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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혈압 때문에 현장에서 되돌아 왔다.
 최경주  | 2008·02·21 08:40 | HIT : 2,804 | VOTE : 298 |
누가 그렇게 증언을 했던가?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가위로 그 네 글자의 낱말을 오려 책상머리에 붙여 놓으리라.
그러면,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아들이 다시 묻지 않으리.
아빠, 왜 우리는 가난해요?
그때, 말없이 나는 저 단어를 가리키리라.
아들아, 아빠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리니라.




어제였다. 구정을 쇠고, 며칠 전 간만에 나간 새로운 현장에서 되돌아왔다. 예외 없이 안전교육 시간에 혈압을 쟀는데 그 망할 디지털 혈압계는 그날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전날 동갑끼리 술을 마신게 화근이 되었다. 130에서 190이 나왔던 것이다. 내 뒷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던 사내들이 우하고 베이스로 합창했다. 젊은 안전 관리자는 낭패한 얼굴로 혈압이 기록된 종이를 훑어보며 다시 재자고 했지만 역시 규정은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의사 소견서와 처방전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나는 보따리를 싸들고 새벽부터 한 시간 십여 분을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처에게 오늘 일을 못한 이유를 설명하자 처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고 했다. 아마 이게 두 번째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관리자가 말한 대로 병원으로 갔다. 할머니들 틈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다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내 혈압을 재더니 약을 지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말없이 처방전을 써주는 의사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 약이 흔히 말하는 고혈압 치료제입니까?”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앞이마에 머리숱이 성성한 의사는 나에게 반문했다.
“감기를 치료하는 약이 있습니까?”
“아니요.”
뭘 묻고 싶은 걸까?
“고혈압 치료하는 약이 있습니까?”
그제서 의사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었다.
“아니요.”
“그렇습니다, 없습니다.”
“그럼 이 약은 조절기능만 하는 군요?”
“예, 맞습니다. 그리고 이 약은 소주와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예. 가장 일반적인 약이군요.”
“그렇습니다. 고혈압 약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약입니다. 젊으신 분이니까 하루에 두 알을 드십시오. 육각형 한 알과 작은 둥근 알 하나입니다. 내 생각에는 하나 반만 드시라고 권하고 싶지만 혈압이 생업과 관계가 있으니 두 알을 드시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자, 그럼, 간호사님, 다음 환자요.”
나는 처방전을 들고 나오고 구부정한 할머니 한분이 힘겹게 걸어 들어가셨다.

3월이면 내 세 살배기 딸아이가 놀이방에 간다. 어제 설명회에 다녀왔고 오늘 사진관 하는 누나 집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왔다. 그 녀석은 자기 엄마 젖과 하루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그 녀석에게는 오빠 둘이 있다. 놈들도 끼니를 거르면 문제를 제기한다. 놈들은 가끔 부모로서 의무를 강요하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놈들에게 그리 쉽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나는 놈들이 던지는 창에 방어할 강력한 방패가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주민등록이 나올 정도까지는 그 방패를 뚫지 못할 것이다.
“아빠 왜 우리는 차도 없어요? 집도 좁고, 가난한 것 같아요.”
“아빠는 사회주의자여서 그래.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존재한단다.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람과 사람 자체를 중요시하는 사람, 그 두 가지가 다 나쁜 것은 아니란다. 너희는 그중에 하나만을 의지해 사는 집안에 태어난 거야. 너희가 가난한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이 아빠가 돈 벌 능력도 없기도 하지만 어떤 이익보다는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란다.”
아이들이 알듯 모를 듯한 얼굴로 끄떡인다. 이 얼마나 당당한 변론인가! 아들아, 바로 이런 것을 배워 세상에 나가야 하느니라. 사실 내가 사회주의자인지는 모른다. 그 정확한 뜻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치열한 자본주의자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들이 나를 동지로 인정하지 않을 테니. 처도 내 처지를 아는지 하루 두 끼만을 먹는다. 반 세계화를 추구하는 가장과 사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대략 우리 다섯 가족이 하루에 먹는 끼니는 열다섯 끼니다. 매일 그만큼의 돈을 벌어야 한다. 끔찍한 일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내가 대단하다. 그런데 아직 가장으로서 책임지어야 할 일이 까마득한데, 벌써 혈압 때문에 큰 현장에서 돌아와야 하다니. 사실, 아주 다시 나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약으로 조절하고 나가야 하지만 약을 먹기가 부담스럽다. 아버지가 혈압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혈압과 당료로 고생하신다. 나까지 약을 먹고있는 그림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차라리 쓰러지리라.

나는 가끔 가족에게 생존교육 차원에서 극한 상황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한다. 만약 내가 불의의 일을 당했을 때, 그럴 일은 희박하지만 불가피한 일로 일을 못하는 사고를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생활보장대상자에 등록하라고 한다. 이 사회에서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이 없으니, 이만큼 희망적인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이다. 그리고 근처에 사는 할머니 한 분에 관한 예를 들려준다. 두 발을 못 쓰는 할머니인데 거의 정부 혜택에 의지해 아무 탈 없이 살아가고 계신다. 심지어 우리가 그 할머니가 주는 김치를 얻어먹은 적이 있다. 그 말을 죽 늘어놓으면 처와 아이들이 언짢은 표정이지만 반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혈압으로 현장에서 되돌아왔는데도 별일 없다는 듯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또, 처가 누구 집에서는 몇 십만 원을 들여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다고 하면 이렇게 말을 반문한다.
“이 넓은 부천에서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이 얼마나 있겠어? 사실 알지 못하지만 얼마 없을 거야. 더구나 이 좁고 가난한 동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 진정으로 서울대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면 이곳에서 수십만 원씩 학원 보내는 것보다 강남으로 이사 가는 편이 더 수월할 거야. 등수에도 들지 못하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 돈을 낭비하는 법이 어디 있나?”
그래서 어차피 우리 처지에 일반 대학도 어려울 것 같으니 마음껏 놀라고 한다. 끼니도 어려운데 학원의 생계까지 책임을 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공부하고 싶다면 1분만 걸어가면 도서관이 있다. 항상 아이들을 그곳으로 내몰라고 한다. 책이 부족하면 부천 중앙도서관에서 1인당 세 권씩 매주 빌려 볼 수가 있다. 도서관끼리 연계되어 있어 동네에서 신청하면 다 온다. 다섯 식구가 등록을 했으니 열다섯 권을 빌릴 수 있다. ‘가족이 많아 좋은 것이 다 있군.’ 도대체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 나는 예전에 도서관에 가려면 남산이나 정독까지 가야 했다. 헌책방도 동네에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중학교 때 일이다. 초등학교 때는 폐품을 뒤져 ‘새소년문고’를 반은 읽었다. 부족하다니, 원 세상에. 남들 교과서 파고들 때, 동화를 읽으라는데 그게 최고의 교육 아니고 뭔가!
“영어 공부? 세상에 원어민 영어 학원이 뭔지 모르지만, 이제 외국인까지 먹여 살려야해? 내가 장담하건대 영어는 한마디만 하면 돼! ‘양키 고우 홈!’ 오케이!”
모든 것이 명확할수록 좋다. 아들놈을 겁주는 한마디는 간단하다.
“너, 매일 학습지 해볼래?”
“아니요.”
놈이 눈앞에 악마의 옷깃이라도 나풀 거린 모양 파랗게 질린다.
“그럼 학교 끝나고 여섯시까지 학원 다닐래?”
숲에서 구미호가 웃는 걸 봤나 뒷걸음친다.
“아니요. 절대로.”
아이들은 단순하다. 그래서 그들이 좋다.

“여보! 오늘 어머니가 반찬 좀 사서 올려 보내 달라고 해요.”
“뭐라고! 지금 이달 돈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데, 어머니는 생각이 있으신 거야 뭐야! 거 참, 콩나물 좀 사서 올려 보내.”
“카드로 돈 빼야 해요.”
“애들 세배 때 받은 돈 빌려 써. 그 돈 부모 쓰라고 준거야.”
“됐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바로 그게 내가 원하는 대답이야. 항상 삶을 창조하라고, 극한 상황은 언제나 바로 곁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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