수가 있는지 모르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장면들이 떠올라요. 단지 구체적이고 진행 순서에 따라 오는 장면들은 아니지만 번개처럼 머리에 장면들이 지나치지요. 아니 동시에요. 서로 화면들이 겹겹이 싸여서 아마 그랬을 겁니다.”
목수는 주먹을 쥐고 한껏 오른 기분으로 뭐가 좋은지 이를 물고 큭큭 거렸다. 김씨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지 승우 말 따라 그런 일을 겪어 본 사람은 알지. 그 순간에 스치는 수많은 일들 아마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던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거겠지. 그 마음이란.”
“그래요? 큭, 그것보다는 위기 때에는 생각이 빨라지는 게 아닐까요? 퉤이!”
놈의 말이 그럴 듯 했다. 김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키가 작고 깡마른 형은 장갑으로 바지를 털었다.
“어쨌든 순간에 일어나는 두려움도 못 느낄 정도로 영점 일초에 일어나는 일들 말입니다. 차가 부딪치면 사람이 앞 유리를 깨고 튀어 나간다고 하는데, 만약 안전벨트가 매 있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째든 그 조그만 유리 조각들이 내 몸으로 쏟아져 박힌다는 생각을 좀 해 보십시오. 수백 수천의 바늘이 일시에 찔러오는 거죠.”
승우는 인상을 쓰면서 비처럼 쏟아지는 유리가 오는 방향을 손으로 당기듯 가리키며 뒤로 쓰러지는 모습까지 그려 주었다.
“승우 왜 그려? 재수 없게 말이 씨가 된다고. 비도 오고 그런데 영 음침한 것이 다른 이야기나 하지.”
김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껄껄 거리며 승우를 탓한다.
“퉤, 아니. 쿡, 그게 아니라. 아저씨 초면에 죄송합니다. 이 이야기가 참 재미있게 진행될 것 같은 생각입니다. 한 번 해보지요. 퉤, 안 그렇습니까? 이런 이야기하기 힘들지요. 오늘 비가 와서 그런가요. 사실 내가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긴 해요. 특히 이런 비가 오는 날이면 평소에 늘 집착하던 게 더 크게 떠오르거든요. 마음을 괴롭힙니다. 날 잡아 먹으려고 환장을 하지요. 마치 노인네 신경통 같이 말입니다. 적이 내 몸 안에 웅크리고 있지요. 때가 되면 살며시 일어나 공격을 합니다. 방어할 수 없지요. 오늘도 아침부터 머리를 괴롭힙니다. 댁들 만나서 잊고 있습니다. 사실 제 기분을 다 까놓고 말을 하기가 그렇지만요. 어떤 이야기라도 하고 싶습니다. 초면에 죄송하지만요. 하여튼 내용에 관계없이 하고 싶습니다. 비가 오니까요. 쿡.”
그는 가랑이 사이에 깔고 앉고 있는 스티로폼을 손가락으로 긁어 파기 시작했다.
승우도 목수의 마음 깊은 뭔가에 대해 궁금해진다. 역시 그에 말대로 비 때문인가?
“꼼짝도 할 수 없는 지경에서 차가 좁잖아요?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 싶으면 차 안은 결코 넓을 수가 없지요. 그렇게 좁은 공간이 있겠습니까? 그저 비상구 없는 상자 일 뿐이죠. 마음도 그래요. 몸이 그러면 마음도 여유가 없지요.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좁은 공간은 항상 불안합니다. 만약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세상이 그래요. 어쩔 때 보면 꼭 갇혀 사는 것 같아요. 일하고 자고 새벽에 나오고 싫지만 그래야 되지요. 뭔가 입력된 로봇처럼.”
승우의 그럴 듯한 말에 젊은 목수는 뭔가 기분 좋다는 듯 웃고 김씨는 가톨릭 병원 옥상을 쳐다보았다.
“윽. 쿡, 말 진짜같이 잘 하시는 군요. 듣고 있으니 그대로 느껴지는데요. 차라리 먹고 사는 일을 그런 쪽으로 갔더라면 노동일 보다는 나았을 것을. 뭐 꼭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도 그렇게 실감나게 하는 것은 사는데 활력을 주지요. 나라면 그건 아마 사형수들 느낌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전 가끔 그게 느껴져요. 사형당하는 그 느낌이. 항상 내일은 죽을 거지요. 강제로. 퉤이! 일단 사형이 내려진 상태에서 탈출도 못하고 그저 끌려가는 거죠. 내일이란 희망이 없는 삶. 내일이 절망인 삶이죠. 강제 종료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매일 죽음에 끌려가는 일상. 어쩔 도리가 없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시계 바늘을 의식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까먹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따라가는 거죠. 꼭 사형수만은 아니에요.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을 느껴요. 큭악! 거대한 힘을 느낍니다. 너무 커서 아니 느낌이 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회의 거대한 힘을 느끼지요. 도리가 없어요. 도리가. 슬픈 일이죠. 기다리는 것은 하납니다. 밧줄이지요. 그 염병할 밧줄이요. 망할 놈의 밧줄에 매달릴 때까지 살아있는 겁니다.”
목수의 말에 둘은 아무 말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목수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다시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근데 우리나라 사형제도는 고쳐져야 해요. 밧줄은 너무 잔인합니다. 밧줄이 뭡니까? 좀 더 고상하게 죽일 수 없습니까? 멋있게요. 좀 더 빨리 죽을 수 있는 것으로 말입니다. 고통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아주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겠고 사람이 죽을죄는 짓는다는 건 순전히 세상 탓인데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실 잘은 모르겠지만 아까 어쩔 수 없다는 말 정말 잘하셨습니다. 거 뭐. 사람이 죄를 짓는다는 게 어쩔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할 때가 많거든요. 더구나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살인까지도 불가피할 경우가 있잖아요. 아니 물론 내가 해본 것은 아니지만. 거 있지 않습니까? 큭, 퉤, 젊은 혈기에 막놀아 나다니는 것. 요즘에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내말은. 아닙니다. 그만 됐습니다. 우울한 날이군요. 비도오고. 크악 퉤이!”
젊은 목수 친구가 스티로폼을 손으로 후벼 벌써 발과 허벅지에 흰 가루가 엷은 바람에 살산 끄떡이듯 흔들거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불만인 듯 말을 거칠게 한다. 침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계속 뱉으면서. 더러운 버릇을 가진 친구다. 두 번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비위생적이다. 그는 죽음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범죄에 그는 구체적인 고민의 모습은 무엇일까?
“사형수는 또 다르지 않겠어요? 그런데 형씨는 뭔가 상당히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랄까 죄의식에 대해서 그러니까 양심 때문이 아닌 그 양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말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무슨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사형수 말입니다. 그건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차 안에서는 준비를 하지 못하잖아요. 죽는다는 것도 준비를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누가 자기가 그런 사고로 죽을 것을 생각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차를 못 타고 다니겠지요. 아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다니겠군요. 먹고 살기 위해 두렵다고 굶어 죽을 수는 없을 테니.”
승우는 생각이 드는 대로 지껄여댔다. 그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목수 친구는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으며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에 더욱 집착해 들어간다. 그건 승우도 마찬가지지만 오늘 둘은 잘 만난 셈이다.
“승우 그만하세. 사형까지 나왔잖아. 밧줄을 목에 걸다니. 누가 그걸 생각해 낸 거야? 끔찍하네. 왜? 자꾸 죽는 단 말을 하는 겨. 유리가 사람에 박히다니 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몇 초안에 끝날 것을. 그걸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 우리가 현장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계속 이걸 할 생각이라면 일을 어떻게 하겠어. 이 지겨운 노동일을 말일세. 그저 한 몫 잡아서 그만 둘 생각으로 하는 것이지. 죽을 때야 비로소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김형은 재빠르게 혀를 놀리며 한 무더기 쏟아 붓고는 스티로폼에 벌렁 드러누웠다 다시 일어났다. 목수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스티로폼을 파 들어가 가랑이 사이로 수북하게 가루가 쌓여 살살 부는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만약 흰 가루들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바람이 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고 시작했다. 승우는 멀리 비가 오는 것은 것을 바라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하였고 김형은 담배를 한 대 빼 물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한 십 여분 남았군. 오후에는 일하지 말고 들어갈까. 영 기분이 아닌데.”
승우는 담배 연기를 뿜는 김형이 한 말을 듣고 살짝 웃었다, 웃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살짝 웃었으니,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한 달에 이틀 빠지면 많이 빠지는 사람이다. 자신은 이십오일 정도 하면 정상인데 김씨는 만근을 밥 먹듯 한다. 오후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승우 자신이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날씨에도 일을 빠질 변명을 만들어 낸다. 자연스럽게 타협을 하고 그저 할 일 없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끼며 집에 들어가 부족한 잠을 잔다.
“어제 마누라에게 되게 혼났어. 술 마시고 왔다고 밥도 안주고 지랄을 하는데. 어이구 옛날 같았으면 문 걸어 잠그고 허리띠 풀러 착착 패 죽였을 텐데. 나이 사십이 넘으니 그럴 수가 있나.”
일, 이분 간의 침묵을 깨고 집안 이야기를 한다. 화제를 다른 곳으로 몰고 가자는 의미도 있지만 침묵을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패면 안 도망갑니까?”
승우가 금세 얼굴이 밝아지며 물었다.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반기는 듯 했다.
“쿡, 막상 사람이 겁을 먹으면 꼼짝도 못하죠. 언 동태 같다고 할까요. 혹시 강간을 해 보셨어요? 아니 안 해보셨나요? 현장 사람들은 워낙에 착하다 보니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없겠지요. 저도 사실은 아니 한 두 번 그럴 때가 있잖습니까? 그렇게 놀라실 일은 아닙니다. 요즈음에 그거 안하고 크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는 아니겠지만. 남자도 칼을 들이대면 얼어 버리죠. 굳어 버립니다. 하라는 데로 다 하지요. 하물며 여자는 오죽하겠습니까? 겁을 먹으면 그렇다는 겁니다. 못된 짓이죠. 하지만 그런 일을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퉤, 혼자는 못하고 친구들이 있어야지요. 본드도 마약도 안하는 그런 못된 짓을 합니다. 양심이 느껴지는 일은 없지요. 살려달라고 진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간단한 일이죠. 그저 여자가 얼어 버리니까 합니다. 완전히 밥이지요. 일종에 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성적으로가 아니라 일방적인데서 오는 상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그 위에 군림한다는 데서 오는 통쾌감. 아! 미안합니다. 다 옛날이야기 입니다. 그런 짓을 했다고 특별히 나쁜 사람은 쿡, 절대로 아닙니다.”
목수는 거만하게 여유 있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이골이 난 경험을 이야기 하듯 설명을 했다. 승우와 김씨는 그의 말에 그런 놈인 줄 알았다하는 모습으로 끝까지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목수 청년은 눈을 이리저리 흘겨 가며 때로는 잔웃음을 흘리기도 하면서 무엇인가를 비웃는 태도로 말을 끌어간다. 승우는 그에 그런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의 말투 속에 뭔가 숨기고 있는 것에 흥미를 버릴 수가 없었다.
“글쎄요. 남의 고통에 쾌감을 느낀다. 무서운 이야기군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다시 말해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은 당했다는 말도 성립이 될는지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그리 기분 좋은 말은 아니군요. 강간도 그래요.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거든요. 주변에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승우는 목수가 주는 공격적인 말투가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이 되었다. 강간을 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해봤냐고 하니. 그 친구에 웃음을 보면서 결코 이런 자리가 아니고는 상종하지 못할 인간이라고.
“쿡 퉤이. 아, 제가 지금 맘이 좀 불안합니다.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오늘 제에게는 중요한 날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자꾸 침을 내 뱉게 되는군요. 말도 거칠어지고요.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목수의 기분이 방금 전과 다르게 금방 침울해 졌다. 승우는 거칠게 말을 받는 목수가 여전히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했지만 하지 않았다. 승우의 호기심은 극에 달해 하마터면 몇 번이고 직접으로 물어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목수의 다리와 발까지 날린 스티로폼가루와 침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는 자기 이야기 하면서 어떤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과 같았다.
“큭, 요즘엔 목에서 피가 나와요. 퉤, 먼지 때문이죠. 잊고 싶은 것이 많아 일만 열심히 합니다. 내 가랑이에 여러 여자가 군림을 당했다면 현장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큭, 저는 군림을 당합니다. 세상이 나를 우리를 강간하는 거지요. 특히 돈에 군림을 당하고 업자들에게 군림을 당합니다.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거 아시죠? 어쩔 도리가 없는 것. 저 뿐만이 아니라 형씨들도 마찬가질 겁니다. 우린 군림을 당하고 있어요. 마치 여자를 강간하듯이 너무 쉽게 말입니다. 큭, 퉤, 안 그래요?”
다시 번개가 번쩍이고 땅이 울리는 소리가 그들이 앉아 있는 데까지 들려 왔다. 흑백 영화를 보듯 어두워지는 하늘에 사물들이 색을 빼앗기고 있었다. 비도 만만치 않게 굵어지고 거칠게 뿌린다. 당장 집에 갈 것이 걱정되었다.
“군림 당한다는 말은 좀 심합니다. 차라리 억압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습니까?”
승우는 군림이란 보다 억압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어떤가하고 동의를 구했다.
“억압이나 군림이나? 차라리 이용당한다거나 하지.”
김씨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그렀지요. 쿡.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억압이나 이용이 분명히 그저 일당 받고 시키는 일만 하는 우리는 죽어 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린 모두 그렇습니다. 세상이 다 그래요. 그들은 즐기기 위해 그것이 당연한 진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상대적으로 우린 밑바닥 삶들은 고통스런 일상을 권리와 의무로 살아갑니다.”
목수는 다분히 철학적이었다. 군림, 권리와 의무라니. 목수는 그런 자기 철학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좀 더 현실적일 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군림 폭력 피해의식 승우를 더욱 그에 대해 궁금하게 한다. 목수에 얼굴에 빛이 나는 듯하다. 한껏 흥분된 어조로 말을 높였다. 마치 천둥소리와 지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우는 그를 올려 보면서 그에게서 강한 힘을 느끼며 혹시 살인자가 아닐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니겠지! 단지 말만 저럴 뿐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닐 것이다. 내가 너무 깊게 저 사람에 대해 어떤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거다’라고 승우는 다시 생각을 추슬렀다.
“.....”
“저 비는 산성비지요. 많으면 머리가 벗겨지는데 어떻게 우리 집에 가나?”
다시 침묵이 흘렀다. 목수는 말을 할 때는 기운이 하늘로 오를 듯 했으나 말을 마치고 누가 말을 시키지 않으면 갑자기 땅 밑으로 꺼질 듯이 침울해 졌다. 그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승우가 한참을 뜸을 들인 가운데 말문을 열었다.
“마치 우리 현실 같구먼. 필요는 한데 독을 품고 있다니. 뭔가 주소가 틀렸다는 거지.”
김형이 한마디 뜻 모를 짐작을 하며 말을 잇는데, 잠시 침묵이 흐르고, 목수는 다른 구멍을 파며 혼자 뭐라고 지껄인다.
“.....”
“쿡, 아까 승우씨가 차가 충돌했을 때 사람 얼굴에 파편이 꽂히는 퉤, 말을 했지요?”
“예 그런 말을 했었지요.”
“난 그 이야기를 윽, 쿡, 하면서 한 생각이 가물가물 했는데 이제 뭔가 좀 잡히는 것 같아요. 아 뭐냐면 단순한 것입니다. 마치 이 비와 같은 거지요. 우린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이하는 겁니다. 분명히 퉤, 이것이 아닌 줄 알지만 그저 받아들이는 거지요. 생각하고 고민해 보았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우리 모습 쿡, 그런데 말입니다. 어차피 그렇게 살 바에야, 다시 말해 노가다의 삶이란 이미 정해졌다는 거죠. 그래서 말인데요. 어차피 우리는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살아갈 방도는 좀 뭐랄까 폭력적으로 살아간 다해도? 그렇게 크게 양심에 가책을 받을 필요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변명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탓이기 때문입니다.”
‘왜 자꾹 사회가 목수의 죄를 뒤집어 써야 하는가?’ 그럼에도 승우는 고개를 끄떡였다. 듣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계속 말을 할 것 같았다.
“폭력적이란 혹시 강도나 살인 같은 것을 말하는 겁니까?”
승우가 의아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붙인다.
“음음,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목수 하시는 분 말을 들어보니까 그럴 듯한 말이긴 하지만, 승우 설마 자네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가량 말이야 정말로 폭력적인 방법으로 살아간다면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감옥을 간다던가?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다던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는 말이야, 콘크리트보다 더 딴딴하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죄를 함부로 짓다니 누굴 위해서 그런단 말이오?”
기분이 언짢은 듯 김씨는 말끝을 흐려가며 할 말을 마저 했다.
“쿡, 아저씨 잠깐만요. 제가 묻고 싶은 대요. 그럼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손가락질 안 받고 있다는 겁니까? 제가 보기에는 노가다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죕니다. 자신에게 자식들에게 남들에게요. 사실은 아니지요. 천박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거지요. 실제는 가장 깨끗하고 순한 노동자들인데요. 말이야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아저씨 자식들 있다면 이 일을 시키고 싶지 않을 겁니다. 안 그래요? 답답한 거죠. 하루가 답답해요. 우린 이 엿 같은 세상에 갇혀 있는 거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망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는 차안이 아니지요. 차안에는 기회가 없지만 사회에는 기회가 있어요. 깨고 나갈 기회가. 얼마나 멋집니까. 차라리 감옥을 갈지언정 한 목을 잡을 수가 있고 사는 것 같이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퉤이,”
목수는 조금은 목소리가 쉰 듯하고 감정도 격앙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진지함은 이야기를 더욱 우울하고 무겁게 만들었다.
“글쎄요. 그건 목수형씨 말 따라 세상을 그렇게 산다면 그건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는 게 아닙니까?”
김씨는 승우를 쳐다보며 조용히 말을 받았다.
“실패한다면 그렇겠죠. 기회가 좋은 거지요.”
“내 생각은 사회에 떼쓰는 것 같아 보여. 그래도 옛날보다 조금은 나아 졌거든.”
김씨는 혀를 찼다.
“감옥도 나아지고 있지요.”
목수는 빠르게 말을 받았다.
“쿡, 그렇습니다. 우린 지금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몇 시죠? 아 오 분 전이요. 조금 있으면 아 예 뭐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 없고, 사회는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 갑니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하지요. 요 몇 달 전 신문에 가정 파괴범 이야기를 보셨는지요? 아 예, 못 보신 분이 안 계실 겁니다. 연희동 친구들이지요. 그래요. 그 친구들이 바로 내 친구들입니다. 저는 깊이 관여는 안했지만 그들은 특별법에 의해 중벌을 받고, 사형까지요. 오늘 죽습니다. 아니 모릅니다. 아마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오늘쯤에 사형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목에 밧줄을 거는 거지요. 그걸 알았을 까요. 짐작도 못했겠지요. 그저 함께 한 겁니다. 놀고 싶었는데 돈이 필요했지요. 다 놀잖아요. 이 나이에 여기서 이러고 있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배고프면 앞에 있는 음식을 먹잖아요. 그것뿐입니다. 부모를 잘못 만난거지요. 친구들 부모가 그러더군요. 다 자신들 잘못이라고. 쉬운 방법을 생각한 거지요. 쉽게. 해보니 너무 쉬웠던 거지요. 불쌍한 인생들. 난 그들의 끝을 보면서 생각한 겁니다. 가진 게 없으면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요.”
콩을 볶는 말투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감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그 목수 청년이 주체할 수 없는 초조함과 흥분으로 말을 이어간다. 이제 스티로폼을 긁는 일도 하지 않는다. 승우는 그렇구나 하는 얼굴로 내면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건 순전히. 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학교를 가지 못하면 나처럼 이 길 아니면 공장행이죠, 그건 눈을 떠 세상을 보는 순간 이미 내 이마에 찍혀 있는 겁니다. 기회요? 불가능에 가깝죠. 이미, 뭐랄까 삶의 다른 말로 하면 절망이라고 할까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을 해요. 아주 인생 끝난 사람들이 하는 것, 쿡, 젊고 순수한 나이에 누가 이런 일을 하겠어요. 노가다요. 일이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죠. 노가다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기가 힘이 든 겁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저 갈 때까지 가는 거지요. 우리가 어려서 보고 배운 것이 결코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누구도 우릴 탓 할 수 쿡, 없습니다. 대통령까지도.”
그는 대통령을 신과 같이 최고로 보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다 되듯 이야기는 감정과 함께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허, 승우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가? 폭력은 끝이 좋질 않아. 세상이 폭력적인 면도 있지만. 어쩌겠나? 그렇게 타고 난걸. 다 조상 탓이지. 다 성공할 수는 없겠지. 안 그래? 그저 능력껏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팔자거니 하는 거지. 방법이 없어. 욕심을 죽이는 수밖에.”
“쿡, 욕심을요. 자신이겠지요. 어쨌든 제가 겪은 바로는 노동자들이 절대로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거친 말투였다면 죄송합니다. 이런 비오는 날에는 많은 것이 생각납니다. 이해하시죠? 시간도 다 되었는데 비가 그치질 않는 군요. 더 세어지고 있군요. 빌어먹을 비. 퉤, 그저 저는 가난할 뿐이죠. 누가 뭐래도 우린 어쩔 수 없이 그대로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체 무능력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퉤, 사회 그늘에는 오늘 우리 같은 사람이 서로 싸우며 이유도 없이 괴로워하면 살고 있습니다. 우린 그럴 수밖에 없어요. 쿡, 우린 난자당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감옥에서 살아남은 친구들은 대개 십 년 이후에나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서너 명은 영원히 보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밧줄을 목에 걸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정말 아까 말한 보복적인 폭력에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있었다면 그들과 목에 밧줄을 걸고 있을지 모르지요. 윽, 쿡, 이 사회는 정말 일방적 폭력만 허용하는 모양 입니다. 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도 독점입니다. 쿡, 지금 생각해낸 것입니다. 말을 하다가 이런 좋은 생각이,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군요. 폭력도 독점을 하고 있습니다. 퉤,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죄를 지어도 죄가 감옥에 갈 일이 없는 놈들. 정말 그럴듯한데요. 하하, 그런데 왜 이렇게 허하지요, 아깐 상당히 초조했는데, 아! 우린 오늘 정말 잘 만났습니다. 정말로.”
“......”
“쿡, 다시 말하지만 결국 문제는 돈입니다. 그 폭력이라는 것도 쿡, 돈에 힘으로 극복되어 대가를 지불합니다. 돈만 있으면 어느 것이든 다 되지요. 퉤”
목수청년은 한 층 즐거운 표정으로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어받았다. 그는 비로소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비 소리까지 경쾌하게 들릴 것이다.
“형씨께 아까 말씀하신 내가 뭔가를 파고 들어가 가령 형씨에 내력을 알고자 하는 모습을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게 상당히 궁금했거든요. 그게 기분이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사실입니다. 난 궁금했기 때문에.”
승우도 손을 털며 그에게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가끔 일을 하면서 화가 치밀 때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용케 잘도 참고 일을 하데요. 어쩔 때는 말 막하는 반장 놈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치고 날라 버릴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습니다만. 억지로 참고 살아갑니다. 우리 친구들이 아까 말했지만 정말 어쩌면 오늘 형장에서 죽었을지 모르구요, 혹, 아닐지도 모르지요. 늘 그 친구들 꿈을 꾸곤 하지만 불쌍한 친구들입니다. 여튼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큭, 이야기 잘 나누었습니다. 일을 마칠 무렵이면 비가 그쳤으면 좋겠는데요. 이런 날씨가 일하기는 딱 좋기는 합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으니까요.”
“......”
“기왕에 이렇게 만난 것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가시죠.”
허전한 기색이 역력하게 이마에 주름이 잡힌 청년을 붙잡으며 김씨가 담배를 한가치 주고 자신도 문다. 조달청 앞마당으로 터진 이층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담배를 피우며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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