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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회개
 최경주  | 2008·05·11 09:11 | HIT : 2,610 | VOTE : 300 |
오늘 계통구 작업을 하는데 믿음이 충만한 강씨가 결혼에 대해 묻는다.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그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40대 중반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라고 찔러대니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그는 여자에게 자기를 내 세울 자신이 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자기 생각인 것 같다. 그에게는 굶지 않을 기술과 근래 분당에 수억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가 있으니 최소한 결혼 조건은 되는 셈이다. 나에 비하면 재벌이다. 강씨는 다른 세 사람이 생활고에 허덕이며 사는 것을 보면 끔찍하다고 한다. 그때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외롭다고 느껴질 때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근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내가 엊그제 퇴근해서 집에 갔는데 처가 밥을 먹다가 묻더라고. 만약에 누가 아파트를 쉽게 사기위해 우리 아이들을 임시로 입양시키고 돈을 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서 그랬지, 그 자리에서 그 놈 입을 찢어 버리고······.”
“그래요, 맞아요. 성경에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어요. 저는 성경에 하나님 말씀에 반하고 살고 있는 거예요.” 뼈만 앙상하게 남은 강씨가 깔깔이를 멈추고 눈을 반짝였다. 그의 호기어리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어졌다.
“근대 말이야, 누가 아이들을 돈 주고 데려가겠다고 하면, 십억이든, 백억이든, 천억이든 그건 있을 수 없는데 말이야.”
“그게 바로 사랑이라니까요.” 그는 깔깔이로 내 얼굴을 찌를 듯 흥분해서 이해관계를 떠난 숭고한 사랑을 외쳤다. 나는 그의 감정이 올라가는 것과 더불어 더욱 흥을 돋우었다.
“어떻게 자기 자식들을 돈으로 환산 하겠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길에 나 앉더라고 함께 가는 거야. 뭐가 두려워? 사는 게 두려워?” 나는 빠르게 말하며 힘을 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삶의 고단함에 지쳐 사랑을 버리는 비참함에 참을 수없는 분노를 터트리는 배우처럼 열연을 했다. 그는 나보다 더 감동하고 흥분해 막 ‘오, 주여!’를 외칠 지경이 되었을 때, ‘그게 바로 결혼이라니까요. 하느님이 말씀하신.’ 그는 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계단 전실이 울리도록 내 말을 대신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때 나는 손을 흔들어 그를 말렸다. 나는 다시 차분하면서 비통한 목소리로 말을 낮추었다.
“근데, 가족이라는 것이 꼭 그게 아니라니까. 자 들어봐요. 아이들은 그런데, 이 마누라는 말이야, 일억은 고사하고 천만 원, 오백만 줘도 그냥 줘버릴 것 같거든. 아니 내가 돈을 줘. 은인으로 여긴단 말이지. 이 가정이란 말이야, 가끔 그런 양면성이 있더라고.”
그는 할 말을 잃고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마치 길을 정신없이 따라오다 갑자기 안내자는 사라지고 막막한 천 길 낭떠러지기에 선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남겨놓고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점심을 먹으로 함바에 갔는데 전형이 앉으면서 주방에 소리친다. ‘아주머니 오늘 쇠고기 나와요?’ 주방에서는 아니라고 소리친다. 전형이 있는 한 이 집에서 쇠고기는 절대 나오지 못한다. 지난 주, 가양동에 있을 때 쇠고기 전골이 나왔다가 반납된 적이 있다. 그날 그는 쇠고기 전골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지금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으라는 겁니까?’ 아주머니는 생각이 있으신지 그대로 전골을 들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곳 부평으로 와서도 그는 식탁에서 광우병 투쟁을 하고 있다.
우린 점심때마다 여러 이야기를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현장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한 가지씩 성격장애가 있다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 외골수던가, 너무 착해 뭔가 부족해 보이던가 아니면 불같이 화를 잘 내던가,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의기소침해 지던가, 여러 가지인데 나는 내 성격이 가장 원만한 것 같다고 했더니 전형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진지하게 밥을 뜨던 강씨가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최, 최형은 속이 조금 꼬여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전형도 웃으며 ‘그러니 작작 들이대!’ 라고 말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조금, 조금 꼬여 있는 것 같아요. 진짜로요.” 그는 자신의 말이 농담으로 한번 던지고 마는 것이 아닌 진심이라고 강조를 했다.
그래 전형 말대로 들이대는 것 그만해야겠다. 어제도 다윗과 목욕하는 여인에 관한, 회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집에 가다말고 붙어 어찌나 질기게 물고 늘어졌는지 아침에 오자마자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했다. 유명한 조목사가 한창 교회를 번창시킬 무렵 함께 하던 사람 하나가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외국으로 가 버렸다고 했다. 후에 외국에서 만났는데 그가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용서를 해 주었다고 했다고 하기에, 조목사가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용서 했을지는 몰라도 피해자들은 당신은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밤새 어제 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다윗의 회개에 관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나 나나 학자가 아니니 얼마나 허점이 많겠는가마는, 아침부터 일 외의 고민으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면 안 되기에 더 이상 말꼬리를 잡지 않았다.

그는 일을 마치면 달인 한약 한 봉지 마신다. 나와 만나기 전에 구안괘사에 걸려 전형이 연한의원을 소개시켜 주어 그곳을 다니고 있다. 작업복을 갈아입으면서 약 먹는 것을 보고 ‘그것 좋은 거야? 남는 것 있으면 하나만 줘보쇼.’ 했더니 옆에 있던 전형이 ‘주지 마, 이 사람은 사약도 공짜라면 먹을 사람이라니까!’ 한다. 강씨는 약을 나누어 먹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며 안주다가 부평역 근처에 와서 슬그머니 약 한 봉지를 내민다. 전형이 보고도 모른 척한다. 나는 슬쩍 받아 전철역으로 들어왔다. 김씨와 강씨는 먼저 떠나고 전형과 나는 촛불집회에 간다며 급행을 기다렸다. 나는 약을 뜯어 마시니 감초 냄새가 진하게 코를 자극했다.
“와, 맛있다. 이거 마셔봐! 이 한약 냄새, 음!” 약을 내미니 전형은 기겁을 하고 혼자 먹으라고 한다.
“야, 그렇다고 진짜 약을 주냐. 안 먹을 수도 없고.” 나는 입을 닦으며 말을 하니 전형이 ‘현장 사람들 순수하잖아’ 한다.
“내일도 한 봉투 달라고 해야겠어.”
“거, 입 돌아오라고 먹는 약이야. 정상이 먹으면 확 돌아가!”
“저 양반 결혼 시켜야겠어.”
“결혼 하면 잘 살 사람이지.”
전형이 형수에게 촛불 집회를 간다고 전화를 했더니 오늘은 촛불 집회가 없다고 한다. 기분에 꼭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기분이 그랬다. 집에 일찍 들어가면 안 되는 기분이 들어 인천의 구형에게라도 갈까 했는데 전형이 일찍 집에 가자고 잡아끌어 집에 오고 말았다. 집에 와서 통신에 들어가 보니 오늘, 5월 10일 인천작가회의에 유명한 시인 추모제가 있는 날이었다. 작년에도 참석을 못해 올해는 꼭 가리라 마음을 먹고 이틀 전까지 확인 했지만 당일 모르고 지나치고 말았다. 아마 남의 약을 자주 뺏어 먹고, 멀쩡한 사람에게 들이대기를 좋아 해서 기억력에 구멍이 숭숭 뚫리지나 않았나 모르겠다.
오늘 시인 추모제에 못 간 것을 회개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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