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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평택에서
 칼럼니스트  | 2009·08·06 22:45 | HIT : 1,943 | VOTE : 207 |
      어제, 무더운, 꼭 더위 때문은 아니지만 평택은 더웠다. 흰 태양은 말없이 이글거리고 멀리 보이는 공장 안쪽 맨 윗 층 난간에 세워진 붉은 깃발 서넛이 아직 나부끼고 있었다. 멀리 충청에서 올라온 이 형이 가까이 왔다. 왼손과 두 다리가 성치 않다. 엄지와 검지만 살린 오른손을 내민다. 1급 장애의 몸인데, 평택에서 자주 본다. 많은 이야기를 지닌 사람이지만 겸손하다.
“더운데 왜 왔나?” 이 형이 긴 팔 소매로 땀을 닦으며 인사를 한다.
“이 지경인데 일이 되나? 그냥 하루 제끼고 내려왔는데, 여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합니다.”
“그러게, 다 구속이 되던가, 죽기 살기로 싸우던가, 구경 온 것도 아니고 답답하네. 왜 이리 더워.”
그는 입맛을 다시며 한 숨을 쉬었다. 울타리 너머 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쉬지 않고 오르고, 백로인지 하얀 새 세 마리가 송탄 쪽으로 날아간다.

밤늦게 전철타고 올라오는데, 아침에 있었던 일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10시나 되었나, 정문 앞에서 사측 노동자들이 빗자루 들고 와서 천막을 걷는데, 한 청년이 말리며 항의를 하자 사측 친구 하나가 빗자루를 움켜쥐고 고함을 질렀다. 울부짖음이었다.
“여기는 내 공장이란 말이야, 내 공장!” 항의하던 친구와 우리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움찔 했는데, 결국 한마디도 못하고 부서진 스티로폼에 채이고 찢어지는 천막을 보고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서로 소통을 하기 위해 많은 말이 필요 했는데, 말은커녕 곧바로 빗자루와 몽둥이가 코앞에서 날아 다녔다. 경찰은 멀거니 보고 있고, 누군가는 웃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타결이 되었다고 한다. 손익계산은 전문가들이 하겠지만, 그 안에서 모든 것을 걸고 버틴 노동자들은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이제 발 쭉 뻗고 자고 싶을 게다.
하여간, 밖에 있는 나는 무기력한 며칠이었다. 정말, 무기력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찬물이라도 뒤집어쓰고 정신 좀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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