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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루가 간다
 칼럼니스트  | 2009·09·21 23:57 | HIT : 2,022 | VOTE : 214 |
현장에서 매 순간, 나는 문득문득 화가 난다.

물이 검게 흐리는 구석 바닥에 두 늙은 배관공이 끈질기게 구멍을 뚫고 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줄곧 두 노인은 쭈그려 앉아 코아를 붙잡고 있었다.
코아 소리는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뒤엉켜 더욱 커지기만 했다.
나는 바닥을 깎아대는 코아 날과 검은 구정물이 지겹고, 발끝 신경까지 곤두설 때 즈음, 두 노인이 눈을 마주치자 히죽 웃어댔다.

웃음?

문득, 어느 하숙집에서 본, 방에서 뛰어놀다 뒤로 넘어져 머리를 찧는 어린 딸을 보고 ‘아주 잘했다, 아예 죽어버려라!’하고 눈감고 쓰러져 있는 아이의 얼굴을 향해 고함치는 아비가 생각났다.
‘여보쇼,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하고 연장을 집어던지고 내 손등이라도 깨야 했지만, 웃고 말았다, 달리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여간, 저 두 늙은이가 오전에도 웃고 있었다.
젊은, 새파란, 마치 자식들의 자식 같은 안전관리가 청소 안 한다고 선임하사처럼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지시하고, ‘알아듣겠습니까?’로 정리했을 때도 말이다.
‘네, 알았습니다!’라고 배에다 힘을 주고 빽 하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그래 웃는 거야!

그들도 나도 이 환경에서 이 짓 외에는 더 무엇을 할 줄 아는 일이 없지 않은가, 비록 하급기술이지만 나에게는 산소 호흡기였기에.
가족은 내 산소호흡기에 불만이 많다. 늘 좀 더 나은 호흡기로 갈아 치웠으면 싶어 하는 눈치다. 어쩌면 나까지도.
가끔, 피로도가 극에 달한 가슴팍에 대롱을 꽂아 바람을 빼 주어야 한다, 아니면 내가 죽을 것이다. 아주 죽어버릴 것이다.
적어도 순간을 견디어야 하루를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머릿속에도 구멍을 내 주자, 내 스스로 불량품이 되자, 그렇지 않으면 나는 좀 더 일찍 폐기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또 간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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