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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포이동에서 - 비애로운 너무도 비애로운 거리
 최경주  | 2007·11·17 03:30 | HIT : 2,369 | VOTE : 257 |
포이동에 일을 나갔다. 매봉 전철역에서 내려 현장으로 가다보니 도곡파출소를 보고 그곳이 도곡동 근처임을 알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한국 최고급 아파트들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바벨탑처럼 서있는 것이 보였다. 거리는 11월 늦가을 정취가 넘쳐났다. 공원에 붉은 단풍나무가 나체의 여배우처럼 고독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순간 가을 절경을 찍은 사진 속을 거닐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현장을 안내 하던 형은 개울을 건넌다고 했다. 이런 곳에 개울이 있나 싶었다. 형 따라 개울이 있는 둑방 공원을 지나는데, 역시 강남은 다르다 할 만큼 울창한 나무들이 울긋불긋 그림처럼 펼쳐졌다. 개울은 그 유명한 양재천이었다. 숱한 도심의 생태이야기를 만들어낸 양재천이 아닌가! 은밀한 개울물이 낙엽을 싣고 서늘하게 흐르고, 우리는 작업복 가방을 메고 그림자를 비추며 징검다리를 건넜다. 현장은 양재천 너머 바로 그 근처에 있었다. 현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골목을 도는 데 이질적인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종이 상자를 들고 가는 내 또래의 한 사내를 만났다. 이 강남과 어울리지 않는 그와 우리 샛. 우리는 짧은 십여 분 동안 비싼 땅위를 걷고 있었다. 우리를 지나치는 고급차들과 학생들, 자전거와 양재천, 둑을 걷는 사람들, 갑자기 떨어진 기온과 극에 달한 가을 정취가 개울 속에 담겨있고, 우리는 하루벌이로 이른 아침부터 낯선 매봉역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비애롭다. 이 각박하고 자본이 집중된 도시에, 매봉역에서 현장까지, 뭔가가 한 지점이 나를 붙잡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온 종일 고통스러웠다.

그게 뭐였지? 그래 다시 되짚어 보자. 나와 김씨는 오전 7시 50분에 매봉역에 내렸었다. 형을 만나고 역을 빠져나와 파출소를 지나치고 한 아파트 현장을 지나갔었다. 그 현장 담 옆에 꽤 가을의 밀도가 높은 나무숲 울창한 작은 공원이 있었고, 너구리가 나타나고 손바닥만한 고기가 헤엄친다는 양재천을 건넜다.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를 들으며 종이 상자를 어깨에 메고 걸어가는 한 사내를 만났다. 우리는 실내 골프장을 짓는다는 현장에 들어가 작업복을 갈아입고 편의점에 가서 몇 백 원짜리 헤이질럿 제조커피를 마시고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리고, 그럼으로 나는 무엇을 보고 들었지? 자본이 직접화된 도시? 대치동 아이들? 은빛 철탑 같은 건물들? 그 사내? 그래, 그래 그 사내를 봤다. 그 사내의 살아있는 눈빛, 형형한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같은 종족임을 눈빛을 통해 서로를 확인 했었다. 그게 전부였나? 아니다. 사내가 있었고, 그 사내는 이 도시와는 극을 이루는 한 골목으로 꺾어져 들어갔다. 그래 그곳이었다. 양재천을 건너면서 버짐나무 틈으로 한 현수막을 봤었다. 절박한 구호의 현수막은 내 눈을 사로잡았지. 그래, 이 거리가 그냥 섰을 수 없지. 철근 콘크릿 아래에 뭔가가 박혀 있는 것이다. 짓눌린, 이 거리의 암울한 그림자, 이 비애감. 현수막이 보이는 곳으로 가니, 그곳에는 철거 직전의 작지만 견고한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예전에는 변두리 어디에나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감추어지다시피 머물러 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양재천에 관해 그렇게 지껄이면서 이 동네는 전혀 초점을 맞추지 않은, 자본에 저항하는 한 마을이 거짓처럼 확연히 나타난 것이다. 하얀 광목천에 페인트로 결의가 쓰인, 구호만큼이나 글씨체가 명문이기도 했다, 그 동네에, 저기, 저쪽 한 복판, 아! 망루가 있었다. 빈민 저항의 상징인 탑이 있었다. 이내 한판 싸울, 믿기 힘든 이 시대 가장 최전선이며 심장이며 극도의 모순이 응고된 성곽이 있었다. 망루 지붕에 당당하게 펄럭이는 깃발 여나무개가 붉은 단풍보다 더 활달하게 저항의 피를 자극하며 바람 앞에 펄럭이고 있었다. 비애로운 이 가을, 자본에 순치된 내 가슴을 자극하는 깃발들과 망루, 그곳을 향해 곧장 가는, 진짜 양재천의 주인인 한 사내의 형형한 눈빛과 바람을 가르는 뒷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노동을 한다. 빈민으로서 노동자가 되어 그들에게 집이 헐리어 외곽으로, 외곽으로 내 몰리면서도 일을 찾아 떠돈다. 터를 뺏기면서 그들을 위한 건물을 짓고 있는 것이다. 내가 골프장을 짓다니 이 얼마나 비애로운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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