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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루치 일당과 모범
 최경주  | 2007·08·31 22:20 | HIT : 2,007 | VOTE : 202 |
9월 말까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더니, 처서가 지나니 날씨가 달라졌다. 절기는 속일 수가 없는 모양이다. 오늘 김씨가 사다리 위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한마디 한다.
“더울 거라더니, 언론에 냉방기 회사들이 로비를 했었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일기 예보가 돈인 세상에 무슨 일이든 없겠나!
지금 우리는 보라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온종일 현장 뒤 숲에서 우는 비둘기 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 일을 마치고 보라매 공원을 가로질러 후문 근처 다른 현장에 가서 한 대가리 일당을 받았다. 지난달에 일한 일당이다. 한 대가리라 받기가 뭐했지만 함께 일한 사람이 돈을 받으러 가는데 안갈 수가 없어 같이 갔다. 한바탕 싸움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건설현장에서 하는 말로 ‘노가다 모가지는 열두 개’라는 말이 있다. 이 작은 몸뚱이에 12개의 목을 붙일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2번은 뗐다 붙였다 할 수는 있다. 그만큼 이직이 심하다는 말이다. 그건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2006년부터 현장에 나와 동료에게 주장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내 스스로 다짐하기 위한 말이기도 했다. 그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현장을 쉽게 생각하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쉽게 그만두고 쉽게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한번 옮길 때마다 신중하고 책임을 다하고, 반드시 인맥을 형성하자는 말이었다. 말을 한 나는 나부터 모범을 보이려고 현장에서 요령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일이 종료되어 그만두기 전에는 도중에 그만두지 않았다. 다섯 시 전에 일어나 두 시간 이상인 동탄까지 출퇴근을 했으며, 지방도 군말 없이 갔다. 단가가 낮아도 그냥 다녔다. 일이 더럽고 위험해도 불평을 하지 않고 솔선수범 하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지난 7월 말, 골치 아픈 그 현장으로 옮기기까지 말이다.

김씨가 알아본 현장은 백화점 보수 공사였다. 그곳으로 일을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백화점은 전통적으로 창문이 없는 곳이다. 고객들이 쇼핑하기 할 최적의 조건을 만들려고 아늑하고, 밤인지 낮인지, 신경 쓰지 않게 실내장식을 한다. 원래 백화점은 기능적으로 그렇게 설계를 한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일하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는 한, 최악의 작업조건이다. 공기 순환이 그만큼 되지 않는 다는 말이다.  
한여름에 창문이 없는 곳에서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니, 경험이 많은 일꾼은 그런 현장은 피해 다닌다. 일을 구하는 김씨에게 현장 조건이 열악할 것이라고 말을 했더니, 아는 형에게 부탁을 해서 어렵게 구한 현장이니 될 수 있으면 가자고 했다. 누군가는 하는 일이 아니냐는 말이다. 나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일은 주로 그 친구가 구했으니 따를 수밖에.
출근 첫날은 금요일이었다. 현장 앞까지 갔을 때, 경험이 틀리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은 없고 건물 전면에 광고 프린트물이 도배되어 있었다. 현장은 더구나 지하였다. 계단이 원형으로 내려가는 1층에 지옥문처럼 검은 입구가 떡 벌리고 우리가 들어오기를 고대하며 있었다. 안을 보니 그야말로 뜯어진 천장에는 온갖 시설물들이 흉측하게 매달려 있었으며, 곧 마귀라도 뛰어나와 내 멱살을 잡아 먼지구덩이에 패대기쳐서 밟아 버릴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곳이, 간간이 매달린 전등으로 더욱 음침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복중이라 더운 공기가 먼지를 담고 밖까지 흘러나왔다. 그 안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곧 질리고 말았다.
“김씨, 내가 일을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쉬었다가 들어가지!”
김씨는 아직 약속시간까지는 이르니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입구 앞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들도 힐끗거렸다. 김씨 얼굴을 살피니 그도 여러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한 십여 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용기를 내어 어렵게 한마디 했다. 도저히 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장을 옮기자라는 뜻이었다. 김씨도 동의를 했다. 둘이 가방을 메고 일어났다. 김씨도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 다른 현장으로 가자고 했다.
둘은 근처 보라매공원에 가서 아침부터 그 큰 공원을 한 바퀴 돌고, 걸어서 공단역까지 갔다. 땀이 흠뻑 젖었다.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함께 걸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여기서 집회를 했느니 말았느니, 저 건물에서 일을 했느니 말았느니 등. 2년 가까이 둘이 다니면서 처음으로 약속을 어겼다. 좋은 일이 아니었다. 다음부터는 그렇지 않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다음날,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에 김씨에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소개해준 사람을 봐서 그곳에 다시 나가야겠다는 것이다. 이 껀 하나로 몇 년을 사귀어온 사람과 서운해질 것 같아 고생이 되더라도 가자고 했다. 그래서 부득이 금, 토, 일, 삼일을 쉬고 월요일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는 김형을 함께 데리고 나갔다. 월요일 아침, 마음을 먹고 가서 그런지 현장에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역시 현장은 최악이었다. 안전교육을 받고 배치되어 보니, 예상대로 10년쯤 쌓인 먼지를 먹은 닥트 통을 뜯는 철거 일을 시켰다. 대충 훑어보니 한 주일 정도 걸릴 일이었다. 그런데 철거를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장비가 했다. 빽호라는 집게 차로 천정에 붙은 닥트를 뜯어내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뜯긴 통을 해체하는 일이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을 하였다. 비록 먼지가 날리지만, 마스크를 쓰고 참았다. 요즘 현장에는 예전처럼 천으로 된 마스크가 아니라, 정화통까지는 없어도 호흡기는 있다. 천으로 된 마스크는 숨을 내 쉬면 안경 낀 사람에게는 보통 답답한 일이 아니다. 숨을 내 쉴 때마다 안경에 습기가 끼어 앞이 흐려진다. 근래 나온 것은 호흡기가 있어 곧바로 내 뿜을 수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하나씩 쓰고 집게 차를 따라다니며 통을 해체했다. 장비가 통을 천정에서 뜯으면 아주머니 두 분이 대기 하고 있다가 유리 솜을 벗기어 마대에 집어넣었다. 유리 솜이 벗겨진 통을 뜯어 밖으로 나르기 편하게 해체하는 일이 우리 일이었다.
뜯은 통에서 유리솜을 벗기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아주머니 두 분이 죽을힘을 다해 벗겨도 우리에게 일을 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유리 솜을 함께 벗기기 시작했다. 가위로 유리 솜 배를 따면 마스크고 지랄이고 매캐한 유릿가루 냄새가 났다. 이런 해로운 일을 이따위로 시키다니, 성질이 나서 통을 걷어차면 먼지가 더욱 뿜어져 나와 다른 사람들이 도망을 쳤다. 가위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함께 온 다른 두 사람이 온몸에 검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일 시키는 사장이 자기 애인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 하나로 그의 생계에 지장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늘모범을 보여주고자 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내가 왜 그런 부질없는 말을 했단 말인가?
아주머니들은 우리의 작업을 보더니 여유 생겼는지 처음과 달리 느긋하게 일을 했고, 심지어는 더 힘든 일이 있으면 우리를 시켜 먹었다. 우리만 일이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잠깐 쉬는 시간에 김씨에게 유리 솜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못 믿겠다는 투로 진짜냐고 물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보온을 하는 아주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 아주머니 친구 한 명이 폐에 병이 나서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의사가 배를 갈라 보니 폐가 돌처럼 굳었고 유릿가루가 잔뜩 묻어 반짝이고 있었다고 한다. 의사가 칼질을 할 수가 없어 배를 그냥 닫았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가 가족에게 물었단다. 아주머니가 무슨 일을 합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김씨가 묻는다. 그 아주머니는 그 후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김씨는 끝까지 못 믿겠다는 것이다. 아마 믿고 싶지 않았겠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내가 말한 것 이상으로 해로운 일을 하고 있었다. 유릿가루가 석면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에게 해로운, 지독히 폐에 해로운 물건이다. 병에 걸렸다 해도 산재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힘들다. 우리는 상식 이하로 작업환경이 나쁜 것이다.
솜을 뜯어 마대에 담는 일을 한창 하는데 건축에서 나와 노발대발한다. 물을 뿌리고 일을 하라는 것이다. 당신들만 일하느냐고 따진다. 그는 유릿가루가 뭔지 아는 것이다. 근처에 물통이 있어 뿌렸더니 그걸 뿌리면 안 된단다. 소방용 물이라고 한다. 빌어먹을, 불나서 타죽기 전에 먼지에 썩어 죽겠다!
그날 일을 여섯 시까지 꼬박했다. 유리 솜을 잔뜩 담은 마대자루를 밖으로 끌어내 쓰레기차에 싣고서 일이 끝났다. 허기져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씻으며 코를 푸니 꺼먼 유리 솜 먼지가 나왔다. 나는 여섯 시까지 꼬박 일한 것에 화가 났다. 이런 일은 서너 시에 끝내 주어야 씻고 갈 것 아닌가! 그리고 새벽부터 나오는 현장에 여섯 시까지 꼬박하는 현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뭐 같은 현장에 뭐 같은 책임자 만난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일 년 반 만에 처음으로 무단결근을 해 보았다. 처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하자, 그럼 당신이 나가서 유리 솜을 뜯어 담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건 캐시밀론 솜이 아니라 폐에 치명적인 유리 솜이란 말이야! 당신 바보야! 그걸 종일 마셔야 하고 내일도 모레도 신선한 공기보다 많이 마셔야 한단 말이야! 지금까지 마셔온 유릿가루보다 더 많이 마시게 될 거야!’ 이 말은 속으로 했다.
집에서 종일 막내딸과 노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분명히 어떤 변명에 앞서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토록 모범을 강조했는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다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삶이란 이런 부득이함이 있지 않은가하고 스스로 위로 했다.  
하루 쉬고 다음날 출근을 하였다. 첫날보다 빨리 나갔다. 버스를 타고 화곡역으로 가서, 한 정거장 가서 까치산에서 신도림역까지, 2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신림역으로, 역에서 나와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모자를 눌러 쓰고 걸었다. 현장이 가까워질수록 뭔지 모를 화가 가슴에서 싹 틔우며 돋아났다. 이런 일을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 먼지 구덩이에 가서 뭐를 얻겠다고 엎드려 유리 솜을 자르고 묵은 먼지가 일어나는 곳에 코를 대고 장갑으로 구겨 보따리에 주워담는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목과 팔뚝 사타구니가 가렵고 따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츰 걸음이 느려지고 여러 생각이 급격하게 들썩거렸다. 분명히 잘못된 현장이다. 닥트 기술자에게 보온재를 쓸어 담는 일이 뭐란 말인가? 내가 저 일을 하러 온 것은 아니질 않는가! 빌어먹을, 도대체 이따위 현장이 어디 있을 수 있나! 말도 안 돼! 대한민국 어떤 노가다를 세우고 물어봐도 내 말에 동의를 할 것이다. 저건 잘못된 일이라고! 내가 안 해도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소장에게 이 망할 일을 하라지!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불평이 극에 달해가고 멀리 현장이 서서히 드러났다. 내 가슴은 뛰었다. 길이 꺾이고 대로 따라 양옆에 건물들이 펼쳐져 있고 멀리 현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장까지 100여 미터 앞에서 내 발은 느닷없이 전혀 엉뚱한 골목길로 걸어 들어갔다. 나도 놀라는 돌발적인 행동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내 발을 탓하지 않았다.
둑을 타고 고가를 따라 신대방역까지 걸어갔다. 비가 쉬지 않고 내려 길바닥을 적셨다. 모자를 쓰고 우산은 꺼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그대로 들어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우주복을 입고 철거를 해야 하고 방독면을 쓰고 해야 할 일이다. 또 얼마나 따갑고 가려운가! 망할 놈의 노가다. 차라리 내가 그만두고 말지! 저 냄새가 나는 인육을 제물로 올리는 굴속으로 뛰어들어갈 수가 없다.
집으로 가지 못하고 주안 구형에게 갔다. 형은 아침부터 장사는 뒷전이고 주식 단타에 여념이 없었다. 누구 돈을 따먹겠다고 저런가 싶다. 소파에 기대어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현장도 개 같지만 내 행동도 떳떳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생각뿐이었다.
점심때가 되자 답답해서 그곳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곳을 나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연안부두에 갔다. 주안에서 전철로 인천역까지 가서 버스를 탔다. 구형이 배를 보려면 그곳에 가야 한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언제고 배를 원 없이 보고 싶었다. 여러 배가 있었다. 중국에 간다는 여객선터미널에 앉아 있다가 그 옆 터미널에 서성거리다 돌아오고 말았다. 보이는 것 모두 재미없었다. 생각보다 배와 바다도 볼품없고 사람도, 차들도 다 볼일 없었다. 그저 맥없이 움직일 뿐이었다.
다시 주안에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집으로 돌아왔다. 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을 이용해 휴가차 자기 고향으로 간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도 기분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눈치를 살피며 같이 내려가자고 했지만 다음 일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고 아이들과 처를 내려보냈다. 처남이 데리러 왔는데 차에 사람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짐이 가득 찼다.

그날 밤 김씨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도 일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도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 둘은 웃었다.
“어이, 현장에 연연하지 말자고,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일을 하자고, 현장이 개 같은데 어떻게 제대로 일을 하나. 모범이고 뭐고 맘 편하게 하자고, 그게 최고 아니야? 우리가 무슨 책에 나오는 열혈 투사도 아니고.”
그랬더니 김씨가 환하게 웃는다.
“이제 아셨어요? 참 나!”
그 현장에 셋이 갔다가 둘이 그만두고 김형 혼자 남아 철거를 끝까지 했다. 존경스러운 형은 밤 11시에 전화에 대고 내 자세가 틀렸다고 십여 분을 떠들었다. 일하는 자세가 틀렸고, 생활인의 자세가 틀렸다는 것이다.
며칠 후, 남아 있던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말로는 우리가 그만둔 후에 여러 팀이 왔다가 갔다고 한다. 올 때마다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다나, 형도 결국 철거를 마치고 현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날 일한 한 대가리를 한 달을 꼬박 채우고 오늘 준 것이다. 자기도 화가  나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돈 받는 김씨에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나이 먹어서 어디 가 그렇게 일하지 마세요.”
김씨는 웃고 말았다고 한다. 이로써 한 달 내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응어리 하나가 풀렸다. 왜 이런 사소한 일에 고민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사실 김씨와 내가 없을 때, 김형이 혼자 가서 한바탕 한 일이 있어 더 신경이 쓰였다. 8월 보름에, 월급날인데 돈이 안 나왔던 것이다.
지겨운 노가다들. 현장들, 이것이 사람이 만든 삶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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