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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표피와 악령
 최경주  | 2006·12·31 16:50 | HIT : 1,786 | VOTE : 217 |
표피와 악령

솔직히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 친구는 조금 다른 친구들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조금은 비정상이란 이야기다. 남들도 간혹 그렇게 나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인간이란, 같은 종자이면서 다름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야기 거리가 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이 친구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만큼 서로 사실과 내 관점이 다른 것일 수 있다. 어쩌면 그 친구에 대한 진실을 완전히 왜곡 할 수도 있다. 전혀 딴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 사람의 내면을, 짐작과 경험으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단 말인가? 내가 본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다른 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삶을 통해 무수히 교육받아 왔다. 그저 내 눈이 가진, 실제 사물이 지닌 모습 차이에는 보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맞는구나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보았구나, 하면 맞을 것이다.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곳은 내가 자주 가는 신길동 근처의 허름한 술집이다. 예전에는 ‘예산집’이라는 간판이 있기는 했는데 언제부턴가 간판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간판이 주인이나 손님에게 어떤 의미가 없어졌나 보다. 그는 거기에 자주 나타났다. 그 술집은 꼭 비루한 나나 그 같은 사람이 안락함을 느끼며 술을 마시겠끔 분위기가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 곳을 드나드는 사람과 주인이 십 수 년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리라. 나중에는 주인이 누구인지 객이 누군인지 분간이 안가는 일이 가끔 벌어졌다. 그와 나, 인근의 의료 판매상인들, 현장 노동자들이나 시를 쓰지 못하고 늘 술만 마시는 정형이나 군사전문가 김형 등 너무나 빈번하게 들락거렸다. 대략 이십 여명이 모임의 회원처럼 늘 돌아가며 그곳에 머물렀다. 가끔 정형에게 죽어버린 신길시장의 옛 ‘예산집’에 대한 연작시를 썼다면 형은 대성공을 했을거란 이야기를 할 만큼 그곳에는 사람의 사는 이야기가 대재벌 회장이나 유명 텔렌트의 기복이 심한 삶 못지않게 극적이고 다양한 이야기가 쌓인 곳이다. 내가 이곳을 들먹이는 이 순간, 아마 정형이 시로 쓰지 않았다면 내가 최초로 그곳에 대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곳 여주인 노인네가 지독히 싫어하는, 단골 중에 단골인데도 싫어해 티격태격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이 친구가 제일 심했던 것 같다. 놈은 나와 같이 일당쟁이로 공장이나 현장에서 용접 일로 품을 팔아먹고 살았다. 그는 정서적으로 조금 비정상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도 나를 보면 그런 말을 하지만, 그에 비하면 나는 더없이 정상이다. 사실 본성이야 착한 사내였지만 좀처럼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다. 대화기법이나 소통구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놈은 미취학 꼬마들처럼 말썽을 부려 관심을 끌려는 듯 한 모습을 종종 보였는데 그게 사람들 주목을 끄는 데까지는 성공을 해도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나와는 동갑이나 대체로 어떤 일이든 넘어 갈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조금은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마치 자기 안에 또 다른 자기가 존재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말할 때는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 같았다. 심리학에서는 그런 경우를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의 이야기를 반 이상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놈은 자신의 어떤 상에 갇혀 있거나 외부의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하루는 ‘예산집’에서 나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 집은 혼자 술을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익숙하고 한마디 하고 합석을 해도 별 문제가 없는 곳이다. 내가 막걸리 한 병을 비웠을 때, 이 친구는 술집으로 들어와 소주 한 병을 따서는 내 앞에 앉았다. 주인아주머니가 강한 충청도 사투리로 욕을 하더니 밖으로 나가 버린다.
“안, 앉아라!”
녀석은 예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나에게 차릴 필요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그 모양이었다. 예의에 관한 문제를 늘 지적을 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그는 예의 뿐 아니라 먹고사는 능력도 나보다 두어 단계 아래다. 내가 이 사회 밑바닥인데 그보다 아래라면 생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것이 나보다 못한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녀석의 세계에는 이해하기 힘든 고차원의 세계가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광란을 일으키는 또 다른 자아는 내가 측정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에 대해 궁금한 것은 그의 머릿속 뇌의 활동이다. 아니 초월적인 관념에 대해서. 그의 행동을 통제하는 의식에 관해서. 그 의식 너머의 추상적인 또 다른 자아에 관해서다. 놈의 눈을 번쩍이게 만들고, 집착하게 만들고, 그의 입을 통해 나오다 마는 그 알 수 없는 의미들은 분명 뇌 속의 웅크린 그 무엇의 표현 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이상한 놈이라고 말하면서 놈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있었다. “돈 받은 모양이다.”
그는 소주를 마시며 넌지시 던진 말이다. 탁자위에 홍어를 보고 하는 말이다. 월급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홍어가 생각났던 것이다. 이집에서는 홍어면 가장 비싼 안주다. 탁자위에는 홍어 찜이 자신을 삭힌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주머니가 두둑하면 그 홍어 찜을 먹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떡이며 염치를 달래기 위해 던진 그 말을 받아 들였다.
“어제는 잠이 안 오더라!”
놈은 몸을 조금 뒤로 제치며 잔에 소주를 부었다.
“구름이 날리고 나무 타는 냄새가 어찌나 코를 진동하던지. 바람이 너무 세계 분거야. 너 이해하겠냐? 모르겠지? 아니 알겠지, 모르는 게 없으니. 내 머릿속에서 말이야, 바람이 부는 거야. 어디선가 불이 났는지, 타는 냄새를 풍기는 거지. 씽씽! 미치도록.”
“어제도 술 마셨구나?”
“마셨지. 안 마실 수가 있나? 잠을 잘 수가 없는데. 바람 소리 때문에. 유리가 깨지고, 먹구름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괴상한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부짖는데. 혼자 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마와 같이 잘 수도 없고. 밤새 왔다갔다가 하다 새벽에 쓰러져 잠을 잤지.”
“알코올중독이야. 내가 보기에는 전에도 늘 말을 했지만 병원에 가야돼. 너 술 끊는 것 네 의지로 안 돼지? 그렇지?”
“병? 내가? 그렇겠지……. 근대 술을 왜 끊나? 미친.”
재차 그는 맑은 술을 잔을 채웠다. 녀석의 머리는 그 바람으로 가득 찬 모양이다. 늘 그의 말을 들어보면 구름과 바람소리, 붉은 하늘, 병 깨지는 소리, 문 여는 소리,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 험상궂은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밤이 깊어 가면 옛 일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모습이 걷잡을 수없이 떠올라 가슴에 사무치는 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날은 예외 없이 전화가 온다. 새벽 두시고 세시고 전화가 온다. 언젠가 선배 하나를 만났는데 그 선배가 이 친구에게 전해 달라고 하는 말이 새벽에 제발 전화 좀 하지 말라고 했다. 녀석에게 전하니 그런 적이 없다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전화를 한 것을 그도 나도 아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놈의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데 있었다.
그는 술만 아니면 꽤나 쓸모 있는 친구였다. 사진에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사진사인줄 알았다. 그림도 자랑삼아 그렸는데, 내가 보기에는 완전히 개발이었다. 그림은 내가 그보다 나았다. 어디서 만화 주인공쯤 그려 되는데 자랑할 때면 못 봐 줄 정도였다. 언젠가 내가 신문을 보고 인물을 스케치 해보였다. 그 후에 놈은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유치한 그림솜씨를 뽐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평균 이하였는데 사진만은 예외였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를 보면 하늘은 하나씩 재능을 준다는 말을 인정하게 된다.

언젠가 그를 안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장터 ‘예산집’에 있었는데 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놈이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가방을 열어 고급 카메라를 꺼냈다. 니콘이었다. 앞에 렌즈 덩어리가 붙어 있는 전문가들이나 쓰는 필름카메라였다. 손때 묻어 중고를 샀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가지고 다니던 것이리라. 놈이 사진을 잘찍는 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눈을 치켜뜨고 나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세수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얼굴에 성긴 머리가 앞이마로 흘러 내렸다. 누렇게 배열이 들쑥거리는 이빨과, 김칫국물이 묻어있는 양 입술, 손등에는 먹물이 묻어 있었다. 그 손으로 어디서 구했는지 카메라에 딱 맞는 가방을 열고 렌즈를 조립하더니 카메라를 네게 겨누었다. 그리고는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더니 셔터를 누르며 작은 소리로 한마디 했다.
“김치!”
나는 뜨악하게 렌즈를 바라보았다. 찰칵 소리를 들으며 빛을 받아 찍히는 사진 한 장이 내 머릿속에도 찍혔다. 거장 최민식이 찍은 부산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젊은 노동자가 사진의 3분의 2 지점에 앉아 있고 뒤로는 열린 솥에서 김이 풀풀 나는 모습을 배경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들고 있는 흑백 사진을 말이다. 그런 멋들어진 사진을 보면, 냄새가 난다. 구수한 냄새가 그들의 옷에서, 거리에서, 얼굴에서 사람의 몸 냄새가 난다. 소리도 들린다. 사진 안에 소리까지 담긴 것처럼, 아낙들의 소리, 아이들, 시장의 시끌벅적한, 술집의 솥뚜껑 여는 소리, 장사치의 발소리, 짐끄는 리어카 바퀴소리, 아이들이 밖에서 혹은 엄마 등 뒤에서 자는 소리 등, 놈의 사진에는 아마 내가 씹은 깍두기 소리가 잡혔을 것이다.  
놈이 내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는 살짝 웃으며 내게 카메라를 건넸다. 자기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나는 생전 만져 본 적도 없는 무거운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어정쩡하게 있는데 놈이 웃으면서 재촉한다. 놈이 시키는 대로 카메라를 놈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그의 말따라 파인더에 눈을 대고 놈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도록 조절을 했다. 파인더 안의 놈은 예외 그 놈이 아니었다. 전혀 딴 놈이 앉아서 중얼 거리고 있었다. 감히 현실 세계에서 봐오던 놈과 다른 인물로 말이다. 조금은 수줍은 눈치였다. 살짝 올려 뜬 눈은 광채가 있었다. 놈의 눈은 그의 형색과는 판이하게 달란다. 작은 파인더 안의 놈의 눈은 한 가지 일에 정통한 장인의 눈처럼 중심이 서 있었다. 뭔가의 일가를 이룬 고지식하고 자부심이 하늘에 닿는, 녀석의 뒤의 벽지마저 싸구려 술집의 담배에 찌든 모습이 아니었다. 벽지에 비친 그의 그림자는 카메라 안의 그를 더욱 기품 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놈은 카메라 안에서 뭔가에 흡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놈의 말대로 셔터를 누르자 찍히는 소리가 났다. 카메라에서 눈을 뗐다. 삼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놈이 내게 가르쳐 준 유일한 사진기 초점을 맞추는 법이었다. 그게 그렇게 즐거웠나 보다.
“너 사진 처음 찍는 구나?”
그는 사진기를 받아 가방에 넣으면서 한 말이었다. 나는 욕을 한마디 던지며 소주를 따라 주고 한 잔 받았다. 며칠 후, 그가 그 술집으로 사진 두 장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날 둘이 번갈아 가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가 찍은 내 사진은 제대로 찍혔었다. 내가 그를 찍은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아 엷은 안개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너 손을 떨었더구나. 초점도 맞지 않았고.”
부드럽고 다정한 말이었지만, 말투는 처가 놀이방에 다니는 아들에게 하는 식이었다. 나는 고개만 갸우뚱 할뿐 아무말도하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유심히 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버려야할 사진이었으니. 하지만 놈은 그걸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나는 내 사진을 받았다. 내가 지금껏 숱한 사진을 찍었지만 그렇게 잘 나온 사진은 저음이었다. 약간은 못 마땅한 표정으로 술잔을 막 들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배경에 비해 내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사진 속에서나마 분명 내가 다른 여느 사물에 주눅 들지 않고 막 술을 들어 잔이라도 부딪치고 싶을 만큼 살아 있었다. 볼 한쪽에 깍두기가 들어가 있는 것까지, 막 씹어재껴 “오둑!”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느 날, 놈이 카메라를 들고 온지 반년쯤 지나, 그 술집에 갔더니 주인아주머니 말이 그가 사진기를 부셨다는 말을 들었다. 아주머니가 녀석이 버린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내 보여주었다. 사진기는 렌즈만 남고 나머지는 완전히 부셔져 있었다. 이 비싼 것을 아낌없이 부셔 논 것이다. 아주머니는 혹시나 하고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만 내가 봐도 고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가방 안에는 그가 찍은 사진 서너 뭉치가 나왔다. 사진을 꺼내 보니 나를 찍은 사진과는 달라 보였다. 구체적인 사물의 모습에서 조금은 이탈한 모습이었다. 그저 내 눈에 참 잘 찍었다 할 정도의 사진은 아니었다. 거의 내 수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안개 낀 날 일부러 사진을 흔들어 가며 찍은 사진들 같았다.
얼마 후 이 삼주 지나 녀석은 니콘의 다른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너, 일한다더니 또 샀구나? 부수지나 말지.”
그는 말하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 댔다. 셔터의 눌리는 소리가 연속음처럼 났다.
“좋은 거냐?”
“다시는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돈만 버린 거지.”
“왜 부셨는데?”
“내가 원하는 모습이 찍히지 않으니까 밟아 버렸지. 그리고 영원히 안녕 했는데 며칠 못가데. 렌즈 값만 돈 백 들었다. 그리고 이거 디지털이다.”
“놈은 제법 긴 렌즈를 조심스럽게 분리하여 그보다 작은 렌즈로 갈아 끼웠다.”
“이번에는 사진 좀 제대로 찍는 거냐?”
“왜?”
“네가 버린 사진을 봤더니 초점이 안 맞는 것 같던데.”
그는 그 말에 피식 거렸다. 몇 마디 더 하면 웃음소리라도 날 것 같았다. 그 웃음소리는 분명 놈에게 공술을 대접하는 나에게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분이 언짢았다.
“넌 내적 심연이란 말 들어봤니?”
“네 후장깊이를 말하는 것 아니니?”
그는 나에게 다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내가 뭘 찍는 지 알아?”
“그야? 너 같은 나겠지? 낙오자들. 패배자. 부랑아. 외골수. 정신착란증 환자.”
작은 가계 안에 셔터 음이 세 번 울렸다.
“왜 카메라는 보이는 것만 찍힐까?”
그는 나를 쳐다보며 살짝 웃으며 반문했다.
“엑스레이가 아니니까? 아니면 네가 보이는 만큼만 찍으니까?”
“너에게 그 이상의 것은 없는 것 아니고? 그리고 막 이 사진의 제목이 생각났다.”
“뭔데?”
“신춘문예에서 떨어진 상심한 노동자!”
놈은 그 말을 던지고 파인더가 아닌 내 눈을 쳐다보았다. 놈의 그 말에 나는 기가 죽었다. 그건 내가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할 수없는 일이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신춘문예에서 낙방했었다. 그의 말대로 내 사진이 그 만큼 적합한 제목은 찾지 못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가 사진을 찍듯 나는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봐주는 이 없는 일을 말이다. 누가 봐 주던가! 나는 아마추어였고 프로가 되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는 나와 다르게 공모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다른 것에 대한 요구가 더 깊었던 것 같다. 다른 것에 대한 집착이란 무언가? 나는 그의 말에 다른 말을 하지 못했고, 그 또한 이미 전의를 상실한 적에게 더 강하게 할 뭔가를 느끼지 못했다.
“너나 나나 불쌍한 뒷골목의 예술가란 뜻이지.”
풀죽은 나를 조금은 위로하기 위해 내 옆에 자신을 붙여주었다.  
“그야말로 우울한 날이군. 술 한 잔 더 해야겠어.”
나는 막걸리 한 병을 더 가져다 뚜껑을 땄다. 그리고는 놈의 잔을 채우고 내 잔에도 채웠다. 며칠 후,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의 내용은 내게 자기의 사진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부득이하게 나는 그 말을 들어 주기로 했다. 그가 미리 맡겨 논 사진을 찾아 내가 다니는 조합 사무실에 올라갔다. 그의 사진을 차분하게 볼 수가 있었다. 인물 사진은 훌륭해 보였으나 다른 이해하지 못할 사진들이 꽤나 되었다. 도대체 사진의 구도들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빈 구석의 공중 화장실과 겨울나무 가지들, 흐린 하늘과 중심 없는 거리들. 인간의 발들과 반쯤 잘려 도망가는 고양이. 뭔가 한 구석씩 죄 비어 있거나 몰려 있었다. 외로움을 나타내려고 했나? 그런데 이렇게 잘려 나간 주체들은 뭔가? 인물 사진도 정상의 구도에서 조금씩 비껴나 있었다. 한쪽으로 몰려 보이거나 얼굴이나 몸통이 세로로 잘려 있었다. 한쪽 눈만을 찍으려 했나 싶었다. 그래 보이는 것이 뭔가가 추구하고 있음은 분명 했지만 인화 값이 아까웠다. 내 사진만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내 사진이래서가 아니라 정말 잘 나왔다. 살짝 비켜 앉아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 사진은 마치 막 무언가의 의미가 부여된 듯 했다. 무엇보다 사진 속 나와 보는 내가 살아서 대면함이 느껴졌다. 마치 창 안에 혹은 건너편 탁자에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막 내가 술을 들면 그가 따라 들것 같았고 그가 술을 권하면 내가 술을 들것 같았다. 사진 속 내 고민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런데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번 그따위 이야기를 하면 입을 찢어 주마하고 다짐을 했다.

한 해가 바뀌면서 우린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사진들을 찍으러 다니며 틈틈이 일을 했다. 나도 일을 하며 누가 읽어주지 않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갈수록 초췌해졌다. 가끔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가다가 그 술집을 가보면 녀석은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놈은 뭔가에 집착하는 듯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난 후, 그는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진도 찍지 않았다. 찍어도 인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끼니조차 연명하기 힘들어 보였다. 왜 일을 하지 않는가를 닦달해도 알아들을 수없는 엉뚱한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다시 한 1년이 지난 후, 웬일인지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둘째 아이를 낳고 더욱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봐주는 이는 처가 유일한 독자였지만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마 평생 그렇게 할까 싶었다. 그만큼 두려운 일이 있을까? 녀석은 나의 두려움을 비웃었다. 내 언짢아하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기를 좋아 했다.
그의 사진은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의 사진에 십자가 나오고 성자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물어 보니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가 교회에 다니다니. 술도 마시지 않았다. 신자라면 마땅히 그래야하지만 그가 그런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사진의 내용도 차츰 종교 색을 띄더니, 정상적인 구도를 찾아 갔다. 여러 교회나 예수의 다양한 모습들. 신자들의 모습과 행사 사진들이 주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조합원들과 집회를 다녀오는 길에 그 술집에 들렀는데, 아주머니께서 그날 오후에 있었던 그에 관한 일을 말씀해 주셨다. 놈이 와서 술을 마시다 자주 오는 사람과 교회에 관한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는 아편이다 아니다. 사기다. 하다가 주먹다짐까지 가게 되었단다. 막 싸움을 하기 직전 그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배를 잡고 웃었다. 놈이 독실한 신자가 된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날 싸우다 말고 통성 기도를 한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웃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놈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날 그의 사진을 보다가 놀랐다. 다시 사진이 예전의 그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이 또 빈 구석이나 공간을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망한 교회 공간이나 사진에서 잘린 반만 찍은 십자가내용만 바뀌었지 또 뭔가를 담으려고 노력한 것을 알았다. 녀석은 초췌해져 있었다.
“저 친구 귀신들린 것 같아!”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맞장구를 치지 않았을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와 만나는 날이 드물어졌다. 굳이 만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나도 내 일에 바쁘고 놈도 교회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술집에 오는 날도 드물어 진 것이다. 후에는 아주 바짝 말라 무슨 병에 든 놈 같았다. 한번은 영등포역에서 올라오다 놈을 만날 수가 있었다. 사무실로 가던 중에 공원에서 배회하는 놈을 본 것이다. 폐병 환자처럼 말라 있었으며, 어깨에는 사진기가 걸려 있었다. 그와 악수를 나누고 우리는 빈 의자에 앉았다. 그는 고개를 끄떡이며 알 수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또 그 이야기냐?”
나는 질린 그의 그 말에 그의 입을 막고 싶었다. 놈은 내 말에 짜증을 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래도 간만에 만났는데 예의상 조금은 앉아 있다가 떠날 구실을 찾으려고 했다.
“넌 이게 보이냐?”
“카메라잖아? 저건 노인들? 저건 의자? 뭘 묻는 거야?”
놈이 손으로 가리키는 대로 대답을 해 주었지만 놈은 낄낄거리고 웃었다. 놈의 그 말에 정말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놈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녀석의 말이 진지한 것이 마치 그의 눈이 내 머리를 뚫어봐 내 뇌가 그의 눈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광기가 있지. 너라고 예외가 아니야. 네 딱딱한 두개골 속에 광기가 보인단 말이야. 마치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내 머릿속을 감아 도는 미친 듯 바람이 보여.”
내 머릿속에 고흐가?
“뭐랄까? 네 머릿속뿐 아니라 내 머릿속도 보여. 인간의 의지. 회오리. 억눌린 파괴심성. 뭐라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내 머릿속에 통제할 수 없는 힘이 느껴져. 이미 세계대전 이전에 뇌 속을 뛰쳐나왔던 형상들이 꿈틀거려. 아마 내 신심이 부족해서 그렇겠지. 가끔 공원에서 선회하는 비둘기들을 봐. 이 도시에서 내가 바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외의 동물들이지. 고양이 혹은 개들, 그리고 새들. 그 놈들의 머릿속에도 우리와 같이 다른 웅크린 뭔가가 있어. 그 까만 수정체 같은 눈알을 보면 뭔가 두려움에 떠는 거야. 내가 보이듯 놈들도 보이는 거지. 이제는 기도를 해도 소용없어. 그런 형상이 머릿속에 가득하니. 미친 듯이 기도를 해도 사라지지 않아. 이러다 미쳐버리지나 않을지. 내 기도의 힘이 나를 억제하지 못하나 봐. 내가 미쳐가나 봐!”
“너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병원? 뭐 때문에? 엑스레이에 내안의 광기가 찍히나? 심리 상담을 하라고? 정상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났나, 알아보게? 그래서 착실한 생활인이 되라고? 정신병은 사이코야? 통제 불능의 살인자들? 엽기? 그럴 수도 있겠지. 감옥 안에 있는 죄수를 봐주는 의사들? 노동자를 치료해 주는 산재법? 병 주고 약주는 행위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병원의 역할을 뭐지? 긍정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 무조건 즐거워해야 하나? 자본에 신봉자가 되면 지극히 정상이고 반 자본가가 되면 파괴자가 되나? 아니 좋아. 그래 그러면 좋지. 하지만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아님 전에 네가 한 말처럼 집단적 관계를 통해 인간은 해방되는 거야? 그러면 내 눈이 정상인처럼 돌아올까? 웃기는 일이지. 신심이 부족해서 그럴 거야. 아마 내안에 눌린 악이 나를 충동질을 하는 거야. 악령이 들린 거지. 차라리 목사에게 내 신심을 척도 하는 것이 났지.“
“너 뭐 어렸을 때 충격 받은 일 있냐?”
그 말에 놈은 또 낄낄거리며 웃더니 일어났다.
“그만하자! 차라리 책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거냐 하고 묻지. 기분이라도 좋게. 염병!”
그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공원에서 나와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그의 왜소한 몸은 찬바람에 휘청거렸다. 엷은 바지와 셔츠만을 입고 있었다. 저 놈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위태로운 삶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되었다. 나는 놈을 완전히 이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지만. 나는 그가 말한 고흐의 해바라기를 생각하며 사무실로 와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나 내가 일반적인 상식이외의 특별한 것은 알 수가 없었다. 고흐하면 생각나는 것은 해바라기가 전부다. 소용돌이가 솟아오르고 강렬한 빛의 꿈틀거리는 해바라기. 고흐가 처음부터 찍어 바른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적인 그림에서 차츰 사물들이 단순화되고, 선이 후기로 갈수록 짧고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에 따라 색이 짙은 어둠으로 갔다가 서서히 어둠을 토대로 강렬한 빛이 터치되었다. 그 대비는 어둠을 털어버리고 끝내는 강렬한 색끼리 어우러져 더 강한 빛의 무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느가 자주 쓴 노랑색은 색중에서 가장 강렬하다고 했다. 선들도 꿈틀거리며 변하기 시작했다. 생명력이 강한 생명체처럼. 왜 선들이 꿈틀거리기 시작을 했을까? 바람 때문에. 바람을 사물이 생동하는 원천적 동력으로 봤나? 들녘의 아지랑이 때문에? 흔들리는 자기 의지와 현실의 각박함이 충돌을 했나? 아님 시간의 누적된 모습에서 사물의 꿈틀거리는 모습을 총체적으로 담아 났나? 고흐의 보이는 이면의 광기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그건 내가 알 수가 없다. 전문가가 아니니. 놈은 내 머릿속에서 무엇을 봤다는 것일까? 내안의 광기, 내 안의 광기는 또 뭔가?

그는 그해 겨울 폐결핵으로 입원을 했다. 내가 그를 찾아 갔을 때는 검게 탄 얼굴에 입술이 하얗게 벗겨져 있었다. 가습기에서 찬 습기가 뿜어져 나오고, 흰색 칠한 벽은 낡아 페인트가 들고 일어났다. 온도차로 물이 흐르는 창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햇볕을 쬐며 다른 환자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병원 잘못 온 것 아니야? 정신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나는 측은한 생각에도 농담을 던졌다. 그는 웃기만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는 지쳐보였다. 자판기 에서 차를 한잔씩 나누고 몇 마디 안부 이상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눈은 내 눈 깊은 곳을 응시하였다. 내 뇌 속에서 무엇을 찾겠다는 건가?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역시 이놈은 병원을 잘못 왔어 하고 생각했다. 눈길을 돌린 곳에 시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의 배게 밑에 눈에 익은 한 시인의 시집이 있었다. 십여 년 전에 요절한 젊은 천재 시인의 시집이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병원에서 본 시집을 빼들었다. 화장실에 앉아 시를 몇 편 읽다가 어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빠르게 몇 편을 읽으니 문득 소름이 끼쳤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멀리 들리는 아득한 잡음들. 전등마저 떨리는 소리. 하얀 타일이 깔린 화장실 구석에서 찬바람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떴다. 근처에 보이지 않는 어떤 인기척이 느껴졌다. 순각으로 눈이 아닌, 머릿속에 흰 타일 구석에 한 소년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소름이 끼쳤다. 조금 열린 창문 틈이나, 바닥 구석에 사람의 흔적이 느껴진 것이다. 다시 시집을 보니 시에는 유달리 황량한 나무가 자주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얽고 스치는 바람소리, 사물이 잘린 숱한 사진들이 눈앞에 스쳐지나 갔다. 시인은 단순히 나무만 봤을까? 극도의 외로움과 우울함. 안개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물들. 핏줄을 느낄 때 오는 고통스러움.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느낄 때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고통스런 인식은 차츰 생각을 구체화 시켰다. 화장실 한 구석에 한 소녀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은 무엇인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렴풋하게 화장실 창에서 나를 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단순히 그럴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확연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가 예민한 감각으로 느껴졌다. 화장실을 나가 공원 쪽으로 나가 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러 늘어진 빈 전선줄 위의 휑한 바람이 통증으로 내 피부에 다가왔다. 단순한 바람 이상의 기운이. 겨울나무들이 앙상하게 서 있는 공원에서 어둠의 구석과 유령의 흔적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인기척들. 혹시 그는 이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었나?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자지 못하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녀석은 분명 나보다는 예민한 감각을 가졌으리라. 사물의 작은 떨림을 느낄 수 있는 극도의 예민한 감수성을. 그에 비하면 나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둔한 사람이다. 아마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본 그의 사진 속 공간은 비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 위에도, 구석에도 사람과 사람사이 마저도. 나중에 집착한 교회 탑이나 십자가에 어떤 무엇을 봤을 것이다. 그에게 현실은 탄탄한 사물의 응고된 고체가 아니라 흐르는 무엇으로 봤을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현실은 그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인 것처럼. 나는 단지 보여 줌으로서 보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사진을 공유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되었다. 혹시 그게 아니면 자제 할 수 없는 어떤 의지를 무섭게 받아 들였을 수도 있다. 예민한 그의 감각은 느껴지는 어떤 형상이나 시각을 현실에서 괴리시키려고 두려움에 떨었다면 그 두려움은 더 그를 더욱 현실에서 고립시켰을 것이다. 그는 신의 힘으로 억제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 자신의 감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몰입되거나 함몰되어 가는 사람들. 현실의 토대는 그들의 정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의 문제는 단순히 표피에 불과한 것이다. 먹고 사는 것, 현실의 부당함. 사회사상과 진보, 실천적 과제들. 그런 모든 것이 그에게는 그야말로 표피적인 것들이다. 온통 혼란스런 정신에 저 사물 너머의 꿈틀되는 구체적 힘에 현실적 문제는 그림자와 같은 표피. 내가 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현란한 색에 집착하는, 땅에 붙어 있는 저 무거운 바위 같은 둔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며칠 후 병원에 가보니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어느 기도원에 가서 일을 봐주고 요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차츰 내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또 한 해가 넘어가기 이틀 전, 그에게 사무실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사진 두 장과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그는 몰골이 뼈에 가죽만 얹혀 앙상해져 있었다. 퀭한 눈은 작은 어떤 빛이 깃들어 보였다. 뭔가 심리적 변화가 있어 보였다.
편지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자신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악령에 대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어. - 악령이라, 그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없었다. 그는 악령에 대해 괴로워했던 모양이다. 언급을 하지 않을 정도로. - 현실을, 사물의 존재나 관계를 끊어 버리는 악령은 질투의 화신이네. 현실세계의 뿌리를 철저히 거부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어. 이제는 숨통을 조이고 있는 느낌이네. 신도 어쩔 수없는 모양이야. 나란 존재는 무엇이지? 악령의 껍데긴가? 숲속의 숱한 허상과 유령들은 여전히 내 그림자처럼 내 주변을 맴돌고 있네. 내 의식의 반사물 같은 놈은 잡히지도 않지만 도망가지도 않아. 어찌된 일인가? 내 고통스런 죽음을 천천히 지켜보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어.
얼마 전 여기서 한 사내를 만났어. 한 눈에 그의 눈을 보고 나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는 사연이 있었어. 집안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어떤 죄의식이 있었지. 결코 살아서는 벗어 날 수없는 예민한 감성의 친구였지.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는 삶의 의지가 극도로 약해져 있었어. 마치 곧 끊어질 실을 붙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생명의 촛불은 꺼지고 연기를 피우며 마지막 기름 냄새를 흘린 그런 모습이었지. 그는 그의 머릿속에 배양되어온 괴물에 진저리를 치며 지쳐 있었어.
나는 내가 무신론자이기에 이 저주스런 존재가 씨를 내리고 꿈틀되며 자기번식을 해나가는 줄 알았어. 그런데 여기 와서 기도를 하는데도 그 존재는 여전히 내 정신 안에서 비웃듯 감각의 줄을 자극하고 있는 거야! 왜지? 광기로 미쳐버려 목에 줄이라도 매달기를 갈구하는 걸까? 신까지 희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말 못한 어떤 과거의 죄의식 때문에, 아니면 어떤 충격에 의한 사연으로 뇌 세포가 뒤틀려 버린 것일까? 믿음의 부족인가? 특별히 의심이 많아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기도 외에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했어. 적어도 나는 그가 과거의 인연으로 인한 업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어. 결국 그는 극도의 자기 의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끝내는 정신병원에 가고 말았어. 그건 그나 나는 참을 수없는 수치며 또 다른 두려움이야. 어쩌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침울한 방에서 목을 매거나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가겠지.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떨어. 정신병원에 간다면 과연 고칠 수 있을까? 약으로? 경험하지 못한 의사의 상담으로? 격리 수용으로 의지를 길들이겠다는 말인가?
나는 그가 떠난 곳에서 긴 사색을 했어. 처음부터 다시. 현실을 부정해 가며 뭔가 잘못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전제로 말이지. 그래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네. 혹시 말이야. 이런 것이 아닐까하고. 현실적인 사물의 존재가 부정되고 뒤틀린 곳에 내 안의 의지가 악령으로 발병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어. 내 안에 내가 악령이 아닌, 나를 이룬 존재의 근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혹시 내안의 이 존재가 악령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작은 긍정이며 의문인 깨달음이 있는 날 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긴 잠에 빠졌네.
나는 곧 이 편지를 붙이면서 이곳을 떠나려 하네. 나는 악령이 아닌, 그러기에 신의 의지가 아닌 곳에 답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네. 모든 것이 불분명한 선택이지만.
현실적 사회는 무엇으로 생겼으며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악령을 잉태한 현실은 상대적으로 표피에 불과하다는 사고가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만든 책임이 내 의지에 있지 않았을까? 악령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스스로 배격해 내 스스로 내 의지를 두려운 존재를 인식해 나간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에게 소외되어 간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 안의 악령을 긍정하기로 했어. 그래야 악령이란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 같아. 봐야 알겠지만.
친구! 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보다 실천적인 세계로? 가방을 싸니 편해. 산새들이 울고 볕이 잘든 방이야. 목사님도 좋은 분이시고. 막상 떠나려고 하니 모든 것이 아쉬워. 사진을 또 찍을까하네. 해를 넘기듯 이제 내 안에 나와 새롭게 변하고 싶어. 내 안의 내가 편히 쉬길 바라네. 인생이란 여정을 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말이야.
자! 그럼 글을 줄이겠네. 내려가다가 새해 해돋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이별 이면에 보다 나은 안락이 있기를. 그럼 글을 이만 줄이겠네.
친구! 안녕히. 새해 복 많이 받게나.

그의 편지는 그렇게 끝났고 얼마 후, 놈은 다시 그 자리로 오게 되었다. ‘예산집’ 아주머니는 문을 닫고 고향으로 내려갔으며, 그 곳을 중심으로 모였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다른 술집을 찾아 흩어졌다. 정형은 지금도 시를 쓰지 못하고 있으며 ‘예산집’같은 곳을 찾지 못하고 술집들을 떠돌고 있다. 놈이 다시 나타난 후, 폐결핵과 능막염으로 고생을 하였다. 놈은 많이 변했다. 더 이상 수년째 사진을 찍지 않는다. 가끔 술에 잔뜩 취하면 전화를 해서 필름 박스를 어디에 놨는지 묻곤 하지만, 놈의 필름 상자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 수가 있나. 지금도 우리는 신길동 어디에도 ‘예산집’같은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예전처럼 모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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