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 창

 

 

 

 

 

 

>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루가 간다
 칼럼니스트  | 2009·09·21 23:57 | HIT : 2,037 | VOTE : 216 |
현장에서 매 순간, 나는 문득문득 화가 난다.

물이 검게 흐리는 구석 바닥에 두 늙은 배관공이 끈질기게 구멍을 뚫고 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줄곧 두 노인은 쭈그려 앉아 코아를 붙잡고 있었다.
코아 소리는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뒤엉켜 더욱 커지기만 했다.
나는 바닥을 깎아대는 코아 날과 검은 구정물이 지겹고, 발끝 신경까지 곤두설 때 즈음, 두 노인이 눈을 마주치자 히죽 웃어댔다.

웃음?

문득, 어느 하숙집에서 본, 방에서 뛰어놀다 뒤로 넘어져 머리를 찧는 어린 딸을 보고 ‘아주 잘했다, 아예 죽어버려라!’하고 눈감고 쓰러져 있는 아이의 얼굴을 향해 고함치는 아비가 생각났다.
‘여보쇼,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하고 연장을 집어던지고 내 손등이라도 깨야 했지만, 웃고 말았다, 달리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여간, 저 두 늙은이가 오전에도 웃고 있었다.
젊은, 새파란, 마치 자식들의 자식 같은 안전관리가 청소 안 한다고 선임하사처럼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지시하고, ‘알아듣겠습니까?’로 정리했을 때도 말이다.
‘네, 알았습니다!’라고 배에다 힘을 주고 빽 하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그래 웃는 거야!

그들도 나도 이 환경에서 이 짓 외에는 더 무엇을 할 줄 아는 일이 없지 않은가, 비록 하급기술이지만 나에게는 산소 호흡기였기에.
가족은 내 산소호흡기에 불만이 많다. 늘 좀 더 나은 호흡기로 갈아 치웠으면 싶어 하는 눈치다. 어쩌면 나까지도.
가끔, 피로도가 극에 달한 가슴팍에 대롱을 꽂아 바람을 빼 주어야 한다, 아니면 내가 죽을 것이다. 아주 죽어버릴 것이다.
적어도 순간을 견디어야 하루를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머릿속에도 구멍을 내 주자, 내 스스로 불량품이 되자, 그렇지 않으면 나는 좀 더 일찍 폐기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또 간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178   베이징에서 온 형9-플로리다 장씨  칼럼니스트 10·08·15 3087
177   베이징에서 온 형8- 회식  칼럼니스트 10·08·09 3206
176   좀비  칼럼니스트 10·07·14 3292
175   베이징에서 온 형 7-아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칼럼니스트 10·06·18 3362
174   신년 산행  칼럼니스트 10·01·02 2867
173   우울한 날 우울한 소식  칼럼니스트 09·11·27 3024
172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1  칼럼니스트 09·10·16 1546
171   여의도 현장에서  칼럼니스트 09·09·07 1498
170   평택에서  칼럼니스트 09·08·06 1956
169   하청에 하청에 하청에서 살아남기  칼럼니스트 09·09·14 1925
168   신년회 다녀 오는 길  칼럼니스트 09·02·07 1910
167   거리에서 일어난 일2  칼럼니스트 09·01·27 1810
166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3  칼럼니스트 09·10·19 2826
165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2  칼럼니스트 09·10·16 1586
  하루가 간다  칼럼니스트 09·09·21 2037
163   공구통과 밥통  칼럼니스트 08·12·11 2165
162   뭐라, 환란이라고?  칼럼니스트 08·10·09 2018
161   베이징에서 온 형4 - 내 일당  칼럼니스트 10·04·19 2876
160   베이징에서 온 형3 - 양씨 아저씨  칼럼니스트 10·04·18 2775
159   베이징에서 온 형2 -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  칼럼니스트 10·04·18 2822
12345678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