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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2
 칼럼니스트  | 2009·10·16 15:40 | HIT : 1,574 | VOTE : 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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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씨는 전승우를 알고 있었다. 같은 숙소 건물을 쓰고 있었고 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들리는 말에 71년 월남의 캄람 만과 퀴논 지방에서 스트라이크를 일으킬 때 한몫했다고 하기도 했고 주동자로 구속되기도 했다고 했다. 누구는 한진 본사 방화 싸움 때도 있었다고 했다. 아마 그는 여러분 싸움을 해 본 경력이 있으리라. 하긴 현장이란 곳이 크고 작은 소요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 그곳에 있었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기도 주동자로 일을 벌이지 않았지만 여러 싸움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처럼 외국에서 대규모적으로 일을 벌인 적은 없었다. 전승우가 한마디 거들면서 달려온 것으로 이미 이 다툼이 덤프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강씨는 일어나서 그를 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와 같은 사람이 전적으로 필요했고 전씨도 자기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전승우가 점심을 일찍 먹고 그의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소란 소리를 들었다. 그의 동료 하나가 달려와 덤프가 사고를 쳤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중기사무실 유리창이 깨지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단단히 크게 생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급히 달려왔다. 전승우와 그의 친구들이 덤프가 하는 대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도 그들 뒤로 따라가며 박과장을 찾았고 사람들 속에서 이 기회에 현장의 여러 조건을 바꾸자고 목청을 높였다. 전승우는 전부터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별 탈 없이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사람들 불만이 높았지만, 현장분위기가 군대식 규율을 강요하고 다른 회사로 나뉘어 관리가 되고 있어 그런가 싶었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불만이 증폭되기 쉬웠고 한번 터져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덤프의 일을 보면서 그는 때가 왔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자신의 동료를 모아 자신들이 처한 불만을 정리했다. 역시 근로조건의 개선과 산재문제 그리고 임금인상이 걸렸다. 아마 지금 아니면 절대로 불만을 관철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스스로 한다 해도 여럿이 한꺼번에 할 때 해결하지 않으면 요원한 문제였다.
“폭동이야!” 자신도 모르게 뇌까렸다. 그는 이런 싸움을 알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불탄 숲에 바람이 부는 격이지만 오래가지 않다. 더구나 협상에서 밀리게 되면 때에 따라서는 작업 조건이 더 나빠지기도 해다. 회사에서 보란 듯이 징발차원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숨되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강씨가 속해 있는 덤프 노동자들 중심에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빨리 다른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일꾼들이라는 게 이럴 때 빠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보세요, 겁먹은 사람도 있습니다. 일꾼들은 휘발유 같습니다. 불같이 일어났다가 뭔가 불안하면 삽시간에 흩어지니까요.”
“글쎄요.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아직 사람들이 흥분해 모여들고 있지만, 전승우는 다른 일면을 보고 있었다. 틈틈이 히죽거리며 서성거리거나 뒤로 빠지고 있고 더러는 구경하듯 팔짱을 끼거나 옆구리에 손을 대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그들을 통해 전체를 보고 있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그의 말이 맞았다. 곧 그럴 수도 있었다.
전승우 말로는 다른 직종도 비슷한 문제가 있으니 전체 현장에서 회사를 상대로 일괄적으로 협상을 보는 게 이롭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전체가 들고일어나 정리를 해야 일이 쉬워진다고 설명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가 있지만, 문제는 자발적으로 선뜩 나서지지가 않았다. 결국, 책임문제였지만, 전승우는 책임을 지겠다고 스스로 나선 유일한 사람이었다. 전승우의 눈은 째지고 끝이 양옆으로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그의 눈은 강씨의 속마음을 읽고 있었다. 강한 척하지만 결국 그들의 보복에 두려움과 책임감에 갈등을 겪고 있었다.
“차까지 불을 질렀으니 이젠 그 전으로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회사 간부들을 찾아가 미안하다고 할 겁니까? 그런 소리 할 놈은 이 안에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하지만, 일 벌여놓고 부당하게 당하고 있다가 여러 사람들 희망을 꺾게 될 것입니다. 부당해서 부당하다고 말을 하고 그들을 대변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사람을 태워 죽였습니까? 때려죽였습니까? 단지 맞으면서 일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뿐입니다.”
강씨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의 말대로 다른 직종의 대표를 모아 이 사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전승우는 그의 말에 동의하자 마치 곧바로 지휘권 일부를 얻은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 조를 짜고 행동지침을 내렸다. 그의 말에는 앞뒤 없이 따르는 사람들이 이상했다. 강씨는 그의 행동을 보자 전체가 어떻게 움직이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뭔가 잘하면 생각 외로 얻는 것이 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후 서너 시쯤 되어 정씨는 동호를 찾아보았다. 동호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깨가 결렸다. 돌팔매질에 각목 질을 몇 번 하고 배짱이 맞는 사람끼리 몰려다니다 보니 배도 고팠다. 잠시 틈이 있을 때, 식당 주변에 돌아와 동호를 생각해 냈다. 숙소에 가봤으나 그곳에도 없었다. 누군가 식당 쪽에서 동호를 불렀다. 조금 전에 몰려다닐 때 인사를 나누었던 친구였다. 식당 쪽으로 가니 식당 안에는 젊은 사람 중심으로 빼곡히 모여 있었다. 그 안에는 탁자 위에 올라가 연설을 하는 사내 하나가 있었다.
“해서 말입니다. 저는 두려움보다는 즐겁습니다. 이런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여기에 와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그 콧대 높고 마치 무슨 하느님처럼 으스대든 놈들이 돌멩이 안 맞겠다고 도망치는 모습을 상상이나 해겠습니까? 이럴 때 제대로 버릇을 고쳐놓지 않으면 언제 또 기회가 있겠습니까? 또 개돼지처럼 굽실거리면서 어린 것들에게 벌벌 기어야겠습니까? 봤잖아요, 모여서 소리 한 번 지르니까 줄행랑을 치는 것. 사실 쟤네 숫자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래서 큰 회사에서는 노조다 뭐다 만들어서 항의하고 임금 올려 받고 단체협상 하는 겁니다. 아마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잘 알 겁니다. 뭐 내일 떠날 사람도 있고 이번 주 다음 달 귀국 할 사람도 있는 판에 노조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기왕에 일 이렇게 벌어진 것 하늘이 도운 셈치고 싸움 한번 대차게 해서 손짓 발짓 잘못하면 어떻게 되나 보여 줍시다. 내가 앞장서겠습니다. 비록 쉬운 일이 아니나 나는 현장이 바뀔 걸 생각만 하면 즐겁습니다.”
그의 말에 이 십대 젊은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저 사람 누굽니까?” 정씨는 앞에 있는 사내 어깨를 끌어 물어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에 흠뻑 젖어 있었다.
“굴착기 운전수 전승우라고 합디다. 아주 인물입니다. 뭔가 보여주잖아요.” 사내는 전승우에 대해 아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을 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만으로는 안됩니다. 다 모여야 합니다. 다른 현장은 뭐 별다릅니까? 하나라도 모아야 일이 일처럼 되고 저들도 우리가 무엇에 화가 났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듣습니다. 어설프게 하면 되레 더 어렵게 됩니다. 그러려면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다 군대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대규모 조직이 움직이려면 조직을 짜야 합니다. 그리고 전달이 체계가 짜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질문에 전체가 군대 구령처럼 힘차게 대답을 했다.
강씨는 숙소를 나오면서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내 둘렀다. 전승우는 마치 이번 싸움을 위해 여기에 온 사람처럼 보였다. 어쨌든 그가 없었으면 좀 더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김대위를 찾았다. 김대위도 식당 밖에서 창을 통해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떠하면 되겠소?” 강씨는 김대위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대표격인 사람들을 모아 났더니 분위기 때문에 그런지 그간 너무 화가 나서 그런지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일을 크게 한번 벌려 우리의 처지를 알리자가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랍디까?” 김대위는 긴장한 얼굴을 한 강씨에게 물었다.
“글쎄요. 각기 깊게 생각해서 신중하고 책임 있게 하는 말들이 아니라서. 더러는 젊은 혈기에 군대식으로 해결하자는 사람도 있고. 근데 그 말을 듣자니 자칫 일이 커질 것 같아서 말이오. 그렇다고 말리자니 힘 빼는 것 같고 생각을 좀 해 봐야 하는데.” 강씨는 전승우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식당 안에는 이름을 부르고 조를 짜는 중이었다. 김대위는 강씨를 끌고 식당에서 떨어져 나와 사무실을 지나 광장 쪽으로 걸었다. 광장 쪽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강씨는 비록 나이는 자신보다 어리지만 김대위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는 모든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진실 된 인간의 냄새가 느껴졌다. 그가 어렸을 때 저런 인간의 형태를 볼 수가 있었다. 동네 선배 하나가 청년들을 이끌고 데모를 하러 다녔었다. 그는 그가 마치 보통의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헌신적이고 정치적이었으며 하는 말마다 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많이 알고 있는 게 신기했다. 마치 인생의 모든 비밀을 넘어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 대한 법칙을 꿰뚫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드물게 그런 인간들을 신문에서나 혹은 이야기들 속에서 볼 수가 있었다. 거친 현장생활 속에서 그런 인물은 더욱 값지고 크게 느껴졌다. 충동적이고 무슨 일에 대해 시비적이지 않고 한번 생각하고 말을 뱉는 김대위 같은 사람은 그야말로 이번 싸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비추어 졌다. 그는 나서지 않지만, 이미 나서고 있고 앞서 행동하지 않지만 이미 전체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되어 졌다. 현장을 돕기 위해 나타난 귀인이 있다면 바로 김대위 자체였다.
김대위는 몇몇 알 만한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었다. 강씨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찾아가 논의를 하였다. 적어도 함께 일을 하기는 하지만 꽤 배운 사람으로서 보통의 지위보다는 위에 있었다. 최근 옆 현장에서 관리자를 납치하는 싸움이 있었다. 체불과 근로조건을 가지고 싸움이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때 김대위가 그 현장으로 찾아가 도움을 주었다. 그 현장 노동자들이 지원 하나를 납치하기는 했는데 다른 돌파구가 없자 농성자 중 한 사람이 김대위를 찾아왔다. 그는 국내에 있을 때부터 김대위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김대위에게 회사와의 중재를 부탁했다. 회사도 그 사건을 외부로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워낙 노동자들이 거칠게 대항을 해 대화 어려움이 있었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데모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알려졌다가는 책임자 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사 수주를 할 수 없을 지경에 놓일 수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현장 문제로 대사관까지 알려지면 본국 관공사 수주를 하는데 불이익이 있었다. 회사나 노동자들은 조속히 해결을 짓고 싶어 했다. 김대위는 옆 회사 현장으로 들어가 같이 죽자며 관리자를 납치한 노동자들을 진정시키고 회사 책임자를 설득해 서로 득이 되는 견해에서 마무리 지었다. 한편에서는 회사와 대화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 ‘사꾸라 같은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전승우기사가 잘하고 있어요. 사람이 많으면 저렇게 자신 있게 앞서는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이번 일에 중요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단지 좀 우려가 되는 게 일을 너무 쉽게 보고 대안 없이 밀어붙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지금, 사우디 방위군이 무장하고 이곳에 올지 모르겠다는 소식이 있는데, 이러다 다 죽는 것 아닙니까?”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식료품 들여오는 친구가 와서 알려 줘서 알았죠.”
“그 친구 한번 보고 싶군요. 근데 사우디로서 어쩔 수 없어요.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폭동인데 손을 놓고 있지는 않겠지요. 이미 식당에서 뛰쳐나올 때부터 되돌릴 수 없는 문제가 돼버렸으니까요. 여기서 살길은 어떡하든 전체를 모으는 수밖에 없어요. 석산에도 차를 보내서 사람을 오라고 하고 숙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다 끄집어내야 살길이 있습니다.”
“지금 석산에서도 작업을 중단하고 전부 이쪽으로 오는 중입니다. 그나저나 걱정되는 게 조기귀국 당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반 죽는 것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까지야 하겠습니까? 다른 문제도 아니고 회사에서 명백한 잘못이 있는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일이 없지는 않겠지요. 저기 직원 차들이 벌겋게 불타고 있는데 아무 일 없겠어요. 기왕에 벌어진 일 현장이나 바꾸고 뭉쳐 있어야 그나마 살길이 열릴 겁니다.” 김대위는 태연스럽게 말을 했다.
“이후 사태는 나는 책임 못 집니다. 김대위가 알아서 하십시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대표로 뽑힌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거기서 이야기를 해봐야지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그는 밝게 웃으며 강씨의 손을 잡았다.
그때 노동자 몇이 달려와 회사 중역 한 명이 지프에 마이크를 달고 정문으로 들어온다고 알려 주었다. 김대위와 강씨는 그쪽으로 달려가니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는 낯이 익는 사내였다. 언젠가 회장과 어울려 다니며 현장을 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회사 대표의 위임을 받은 전무라고 말을 하면서 진정을 하고 대화를 하자고 노동자들을 진정시켜 대화하려고 했다.
“어떻게 할까요? 죽여 버린다고 사람들이 벼르고 있던데.”
몇 사람이 강씨 주변으로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그냥 놔둡시다. 저 사람이 우리를 사람으로 봤습니까. 이제 일이 터지니까 부랴부랴 달려와 저러는 것 아닙니까? 진작 사람이 사람으로 알고 대접을 했으면 이런 일이 터졌겠습니까? 대화는 무슨 얼어 죽을 대화한답니까? 뭔 내용을 들고 온 것도 아니고, 회장이 직접 온 것도 아니고. 괜히 어쭙잖은 사람들 상대하다가 꼴만 우스워집니다. 저들이 어디 우리를 동등하게 여겨서 약속한다고 지키기나 하겠습니까?”
강씨가 목소리를 깔고 시원하게 한마디 했다. 전승우도 젊은 사람들과 식당에서 쏟아져 나와 그쪽으로 달려갔다. 전승우는 강씨와 김대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고개 인사를 하고 다가왔다. 그의 날카로운 눈은 김대위를 보이지 않게 빠르게 훑었다. 강씨가 둘을 인사시켰다.
“반갑습니다. 점심때 식당에서 연설해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는 김대위에게 손을 내밀어 둘이 악수를 했다. 웃으면서 손을 잡지만 김대위는 조금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속으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회사 간부가 급하기는 급했나 봐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강씨가 전승우에게 물었다.
“말하면 뭐합니까? 일하는 놈 무서운 것을 보여줘야지요. 사람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나 불알이 쑥 들어가도록 책임을 물어야지요. 싸움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까?” 전승우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마이크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마이크를 단 승합차가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이 몰려가 차를 못 움직이게 했다. 회사 간부는 애국심을 강조하며 이러면 어찌 되는가, 연설을 했지만 이미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에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내는 흥분해 더욱 크게 말을 하고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차는 더는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가 없었다. 누군가 운전기사의 멱살을 잡고 끌어냈다. 비명이 마이크를 통해 들렸다. 웃음소리가 나자 사람들은 더욱 기세를 올려 혼내주라고 죽이라고 고함을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차를 걷어찼다. 흥분한 노동자들이 차를 잡고 흔들자 차가 들썩거렸다. 결국, 간부라는 사내는 끌려 나와 촘촘하게 모인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비명이 나고 마이크가 망가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잠잠해지고 분노로 가득한 사람들의 고함만 들렸다.
“그만 합시다. 괜히 죽어 자빠지면 시체 만들어 감당 못 할 생깁니다.” 김대위가 근심스러운 듯 강씨에게 다가가 말을 하니 몇 사내가 뛰어가 사람들을 해치고 전무를 끄집어내자 벌써 사지가 축 늘어져 있었다.
“좀 심한 거 아니야? 명색이 전문데.”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하니, 전승우가 버럭 화를 냈다.
“이 항만 공사에 몇이나 죽어 자빠진 줄 알아? 누구 목숨은 귀하고 누구 목숨은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거야?”
“아, 형님도 제 말이 그 말이라니까요. 명색이 중역인데 개만도 못한 노동자들에게 매를 맞았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나? 이런 말이죠.”
“말을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지.”
전기수는 차위에 올라가 흥분한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이게 간부라는 사람들입니다. 간부랍시고 차를 타고 들어와 마이크로 떠들어 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로 생각했던 겁니다. 우리가 지금 무슨 그럴듯한 연설 듣자고 이렇게 일하다 말고 이 짓을 하는 겁니까? 정말 해결을 하고 싶으면 뭔가를 들고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불만이 뭔가? 이번 사고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하겠다던가? 이후에 어떻게 우리를 대하겠다던가? 여기가 대충 흥정하고 흩어지는 도깨비 시장입니까? 대충 떠들면 잠잠해지고 다시 들고 일어나고 하게. 나는 여기 간부에게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말장난 그만하고 정확하게 내용을 가지고 와서 책임 있는 대표끼리 이야기를 하자고 말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옳소! 옳소!”
해가 이미 중천을 넘어서 꺾어져 서쪽 황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전승우는 환호하는 노동자들 속으로 내려오면서 김대위를 쳐다보았다. 그의 걱정하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꾸라’ 그는 꼭 김대위를 향한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 회사와 치열한 싸움을 할 때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배운 사람들이 멋지게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정말 사리가 분명하고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여줄 줄 아는 친구들이었다. 특히 협상할 때는 관리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말문이 막히게 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럴듯한 협상문을 썼지만 문제는 싸움이 끝나고 작업장에 돌아왔을 땐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유린을 당한 것이다. 협상자들은 온 힘을 다했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밀림에서 우기 철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데 우산도 없이 줄 창 비만 맞는 기분이 들었다. 뭐가 부족했을까? 왜 저들은 늘 거짓과 위선으로 사람들을 농락하는 것일까? 그는 세가지를 믿지 않기로 했다. 사장들과 경찰들 그리고 협상가들이다. 특히 협상을 잘하는 말 잘하는 재주꾼들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혜안을 가졌지만, 현실적인 희망보다는 절망을 간신히 면한 뜨뜻미지근한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보여주었다. 그들이 왜 장사꾼들 편에 서지 않고 노동자편에 서 있는지 그게 이해하지 못하고 궁금할 뿐이었다. 왜 그럴까? 허긴 사람 사는 사회에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는가? 동료가 동료를 밟고 끼니꺼리를 챙기는 놈들이 하나 둘인가? 그들은 단순히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정치적인 영향까지 계산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김대위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싸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런 유의 인간들을 싸움 경력도 풍부하고 빠져나갈 구멍도 잘 알고 있으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중요한 일을 할 줄 아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마 그 역할 때문에 주변에 존재하는 줄 모른다.
강씨는 전승우의 선동과 빠른 판단 행동에 크게 감동을 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잃어 버렸다.
“전승우는 말이야, 힘을 준다니까. 그래 저 친구도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렇게 혈혈단신 마이크 잡고 뛰어들었겠습니까. 여기가 무슨 자기들 조선소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그래도 좀 심하지 않았을까? 실려 갈 만큼 밟아 놨으니, 더 큰 화가 생기지 않을까?”
“강기사님도 참, 겁나면 때려치우던 지요. 저는 저 것도 부족합니다.”
“알아, 알아, 그냥 해본 소리지 자, 이후 대책을 논의해 봅시다.”
강씨는 들뜬 어조로 대표격인 사람을 불러 모았다. 다른 대표들은 전승우 보다는 부드럽고 이해심 많은 강씨를 더 신뢰를 했다. 그가 모이자고 하면 잘들 모였다. 그런 면에서 전승우는 여전히 조금 모가 난 경계의 대상이었다. 한번은 누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정맞는다고 했는데.’ 하고 우려를 하기도 했다. 전승우가 무슨 말을 하면 일단 반대할 준비부터 하는 사람도 이었다. 강씨는 대표들과 함께 지정해 놓은 숙소로 들어갔다. 김대위도 직종 대표는 아니지만, 참고인 자격으로 함께 했다. 그들은 집중적으로 현 상황에 대해 논의를 하고 요구 사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러 요구안을 모으니 20여 가지가 넘었다.
김대위의 고민은 요구 사항이 아니라 이후 변화에 대한 고민이었다. 회사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가? 건설회사 신임 사장은 젊은 사람으로 77년 1월 초하루에 삼십 대 사장에 오른 사람으로 성향을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현장에서 멀리 그를 본 적이 있다. 회장일행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말쑥한 검은 정장에 비쩍 마른 몸이었다. 그는 초인처럼 일한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다. 김대위가 보는 초인은 현장의 노동자들 외에는 없었다. 노동자들은 노동보다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말없이 일을 해댄다. 인내심과 포용력 성실성 그들은 많은 것을 인내하며 초식동물처럼 자신이 아닌 숲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경영자들을 육식동물에 가까웠다. 그들은 뭔가에 군림하려하고 피가 흐르는 것을 뜯어 먹기를 즐겨하는 것 같았다. 젊은 사장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장이 된 것은 어떤 배경이 있을 거라고 짐작을 했었다. 누구는 대통령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하고 누구는 운이 좋다고 했다. 지독하고 잔인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남다른 재주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누구나 그에게 어떤 자리를 줬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었다. 그때 그는 얼핏 돌아서며 웃었다. 왜 웃었을까?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노동자들과 피가 다른 전혀 인종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 웃음은 조소하는 듯한 마치 키득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어떤 개념을 부여 한다면 그는 판을 좌지우지 하는 특출 난 딜러 중에 딜러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누구건 간에 이번일은 외국에서 일어난 일로 회사보다는 정부 쪽에서 관여할 사항이 높았다. 사우디 정부에서도 놀랄 일이면 더욱 명확해진다. 책임은 회사가 지겠으나 해결의 지점은 정부라면 그것이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국내에서 긴급조치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발생한 저항이라 적잖이 놀라서 반응도 만만치 않을 거란 것이 쉽게 짐작되었다. 정부관리들은 아마 충격을 받아도 단단히 받았을 것이다. 사람을 마치 전시 물품처럼 공소해 달러를 벌어들이다가 생각지 못한 사건에 당황할 것이다. 그만큼 이곳 책임자들이 혹독한 대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다른 이들도 자신들이 감수해야 할 대가에 신경이 쓰이는지 책임자 처벌에 대한 문제를 첫 조항에 넣었다. 그리고 만약에 들어주지 않을 시 저항 수위를 높이는 계획에 대해 논의도 했다.
김대위는 깊은 논의를 진행되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나와 담배를 피웠다. 밖에서는 차를 타고 돌면서 규찰을 서고 무리지어 모여 불을 피워 긴 어두워지기 시작한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관료들도 밤을 설치면서 대책 논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현장은 고립되어 있었다. 이미 사우디 민병대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서쪽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어디까지 예상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상황이 그리 좋게 인식되지는 않았다.  
“이번 기회에 현장이 바뀔까요?” 강씨가 나와 소변을 보면서 김대위에게 묻듯 말을 걸었다.
“당연하죠. 바로 다음날부터 모든 게 바뀔 겁니다. 비로소 노동법이라는 게 적용이 되겠죠. 산재도 되고 임금도 오르고 폭력도 없어지겠죠. 이런 싸움은 일어나기도 어렵지만 일단 일어나면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희생도 따르겠지요?” 강씨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따라다니는 두려움이 거기에 있었다. 희생자와 책임자.
“별일없다니까 자꾸 걱정하시네. 그리고 설마 살인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죽기야 하겠습니까? 아무리 군발이 독재자지만, 워낙에 현장이 부당하니 상황에 대해 이해는 하겠지요. 이제 어쩌겠습니까? 다 받아 들여야지요. 전승우처럼 희망을 봅시다. 기꺼이 즐겁게 말입니다. 그는 좋아 하잖아요. 이 기회로 현장이 조금 나아지는 절호의 기회로 보잖습니까? 그런 낙관이 필요하다니까요. 그는 싸움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후 상황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게요. 놈들 불알이 바짝 오그라들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것만으로 속이 다 후련합니다. 지하실에 끌려가 다리가 부러지도록 맞아도 말이죠.” 강씨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김대위도 웃었지만, 가슴속은 날씨보다 싸늘하게 식었다. 지하실에 끌려가 물고문에 전기고문 온갖 상상을 넘어서는 폭력을 당할 게 뻔하다. 몇 명이 희생을 치를 것인가? 자신도 거의 해당할 수가 있다. 지하실에 끌려가 입에서 피와 쓴 침이 길게 흘러내리고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쇠 냄새 같은 인간의 진이 빠진 냄새를 맡으며 피와 물기 흐르는 바닥을 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당장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서 사람들이 그 고통을 감수하고 앞장서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참는 데 한계가 오면 들고 일어난다. 철학과 사상 이전에 인간으로서 당하는 모멸감을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다. 저항은 사람이 비로소 삶이 무엇인지 아는 기쁨을 준다. 이곳 노동자들도 공포와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떤 해방감을 맛보고 있다. 이들은 죽어도 이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삶에서 저항에 대한 대가로 오는 공포와 비굴한 안락이 얼마나 얄팍하고 허접한 것인지 깨달아 가게 될 것이다.
강씨는 이렇게 나서는 자신의 처지에서 마음속 한쪽에서는 대학에 다니는 딸 학비와 대출을 받아서 산 집이 걱정되었다. 김대위는 자신을 달래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될 것인지 바보가 아니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자신이 조기귀국을 당하게 된다면 가족들은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하리라. 더구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경을 칠 게 뻔한데, 그 생각만 하면 두려워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처지에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추겨 세우기 바빴다. 강씨는 입술이 타들어 가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자기 앞에서 사고로 죽는 사람도 봐온 터나 이 기회에 반드시 이곳 중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현장을 바꾸어 내지 못하면 그런 일은 끝없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싸워 왔지만, 이제는 자신이 차례가 되었을 뿐이라고 위안을 했다.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그는 김대위의 말을 뇌까리며 다시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답답한 게 심장이 오그라든 기분이었다. 득도 되고 싸움도 무리 없이 끝냈으면 했지만 둘 다 얻기는 어려웠다.
두 번째 회의에 들어가자 미묘한 견해 차이가 생기더니 이내 두 개의 확연한 입장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분명한 싸움을 해 완전히 바꾸자는 주장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내가 많은 싸움은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여러 싸움을 겪어 봤을 때, 협상을 위한, 이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한 생각을 하게 되면 십중팔구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모두 빵에 가더라는 겁니다. 거짓말 같아요. 내가 왜요? 나도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습니까? 알기 때문에 보다 확실하게 득이 되는 방법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뭔가 분명한 싸움의 내용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현장은 더 열악해지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더 곤혹한 처지에 놓일 겁니다. 뭔가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전기수는 협상만을 이야기하는데 질렸다는 투였다. 그는 일치된 힘 있는 한 차원 높은 투쟁을 끌어내고 싶었다.
“여기서 뭘 더하자는 겁니까? 사무실과 자동차 부수고 불까지 질렀고 주베일 서쪽은 완전 차단이 되었고 계엄까지 선포되었다는 소문이 돌더군요. 저기 정문 바리케이드 쪽에 외국 기자들이 보이잖아요. 여기서 뭘 더 나갑니까? 전쟁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강씨가 주변을 둘러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이미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조직하고 있어요. 돌격대 만들고 규찰도 만들고 다음에 뭘 해야 할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합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거의 대부분 군인 출신에다가 상당 부분 월남에도 다녀왔고, 심지어 4.19혁명을 겪은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참 다양하지요. 노조 투쟁 경험도 있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겁니다. 저기 김대위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 갈지 다 알지만, 회사 관리들은 모를 겁니다. 놀랐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양보를 받아 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돈 문제라면 마누라와도 바꿀 위인들이니까요. 강기사님 지금까지의 수많은 경험을 생각해 보십시오. 뭐가 바뀝니까? 여기서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저항 수위를 올립시다. 우리가 책임질 일은 지금 감당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높이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얻는 것은 서너 배의 차이가 있을 거라 봅니다. 김대위님 안 그렇습니까?”
김대위는 담배를 피워 물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승우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그가 우려되는 것은 일반 노동자들이었다. 지금 대표들도 일치된 의견을 얻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야 잘 해 나가겠지만, 워낙에 일반 사람들이 많고, 지금 한 3,000명 정도 되지요. 그 수가 며칠을 일사불란하게 유지해 나가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솔직히 잘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저기 노동들이 외치는 변화에 대한 갈망을 못 믿는단 말씀이신가요? 지금 모여서 고함을 지르고 노래하는 소리가 안 들리시나요?” 전승우는 어이없다는 듯 손을 펼치고 말을 하더니 이내 뒷말에서는 꼬리를 내리는 의지가 약한 인간을 문책하듯 화가 난 듯 말을 강하게 했다.
“다른 저항 수위에 대한 어떤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김대위는 조심스럽게 전승우에게 물었다.
“제 생각에는 우리끼리의 현장 안에서 뭔가를 해서는 지금 아무것도 밖에 알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예 부두 쪽에 정박해 있는 준설선을 타격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준설선은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김대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농담으로 던졌으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김대위 말에 전승우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다. 김대위를 바라보는 눈이 줄곧 비웃듯 했는데 적의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속마음을 내 비추지 않았다. 어쩌면 김대위 자신도 전승의 비웃는 눈빛 때문에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농담을 했는지 몰랐다. 그는 고개를 끄떡이고 속으로 ‘사꾸라 같은 놈’하고는 다른 말을 꺼냈다.
“한 척이 아니라 여섯 척인데요.” 전승우는 더 이상 장난하듯 말을 하지 않았다.
김대위도 여섯 대라는 말을 듣고 역시 그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테지!’ 조금 전에 던지 농담을 후회하고 있었다. 예의가 아니었다. 김대위 자신은 싸움의 뒤까지 계산하고 있는데 전승우는 아예 상정 조차하지 않고 서로 최선 혹은 최악으로 끌어 올려 도 아니면 모식으로 결정을 하려는 듯 보였다. 그는 싸움의 수위가 높을수록 유리하다고 믿는 신앙이 있었다. 김대위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음 수가 약점일 수도 강점일 수도 있지만, 자신으로서는 수위를 여기서 더 높였을 경우 자신들의 손을 떠난 너무 큰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강압적인 규율과 폭력 외에는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싸움이다.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 사실상 불리하지만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일을 하고 있다. 전쟁을 하기에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신도 다른 이들도 동의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김대위는 노동자들의 기회주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각박한 삶속에서 본능적으로 공격하는 방법보다는 빠져나가는 법을 잘 알고 몸을 수그리는데 익숙해 있다. 이들은 현실적 전망이 보이지 전혀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계산이야 대표들이 잘할 것 같지만 사람들은 이미 모든 계산을 끝내고 수위까지 나름대로 정해 철저히 자기 방식내에서 움직일 뿐이다. 기대위는 고개를 흔들었다.
강씨와 다른 사람들은 김대위의 호흡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에 준설선이든 뭐든 구체적인 뭐가 터질 때 회사는 그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잘못을 빠져나갈 것만은 확실했다. 어쨌든 이 책임을 책임자들에게 되돌리고 빨갱이를 만들어 사태는 미리 예고되었다고 떠들고 다닐 것이다. 전승우는 그걸 전혀 염려하지 않고 있었다. 전승우는 이 싸움을 단순 폭력으로 보지 않는 본질적으로 노동자의 지위를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점진적 변화란 그에게 수치스러운 일일 수 있으며 설사 인정하더라도 싸움은 눈치가 아닌 모든 것의 희생을 각오해야 싸움이라고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싸움의 근본적인 정점에는 그의 가치와 의사 그의 동료들이 요구하는 내용이 핵심일 수도 있었다.  상황에 맞지 않기는 하지만 본질은 그가 맞을 수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은 사고처리반 정도의 위치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후에 이 싸움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자신은 대중적 의사를 따른 핵심을 비켜간 지식인 행세를 한 노동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것 또한 운명이거니 했다. 돌이킬 수 없으면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설사 깎아지른 절벽이라도 말이다.
“어차피 한 척도 물어줄 돈도 없고 몸으로 때울 텐데 어설프게 하느니 분명하게 하는 게 났지 않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자동차 유리창이나 깨고 일 안 한다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건 밖에 전혀 알려지지 않아요. 아시잖아요. 벌써 이 항만 공사 때 사고로 다치고 죽은 사람이 얼마입니까? 누가 그들을 기억이나 합니까? 저 굴착기 하나 망가지나 사람 하나 죽어나가나! 뭐가 다릅니까? 난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더 그들에게 굴복시킬 겁니다. 싼 공사금액으로 맡아서 저임금으로 메우려는 구조에서 얼마나 고되게 맞아 가면서 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여기서 더 잃을 게 있습니까? 어차피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여기 꼼짝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 모래펄에 천막치고 시작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느냐고요. 이 회사는 떼돈을 벌겠죠. 하지만, 우리는 망가진 몸을 가지고 고국에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분노가 모처럼 불을 댕겼는데 차 몇 대 불태우고 말자고요. 그래서 또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으로 돌아가자고요. 나는 못합니다. 그거 하자고 여기 모여 이 중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까?”
“옳소!” 전승우의 처절한 말에 다른 이들이 동의했다. 김대위는 싸움이 어떤 맺힌 한이나 열정이 아니라 현실이 그게 아니라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강씨도 더 이상 반론을 하지 못했다. 약한 소리 한마디 더 했으며 현실주의자나 겁쟁이 타협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지 모른다. 김대위는 지금 강경한 태도가 더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자위를 했다.
전승우는 자신의 생각을 꺼내어 대표들을 움직여 행동하게 하였다. 김대위에게는 정중하게 요구안에 대한 검토가 맡겼다. 김대위는 별 말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기꺼이 일을 받았다. 안은 별로 손을 댈 게 없었다. 사람들이 몰려나가 조를 짜서 기동대를 만들어 보다 체계적인 싸움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쉽게 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차마 누가 보는 것처럼 두려워 떠는 사람도 있었다.

3월의 사우디 서쪽 항만에는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낮에 한국의 여름처럼 덥지만, 밤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정씨는 사람들의 부름을 듣고 나갔을 때 트럭에 시동이 걸려 있었다. 그는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뒤에 올라탔다. 앞자리에 전승우가 사람들이 타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전승의 얼굴을 보자 그가 손짓하며 아는 척을 했다. 아는 척을 하자 정씨는 가슴이 뿌듯해졌다.
“어디 가는 거래요?” 정씨가 옆에 있는 사내에게 묻자 그는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항구로 간다고 했다.
“준설선을 타격한다고 하는데.”
정씨는 그 말을 잘못 들었나 했다. ‘준설선이요?’ 다시 물으니 ‘아마 그럴 거요.’ 했다. 혹시 잘못 들었나 했다. 지금 자신들은 데모하는 거지, 그야말로 말 그대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다. 트럭에 사람들이 실리자 그는 장난이 아님을 알았다.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자못 심각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멀리 바다 쪽에서 찬바람이 불었다. 어디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잘못 탔다 싶어 움직이려는데 엔진이 움직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비로소 이 밤이 여느 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거나 불을 피우고 장비들이 멈추어 섰고 전날 밤처럼 바쁘게 현장이 돌아가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었다. 대신 곳곳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함성이 들렸다. 대체로 잠잠했으며 트럭이 준설선을 타격하러 간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 ‘전우야 잘 자거라’라는 군가를 불렀다. 그 노래를 왜 부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서서히 다 같이 불렀다. 남들이 모래를 불렀을 때 정씨는 준설선을 타격한다는 말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 정도 일이 저질러지게 되면 뭔가 큰일이 아닌가 싶어 불안해지는 가슴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웃음이 나왔다. 뭔가 잘못 엮이어도 크게 엮이었다 싶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추위가 느껴졌다. 마치 저승으로 달려가는 트럭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문득 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을 쳐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으나 차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었다. 잠시망설이며 다른 친구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다른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것 또한 군가였다. 앞에 베트콩이라도 있는 듯 노래를 부르는데 망치 넋을 뺀 광신도 집단 같았다. 다시 한 번 뛰어내려다가 문득 망설여졌다. 갑자기 배신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하는 생각에 망설였을 때, 차가 덜컹거렸다. 중심을 잡는데 차가 멈추었다. 앞을 살펴보니 방파제가 있는 바닷가까지 와 있었다. 어둠 속에서 파도소리가 들리며 멀리 바지선이 떠있는 불빛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정씨는 바닷가에 아무것도 없는 것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려 김빠진 듯 혹은 안도의 숨을 쉬며 장난 끼 어린 말들을 주고받았다. 여섯 척이나 있던 준설선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계 톱 뉴스로 타전되는 줄 알았는데 틀렸군!” 용접공 김씨는 훤칠한 키를 흔들며 아쉬운 듯 바닷바람을 맞으면 숨을 깊게 들여 마셨다.
“다 도망쳤어! 빌어먹을! 아무것도 없어. 어떻게 된 거야!” 전승우는 차에서 내려 헛발질을 하면서 두 팔을 벌려 바지선 쪽을 향해 욕을 했다. 바지선은 묵묵히 크레인은 거두고 바다에 떠 있었다. 안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사람들이 나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씨는 저기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정씨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머릿속에 뭐가 뭔지 모르게 일이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전승우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누군가 바지선을 다 빼 버린 것 같다고 하고 아쉽지만 돌아가자고 격려를 했다. 다른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을 했다. 정씨만 가만있었다. 돌아오는 차 짐칸에서 노래들을 불렀지만 정씨는 그대로 있었다. 뭔가 가슴에 저미는 것이 있었다. 울컥 치솟아 오르기도 했다. 차에서 뛰어 내렸더라면 두고두고 수치가 될 뻔했다. 웃기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는 어떤 힘이 솟기 시작했다. 비겁한 마음이 그를 달리는 차에서 뛰어 내리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어리석었던가가 깨우쳐 졌다. 그는 자신에게 뭘 두려워 하는 거야 아무 일도 없는데 하고 소리를 질렀다.
김대위는 트럭이 오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하고 부두의 소식을 기다렸으나 아무 일이 없었다. 부두에는 불길은 치솟지 않았다. 전승우는 차에서 내려 말없이 김대위 쪽으로 다가왔다. 애초 그쪽에는 그 배가 없을 수도 있었다. 만약 배가 불탔더라면 총을 들고 민병대가 쳐들어와 진압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일을 촌극으로 끝나버렸다. 전승우는 혼잣말로 배신자 새끼들이 있다고 지나가는 말을 했다.
“준설선이 하나도 없이 사라졌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번뜩이는 게 있었다. 그는 치밀하게 뭔가를 예상하고 발언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사실 전승우쪽 사람들이 준설선이라도 불을 질러 우리들의 사연을 알려야겠다고 오후부터 말을 흘리고 다녔다. 전승우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가 뭐를 노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배를 뺄 것을 예상하고 말을 흘리고 다녔다면 그는 생각보다 노련한 싸움꾼이다. 현장에는 노동자들뿐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비밀이 있을 수가 없다. 같은 노동자 중에 당번이라는 비공식 직함이 있는데 그 일은 과장급 직원들의 시중을 드는 일이다. 그들은 배신자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땀을 흘리며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그 일을 하려고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리 관리자가 막말을 한다지만 나름대로 일꾼들과 관계가 두둑한 반장이나 조장들도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사우디 관료들까지 아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거의 공개된다고 보면 거의 정확할 것이다. 그걸 알고 있다면 준설선을 타격하자는 말도 마이크에 대고 떠든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배가 있다면 그게 이상할 일일 수 있다.
김대위는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노동자들 싸움이며, 어쩌면 속으로 전승우 행동에 문제가 전혀 없을 수도 있었다. 차라리 그런 행동을 보여주었으니 위협은 가한 셈이다. 기동대는 숙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싸움에 동참을 시키려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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