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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에서 살아남기
 칼럼니스트  | 2009·09·14 05:15 | HIT : 1,908 | VOTE : 212 |




25층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유리도 36층까지 끼워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전면이 유리인 건물이어서 밖이 환하게 보였다. 멀리 여의도를 타고 서쪽으로 흐르는 한강이 느긋하게 보였다. 물 표면이 다리를 통과하면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꺼멓게 보이거나 반짝거리고 혹은 어둡고 탁한 황색으로 긴 띠를 형성하며 흘러갔다. 10월 말의 날씨가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이 교보생명이 있는 남쪽에서 불어와 땀 흐르는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나는 사다리 위에서 일하고 드릴 질을 하고 있었고 박중사는 사다리를 잡고 뒷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박중사가 인내로 지루함을 몸을 비틀며 참고 있었다. 일을 조금 적극적으로 하라는 말도 귀에 배기도록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습관이 그랬고 50 중반인데 몸에 밴 스타일을 고쳐질리 없었다. 사다리 주변에 달고 있는 스파이럴 통 토막들이 널려져 있고 전선과 자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정리도 잘하는 듯 하다가 쓰다보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오전이 거의 다 갔을 무렵이었다. 10시 반쯤 되었을 때, 한 사내가 계단으로 올라와 사다리 쪽으로 다가왔다. 보통 키에 주름이 잡힌 와이셔츠에 감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반쯤 곱솔거리는 머리가 걸친 듯 쓴 안전모에 비집고 나왔다. 볼이 들어간 마른 몸매에 각진 얼굴이었다. 나이는 사십은 되어 보이는, 현장에서는 아직 어리다고 대접받을 나이다.
나는 그 사내가 내 밥벌이와 직결된 사장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사장이었다. 나 같이 주인 없는 살아가는 들개는 눈치가 빨라 코로 킁킁거리며 발이나 엉덩이를 비비지 않아도 사장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십여 미터 밖에서 느낄 수 있는 사장의 형색을 갖추었다. 달리 말하면 그에게는 현장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내 옆에 왔을 때 하마터면 사장님이세요? 하고 물을 뻔했다. 나는 다섯 칸 짜리 A형 사다리 위에서 모른 척했지만, 뒤에 달린 눈은 그의 손짓 발짓을 놓치지 않고 훑어보았다.
사다리를 잡고 있던 박중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하품을 해 댔다. 사장은 무안하게 서서 천장을 주시하다 전화를 꺼내 누르려다가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뭔가를 기다리듯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내가 있는 쪽을 올려다봤다. 이때 박중사가 오줌이라도 싼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어, 졸려!’ 한마디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사장이 보고 있다고, 나까지 삼류 날라리 아마추어로 넘어가잖아!’ 내가 사장이었다면 그의 멱살을 잡고 실외기살 밖, 저 먼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손가락을 흔들며 소리쳤을 게다. ‘나를 더 이상 무능해 보이는 놈으로 만들지 마! 쏟아 부을 돈도 더 없다고. 이 현장 때문에 거지됐어!’ 아니면 하품하는 입에 넣어 혀를 잡아 뽑아버리던가. 그는 눈치껏 행동하라고 말을 해도 생각의 차리라고 일축한다. 쉴 때 털썩 주저앉거나 누우려고 하지 말라고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일꾼이라면 사장이 손해 보는 느낌은 안 들게 해야 하는데, 그는 늘 정리대상 1위가 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처럼 노예근성이 조금은 부족한 탓이다.
그런데, 사장이 왜 이리 오랜만에 나타났을까? 여유가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것인가? 현장이 여차하면 까지는 긴박한 곳인데 말이다. 실제 현장이 견적이 나오지 않는 돈 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였다. 내 일이 아니긴 했지만 신경이 쓰였다.
나는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연장을 집는 척하면서 쳐다보았다. 미처 얼굴에 때를 묻힐 시간이 없는 인간다운 인간의 얼굴이었다. 작업으로 생긴 먼지와 그라인더로 생긴 쇳가루, 용접광선 혹은 온갖 찌꺼기들에 살갗이 노출되지 않은 피부에 자부심과 고뇌가 낄 틈이 없이 자신감이 있는 얼굴이었다. 흰 셔츠 밖으로 입은 점퍼가 점잖은 느낌을 주었다. 막 상표를 뗀 듯 담갈색 색이 가을 분위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의 턱밑으로 보이는 황색 안전화가 너무 깨끗해 가죽 냄새가 날듯했다. 나, 관리자고 사장이야 하는 차림이다. 현장 출신은 그런 얄팍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고로 현장에서 함바 밥을 먹는 인간은 오랫동안 말라비틀어져 딱딱해진 나무나 기름과 땀에 찌든 냄새가 난다. 삶의 고통과 노동의 과로가 어우러진 냄새다. 느릿한 걸음과 재빠른 손놀림 전혀 일을 잘할 것 같지 않으면서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고 흔적 없이 일을 해 치우는 기술자들. 현장에서 삼십 년쯤 노동일을 했다면 내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어느 순간 일에 대한 자신감과 노동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혹시 임금 노동자에 너무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나도 이제 비로소 빌어먹을 노동자로 소이다’라고 말할 만큼 경력이 되었다는 말일게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사장이라고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서성거렸다. 그의 눈길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닌 일을 훑어보고 있었다. 사장의 눈은 곧 뇌 속에 계산을 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장의 머릿속에 도면이고 이후 일정이 담겨 있다. 그들은 일 외의 것은 좀처럼 끄집어 내 보여주지 않는다. 일만 삼십 년 했다고 숙련된 기술자가 아니다. 사장의 눈 와 머릿속을 꿰뚫어 봐야 한다. 그들이 보는 만큼 성과를 내주어야하고 자존심도 지키면서 적당한 존경심도 보여야 다음에 불러 준다. 월급이 언제쯤 나올 수 있는지도 파악해야 하고 현장 상황을 알아야 난처한 경우에 빠지지 않는다. 때로는 동업자로서, 내 품을 뜯어먹는 3류 오야지로서, 건축현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노가다로서.
“저기, 김영욱씨는 어디서 일을 하는가요?” 그가 문득 나를 보고 김반장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많은 내용이 빠져 있기도 하지만 ‘나는 그저 지나가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제 서야 의아한 눈으로 박중사는 졸음을 깨고 그를 쳐다보았다.
“김영욱씨요? 아, 그러니까 아마 윗 층에 있는 텐데요.” 나는 재빠르게 말을 했다. 마치 그 대답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를 했다. 조금 느긋하게 했어야 하는데 하고. 그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이며 등을 보이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재빠르게 옮겨갔다. 얼마 후, 김반장이 내려와 그가 여기를 다녀갔냐고 물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사장이라고 말을 해 주었다.
“사장이란 친구, 거 왜 그래? 왔으면 수고한다고 인사라도 해야지. 남들은 땀 흘려 일하는데 품 뜯어 먹고 살면서 말이야.” 박중사님이 점잖게 한마디 하셨다.
그날 잠깐 본 사장을 다시 본 것은 한 달 쯤 지난 후였다. 11개월을 있는 동안 서너 번 봤을 뿐이다.
어느 날 김반장을 찾아와 일을 하자고 이 현장에 부른 사람은 그다. 그도 처음부터 이 현장에서 일을 한 것은 아니고, 여름 두 달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하청을 맡아서 들어온 것이다. 그가 무슨 판단을 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적자는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도 그랬다. 누가 이 현장이 준공까지 붙어 있게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아무도 못했을 것이다. 여러 문제 중에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하청회사 들이었다. 그 사장 위로 하청 회사가 두 개나 있었다. 사장도 떠돌이 사장이 아니고 부천에 작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이 현장에 일을 넘겨준 D테크에 하청으로 업자로 일을 하며 여러 현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는 소장이 따로 있었는데 그는 D테크 고용 관리자였고 사장과는 관계가 없이 작업 지시만 했다. 하나의 직종이 통째로 일을 맡았으면서 소장과 일꾼이 다른 회사라는 게 효율상 문제가 있지만 하청구조가 중층적이다 보니 생기는 경우였다.
김반장은 권사장을 보고 ‘넘버3’라고 불렀다. 아마 서열로 3번째 업자라는 뜻일 게다. 하청 서열을 세는 일은 따분하고 짜증이 난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공사를 준 원청이 있고 거기서 1차 하청, 2차 3차 하정이 있다니, 실제 일은 하청과 전혀 상관없는 우리가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3차 하청이면 누군가 적자를 봐야 한다. 남는 게 이상한 일이지 않는가! 원청에서 공사견적을 바보들이 내지 않는 이상 그들이 먹을 것은 아주 작을 것이다. 그것도 일꾼들을 몰아쳐 견적보다 두 배 이상 성과를 내야 한다. 그들은 위험한 게임에 판돈을 걸고 있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그들의 하청구조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일과 일당 그리고 노임이 한 달에 한번 정확하게 나오면 된다. 내 어머니 말대로 능력 있는 놈은 살 테고 능력 없는 놈은 죽을 테니 말이다.
11월로 넘어 오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돼 한 팀을 더 구해, 모두 7명이 되었다. 두 개조로 나뉘어 일을 하였다. 나와 박중사, 김반장은 세대 설치 작업을 하고 새로운 팀은 복도를 하였다. 그쪽 반장은 3단계 하도급을 우려 했다. 당장 자신들의 노임날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 중 함씨라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돈은 제대로 나오는가 물어 보았다. 나는 첫 달은 제대로 받았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3단계의 하도급이라는 말은 원청에서 나온 돈이 두 번을 더 걸쳐 우리에게 올 텐데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반문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밖에는 역대에 유래가 없는 금융위기로 노는 사람이 줄을 섰고 우리는 운이 좋게 일을 하고 있었다. 정세로 보면 월급은 그 다음 문제였다. 하지만 그에게 ‘친구, 일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만족합시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동의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 팀은 한 달 반쯤 하다가 일을 그만 두었다.
11월에 임금 받는 날이 되자 불길한 소식이 날아왔다. 임금이 일주일 늘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5일쯤 늘어져 나오기는 나왔다. 김반장은 지독한 골초로 연신 담배만 피우고 나는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박중사는 개 거품을 물었다.
한 해를 넘길 즈음 전체 일정 중 7할은 끝났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몇 개 층이 결정이 나지 않는 바람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하자가 자주 발생을 해서 고치러 다니느라 시간을 많이 뺏겼다. 원래 계획대로 하자면 12월 쯤 우리도 손을 떼야 할 형편이었다. 하지만 현장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장도 그렇게 연말쯤이면 다 끝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게다. 이 현장에는 보이지 않는 자질구레한 함정이 수도 없이 있었지만 우리는 공정표만 보고 그 감추어진 함정을 파악하지 못했다. 하자와 변경, 그리고 여러 직종들 간에 맞지 않은 공정으로 눈에 보일 듯 말 듯 공사가 지체되었다.
하청업자들은 연말쯤 끝나거니 하고 공사를 끌고 왔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일이 자꾸 늘어지고 복잡해지고 신경이 쓰이자 오소장이 현장에서 손을 떼고 싶어 했다. 우리는 오소장이 현장을 그만두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박중사와 김반장도 형편이 되면 빠지고 싶어 했다. 나도 김반장과 인연이 아니었다면 빠졌을 것이다. 전열 교환기 환기 닥트는 처음해본 일이라 처음에는 간단했지만 일 같지도 않은 일이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감리가 워낙에 깐깐하게 굴어 번번이 하자와 변경이 생겼다. 어렵게 끌고 온 일이 마무리만 남았고 완전 마감까지 가자면 작업이 봄쯤 일시 중단될게 뻔했다. 거기다 노임이 자주 지체되고 불안해 일 하는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12월 월급이 생각보다 늘어지기 시작했다. 1월을 넘기고 구정을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김반장은 권사장을 몰아세우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누가 봐도 그가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거야?” 찬바람이 부는 날 한쪽 귀퉁이에 앉아 김반장과 앞날을 고민하고 있었다.
“몰라, 아마 사장이 돈줄이 막힌 것 같아.”
“위에 업체들이 돈을 안 풀고 있겠지, 권사장은 뭐래?”
“전화를 안 받아.”
“권사장, 상황파악도 못하군. 여기 원청에서 김대리는 기성금이 나갔다고 하는데, 결국 중간에서 배달사고가 난 모양이네.”
“당근이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야. 다른 직종들도 까졌다고 난리가 아닌데, 판단을 잘 해야 할 것 같아, 선수처럼 말이지. 복도를 맡아 했던 사장도 도망을 친 모양이야.” 복도 작업이 이틀쯤 중단이 되었을 때, 뭔 일이 있을 거란 소문이 돌았는데 사장이 도망쳤다는 소식으로 이해가 갔다. 현장 끝날 때 쯤 들은 이야기지만 현장도 힘들었지만, 사장이 주색을 꽤나 밝혔다는 말이 있었다. 거기다 도박까지 했다는데 말 다했다. 엎어진 사장을 모함하려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무엇보다 그는 손을 대지 말았어야 할 것에 손을 댄 것이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에 말이다. 중첩된 하청은 블랙홀 보다 강하게 그의 자본과 능력을 빨아들여 뼈만 남길 것이다. 도박이나 여자의 아랫도리, 간을 삭이는 술보다 무섭게 자본을 쓸모 없는 것으로 녹여버린다. 그래도 현장밥을 먹었는지 똑똑한 판단을 했다. 도망을 쳤으니 얼마나 현명한 짓인가. 덕분에 그 아래서 일한 사람은 위에서 돈을 받을 수가 있다. 도망도 작업 도중에 가야 한다. 끝나고 가면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도 여기서 판단을 잘해야 할 것 같은데.” 김반장은 버리자 마자 또 한 대를 꺼내며 말했다.
“판단?”
그렇다.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갈림이 갈린다. 친목모임에 나가보면 한두 달 깔리고 돈을 주는 일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삽질을 좀 할 줄 아는 정권이라 토목건축에 상당히 일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굶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다른 대통령이 되었다면 우리는 영락없이 굶주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찍은 정부는 아니지만 그 혜택을 보고 있으니 이걸 보고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친구들은 재미없는 그 현장에 있지말고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 현장이 마음에 드는 것은 출근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화곡쪽 부천에서 출근하는 나도 그렇고 김반장도 그랬다. 그리고 환기라는 새로운 일이라서 배우고 싶기도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달은 그렇다 치고 마감을 하게 되면 다음 달 돈은 더 큰 걱정이 되었다.

2007년 김반장과 여름에 한 일을 넉 달이 지나서야 받은 적이 있다. 성이 이씨인 이사장이었는데 교회집사였다. 얼마나 지독한지 거의 철면피를 두른 인간이었다. 신이 그의 모든 죄를 너무 간단하게 용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매주 혹은 매일, 매 순간 그를 보호 하셨다. 용서까지는 좋은 데 되풀이 되는 잘못을 막지 못한 것은 신의 탓이 아니라 인간인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는 무엇보다 우유부단이란 병을 앓고 있었다. 악랄하거나 사기성이 있지는 않았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이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을 고통에 몰아넣고 있었다. 한 선배가 말하기를, ‘절대로 우유부단한 사람과 함께 일을 하지 마라!’ 는 교훈을 습관처럼 되뇌인 적이 있다. 특히 어머니와 마누라의 지시를 받아야 움직일 줄 아는 사람과는 함께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반쯤은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그걸 지키겠는가. 현장은 부천에 있는 커다란 신축 교회 일이었었다. 이사장은 일을 마치고 기성을 받지 못했다며 돈을 주지 않았다. 돈을 달라고 강하게 몇 번 재촉을 했더니 종족을 감추었다. 돈을 떠나서 돈을 떼였다는 오명을 쓴다는 것에 참을 수 없어 김반장과 나는 김포 근처의 그의 집까지 찾아갔다. 묘하게 이사를 간 직후였다. 동네 어귀 수퍼 주인에 들은 바로는 사장의 처는 동네에서 소문난 근성의 소유자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선배의 교훈이 떠올랐다. 돈을 받으러 간 사람은 넷 이었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공터에 앉아 다르게 생각을 하기로 했다. 왜 사장이 도망을 쳤을까? 그의 성격으로 돈을 떼먹을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결론은 강압이 아니라 부드럽게 해결을 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우리는 곧바로 사장에게 하청을 준 설비회사를 찾아가 그쪽 상무에게 그간 거칠게 대한 것에 사과를 하고 아무 감정이 없으니 사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기성금 때문이면 같이 고민해서 해결 하자라는 그럴듯한 의지를 진심으로 보여 주었다. 그날 밤 사장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날 그를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친구임을 나타내기 위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분노를 삭이고 웃으며 다가가 악수를 하고 어깨를 부드럽게 걸쳤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한 것이었다. 돈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직접 원청으로 올라가서 돈을 받겠다고 설득했다. 그는 모든 권한을 원청에게 위임한다는 각서를 써주었다. 물론 원청에 가서도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회사가 튼튼하니 받을 수는 있었다. 우유부단, 그것은 치유하기 힘든 병이다. 나도 그 병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늘 생각을 하곤 한다. 솔직히 친구가 아닌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우유부단은 적으로 간주해도 좋다. 그는 함정에 빠질 때 나오는 방법을 모른다.
당연히 권사장이 그런 경향이 조금 있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는 아저씨에게 일 때문에 전화하가 권사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권사장의 다른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권사장에게 도급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권사장에 대해 한참을 떠들어 댔다. 좋은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하는 대부분의 공사는 남기 힘들거란 말이었다. 결국 아저씨도 마지막 임금을 떼이다 시피 못 받다가 해를 넘겨 5월이 되어서야 받았다. 그것도 노동부에 고발을 해서 받았다. 나는 수시로 아저씨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사장의 성격을 파악했다. 한번은 아저씨가 돈을 받으려고 사장이 있는 회사까지 가 봤지만 비어 있더라고 했다. 현관 앞에 신문이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사무실이 비어 있다고 확신 했다. 거의 보따리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먼저 일을 시작한 아저씨는 내 미래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렇게는 안 살지.” 김반장은 미소를 띄었다.
“안 주는 데야 재간이 있나? 그때 부천 교회공사 사장처럼.”
“막판에는 최씨가 나서야지. 나는 믿어.” 그때 결국 원청으로 올라갔지만 공사가 개판이라고 돈을 미루며 주지 않았다. 한달쯤 참다가 조합에 연락을 해서 해결을 했다. 법규담당하는 형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쪽으로 전화를 해서 해결을 한 것이다. 업자들은 개인이 가서 떠들면 양아치 취급을 하지만 조합을 들이밀면 말을 듣는다. 그나마 큰 회사는 덜한데 작은 업체일수록 지독하게 버틴다. 결국 여기서도 돈을 안주면 해결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원청 자체가 대기업인데다 위로 더 큰 회사가 하도급을 주고 있다는 말인데. 조합과 대기업 그리고 튼튼한 원청이 있어 임금을 해결하기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일단 일을 하자고?”
“그렇지, 나가면 별 수 있나, 대한민국 현장이 다 그런 거지. 일단 일을 해서 공수라도 쌓아 놓자고. 그렇다고 우리가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야.”
우리는 그날, 햇살이 드는 유리창에 앉아 이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조를 정했다. 현장을 끝까지 책임진다. 간단한 방법이었다. 일단 말일까지 한계선을 정하고 그래도 안 나오면 윗 단계로 올라가 두 번째 하도급 업자에 돈을 달라고 압력을 가하자고 했다. 결국 두 번째 하청도 우리를 직접 고용하지는 않았지만 책임을 면 할 수 없었다. 문제는 박중사와 새로 들어온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는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떠들었다.
“노가다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야. 최씨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돼. 대가리 박아서라도 받아 내고 때려치우자고.” 박중사는 화를 냈다. 지금까지도 참았지만 더 이상 돈이 늘어지는 것은 못 참겠다는 말이었다.
“형! 알아. 하지만 여기는 조금 더 다르게 하자는 거지. 이 현장은 우리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 우리가 때려치우고 가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올 수가 없다고. 벌써 소장만 두 번째 바뀌었고 일꾼은 우리가 세 번 째야. 우리가 제일 오래있는 거라고. 여기 가면 또 어디로 가게? 지금 상황이 어려워. 어디가도 상관은 없지만 다 마찬가지야.”
“돈이 필요할 때 사용하자고 이렇게 나와 일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야.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나중에는 한 달이 아니라 두 달이 지나도 돈이 안 나올 걸. 난 그렇게 못하지. 저쪽 팀들도 혹시 도급 맡아서 말도 못하냐고 의심하잖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말은 지겹고 고통스럽다. 늘 우리는 그 말을 달고 산다. 패배적이고 스스로를 비웃는 말처럼 들린다. 젊을 때는 우스개로 스스로 비하해 똑같은 처지임을 공유하는 말로 들렸으나 지금은 선배들이 왜 그 말을 했었나 이해 할 수가 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커가자 한 달 일해 한 달 먹고 사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어느 새 생활의 위태로움에 강박관념이 걸린 정도가 되었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하루가 아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산다는 말이라면.
“이런대서 도급 맡으면 죽어. 그리고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방법을 취해서 받아야지.”
“최씨 많이 약해졌다.”
“애가 셋이면 궁리를 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형은 어떻게 할거야?”
“난 그렇게 못해. 마누라가 돈 달라고 난리야. 이번만 받고 빠질 거야.”
“집에도 안 들어오는 형수한테 뭐 하러 돈을 줘! 그거야 내가 왈가왈부할 말은 아니지만, 다른 데는 같이 알아보자고, 여기는 항상 우리가 있으니까.”
박중사 말이 맞았다. 한번 늘어진 돈은 꼬박 한달 만에 반이 나오고 나머지 반은 다시 한 달 후에 나왔다. 그만둔 박중사와 다른 사람들 돈은 먼저 챙겨 주었다.
일은 생각보다 늘어지고 생각지 않았던 일이 또 터졌다. 복도와 세대 사이에 방화구역이 형성되어 화재를 예방하는 댐퍼가 들어가야 하는데 설계 때부터 넣지 않았다. 누군가의 실수였다. 도면이 잘못 나왔고 도면만 믿은 것도 잘못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해보니 소장과 원청 부장이 이른 아침부터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충 띄엄띄엄 하는 말로 댐퍼를 넣으라는 것이다. 각 충에 4개씩 30개 층에 넣어야 한다. 갑자기 한 달 정도의 일이 생긴 것이다. 김반장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곳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추운 겨울을 나게 생겼으니 여유가 생긴 것이다. 소장까지 셋이 있다가 다시 한 팀을 구하기로 했다. 온수동에 사는 사람이 셋이 왔는데 그들과 봄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계산대로 하자만 우리는 다른 곳에 가 있거나 마감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1월 달이 거의 지날 무렵 기존에 작업해 논 스파이럴 파이프에 원형 댐퍼를 거의 끼워 넣었다. 처음부터 했다면 쉬웠을 일을 벽체가 쌓진 중간에 하려니까 배로 품이 들었다.
그 즈음 오소장이 현장을 그만 두었다. 그는 일을 감시하는 관리자로 대부분의 시간을 변경된 도면을 그리거나 작업지시 그리고 다른 소장들과 차를 마시면서 하루를 보냈다. 사실 그가 없다 해도 통이 거의 달린 상황에서 크게 지장은 없었지만 어쨌든 원청과 작업에 대한 논의를 하려면 관리자가 필요했다. 김반장과 우리는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루는 두 번째 하청 회사에서 오더니 김반장에게 소장을 하라고 하면서 명함을 파가지고 왔다. 김반장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는 한 가지조건을 내 걸었는데, 지금 받는 단가로 일을 하는 대신에 밀리고 있는 임금을 처리 해달라고 했다. 두 번째 회사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 들였다. 그렇게 함으로서 넘버3은 우리와 자연스럽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임금을 직접 주지 않으니 할 말도 들을 말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지난 이야기지만, 해를 넘기기 전부터 김반장은 권사장에게 공사에서 손을 떼라고 했었다. 이유인 즉은 현장을 붙들고 있으면 있을수록 까진다는 충고였다. 현장을 파악하고 있는 김반장이 현장에 자주 오지 않는 권사장보다 정확한 판단을 했다. 권사장은 갈수록 임금 주는 것을 버거워 했다. 소장이 된 김반장은 위 회사에서 돈을 받는다고 권사장에게 말을 해 주었다. 권사장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머지는 그들이 처리할 문제였다. 그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단지 미안한 것은 우리에게 작업을 중지하라고 부탁을 했을 때, 그 부탁을 들어 주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현장을 중지 시키면 넘버2를 압력해서 돈을 받겠다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장 말대로 일을 중단하자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작업 해 논 기성금을 풀지 않겠다고 원청 김대리가 선언을 하자 넘버1인 전문하청업체 과장이 연락을 해서 일을 하라고 사정을 했다. 덕분에 한 주쯤 쉬다가 권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더는 쉬지 못하겠다, 결단을 내려달라고 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우리는 일을 나가기 시작하고 권사장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두 하청회사에서 우리를 취직한 관리인처럼 전화로 지시를 했지만 우리는 그들의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현장에는 회사를 대변하는 관리자가 필요했지만 적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장에 관리자까지 파견할 형편이 아니었다.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일이 잘되고 있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어쨌든 현장에는 회사가 둘이나 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김소장이 된 김반장을 믿었던 모양이다. 회사는 자재신청과 식대, 생수 값과 임금을 처리를 해 주었다. 일은 갈수록 늘어졌다. 인테리어가 천장을 붙이기 시작하자 우리 전에 있는 사람들이 해 놓고 간 일이 문제를 일으켰다. 천장이 수치가 나오지 않는다고 기존 닥트를 전부 올려 달라고 했다. 추운 겨울에 한강에서 부는 찬바람이 맞으며 새로 들어온 임형과 사다리위에서 작업을 했다. 거의 30개 층을 돌아다니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특히 나는 발이 시리어 고생을 했다. 거의 눈물이 날 지경으로 발이 시렸다. 하루는 어찌나 오른발 뒤꿈치가 아픈지 양말을 벗어보니 뒤꿈치가 갈라져 피가 나고 있었다. 임씨 형님은 각질을 긁어 내지 않아서 그런다고 했다. 나는 그런 줄 알고 연화제를 바르고 발을 부풀려 긁어냈다. 그래도 갈라진 틈은 메워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었다. 거의 2월 중순쯤 그 이유를 알았다. 현장에 처음 온 가을에 안전화를 받았을 때, 발이 너무 꽉 낀다고 깔창을 벗고 딱딱한 쇠판이 박힌 안전화를 그대로 신고 겨울을 보낸 것이다. 창고 뒤로 돌아가니 먼지가 쌓인 채로 벗어 논 깔창이 있었다. 그걸 깔고 신으니 온돌에 서 있는 것 같이 따뜻했다. 며칠 지나니 갈라진 뒤꿈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그 악몽 같은 발 시림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뒤꿈치에 동상이 걸려 도려냈을 게다.  
3월을 넘기고 이번에는 두 번째 하청에서도 돈이 나오지 않았다. 자꾸 여러 이유를 들어 미루기만 했다. 마치 좀 더 깊은 샘이 마르고, 현장은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김소장은 원청 김대리에게 찾아가 곧 현장이 멈출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함께 일을 하는 최모씨라는 인간이 돈이 안 나와서 더는 일을 못하겠다고 나를 빗대 항의를 한 것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이 넘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취할 방법을 취했다. 김대리는 실제 공사 계약을 한 1차 하청회사에 전화를 넣어 주었다. 기성금을 직접 수령하던 KS에어콘 과장이 직접 현장에 찾아와 원청에 말을 한 것은 실수가 아닌가 질책을 했다. 김소장은 우리의 처지를 이야기 했다. 변명도 항의도 아니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 할 것이 아니라 임금을 미루고 있는 2번째 하청에게 따질 문제였다.
“김소장님 봐 주십시오. 사장님 알면 우린 시말서 써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을 하실지 모르지만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 원청에서도 협력업체들 관리하고 점수를 매길텐데 이러면 곤란해집니다. 이거 중요한 문제라니까요. 단지 임금 때문이라면 어떻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진작 저에게 전화를 했더라면 해결이 되지요. 이러면 정말 제가 곤란해집니다.” 김소장은 고개를 끄떡이고 그의 말을 백번 알아듣겠지만 문제는 임금만 해결하면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말을 했다.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데 임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있는가 라는 말이었다. 말이 아닌 뭔가 실천이 필요했지만 좀처럼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한 이틀 후에 체조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김대리가 찾아와 돈이 나왔는가 물어보았다.
“뭐라고 말을 할 수 없는 우리 처지가 곤란합니다.”
“안 받았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거참 일처리 영 마음에 안 들게 하네. 일단 작업 들어가시고요. 임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즘 세상 임금을 떼먹기야 하겠습니까.”
“뗄 걱정은 하지 않는데, 늦으니까 이게 참 곤란한거라.”
“그렇죠.”
우리는 차분하게 일을 하면서 시계를 쳐다보고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전화는 전혀 뜻밖의 사람에게 온 것이다. 이미 나가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던 권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는 몇 개월을 일하면서도 회사의 실체에 대해 감만 잡았을 뿐 제대로 몰랐는데 그때 그 일을 겪으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권사장이 오자마자 각서를 내밀었다.
“아니, 이 각서를 우리가 왜 써야 하는 거죠?”
세대 일을 마치고 다른 이들 다 빠지고 셋이 일을 하고 있었다. 김소장과 임씨 형님 그리고 나였다. 김소장은 머리를 긁으며 알 수 없다는 듯 권사장을 쳐다보았다.
“아니, 각서는 또 뭐고,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 겁니까?” 김소장은 나를 쳐다보면서 난처한 얼굴로 그에게 말을 돌려 안부를 물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손톱을 물고 있었다. 각서라니, 나는 일단 고개를 흔들었다. 김소장이 눈치를 알았는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야 새끼 오야지죠. 무슨 힘이 있습니까? 여기서 공사하고 순전히 내 돈만 삼천만원 까졌 습니다. 작년까지 준 임금이 전부 나한테 나간 겁니다. 그리고 저도 여기서 돈 한 푼 받지 못했습니다. 기성금, 기성금 하지만 진짜 한 푼도 구경 못했다니까요.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계약으로 보면 내가 일을 하기로 했는데요. 손을 뗐어도 결산이 남아서 아주 뗀 것은 아닌거죠. 위 업체들이 임금은 해결하고 있지만 일이 마무리 되어야 최종 결산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 몇 푼 벌겠다고 이렇게 뛰어 다니지만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런 것 받고 싶어서 다니겠습니까? 위에서 이렇게라도 해야 결산이라도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직접 온 거지요. 여기 현장만 엮이어 있으면 말도 안 하지만 다른 현장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하청업자 현실을 알잖아요. 여기 각서에 서명만 해주십시오. 이번 한번만 넘어갑시다.”
“그러니까 힘없는 업자로서 총대를 매셨다는 건데,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세상사는 물정이 있고 상식이 있지, 사장님도 참, 돈을 안 받았는데 받았다고 어떻게 써 줍니까?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일당 받고 일하는 노가다지만. 이거 써주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덤에서 일어나 따귀 때립니다.”
“나 못 써죠. 시발, 이런 경우가 어딨나! 각서 안 써주면 돈 안주나? 누가 일하고 돈 못 받아! 한번 해보자는 거야. 뭐야!” 임씨 형님은 순간적으로 분노를 터트렸다. 권사장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김소장과 나는 돌풍이 지나기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일어난 바람일수록 빨리 잠잠해 지는 법이다.
“새새 생각 좀 해 봅시다. 당장 오늘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우리 입장도 이해를 해 주십시오. 돈도 못 받았는데 느닷없이 받은 적 없는 돈을 받았다는 각서라니요. 꼭 이래야 됩니까. 달리 방법을 찾아 봅시다.”
“오죽하면 제가 그러겠습니까. 이걸 받아와야 원청에서 기성을 받고 그래야 KS에서 결산을 봐 주겠다는데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어차피 기성을 받아야 돈이 내려올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돈 얼마나 된다고 그럽니까? 그것 먼저 해결 하고 각서 쓰면 되잖습니까? 돈 받았다는 영수증인데, 우릴 바보로 만들 적정이 아니면 어떻게 이걸 내밉니까? 꼭 법에도 상식에도 없는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 추운 겨울에 누구하나 나와서 봐 준 사람도 없는데, 오죽 우리끼리만 일하고 결산은 회사들이 통장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니에요.”
완강하게 거부하자 그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시 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초조한 얼굴로 문도 없는 사무실로 찬바람을 몰고 들어왔다. 쓸 만한 창고가 있었는데 공사를 한다고 해서 지하 기계실로 옮겨온 후라 창고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스티로폼을 깔고 옷을 갈아입고 자재를 한쪽으로 치워놓은 상태였다. 넷이 스티로폼 위에서 전날과 비슷한 실랑이를 했다. 써 달라와 써주지 않겠다는 말이 오고 갔다.
“이번 한번만, 한번만 사정 좀 봐 주십시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달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는 거의 울다시피 했다. 이번 한번만 살려주면 자기도 성의껏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었다. 서로 못할 말이었다. 김소장이 움찔했다. 이 현장에 처음 고용을 사장이었기 때문에 버티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할거냐고 눈짓으로 물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나도 마음이 흔들렸다.
“만약 써주신다면 나도 이면 각서를 써 드리겠습니다. 돈 안 받고 각서를 썼으니 이 달 말까지 돈을 해준다는 각서를 쓰겠습니다. 그럼 되잖아요. 됐습니까? 진짜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어두운 사무실에서 그의 손에 들린 종이가 한들거렸다. 거의 무릎이도 꿇을 다음 장면이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이면각서에 살려달라는 말에 흔들리고 있던 마음이 여기서 더 흔들렸다. 이면각서라, 그런 고상한 일까지 해야 하나.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서로 짐을 덜자는 차원에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이리라.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겠다고 했다. 임씨는 형님은 단호하고 큰 소리로 거절을 했다.
“이런 짓 못 해. 이건 도리가 아니야!” 형님은 화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다가 뛰쳐나가 버렸다.
“권사장님, 원청에서도 꼭 일하는 사람 전부를 받아 오라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도 한명 있고 못쓰겠다는 사람은 어쩔 수 없으니 여기 김대리가 알만한 나와 최씨가 쓰면 될 겁니다. 어차피 돈 받은 것 확인 하자는 거니까요. 이정도로 매듭지읍시다. 김대리가 그래도 기성을 안 풀면 내가 올라가서 말을 하지요.”
나는 권사장이 A4에 각서라고 쓰고 그 밑으로 돈을 받았다는 싸이펜 글씨 아래 서명을 했다. 김소장과 내 서명이 들어가자 권사장은 부리나케 현장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쓰긴 썼는데 우린 영혼을 판 거라고.” 나는 안전화를 벗어 던지며 그렇게 소리쳤다.

날이 풀리고 봄이 오고 어느덧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5월이 되었는데 현장 일은 계속되고 있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언제 현장 끝나냐고 묻는 게 인사가 되었다. 전열교환기를 120대를 설치하고 연결을 하니 일이 그렇게까지 늘어졌다. 샘플만 7번을 단 적도 있다. 대단한 감리였다. 그래도 아직 일이 많이 남았다. 천정이 되고 도배가 되면 기구를 달아야 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철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면 이내 다음 공정이 이어져 그대로 일을 하게 되었다.
5월이면 4월 임금을 받아야 하는데 두 번째 회사에서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돈이 약속한 날짜에 나오지 않자 현장을 철수하겠다고 전화를 했더니 두 번째 회사 사장이 직접 전화를 받아 한다는 말이 더 이상 지급 능력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다지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역시 권사장 때와 같은 말을 했다. KS에서 돈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기성이 KS까지는 내려가는데 그 아래로 전혀 내려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신경을 쓸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 다른 현장 같았으면 어디든 올라가서 책상을 때려가며 돈을 받고 보따리를 쌓을 테지만 김소장과 나는 마주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전화를 돌렸다. 당연히 그 위에 있는 KS 회사 였다.
“당신네 하청업체에서 돈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약상 자기들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장에 살아있고 그 현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우리가 그만두지 않는 게 이 현장을 끝까지 무사히 마무리 짓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로서는 임금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직 전열교환기 선을 연결해야 하고 기구를 달아야 하며 리모컨까지 달아야하는 많은 일들이 남아 있었고, 세 개 층 쯤 마무리가 되지 않은 세대가 있었다. 그 중에 한 층은 두 개 층을 한 개 층으로 만든 곳이라 보기만 해도 아찔할 만큼 높고 복잡했다. 두 명 혹은 세 명 임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일만 해주는 것만으로 그들은 감사할 노릇이었다. 우리는 돈이 늦는다고 화도 내지 않고 그렇다고 그만두겠다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단지 상황만 알려줄 뿐이었다. 이제는 내가 어디 소속인지도 불분명하게 되었다. 하나의 현장에 세 번째 임금을 주는 회사가 바뀌는 셈이다. 사실 우리에게 관심 밖의 일이기는 하다. 일을 했을 뿐이고 돈을 받았으면 할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들의 문제였다. 누군가는 상당한 피해를 볼 테고 누군가는 피해를 다른 업체를 넘길 것이다.
근래는 하청간의 문제로 임금 지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현장에 문제가 생기자 원청에서 실질적인 하도업체에게 돈을 직접 지불한다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하청에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을 경우 원청책임에 대한 법규가 생겨 원청입장에서는 예전처럼 무조건 모르겠다고 버티기도 힘들었다.
우리가 하루 일을 하면 두 곳에 출력일보가 올라갔다. 원청에 한 장 올라가고 그다음에 돈을 주는 하청으로 한 장 보내 주었다. 안전관리에서도 출력을 확인한다. 경기가 어려우면서 하청에서 임금이 문제가 되자 원청에서도 현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아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임금을 해결해 주었다. 세상이 보이지 않게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도 변했듯이. 친구들은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것을 바봐 같다고 말을 하곤 했지만 아주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몇 번의 체불을 겪으면서 체득한 방법이다. ‘돈을 받는 법만 알고 있으면 제때 돈을 받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 일을 해서 공수를 올려놓는 게 중요하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아마 늘 제대로 돈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결국 마감에 들어간 모든 임금은 1차 원청인 KS에서 나왔다. 돈을 지불하면서 몇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겪어야 할 일이었다. 성실히 주어진 일만 하면 됐다. 그리고 돈이 나올 때쯤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방망이를 두드리듯 노크를 하면 노임이 나왔다. 그리고 아이들과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고 틈틈이 마누라 몰래 라면도 끓여 먹는 것이다.

“어제 뉴스에서 사무직 하나가 해고를 당하는데 나와서 눈물을 글썽이더라고. 이렇게 말이지 흑흑흑 하면서, 쪽팔려서. 그 이유가 골 때리는 거라. 뭔지 알아? 밖으로 나가 대리 운전도 하고 노가다도 하면서 살 생각을 하니까 앞이 막막하더라는 거야. 참 나. 정규직을 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처럼 살려고 생각을 해보라고, 심정이 어떻겠나? 누구는 철들자 말자 이 짓을 했는데 말이야.” 김소장의 말이다.
“거의 암울한 죽음의 세월이지.”
“최씨는 기둥 세 개를 박은 삼십년이 다 됐잖아.”
“평화시장 때부터 따지면 올해가 삼십년이고 노가다는 한 이 삼 년 더 해야 삼십년이 되지.”
“들개 생활 삼십년이라고? 이제 고개를 고향으로 두고 죽을 때가 다 되었군.”
“사무직 할 만하지. 나도 조금 해봤는데, 아침 9시 출근이면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되거든. 밤늦게 컴퓨터를 해도 되고. 전혀 부담이 없어. 그렇다고 현장을 옮겨, 난장에서 일을 해. 돈을 떼이기를 하나, 영혼을 파나.”
“그렇지 영혼을 팔았지, 다음에는 팔지 말자고.”
“사무직도 힘들지 않을까. 늘 영혼을 판다고 하던데.”
“그래도 현장 나오는 것 보다는 낫겠지. 이 짓을 하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잖아. 최소한 월급은 제때 나올 거 아니야.”
가끔 권사장이 현장에 온다. 뭔가 일이 막히면 그가 와서 일러주곤 했다. 현장 일에 관해서는 우리가 기술자지만 장비에 대해서는 그가 있어야 했다. 여름에는 그가 삼일만 도와 달라고 해서 그의 일을 간적이 있다. 한번은 김소장이 혼자 며칠 도와주었다. 마지막 날 일을 마치고 소주를 함께 한 모양이다. 권사장이 나이는 비록 우리보다 어리지만 야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현장에 대한 심리와 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 일꾼이 사장님한테 말이다. 그가 들으려고 하기나 했을까? 들어도 현장 기술자의 이야기일 뿐이다.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의 세계는 좀 더 복잡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일당은 뒤로 까지는 법은 없지만 사업은 그야말로 투기 성격이 강하다. 3단계 하도급부터 커 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을 걸로 알고 있다. 어디가면 4단계도 한다고 하던데 그런 곳은노동자까지 얽히고 들어가는 무덤일 공산이 크다.
흔히 말하는 몇 천 만원이 적자난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그는 학습비로 낸 셈 칠 것이다. 내가 그라면 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스타일이나 방식으로서 이 뒤틀린 세계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내가 일당을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하지만 그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일을 맡아 나갈 것이 분명하다. 하여간 그건 그의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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