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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1
 칼럼니스트  | 2009·10·16 15:38 | HIT : 1,551 | VOTE : 182 |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1

          77년 3월 중동, 사우디 사막 한편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3일 만에 막을 내린 소요였지만 그 안에 있었던 노동자들이나 관료와 회사 직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건설업으로 이 나라의 경제의 반 이상을 감당하던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3.13 폭동은 누구에게는 돌이키기 싫은 일이었지만 누구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잊고 싶은 자는 추억이 되어 자주 언급을 하고 웃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기억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남들이 추억으로 이야기될 때만 되새기고 있었다.
건설현장에는 높은 울타리가 있지만 사우디 동쪽 아라비아 만이 보이는 해안 현장에서는 여느 현장처럼 높은 울타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군대식 규율과 추진력이 존재하는 군사독재에 맞는 현장이었다. 많은 사람이 생계를 위해 중동에 가려고 줄을 섰다. 중간에서 일을 보내주고 돈을 받는 중개업자도 생길 정도였다. 중동에 간다는 것은 2년 동안 취업이 보장받는 동시에 국내에서 버는 돈보다 두 배는 더 벌었다. 1차 석유파동 후에 세계경제가 어려울 때 외국에 가서 일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지만 건설현장이라는 거친 환경에서 일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관리자들이 노동을 인간이 하는 신성한 일이 아닌 전쟁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 일꾼들을 군대식으로 관리했다. 중동현장에는 문화가 틀려 거의 현장에 갇힌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현장 안에는 거친 일과 혹독한 더위 그리고 인격을 밟아대는 관리자들이 생계를 위해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이 계약서에 영혼까지 팔았다고 서명을 한 줄 알고 있었다.
중동 현장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직 사기꾼부터 광부 혹은 뒷골목 깡패부터 순수한 노동자까지, 학교선생도 있었으며 공무원도 있었고 데모꾼도 전직군인도 흘러들어와 일당을 뛰고 있었다. 매일 수많은 노동자가 들어왔으며 귀국을 하였다. 관리들은 일거리를 만들어내 본국을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이 넘쳐 전사처럼 일꾼들을 호령하였다. 불가능을 모르고 두려움을 모르는 사자처럼 일을 처리해 나갔지만 정작 일을 한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폭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관리자들은 주인이요 영웅처럼 행동했지만, 어느 순간 치타보다 빠르게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쳐야 했다.
날씨가 맑고 역시 사막의 태양답게 이글거렸다. 그래도 한여름보다 나아 일을 할 만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기온이었다. 오전은 그렇게 지나갔고 점심시간이 되어 동호와 정씨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여름이 오기 전인 77년 3월 13일 봄이었다.
“이 커피를 마셔보라고 난 완전 중독이 됐어. 이 빌어먹을 사막에 와서 말이야. 친구보다 좋은 것은 커피밖에 없더라니까. 왠지 아나? 먼지가 너무 많고 무엇보다 공짜거든.” 정씨 말대로 국내에서 꿈에도 꾸지 못했던 커피와 우유는 식당에서 공짜로 마실 수가 있었다. 정씨는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을 때부터 후식으로 마시는 커피를 한잔 가득 들고 와서 밥을 먹으며 한 모금씩 마셨다. 쓴맛이 피로를 잊게 해주고 입안에 쌓인 먼지를 씻어 내렸다.
“베트남에 있을 때부터 마시기 시작했지. 주로 미국에서 나오는 것을 주로 먹었지. 그런데 여기는 우유가 넘쳐 나는군. 자네는 우유도 마시질 않더군.”
“우유는 설사하고 커피는 독해서.”
“커피를 마셔. 커피는 지성인의 상징이지.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는 커피로 우리를 그럴듯한 기분에 빠지게 만들고 있구먼. 커피까지 마시게 해 주니 얼마나 행복하냐 하고 말이지. 그러니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 열심히 하라고, 이게 다 보이지 않는 굴레거든.” 정씨와 동호는 점심을 먹으며 법과 규율 혹은 규칙이나 족쇄 굴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씨는 화투판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법이 노름판의 규칙과 같은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정치인은 고리를 뜯는 딜러에 비유했다. 결국, 법이란 지키는 놈과 지키지 않아도 되는 두 부류가 있다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법이나 규칙 규율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고 봤다. 모든 일상에 커피까지도. 그러면서 커피를 진짜 성공한 부호처럼 그럴듯하게 마셨다.
“온통 의심만 드는군. 그러니까 아까 하던 이야기를 하자면, 누군가 이 사막에 판을 깐 거지. 이를테면 한몫 잡아 보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지. 일을 벌이고 돈을 거둬들이려고 노가다를 떼로 불러 일을 부려 먹고 돈을 빨아들인다, 이 말이지.” 그는 빨아 들인다에 힘을 주고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숟가락으로 게걸스럽게 밥을 먹었다.
“우린 돈 놓고 돈 먹는 노름꾼이 아닌데, 단지 일당을 벌여갈 뿐인데.”
“자네는 그래서 한참 하수라는 거야. 내 말을 들어보라니까. 눈을 크게 뜨라고, 더 크게. 자네들은 화투 패를 잡은 선수들이 아니고 그저 화투짝에 불과한 거야.” 정씨 하는 말이 재미는 있지만 맞는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화투짝이라니, 그렇다면 내가 무엇에 해당할까? 광은 어림없는 소리일 테고 아마 흑싸리 껍데기 정도. 정씨라면 그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화류계의 여성을 뜻하는 목단 꽃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꽃을 그리고 있을 때 불길한 느낌이 드는 동시에 놀라는 소리가 퍼졌다.
“뭐야?”
정씨는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정씨가 본 곳에 누군가 서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왜 그런가? 쳐다보려다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겠지, 하고 다시 밥을 먹으려고 했다. 사람들끼리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호기심 많은 정씨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가려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숙였다. 그때 음식을 뿌리며 붉은 식판 하나가 돌면서 동호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식판이 날아온 쪽에는 키가 작은 사내 하나가 검은 얼굴로 서 있었고, 주변에서 건장한 사내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있던 3백여 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바라보았다. 식판을 던진 사내는 원통한 듯 울고 있었다. 그 사내 주변에는 팔을 걷어붙인 사내 서넛이 동시에 일어서며 식판을 들어 주방 쪽으로 날리려고 몸을 뒤로 젖혔다. 정씨와 동호는 얼른 몸을 움츠리며 자리에서 피했다. 이어 식판 서 내 개가 동시에 선두를 다투며 식당 쪽으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며 미끄러져 배식구까지 굴러갔다.
“어떤 새끼야!” 주방에서 주방장이 칼을 들고 뛰쳐나와 소리를 지를 때쯤, 그를 향해 숟가락과 젓가락이 던져지자 주방장은 두툼한 목살이 접히도록 목을 수그리고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 명의 사내였나? 여섯? 그들은 뭔가 참을 수 없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보였다. 그들의 분노어린 분위기가 주변으로 둥글게 퍼져 나갔다. 동호는 어리둥절해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고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가끔 회사에 화나는 일이 있으면 이렇게 던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을 쳐다보는 순간 묘한 현기증이 들었다. 강렬한 사막의 햇볕이 식당 안까지 들어오고 있었으며 선풍기와 에어컨이 요란하게 돌고 있었다. 된장국 냄새가 가스실처럼 팽배하게 식당을 채우고 있었으며 모두 굶주린 듯 점심을 먹어대고 있었다. 아직 배식 줄이 끝나지 않았으며 밥을 끌어내 알루미늄 대야에 쏟아 붓자 뜨거운 증기를 피해 주걱을 잡아 돌리는 요리사와 그의 검은 장화와 앞치마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서 정상적이지 못한 하나의 사건이 점이 되어 일상을 붕괴시키는 순간이었다.
식당 안 공기가 출렁거렸다. 식판은 주방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넓은 곳이 목표였다. 사람들의 줄이 떨어져 있는 곳이 주방과 식당 사이에 사람들이 식판을 들고 오가는 줄이 조금 넓어서 자연히 식판이 그쪽을 향한 것이었다. 식판 하나가 창문을 깨부수고 밖으로 날아갈 때야 뭔가 중대한 일이 터지고 있음을 느끼고 더운 공기와 긴장감과 흥분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식판을 던지는 행위는 하나의 웅변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식판 던지기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터트리는 상징이었기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 이유를 듣고 싶어 했다. 사람 대부분이 서서 울부짖는 사내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 사내를 둘러싼 다섯 사내 주변으로 고함이 오가고 욕설이 나오더니 식당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식판을 던지고 일어서 탁자 위에 올라가 고함을 치는 사람이 생기고 의자를 발로 차는 사람, 식판을 바닥에 패대기치는 사람이 생기더니 그 돌발적인 움직임은 파문처럼 중앙에서 일어나 식당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행동이 법과규칙, 엄격한 사규와 현장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동호는 강렬하게 중앙에서 요동치는 사내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들이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렇게 날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투판을 엎자 화투짝과 판돈으로 깔린 잔돈과 지폐가 흔들거리는 백열전구 아래서 흩어져 날아다니는 상상이 들었다. 현장 안에서 먹는 음식을 던지거나 유리창을 깨면 안 되는 규칙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일종 저항의 시작이며 희생에 각오가 되어 있으며 자기주장에 대한 책임과 선언인 행위였다.
“무슨 일이야? 알아야 때려 부수든 잡아 죽이든 무슨 지랄을 하지?” 정씨는 소리를 질렀다. 동의하는 소리가 주변에서 나왔다.
“지금 밥이 넘어가! 일꾼이 관리자에게 죽통을 얻어 맞았대잖아! 그것도 한 대도 아니고 서너 대를. 나이도 어린놈한테.” 그 말을 듣고서야 동호는 아직도 자리에 수저와 식판을 든 것을 깨달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 와중에 먹을 것을 챙겼다. 동호는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았다. 동호는 그의 말에 자신의 얼굴에 관리자의 주먹이 날아오는 상상이 들면서 그동안 그들에게 받았던 모멸감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들의 말끝에 달려오는 어감은 늘 수치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중동 현장이 없었더라면 당신들은 실업자가 되어 놈팡이처럼 살고 있겠지, 노가다들은 도대체 생각이 없어, 그래서 조기귀국을 당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있겠지. 어이 김씨 나이 헛먹었나?’ 반말에 명령조 그리고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곤 했다. 늘 한대 먹여 주었으면 하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뺨을 맞았다는 소리와 던져진 식판 깨진 유리창 그리고 사람들이 동시에 분노를 터트리자 자신이 직접 맞은 듯 화가 치솟았다.
동호는 밖으로 뛰쳐나가는 동료를 따라가려다가 멈칫했다. 분노와 동시에 화난 관리자들의 보복이 떠올랐다. 동호의 머릿속에 누군가 이 집단적인 행동에 책임을 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기귀국이나 사우디 감방에 가거나 아니면 국내로 소환되면 지하실에 끌려가 죽도록 맞는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씨가 회사와 관리자에게 욕을 하고 덩달아 식판을 던질 때 망설였다. 정씨는 동호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제야 동호도 욕을 하며 식판을 던졌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미 대부분 사람의 식판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탁자에 올라서 일장 연설을 하였다.
동호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낯선 세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의 작업화 끄는 소리와 된장국 냄새, 땀 냄새와 거친 말투들, 여러 웃음소리, 밥 먹는 소리와 식판 내려놓는 소리, 줄을 선 사람들, 배식을 하는 주방 노동자들, 이 모든 게 일시에 무너지고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관리자들을 죽이겠다고 몰려나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서성거리자 한 사내가 중앙 탁자 위에 올라서 연설을 했다. ‘저 사내를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동호는 하얀 햇살에 반쯤 드러낸 사내가 낯이 익었다. 긴 생머리가 눈썹까지 내려오고 길고, 각진 턱과 까칠한 수염, 마른 얼굴에 약해 보이는 어깨, 느긋하게 손을 올리며 말을 하지만 목소리는 부드럽고 침착했다. 밖의 소란이 멀어지고 사람들이 침묵하자 그의 낮은 목소리가 오페라 하우스에 울려 퍼지는 노래처럼 은은하게 울렸다. 사람들 거친 숨소리가 식당 안에 가득 찼다. 가끔 옳소! 하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의 말이 끝나자 동호는 개울의 소용돌이처럼 좁은 식당 입구로 빠져나가는 노동자들의 물결에 어깨를 부딪치며 밀치듯 함께 뛰어나갔다. 마치 자신의 뺨을 맞은 듯 그 관리자가 바로 앞에 있으면 밟아 버리려고 소리를 질렀다. 아마 혼자였으면 어림도 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구경을 하겠다고 히죽 이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오는 얼굴을 보고 화가 났다. 동호는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관리자에게 주먹 뺨을 맞았다고 하잖소. 웃음이 나옵니까?” 동호가 고함을 치자 다른 사람도 그를 죄인 다루듯 욕을 퍼부었다. 그 말을 하고 조금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동호는 자신이 왜 그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조금 전 탁자 위에 올라섰던 사내가 나서서 그를 감쌌다.
“우리끼리 싸우지 맙시다. 아무래도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니 말이니 말입니다. 저기 밖에 관리자 하나 잡힌 모양이요. 빨리 나갑시다.” 중키에 헐렁한 작업복을 입은 사내의 말이 무게가 있어 사람들이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따랐다. 그는 동호의 어깨를 살짝 짚고 동호을 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얼굴에서 어떤 분노보다는 후덕한 미소를 보았다. 경망스럽지 않고 역겹지 않은 따뜻한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그의 몸에서 특별한 인간적인 풍채가 느껴졌다.누군들 검게 그을리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그는 게 중에 흰 얼굴에 해당했다. 그의 눈을 작지만 깨끗하고 맑아 보였다. 흔히 하는 말로 배운 사람 같았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틀린, 행동거지에 조심성이 배어나고 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 그에게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사건의 시작은 잠깐 사이에 일어났다. 발화에서 폭발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동호와 정씨가 화투짝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가 밥 수저를 놓고 밖으로 뛰쳐나와 도망치는 관리자를 향해 돌을 던지기까지 5분 정도 걸렸다. 관리자가 도망치니 더욱 신난 사람들이 잡을 때까지 쫓아갔다. 그들이 떠난 식당에는 침묵과 뜨거운 햇살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음식과 반짝이는 식기들, 뒤집힌 황갈색 식판, 이리저리 식탁들이 밀려 질서를 깨고 가운데 식탁에는 안전화 발자국이 선명하게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주방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주방장이 고개를 내밀자 그 뒤로 다른 사내들도 황당한 표정으로 식당을 쳐다보았다. 깨진 유리창 밖에는 노동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환호를 하고 있었다.
“관리자가 도망을 쳐, 체면 깎이게!” 정씨는 팔을 허리에 대고 호탕하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내가 관리자에게 돌을 던지다니 말이야.” 정씨는 동호의 어깨를 두르며 한 손을 흔들고 호쾌하게 웃어댔다. 그는 그날 몇 번에 걸쳐 도망치는 관리자를 흉내 내었다.
폭동이었다. 노동자들이 단순 화풀이 이상의 일로 커지고 있었다. 식당 앞에는 평소에 들을 수 없는 소리와 사람들의 움직임들 그리고 불길처럼 퍼진 소문은 다른 식당 사람들까지 사고가 난 식당 앞으로 물려오게 했으며 여기저기 구불거리며 퍼져 있는 비포장 모랫길에 사람들이 긴박하게 뛰어다녔다. 욕설이 전달되고 폭력이 전염되었으며 작업화를 묶을 시간도 없이 몰려다니며 관리자들을 쫓거나 사무실 유리창이 깨져 나갔다. 그리고 누군가 회사 간부 차에다 휘발유를 붓고는 불을 붙였다.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함성을 질렀다. 현장이 휘발유처럼 타올라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관리자 하나가 공정표를 복사하다가 밖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는 시끄러운 창밖을 보고 누가 싸움질하나 싶었다. ‘무식한 노가다 새끼들, 그들은 참을성이 없어.’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더 자세히 보니 관리자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슨 사고가 터졌나? 저 새끼들 왜 그래? 식당에 불이라도 났나?” 그 주변으로 몇 명이 더 모여 창가에 붙어 웅성거렸다.
“뭐 하는 거야? 저거 아무래도 데모를 하는 것 같은데요.” 젊은 기사가 말을 하자 “이 상놈의 새끼들 죽여 버릴까 보다.” 베트남에서 특수부대원으로 특수 작전을 했다는 고참직원이 나서며 팔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외부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도망쳐 온 관리자와 몸이 부딪쳤다.
“뭐야! 노무자들 앞에서 점잖지 못하게?”
“폭동입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보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도망쳐온 사내는 마치 죽음의 사자에게 쫓기는 표정이었다. 그가 길을 막자 도망쳐 온 관리자는 그를 힘껏 제치고 사무실 안으로 뛰어올라갔다.
고참직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계단을 성큼 거리며 내려갔다. 그는 제일 먼저 막 뛰어온 노동자의 멱살을 잡으며 조기귀국을 시켜버린다고 악을 썼다. 멱살을 잡힌 노동자가 멈칫거렸다. 그는 본보기로 사무실로 끌고 가 굴복시켜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때, 뒤따라온 다른 노동자가 가타부타 말없이 각목으로 그의 든 손등을 후려치자 관리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그 뒤로 몰려오는 화난 노동자들을 보고 비로소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다.
사무실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직원들은 파랗게 질렸다. 도망쳐온 직원이 계단을 쿵쾅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창밖에는 멱살을 잡은 특공대 출신 직원 주변으로 몇 명의 사내가 모여들더니 그의 팔을 꺾어 바닥에 엎어 놓고는 발로 걷어차고 각목으로 등을 갈기기 시작하였다. 그는 금세 피를 흘리며 사내들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왔다가 다시 땅바닥에 구르며 얼굴을 감싸고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뛰어 들어온 직원도 혹시나 하고 밖을 보더니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폭동이다, 다 도망쳐!” 그는 마치 중요한 임무를 마친 듯 한마디 하고는 책상을 가로질러 뒷문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얗게 질린 사내의 입에서 폭동이란 금기된 단어가 사무실 직원들 귀에 쑥 하고 들어와 머리를 흔들었다. 마치 치료제 없는 전염병이 순식간에 퍼져 온 현장을 감염시키고 있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뒤로 노동자들이 계단을 달려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나이 든 직원들이 생각할 겨눌 없이 뒷문으로 도망쳤다. 다른 젊은 직원들이 서류를 집어던지고 책상에 무릎을 부딪치며 따라갔다. 노동자들이 사무실에 들어와 박과장이란 이름을 외쳤다. 뒷문이 열리고 다른 직원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향해 달려들어 뒷덜미를 잡아챘다. 붙잡힌 직원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서류가 어지럽게 널린 바닥에 얼굴을 댄 직원은 올려 보았다. 노동자들의 화난 얼굴이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이 의자를 집어던지고 책상을 옆으로 밀어 제치자 직원은 아무 말도 못하고 굳은 얼굴로 울상이 되었다. 곧 안전화 밑창이 보이고 자신과 관계없는 박과장에 대한 욕설과 죽이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직원 두어 명은 마리를 감싸고 비명을 지르며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직원들이 서로 연락을 하여 누구랄 것도 없이 현장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직원용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셔츠 차림이거나 노동자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차를 끌고 현장 밖 다른 현장 사무실로 도망을 치거나 배를 타고 바지선으로 피했다. 노동자들이 배를 끌고 바지선까지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건 2시간 전, 덤프가 달릴 때마다 먼지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고 더운 공기가 먼지와 함께 창으로 밀려들어왔다. 덤프운전기사 황씨는 다란 석산에서 석재를 싣고 현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평범하고 평온한 현장이었다. 오전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뜨거운 열기와 공사 일정에 긴장된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을 닦달하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항만에는 크레인이 움직이고 굴착기가 땅을 파고 간간이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트럭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쉴 새 없이 오고 갔다.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도면을 펼치고 공정회의를 하고 당번 노동자들이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하고 한쪽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멀리 바닷가에는 바지선들이 떠있고 아라비아해에서 해무가 몰려오고 있었다.
김대리가 정문에서 석산에서 날아오는 덤프트럭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덤프들이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고 느긋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바퀴에서 일어나는 먼지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한 대도 아니고 두 대 세 대가 그 모양이라 차를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속도가 이 모양이야?” 그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에게 불쾌한 듯 울려보며 물었다. 태양이 차체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무슨 말을 하면 언짢은 듯 듣는 게 노동자들이다. 나이를 따져서 그러는 사람들도 있고 말투가 기분 나빠서 그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들이고 자신들은 관리자다. 명령을 할 수가 있으며 지시와 지도를 할 권한이 있었다. 워낙에 현장 밥을 먹는 사내들이라는 것이 약점을 잡히면 기어올라 다루기가 어려워져서 모든 것을 떠나 관리자가 지시자라는 것을 각인시키지 않으면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 한두 해 관리직에 있다.
“규정속돈데여.” 존칭도 반말도 아닌 말끝이 흐리다. 그는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앞을 보고 흘리듯 말을 한다. 고깝다는 뜻일 것이다. 그 말을 듣는데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에 김대리가 화가 치밀었다.
“지금 나한테 규정 이야기하는 거야!” 문짝을 한 대 치고 싶어 한 발 뒤로 물러섰지만, 문짝이 너무 높게 느껴졌다. 유리창에서 뜨거운 빛이 반사되어 그의 눈을 쏘였다. 바퀴를 걷어찰까 하려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내의 눈빛이 언뜻 빛나는 것이 느껴져 참았다. 당장에 끌어내려 귀국시키겠다고 일침을 놔 기를 꺾고 싶었지만, 뒤에서 다가오는 덤프를 보고 이내 입을 다물고 들여보냈다. 이놈들이 무슨 작당을 한 듯싶었다. 일시에 이렇게 속도를 느긋하게 몰려다닐 일이 없다. 당번 하나가 덤프기사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흘렸는데 그의 말이 기억났다.
그는 그들을 들여보내고 사무실로 전화해 박과장에게 사실을 알렸다. 박과장도 베트남과 태국에서 청춘을 보낸 경험 많은 다혈질의 사내였다. 그는 반란을 진압할 장수처럼 지프를 끌고 정문으로 나타나 중기 사무실로 갔다. 거기서 김대리가 하는 말을 듣고 확인을 하려고 차를 몰고 석산 쪽으로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서서히 다가오는 덤프 한 대를 마주쳤다. 역시 말대로 규정속도대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차를 세우고 운전기사에게 내리라고 지시를 했다.
“몇 키로야?” 차에서 내린 운전기사 황씨 얼굴에 바짝 다가가 따지듯 물었다.
“50키론데, 규정속도여.” 황씨는 박과장을 외면하고 일없다는 투로 말을 던지고 시큰둥하게 앉아 있었다.  
“야! 언제 규정속도대로 달렸어. 지금 공사 망해 먹자는 거야! 빨갱이가 되려고 작정을 했나?” 조국 근대화의 열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럼 규정대로 해야지여, 저기 동아현장에서는 일은 우리보다 적게 하고 임금은 두 배 세 배로 받는데, 우리는 등신이여, 뭐 빠지게 일만 하고 남들보다 적게 받게? 돈 30만원에 너무 많이 일하고 있다고여!”
“그래서 개기겠다?” 말끝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여’로 끝나 기분이 불쾌했다. 이놈들이 뜨거운 맛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정강이 한대 걷어차고 조기귀국 운운하며 지하실에 끌려가면 빨갱이 되어 죽어 자빠진다는 말 한마디면 징징 울 놈이 개기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게 아니고 우리도 이렇게 해야 경우가 맞단 말이지. 돈도 작은데 죽기 살기로 할 필요가 있는가 말이지. 계약은 계약이니까 규정속도 50 놓고 달리는 게 경우라는 거여.”
“경우라니, 어디서 가르치려고 들어! 꼴에.” 박과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일단 말로서 기를 죽이고 싶었다. 이미 이런 방식도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말을 곱게 하면 농담으로 알아듣는 경향이 있었다.
“뭐라고? 말투가 그렇네. 아무리 관리자지만. 보자 보자 하니까 나이도 어린 사람이.”
“뭐라고 어린 나이? 이거 아주 등신 중에 상 등신이네. 경우는 따지면서 처지는 몰라? 그래서. 법대로 하겠다.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올라타서 100키로 이상 밟지 못해!”
“못 해!” 운전기사 황씨가 문을 박차고 나오며 큰소리를 쳤다.
“이런!” 박과장이 나오는 황씨를 그대로 멱살을 잡아채 땅으로 끌어내려 차에 밀어붙였다. 황씨가 박과장 손을 벗어나려고 박과장 손목을 잡아 틀었다. 손이 꺾이자 박과장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운전기사의 뺨을 갈겼다. 운전기사는 놀라 뒤로 물러 물러서며 본능적으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 덤비는 황씨에게 놀라 다시 뺨을 두어 갈기자 황씨가 얼굴을 붉히고 뒤로 물러섰다. 그도 그제야 정신이 차려진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직원 멱살을 잡아, 이 인간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당장 조기귀국이야!” 그는 다시 발길질을 했으나 헛발질이 되었다. 그러나 뒤에서 다른 덤프고 오는 것이 보여 멈추었다. 그 차도 규정속도로 달리는지 느긋해 보였다. 덤프에서 경적소리가 나며 운전자가 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이따 보자! 뭔가 하겠다는 건데 다 잘라주마. 비행기 삯 물고 조기귀국 당해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만들어 주지. 감히 어디서 개겨, 돈 벌러 왔다가 빚지고 싶어서 환장했어!”
“야 이 인간아! 어디 가냐? 죽여라!” 맞은 황기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박과장은 화난 얼굴로 차를 타고 회사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운전대를 잡아 흔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당장에 주동자를 색출해 조기 귀국을 시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떠들어 댔다. 뿌연 모래먼지가 일어나 차를 따라갔다.
“황씨 왜 그래?”
뒤따라온 덤프가 서더니 기사가 내려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붉게 부어 오른 얼굴로 차에 올라타 문을 세게 닫았다. 그도 자신을 중심으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황씨?”
황씨는 차를 몰고 현장으로 가자 다른 기사도 별 수 없이 그를 따라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정문에서 김대리가 고소하다는 눈으로 운전기사를 통과시켰다. 더위 탓일 것이다. 가끔 노동자들이 기본계약에 불만을 품고 반항을 하곤 한다.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계약조건을 내밀지만 사실 분명히 문제가 있는 계약은 사실이다. 수당과 퇴직금등 중요한 사항이 빠지고 일괄적으로 계약했기에 문제의 소지가 많다. 다른 현장에서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계약을 하는데 자신의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늘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 언제고 문제가 크게 터질 거란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 이야기하곤 했다.
“공사를 너무 싸게 맡았어. 다른 나라의 반값에 공사하니 말이야! 아무리 임금을 싸게 데려다 쓴다지만 어느 정도지. 올 때는 아쉬워서 도장 찍고 왔지만 하다 보면 그게 아니거든.”
“그래서 그런지 은근히 반항을 한다니까. 가끔 무서워. 저번에 이 기사가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데 뒤로 쇳조각이 떨어졌데, 하마터면 맞아서 골로 갈 뻔했데. 현장 일하는 사람들이 무식해서 머리가 돌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니까.” 엊그제 같은 대리끼리 나눈 대화다. 저들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나는 날에는 정강이 까고 따귀 자주 때리는 직원들은 뼈도 못 추릴 것이다.
황씨는 방파제에 돌을 부리고 덤프를 주차하고 식당에 들어와서 밥을 먹는데 두어 숟가락 뜨자 더 넘어가지 않았다. 옆과 앞으로 앉은 동료가 못 참겠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때린 박과장에 대해 분노를 주고받았다. 분노가 한탄으로 이어지자 황씨는 자신이 지금 뭐하는가 싶었다.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동생뻘도 안 되는 놈에게 주먹으로 뺨을 맞다니. 땀과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국에 떨어졌다. 쌀밥과 깍두기 반찬, 대충 묻힌 것 간은 콩나물 반찬, 시래기 국이 눈에 들어왔다. 먹고 산다는 게 뭔가 싶었다. 문득 처자식의 얼굴이 스쳐갔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황씨?”
다른 기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그는 입을 벌리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지나쳤다. 딸아이 등록금과 아직 셋방에서 사는 어머니와 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공항까지 따라와 손을 잡던 어머니 얼굴을 생각하니 더욱 눈물이 흘렀다. 그는 속으로 참아야 한다고 다짐을 했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은 더 멈추지 않았다.
“박과장 이 인간 오늘 죽여 버린다!”
옆의 한 사내가 벌떡 일어나 식판을 주방을 쪽으로 던졌다. 그 말에 황씨는 더 참지 못하고 곡을 하듯 소리 내서 울음을 터트렸다. 같은 기사들도 더 밥을 들지 못하고 일어나 식판을 번쩍 어깨 위로 들었다.
“오늘 기름쟁이들 근성을 보여주자고. 얼마나 배짱이 있는지 박과장 그 새끼 뱃떼지를 갈라보자고!” 옆에 있는 강씨가 소리를 질렀다.
“기왕에 일 터진 것 끝을 보자고.” 강씨 말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 말없이 밥을 먹던 김대위가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바로 옆에서 터지고 있었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는 일이었다. 전 같으면 금세 다가가 분노를 함께 나누고 먼저 앞장서서 뛰쳐나가겠지만, 순간이긴 하지만 망설였다.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변해 갈 수 있으리란 몇 가지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강씨가 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더욱 분노하고 몰려들어 원성을 높이자 그의 망설임이 사그라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손과 발의 떨림이 느껴졌다. 호흡을 차분하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좀처럼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몰려드는 사람과 웅성거리는 사람들, 모른척하는 밥을 먹는 사람들, 무질서한 식당 분위기가 확연하게 구별이 되었다. 구경거리 났다며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를 참지 못한 황씨 주변의 기사들이 박과장을 잡아 죽이겠다고 몰려나가자 식당 안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김대위는 무의식중에 의자를 빼 올라서서 탁자에 올라갔다. 그가 올라서자 주변의 이목이 일시에 집중되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강하고 말을 꺼냈다.
“밥은 먹어서 뭐합니까? 사람대접도 못 받는데. 오늘 덤프 기사 한 사람이 일이 더디다고 주먹으로 뺨을 맞았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덤프 기사들의 행동에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덤프기사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나 나나 다 같은 처지입니다. 일을 죽도록 하는데 바로 옆의 현장들보다 받는 돈이 터무니없이 작습니다. 계약에 문제가 있으면 항의할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다치고도 공상처리도 못 받는 사람이 한둘입니까? 우리가 노옙니까? 나이 사십이 넘어서 동생뻘 되는 사람한테 맞고 일하려고 이 열사의 사막에 왔습니까? 가족들과 떨어져서 이 개고생을 하는데,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이 작은 일당 던져주고 저들은 돈을 긁어 갈 게 아닙니까? 계약서에 주먹으로 맞아도 할 말 못한다고 쓰여 있었습니까? 우리는 자존심이나 영혼을 판 게 아닙니다. 아무리 생계가 급하다고 주먹으로 맞아가면서 밥을 먹어야겠습니까? 그래 좋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잘못했으면 때려도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박과장이라고 알 겁니다. 어디 그놈에게 면박 한번 당하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 그놈에게 한번 물어봅시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놈의 눈에는 우리가 뭐로 보이는지? 당장 박과장 그놈에게 갑시다. 그놈을 죽이든 우리가 죽든 한번 해 봅시다. 그 손모가지 맛 좀 봅시다. 우리도 한번 맞아 봅시다. 아니면 그놈의 손모가지가 얼마나 강한가 한번 꺾어 봅시다.” 김대위는 일장 연설을 하자 흥분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운전기사들을 따라 밖으로 쏟아져 나가며 박과장 나오라고 외쳤다.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는 소문이 빠르게 번져나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혹은 일 공쳤다며 숙소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도 생겼다. 수백 명이 사무실로 몰려가자 관리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지레 겁을 먹고 무슨 사단이라도 난 것 모양 줄행랑을 쳐 버렸다. 덤프 기사들이 불리한 계약조건에 항의한다고 시작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현장에 관리자들은 몇 명이 피를 흘리며 두드려 맞자 목숨을 부지하겠다며 도망을 치고 현장은 노동자들만 남았다. 신난 노동자들이 몰려다니며 관리자들을 찾아다니며 각목을 휘둘러 기물을 부수며 그간 당하고 지냈던 분풀이를 해댔다. 사람들이 식당에서 사무실로 모이더니 이내 바닷가가 보이는 서쪽 광장으로 웅덩이에 물이 모이듯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태가 커지자 중기 책임자들은 이 기회에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끝을 봅시다.” 전승우라는 굴착기 기사가 덤프 책임자들을 찾아와 말을 했다. 그의 성격이 불같기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덤프기사들은 상황이 커지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전승우 말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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