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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장에 굴러 다니는 대선후보 기사
 최경주  | 2007·05·13 01:15 | HIT : 2,250 | VOTE : 235 |
아침이 밝기도 전에 흐린 창으로 빗방울이 튀기면 마음도 몸도 무거워진다. 건설노동자는 비가 오는 날이 빨간색이란다. 확실히 비는 젖은 종이처럼 사람을 습하게 만들고 처지를 생각하게 한다. 조합에 있으면 비가 오는 날에 민주노총이나 건설노조에 불만 어린,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곤 한다. 왜 비 오는 날에는 사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지고, 울분이 터지는 걸까? 대화하기 어려운, 오직 쌓인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전화다. 죽일 놈이 왜 이리 많은지, 조합원 중에도 이런 날 술을 마시고 건설교통부에 전화를 해서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하도급구조가 어떠니, 현장 조건이 어떠니, 그저 쏟아 부을 뿐이다.
빗소리는 우울한 반주소리다. 현장을 타고 도는 흙탕물에 오줌을 갈기며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묻어 있는 듯하다. 세상은 벅차게 돌아가지만 아무도 우리의 삶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건설회사만이 우리를 잊지 않는다. 마치 창고에 널린 삽자루 다루듯 거칠게 자갈이며 모래를 퍼 담다가 이빨이라도 나갈라치면 미련 없이 쓰레기차에 던져버린다. 아침부터 쓰레기 더미 위의 부러진 삽이 비 맞고 있는, 처량하기 짝이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삽날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아플 것이고 비가 개이면 다른 쓰레기에 덮이기 전에 붉게 녹이 슬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 있어도 보이지 않고 곧 버려질 쓰고 난 종이컵처럼.

오늘 추적거리며 비가 온다. 그래서 내가 쉬게 되었나 보다. 사실 비 오는 날 쉬는 직종은 따로 있다. 밖에서 형틀 작업을 하거나 외벽, 미장이나 조적 등이 쉬곤 한다. 내부 작업을 주로 하는 설비직종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을 한다. 오늘 일이 마땅치 않아 오늘 쉬게 되었는데 엊저녁부터 비가 내렸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빗소리를 들으며 글이라도 쓰는데 다른 쉬는 일꾼들은 이 시간에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출근을 했다면 땀이 나도록 힘을 써야 하리라.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못할 매일 되풀이 되는 노동일, 천보따리가 등에 지는 가방으로 바뀌고 차를 끌고 다닌다지만 땡볕에 타들어 가는 피부는 감출수가 없다.
매일 아침, 7시 십여 분이면, 동막역에서 김씨를 만나 6번 버스를 타고 국제도시라는 송도에 들어간다. 국제도시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아파트를 64층인가를 짓는다는 4동짜리 더샾 아파트 현장을 거친다. 멀리서 보이는 포스코의 샾 로고가 우물정자를 닮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날아가는 창 로고와 비슷하기도 하다. 뭔 돈이 있어 저런 건물을 올리는지, 저기에 들어갈 살 무수한 사람은 또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모르지만 나 같은 부류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짓기만 했지 살 엄두를 못 내는 나는, 이 사회를 이루는 사슬구조에서 부랑아 다음 순인 바닥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
버스는 무슨 기술연구원이란 녹색 건물 앞에서 선다. 김씨와 둘이서 내려 그 긴 건물을 관통해 건너편 블록으로 간다. 중간으로 통하는 길을 알기 전에는 빙 둘러 다녔다. 감히 건물을 가르고 지나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연봉 6-7천은 되지 않을까?”
“글쎄요. 한 5-6천 되지 않을까요.”
김씨는 6-7천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나 보다. 가끔 남의 연봉은 왜 따지는 지, 갑자기 생각날 때가 있다.
“그렇게 많은 돈 벌어서 어디다 쓸까? 상상이 안 가? 그럼 우린 얼마나 되지?”
“한 이천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작은 돈은 아니지.”
“일할 수 있는 것만 어디에요.”
“…….”
그 길을 다시 건너 경복궁 안에나 있을 법한 건물을 콘크리트로 지어 단청까지 해 놓은 공원을 지나, 길 건너에 있는 해송초등학교 현장까지 걸어 들어간다. 공원을 꾸미는 사람들 역시 노동자들이다. 바닥을 까는 돌쟁이들이 주로 작업을 한다. 김씨는 걸으며 당일 신문에 난 대선후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문을 전혀 보지 않는 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대선후보를 주제로 한겨레에서 심상정 후보가 나왔다고 한다. 민주노조 역사에 전설적인 ‘문단심’의 그 심상정이다. 예전에 영등포 복지회관인가에서 민주노총 보궐선거 개표하던 날 멀리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청바지를 앞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개표하는 무대 앞을 지나 대의원들이 앉아 있는 곳에 오자 사람들이 일어나 악수를 하던 장면이었다.
“저 친구가 그 유명한 심상정이야!”
함께 갔던 형이 알려주었다.
“당차 보이는 데요.”
안이 어둡고 멀어서 얼굴을 잘 보지 못했는데 단단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늘 투쟁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그런 그가 지금은 선거혁명을 꿈꾸며 언론에 자주 등장해 친숙한 얼굴이 되었다. 표를 긁어모아야 하는 정치는 민주노총 내의 선거와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한 2년 전에 심상정 후보와 함께 활동을 했다는 내 또래의 노무사를 만난 적이 있다. 구로동 이마트 앞에 있는 노동부 건물 건너편에 개인 사무실을 개업한 노무사였다. 우연한 일로 그쪽 직원과 조합 노무사와 넷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노무사인 그녀와 옛이야기를 하던 중 심상정 후보가 자신의 학교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무사도 서울대를 나온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한마디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서울대라는 학력의 힘이 얼마나 세냐면 말이죠, 막노동판에서 10년을 바보처럼 살며 왕따 당한 친구가 어느 날 말을 합니다. ‘사실 나 서울대 나왔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바보 같은 친구는 철학이 있어 보이고, 깨우친 게 있어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돼요. 매일 닦달하고 무시했던 바보 같은 그에게 순간적인 존경심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무릎이 꿇어지려고 하고 술병을 두 손으로 받치게 되지요. 이게 서울대의 힘입니다.”
난 그저 재미있자고 한 말이었다. 또 무슨 말을 하다가 그는 자신이 부족한 것을 이야기했다.
“부족하면 어때요. 서울댄데요.”
그런 쓸데없는 말을 왜 했을까? 하여간 긴장을 풀자고 한 말이었다. 다음날, 그녀와 동기인 조합 노무사가 나에게 말을 했다.
“어제요. 그 언니가 ‘저 사람 서울대와 무슨 원한 있니?’ 하고 물었어요.”
“어, 아닌데. 분위기 부드럽게 하려고 한 말인데. 내가 실수했나?”
“그런 건 아닌데, 듣기에 그랬나 봐요. 조합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대 출신이란 게 조심스럽잖아요.”
“그렇지. 근데 그래도 그 말은 사실이라고 전해줘.”
“됐습니다.”
하루는 심상정 후보가 국회의원이 된 후, 어떤 방송국에서 그녀의 일상을 방영할 일이 있다고 했다. 심상정 후보가 카메라를 뒤에 세우고 노무사인 자신의 사무실에 방문을 했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서 옛 동지인 후배와 반갑게 인사를 했겠지. 심상정 후보가 돌아가면서 어깨를 치며 한마디 했다고 한다.
“이런 일로 방문해서 미안하다.”
뭐가 미안했을까? 80년대 중반 구로동에서 연대투쟁부터 함께 한 동지인데, 국회의원이 되어 정장을 하고 카메라를 엎고 나타나서 미안했나? 그 말을 듣는데 심상정 후보가 상당히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정치라는 것은 노조에서 활동했던 방식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서고 정장을 입어야 하며 자신을 알려야 한다.
세월은 변화무쌍하여 남산에 봄이 여전히 되풀이될지라도 인간들은 아무것도 그냥 놔두질 않는다. 이제 영등포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청바지에 손을 찌르고 나타난 심상정이 차디찬 미소가 아니라 신문 한쪽에 왼쪽 얼굴에 미소를 짓고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은 대선 후보 경성에 출마한 심상정답게 중후한 이미지를 보이고 있었다. 민주노총이 아닌, 개싸움에 강해야 권력을 잡는다는 난잡한 이 싸움판에 원칙이 강한 조직에서 단련된 그가 이 혈전의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지 궁금하다.

서서히 대선이란 결전의 장이 열리고 있다. 각 당의 경선에 관한 막이 올라가고, 왕좌에는 현직이 안간힘을 쓴다고 해서 계속 머물 수는 없다. 이제 곧 교체되기 직전에 있다. 방송국에서는 대선 예행연습이 준비되고 투표 산출 프로그램에 버그를 잡고 있으리라. 인쇄소는 종이를 확보하고 누가 고객이 될 것인가 기다리고 있으며, 기자들은 예비주자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자 밤낮으로 뛰고, 후보들은 캠프를 세워서 머리카락 한 올까지 신경을 쓰며 전국순회 전략을 세우느라 밤을 지새우고 있다. 이제 대기실에서 나와 무대에 서야 한다. 마이크를 잡고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산에서 한라산까지 자신은 하늘이 내렸음을 증명해 보여야 하며,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은 드라마를 볼 준비가 되어 있으며, 무대를 중심으로 입장을 하고 있다. 천정에 라이트들은 눈부시게 켜져 있으며, 정말 얼마 후면 대장정의 큐 싸인이 떨어질 것이다.
나는 그저 투표권 하나 가진 국민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숱한 인생역경의 마지막 승부처이며, 꿈의 구장에 들어가 삶의 대미를 성공적으로 장식하려는 기회일 것이다. 나는 근래 선거가 있을 때마다 선거 주체라는 생각보다는 선거판을 관람하는 관객이 된 것 같다. 언젠가 ‘공감단’ 활동을 할 때는 대선의 직접 영향을 끼치는 주체라는 자부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제 다른  세계의 군상들의 절정을 보려고 팝콘을 들고 신문지를 깔고 앉은 사람인것 같다.

내게 늘어난 것이 설교뿐인가? 가끔 나이가 든 형님들을 만나면 대선에 대해 여러 의견을 물어 온다. 그러면 자리를 깔고 앉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대충 정리를 해 준다. 경기란 영화와 다르게 사전지식을 가지고 보면 더 재미가 있다. 내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고 민주노동당 입장만 강하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입을 다문다. 난 알고 있다. 자신이 점찍은 후보가 승리하길 원한다는 것을, 내게 말을 건 것은 그 가능성을 보다 확실하게 점치고 확신을 할 근거를 얻고자 그런 것이리라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슬금슬금 허리를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주위에서 긴 원을 그리며 갓길로 멀어져 간다. 그들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방법의 하나가 떠봐서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알아보고 대충 그 후보도 훌륭한 점을 찾아 준다. 그제야 이야기가 서로 통하기 시작한다. 현장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아직은 다수가 이명박이다. 이명박이 대선에서 깃발을 잡아채려면 한나라당 경선이 더 어렵다는 말을 해 준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 앞에서는 박근혜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고 박근혜를 대해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김근태를 말하고 김근태를 신봉하면 열린 우리당이 노동자들에게 끼친 폐해를 떠들어 대고 민노당을 말한다. 솔직히 이번 선거에 정확한 내 입장은 아직 모르겠다. 총선과 다른 대선이 이래서 어렵다. 그저 열심히 듣고 보고 있다.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단편적이지만 숱한 가상의 경우를 두고 예측을 해본다. 주식 도표를 보듯 말이다. 살아 있는 선이 어디에 있으며 연속 상한가를 칠 수 있는 종목을 쫓아 그래프를 그려본다. 내가 찍은 경주마가 마지막 선을 제일 먼저 뚫고 지나가길 바라듯.
이번 선거에 바란다면, 불륜이 주제인 연속극처럼, 다음 대사까지 읽히는 물린 드라마가 아닌, 보다 전문적이고 치밀하며 타당성을 가진 현실적인, 소가 대를 이기는 극적인 역전 드라마였으면 한다. 드라마 절정에서 비명을 지르듯 바로 이거야 할 수 있는, 진정으로 잔인함으로 티켓 파는 조폭영화가 아닌 대미의 순간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 박수를 치고 옆 사람과 얼싸안을 수 있는 고도의 수준 높은 드라마이길 바란다.

한 이년 전에 우연히 역학자라고 하는, 역학자들의 전국조직 간부였나 싶다. 그가 그때 자신의 홈페이지에 몇 년 후의 대선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올려놓았었다. 당연히 역학자이니 역학으로 풀어놓은 것이었다. 여러 역학적인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의 결론은 막판 대선 후보는 어렵게 김근태와 박근혜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선거 직전에 그들의 운세가 절정에 달한다고 한다. 역학자 말은 그대로 믿기가 어렵기는 하다. 대부분 상징적이고 자신의 주관에 따라 괘 해석에 영향을 주니 말이다. 대선 철에는 유명 점쟁이들에게도 로비를 한다더니만, 아마 거짓은 아닐 것이다. 나라도 할 것이다. 점쟁이들의 예언을 자신의 주장에 얹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꽤 있다.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적중했다는 송화비결을 본 적이 있다. 당시, 대선 직후 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 있게 해마다 예언이 그림 보듯 그려져 있었다. 책을 올해만 팔고 말려나? 연도별로 이렇게 있으면 곤란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이 예언한 대로라면 지금쯤 미국이 북한을 국지적으로 폭격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럴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아는 대로 폭격한 적은 없다. 교보에 갔을 때 지난해가 맞았나? 확인해 보니 재해석을 했다고 되어 있었다. 원 세상에, 명색이 예언 비결서인데 하나라도 틀리면 비결을 덮어야지 결과를 보고 재해석을 하다니. 책이 전에 보던 책과는 다르게 표지 디자인에 돈을 쓴 흔적이 있었다. 책 표지만 보면 하나도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옛날에는 일기예보가 틀리면 왕을 속였다 해서 형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더구먼, 지금은 그런 정신이 없다. 예언 하나에 목숨을 걸고 하는 역학 정신이. 역학자마다 대선 후보가 다른 것은 또 뭔가? 명색이 나름대로 전문가들인데. 비슷하기라도 해야지.
하여간 근거가 있든 없든 역학자 말대로라면 김근태 후보가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적들을 하나씩 꺾어나가면서 대선 최고봉에 올라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마지막 혈전의 장에 입성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까? 그가 이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대선후보 시장판을 올곧게 정리해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점쟁이가 아니니 점괘를 볼 수도 없고, 역학으로 사주도 풀 수도 없다. 지켜볼 따름이다. 믿지 않으면서 그 점괘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또 무언가?
“김근태를 서울대 출신들이 밀어주지 않을까?”
“글쎄요. 그것도 말이 되기는 하지만 모르죠.”
“서울대 후보 아닌 사람이 있나?”
“있죠. 많아요.”
“서울대도 안 나오고 대선에 출마를 한단 말이야? 대단한 배짱이군. 그럼 명문 상고라도 나와야지. 내 생각이긴 한데 이번 선거가 서울대와 비서울대 싸움으로 가는 것 아냐? 거 뭐야, 서울대 자존심이 있지 내리 세 번을 참지 않을 것 아닌가?”
학력에 관한 나는 자유롭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시기와 질투는 아예 없으니. 김씨 말을 들으니 같은 조합원끼리도 출신 학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고 한다. 그럴 리가? 나는 느낄 수 조차 없는 이야기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한데요.”
김씨가 흥미를 갖는다. 설마 내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지.
“하긴, 서울대 아니고서 뭐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지. 운동이든, 정치든, 다 서울대를 나와야 하거든. 안 그래?”
“글쎄요. 그게 좀.”

역학자는 왜 박근혜를 꼽았을까? 그래야, 대선 시나리오가 완성도가 높아지나? 선거라면 거의 져본 적이 없고, 아버지의 기반을 그대로 물려받아 대선 1순위의 이명박에 칼을 뽑아 사활을 건 싸움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유신 산물이라는 그녀의 정치 역경에 아버지에 이어 왕좌의 자리에 앉아,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툭하면 ‘이 노무현이가’라고 말하듯,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하늘이 내린 양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대통령 되기보다 어려운 한나라당의 경선을 이겨야 그녀에게 승률이 높은 출전권을 쥐어지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 운하를 놓겠다는, 대통령이 된다면 아마 그러고도 남을 이명박을 주저앉히고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를 나왔으면 조금 나으련만.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꿈꾸는, 숱한 이합집산에 이해타산을 따지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든 삶이 결국 대통령이 되기 위한 역사였지 않는가 하고 스스로 도취하여 자전적 시나리오를 그리다 밤잠을 설치는 그들에게 아직 꿈의 구장을 열려있으며 결선 표에는 비어 있다.
왜, 나는 대선을 꿈의 구장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누구도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내 삶의 현장이 곧 이번 대선과 물려 구조적으로 영향을 직접 받을 텐데 말이다. 갈수록 이놈의 선거가 남의 일처럼 여겨진다.
대선이 화려하게 부풀려져 중계되고 주말연속극을 끌고 가듯, 쉬지 않고 차기 주자는 누가 될 것인가에 의문을 던지며 흥미를 돋우는 언론들, 손에 피를 묻히길 주저하지 않는 정객들의 크고 작은 싸움과 자리바꿈, 자신을 중심으로 한 유리한 논리들, 빈 의자를 중심에 두고 서바이벌 게임이 펼쳐지는 듯하다.
사회에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고 커다란 영향력이 있는 자리. 블랙홀에 의자가 놓여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모두 허리를 굽히고 알현을 할 것이다. 마치 서울대처럼 나오기보다 들어가기는 더 어려운 관문. 마지막 의자에 앉아야 할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모두 자신이라고 기를 쓰지만 의자는 일인용이다. 옆에 의자는 그의 배우자에게 주어진다. 미혼이라면 옆 의자는 창고로 치워 지겠지.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고 누군가는 앉아야 할 의자에 누가 앉을 것인가?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챙기고 싶어 하고 바닥 노동자는 더 챙겨줄 이윤이 없다. 노동자가 뼈만 남았다고 말한다면 자본가는 갈비탕이라도 끓여 팔자고 할 것이다. 선진국으로 가고자. 그 망할 선진국 타령은 지치지도 않는다. 건설현장 근로시간 줄이고 하도급구조 바꾸면 선진국 금방 될 것 같구먼. 집 있는 자는 오르길 바랄 테고, 없는 사람은 아예 집값이 붕괴하기를 바랄 것이다. 나처럼. 어떤 후보가 내 속을 알아 줄 텐가!

일을 마치고 지하 펌프실로 가서 옷을 갈아 있었다. 창고는 없고 자재와 연장은 지하 계단 아래 어두운 구석에 쌓아 놓고 작업복은 기계를 앉힐 패드 위에 신문지위에 있었다. 바지를 벗고 서니 벌건 살갗이 드러난다. 나는 삼각팬티 김씨는 땡땡이 무늬가 있는 트렁크 팬티다.
“나잇살이나 먹어 이게 뭡니까? 내일모레면 오십에다 애가 셋인데 난장에서 옷이나 갈아입으려고 벌거벗고 있다니. 이게 말이야!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됩니까? 이게 정령 내 직업이란 말입니까?”
김씨가 좋다고 웃는다.
“대선이고 나발이고 어떤 놈 하나 막노동꾼 위한다고 공사판 시간 줄이겠다는 놈 하나 없으니 우린 뭐냐고?”
“건설현장 시간 줄이는 일을 공약만 가지고 되겠어요? 설사 그렇게 말하는 정치인이라도 어쩔 수 없을걸요. 현장 출신이 노동부 장관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그런 생각을 하니 건설현장 출신이 노동부 장관을 못하는 거요. 그런 생각을 버려야 정치를 할 수 있다니까. 어떤 힘있는 놈이 자기 죽이는 데 돈 대고 몸 대겠어. 전에 탄핵정국 직전에 뒤에서는 서로 악수하고 웃다가 카메라 앞에서는 잘도 싸우데. 그게 정치라고 하더구먼.”
“그런 게 있겠지요. 알고 보면 다 인맥이죠. 당이나 입장을 떠나 죄 선배고 후배죠. 그렇지 않은 세계가 있나요.”
“그렇겠지. 현장도 인맥이 있어야 일을 하니. 그럼 내 인맥은 뭐야? 개뿔이나 뭐가 있어야지.”
“그래도 이렇게 일이라도 있잖아요.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그렇지. 놀면 죽을 맛이지. 신문이나 보고 술마시고 떠드는 게 우리 할 일이지. 근데 서울대 연구동 현장 다 끝났나? 일이라도 서울대를 다녀야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데 말이야! 푸하하하!”
"그렇게 좋아요?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니까."
"재밌잖아! 니기미."

현장을 나오는데 허기가 졌다. 배가 고파 거의 반쯤 꼬부라지기 직전에 동막역 앞에 도착해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한 병과 순대를 사들고 뒤 공원으로 가서 풀밭에 앉아 술을 마셔 허기를 달래니 지루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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