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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특별한 책임자를 만나다
 최경주  | 2006·09·10 23:16 | HIT : 2,204 | VOTE : 233 |
날씨가 추워졌다. 슬슬 온도계가 들락거리더니 느닷없이 내려가는 바람에 어제는 긴팔을 입었다. 집에서 5시 10분이면 나가니 새벽 기온이 장난이 아니다. 집에 여전히 모기는 돌아다니지만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겨울이 올 것 같다.
지금은 일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마 겨울을 이곳에서 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다. 일산은 한강에서 부는 겨울바람 때문에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입술 깨나 부르터지게 생겼다. 털로 만든 복면을 써야 하나? 여름을 나니 살을 에는 겨울이라.

사실 계획대로였다면 부천에 있는 현장에서 겨울을 나야 했지만 그 현장에서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겼다. 7월 내내 놀다가 아는 형이 불러서 간 현장이 부천이었다. 전형적인 ‘대마팀’이라 일을 따라 갈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막상 일을 하고 보니 할만 했다. ‘대마’란 일을 구간이나 함석 장수대로 맡아서 하는 팀을 말한다. 재하청이란 말이다. 말이 재하청이지 거의 4단계로 떨어지는 하청구조였다. 공사금액의 30, 40퍼센트가 하청으로 날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현장은 국가에서 하는 관공사인데도 불법다단계가 극심했다. 직영이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일을 하기위해서는 무조건 ‘대마’를 해야 했다.

나를 부른 형은 노원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나와는 십여 년 전부터 알았고 한 오년 전 조합 상근을 서기 직전에 오산에서 함께 일했다. 이 양반 말에 팀장이 괜찮은 사람이라 함께 일을 다닌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팀장의 첫인상이 좋았다. 팀장과 늘 함께 붙어 다닌다는 단짝이 있었는데 그 양반도 좋았다. 팀장은 그 유명한 58 개띠였다. 한 이틀 후에 우리 외에 또 한사람이 왔는데 신림동에 사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했는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스타렉스 신형을 끌고 다녔다. ‘이 나이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찢어진 청바지라니, 무슨 일을 하다 온거요? 차도 고급이고’ 물어보니, 그는 닥트일은 부업이고 본업이 영화사에서 스텝 일을 한다고 했다. 원래는 닥트쟁이로 일을 다녔는데 매형인가가 영화사 일을 해서 따라 나섰다가 직업이 되었단다. 근래 고소영이 나오는 ‘아파트’란 영화를 마치고 ‘좀비’가 나오는 다른 영화를 준비하다가 틈이 생겨 현장에 나왔다고 했다. 예전 팀장인 팀장에게 연락을 했더니 이곳에 나오라고 했단다. ‘괴물’이 개봉관을 싹 쓸어 더 동원 할 수도 있었는데 그 정도밖에 안됐다고 했다.

일을 하는 첫날 누가 와서 내 이름을 묻는다. 혹시 자기를 아는 가 묻는데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는 거라. 이름을 말해 달랬더니 아는 이름이다. 그가 누군지 명확하게 생각났다. 그 옛날 ‘대산’에 있는 화학단지에서 함께 일했던 반장이었다. ‘너 지금까지 다른 일 했구나? 현장에서 있었으면 오야지를 했을 텐데. 네 친구들은 사람 끌고 다니면서 다 맡아서 하잖아’ 그에게 조합에서 일을 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는 층별로 맡아 하는 새끼오야지였고 그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가 않았다. 그래서 얼굴을 더 기억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랫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임금을 뜯어먹기로 유명했다. 그 사람은 자기 집에 놀러 왔으면서 기억을 못한다고 나무랬다. 그래 그랬었다. 일을 떼 준다고 해서 그 집에 가서 도면보고 물량 뽑기 전에 단가가 낮아 돌아 와 버린 적이 있다.
대산 그 황량한 벌판, 긴 방파제가 있던 곳에서 일을 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곳에서 일한 경험을 글을 써서 전태일 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을 받았다. 그렇게 옛날 동료를 만났지만 나흘 만에 그 현장을 종치고 말았다. 그 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실질적인 단가를 따지다가 서로 생각하는 차이가 커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꼭 단가뿐만 아니었지만 새끼오야지는 우리에게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못 받아들이면 그만두라고 했다. 우리는 다음 날 현장 사무실로 찾아서 일을 매듭짓고는 다음 현장을 알아보기로 했다. 팀은 그날 밤, 쉬는 틈에 낚시를 하러 임진강으로 떠났고 나는 도봉산에 있는 ‘다락원’으로 조합 수련회를 따라 갔다. 그 다음 주 일산 후배 팀으로 옮긴 것이다.
부천에서는 나이가 어린 축에 끼었으나 일산에서는 팀내 나이가 제일 많다. ‘형님’으로 불리 운다. 후배 틈에서 조끼 등판에 하얀 소금 줄이 생기도록 일을 하고 있다. 언제 부턴가 후배들에 의지에 일자리를 찾고 그 밑에서 일하는 일이 습관이 되어 간다. 그 옛날 ‘대산’에서는 팀장을 했는데.

부천 팀장은 일한 날짜에 비해 참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나흘밖에 일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사람이 바로 현장 선배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능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품성을 말하는 것이다. 나흘밖에 일을 함께 한 사람이 눈앞에서 선하고 꼭 다시 일을 하리라고 마음이 먹어지는 것은 나 스스로도 의외였다.
첫날 갔을 때, 나에 대해서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했다. 노조 일을 죽 해왔으며 어렸을 때부터 닥트 일을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팀장은 온화한 인상을 가지고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첫 눈에 얼굴에서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목소리에서도 그렇고 행동도 그랬다. 전형적인 ‘대마’팀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고 부리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일을 할 때는 함께 몸을 굴려 일을 했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톤을 올리는 법이 없었다. 일을 할 때도, 완불해달라고 현장 사무실에서 다툴 때도 대화를 하듯 했다. 차분한 성격, 작은 키였고 다부지게 생기지도 않았다. 현명하게 생긴 눈과 땀이 배겨서 그랬는지 붉은 얼굴색이 은근히 빛나 보였다.

일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짜증을 내는 동료들과 함께 할 때다. 사소한 일에 위험하다고 소리를 지르고, 누가 더디면 더디다고 다그치고, 조금 농땡이 칠라치면 깐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하루 노동이 더욱 힘들어 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서너 달씩 할 때는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내가 일할 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여유를 갖자고 한다. 아무리 급하고 힘들어도 웃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놀랍게도 이 팀장이 그랬다. 일을 지시할 때 급하게 혼잣말을 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첫날 일을 주는데 매직펜으로 정확하게 글로 써서 주었다. 목소리가 낮아 재차 물어볼 정도였다. 일을 하다 잘못되었을 때는 농담으로 지적을 했다. 현장에서 말은 그래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힘을 쓰는 일이기에, 혹은 너무 위험하기에, 일이 늦으면 당장 돈이 까지기 때문에, 짜증 섞인 말이 오고가기 마련이다. 어떤 연유인지 이 반장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옛날 제작방식으로 단련된 내가 조합 생활 이후에 현장 시스템인 되어버린 설치일이 내게는 맞지 않았다. 렌탈이 부자연스럽고 나 때문에 일이 많이 지연되었지만 팀장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일 배치를 내게 맞게 해 주었다. 말없는 그가 고마웠다.
그 팀과 나흘 만에 현장을 그만두었지만 그만두는 것을 결정한 팀장의 판단이 무리였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불가피하게 그들과 헤어져 있지만 꼭 한번은 다시 일을 해 보고 싶은 팀이다.

이형은 그 팀을 소개 할 때부터 괜찮기 때문에 꾸준히 함께 한다고 했다. 돈도 혼자 챙기지 않고 골고루 분배를 한다고 했다. 일에 대한 사실 관계와 단가 문제도 함께 공유했다. 일에 매이지 않는, 일을 넘어선 인간적인 품성, 그는 타고날 때부터 그런 품성을 지녔던 것일까? 나름대로 꾸준한 수양을 했나? 잘난 척도 무리한 욕심도 없는 현장의 기술자라니?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소리 없이 사람들을 끌고 나갔다. 일하는 능력을 봐서는 거의 설치만 따지면 일급에 속하는 팀이었다. 남들이 보면 누가 팀장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없으니.

헤어지고 다시보고 싶은 사내는 아마 내 삶에 그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나이 사십 중반에 이런 일이 다 있구나 싶었다. 내 좁은 안목에서 봤을 때 전설적인 지도자란 바로 저런 전형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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