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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거리에서 일어난 일2
 칼럼니스트  | 2009·01·27 10:34 | HIT : 1,809 | VOTE :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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잰걸음으로 뛰다가 걷다가 골목을 돌아가다가 리어카를 몰고 온 곳은 문래역 근처 청소년 회관 뒤 공원 입구였다. 바바리와 아다다는 리어카를 세우고 숨을 몰아쉬며 근근이 숨을 몰아쉬는 노인을 바닥에 내렸다. 어깨뼈가 앙상한 노인의 목덜미에서 참기 어려운 찌든 인간의 낡은 냄새가 용케 몸 기운에 달구어져 올라오는데 차마 티는 못 내지만 솔직히 오물통을 안은 듯해서 참고 있기가 어려웠다. 돈만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냥 리어카 위에서 눈을 감게 해 주고 싶었다. 아다다는 제사상 펴듯 주워온 종이상자를 깔고 노인을 눕히고 품속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자신이 한 모금씩 거하게 마신 다음 노인에게 내미니 노인이 웅크린 몸을 펴고 코끝을 대는 병을 보고 눈이 둥그레졌다. 그러고는 기꺼이 받아서 목을 축이었다. 아다다는 술이 잘 넘어가게 뒤에서 왼손을 대고 받혀 주었다. 그리고는 바바리를 쳐다보니 바바리가 무슨 말을 꺼내라고 눈짓을 주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등을 돌리며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아다다가 소주를 어디서 났을까 고민해 보았다. 여기까지 오자고 자기가 말을 한 듯한데 아다다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하고 있듯 보였으니 묘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아저씨 술 맛 어떠세요? 피피가 돌지 않으세요? 새새로운 생명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누누구냐? 아다다, 그래 아다다군. 고맙다. 아다다, 그래 너는 내가 알고 있지. 죽을 때까지 도움을 주는구나? 저승길에 위안이 된다.”
“저저승을 간다니요. 그그런 말씀 마세요. 이 추추위가 끝나고 나날이 밝으면 아저씨는 거짓말처럼 이일어 나실 겁니다.”
“오, 내 아들아, 내 마음을 가볍게 하는구나. 사람이 딴 것은 몰라도 죽음만은 알 수 있는 게다. 비록 내가 길에서 비명횡사할 팔자지만 외롭지는 않다. 수수술도 함께 하니, 술을 마시다 죽을 수 있는 것은 복 중의 복이니라. 나는 많은 삶을 살아왔지만 더러는 내 뜻대로 된 것도 있고 그렇지도 않은 것도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누굴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오직 술이 늘 내 위안이었고 영혼에 힘을 불어주는 양식이었다. 가끔 그나마 기쁨이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너 같은 호의가 내 삶의 아픔을 잊게 해주는구나. 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뭐든지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좋을 것을, 술값은 치르고 가야지. 단지 짧은 시간이 아쉽구나.”
“아아저씨, 딴 게 아니라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요. 그것이 뭐냐면, 저전에 아아저씨가 마말씀하셨잖아요. 거거 뭐뭐냐하면 토통장이요.”
“무슨 말이야 아다다? 아, 취한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답답하다. 날씨가 더운 거야 추운 거야? 저승사자는 어디에 와 있는가 내 호흡이 완전히 멈추는 것을 기다린단 말인가?”
노인의 상태는 다시 급격히 나빠지는 것처럼 보였고 몽롱한 눈을 치켜뜨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눈알 사이에 핏발이 서고 흰 눈동자가 아주 노랗게 변해 있었다.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지만,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나 알지 눈에 보이는 사물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각인되지 않았다. 노인이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향해 입을 연 아다다의 말이 무슨 뜻인가 구분하려고 머리를 맞대어 봤지만 별로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지 한탄을 하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바바리는 아다다가 묻는 게 답답한지 아다다를 힘껏 당기자 아다다가 뒤로 나뒹굴어 넘어졌고 바바리는 아다다 대신 노인의 받쳐 앉았다.
“아저씨, 아저씨에게 돈이 든 통장이 있다면서요. 그걸 주세요. 죽기 전에요. 아저씨 금방 갈 것 같아요. 여기에요? 여기에?”
바바리가 노인 가슴팍을 열려고 우악스럽게 두 손을 노인이 꼭 여민 가슴에 손을 집어넣고 후벼댈 채비를 하였다. 노인은 놀라서 가슴을 한 손으로 꽉 쥐고 풀려고 하지 않으려 이를 물었다.
“귀신이 내 가슴팍을 쥐어뜯는구나! 너는 누구냐? 눈먼 사자냐? 또 다른 저승 동행자더냐? 내가 남에게 지은 죄가 없거늘, 왜 남의 가슴을 뒤지느냐? 어둠이 눅지고 구더기가 들끓는 네놈의 집으로 물러가거라. 이 잡놈의 새끼야!”
노인은 소주병을 놓지 않은 채 팔꿈치로 바바리 코끝을 치자 바바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가슴에서 잡은 노인의 팔을 놓지 않았다. 이번에는 노인이 발로 배를 걷어차자 바바리는 어이쿠 소리를 지르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으며 노인과 둘이 힘을 주며 밀고 당기기 시작하다가 다시 노인이 손을 뿌리치자 바바리가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며 데구르르르르 굴렀다. 노인은 네놈이 죽든 살든 나는 술이나 마시겠다는 듯 바바리를 떨어뜨리고 소주를 벌컥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조화냐? 아, 생명을 주는 술의 힘이여, 마실 때마다 피가 돌아 영혼을 일깨우는구나. 밤새도록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노가 살아나 선악이 보이는구나. 정신을 깨우고 눈을 띄게 하고 친구들을 보이게 하고 과거와 현재를 펼쳐 보이며 정신이 등불 심지 불붙듯 밝아지는구나. 오, 아다다여, 내 아들아. 내가 살아 있는가? 바바리는 여전히 인상은 구기고 서 있구나, 김사장! 김사장 무엇을 쫓는가? 이 술기운 떨어지면 내 정신은 붉은 숯이 불속에 잠기듯 연기를 내 보내며 차갑게 식을 것이다. 그래, 그렇군. 온몸이 견딜 수 없이 뜨겁다가 다시 얼음장에 잠기듯 추워 이가 덜덜 떨리니 말이다. 간사한 인간의 몸이여 영혼의 운명이여 한 뼘도 안 되는 기운을 주었다가 뺏어 버리는군. 눈이 흐려진다, 바람이 부는구나, 훈훈한 서풍이. 사람들은 어디에 가고 새들 지저귀는 소리만 나는가? 쪽쪽쪽, 찍찍찍, 휘익 휘익, 후르르륵, 내 생명의 기울기는 이제 바닥에 드리어지고 이 검은 어둠은 저승사자가 깔아놓은 융단인가보다. 눈은 빛을 잃고 귀는 열이 나서 저승에 온 듯 바람 소리가 그치질 않는구나? 바바리 있는가? 아다다, 아다다 있는가? 김사장은? 우리 식구들 여기 있는가?”
노인은 눈이 먼 듯 귀가 먼 듯 손을 흔들며 어둠 속을 거닐 듯 앉아서 주변에 둘러보며 자신의 죽음을 지켜볼 친구들을 불렀다.
“여여기 아아다다 있어요. 아저씨.”
“오, 그래 아다다다, 아까 뭐라고 했지? 내 손을 끌던 저승사자는 어디에 갔지, 멀리 갔나. 내 이 소주의 힘으로 고함을 쳐서 쫓아 버렸는데 말이야. 아마 또 올 것 같아. 망할 놈의 내 그림자처럼 질긴 놈.”
“아아저씨, 저저승사자가 아아니고요. 그그러니까, 바바리가 그랬어요. 아아저씨 앞이 보보이지 않나요? 이를 어쩌지. 어이, 바바바리! 아아저씨가 앞이 보보지 않는다는데. 버법원 까지 어떻게 가지?”
옆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손을 비비며 주변을 초조하게 걸으며 돌더니 상황을 더 지켜보지 못하고 바바리가 아다다의 어깨를 끌어내고 자신이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 다른 게 아니고요. 말 똑바로 들으세요. 아저씨 통장 있어요, 없어요? 도돈 말입니다. 아다다에게 말을 했다면서요. 수억, 수억 원 말이에요.”
“통장, 아, 통장! 그래 통장이 있지. 내 돈에 미친놈이 또 여기에 있군. 사람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는 어리석은 놈이 여기에 있어. 돈이 눈깔을 파먹고 뇌까지 쑤시고 들어가 정신을 흩여 버리고 심장에 구멍을 내어 헛바람을 통하게 할 텐데, 돈을 찾다니. 멍청한, 천하에 어리석은 놈이 돈을 찾는구나. 아, 내 아들놈이 생각이 나는군.”
노인이 말을 하고는 다시 소주를 마시기 시작하자 그의 입가로 소주가 흘러 내려와 바닥에 떨어졌다. 소주병이 곧 비어 버리고 노인은 빈병 끝을 혀로 핥더니 멀리 던져 버렸다.
“아, 또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하는군. 소주는 신의 가호지. 신의 소리도 모습도 보게 할 수 있는 조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니까. 아, 바바리 아직도 있었군. 아다다도. 김사장은 어디에 있나 김사장은?”
“김사장은 간첩이에요. 아저씨 통장에 있는 돈을 뺏자고 해서 김사장 몰래 도망을 쳐 왔어요.”
바바리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노인의 팔을 잡고 노인이 무슨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노인은 바바리의 바램과 다르게 여전히 가슴팍을 쥐고 딴청을 부렸다.
“이런 밥통, 돈, 돈, 돈 혼을 빨아들여 눈을 멀게 하는 돈, 부모도 처자식까지 팔아먹을 놈들.”
노인은 바바리의 손을 뿌리쳤다.
“아저씨 몸이 아프니까 헛생각이 든 겁니다. 지금 김사장 오는 날에는 다 죽고 통장도 뺏긴다니까요.”
다시 덤벼들어 노인을 팔을 잡고 앞으로 끌었더니 노인이 고함을 치면서 일어나며 바바리의 따귀와 머리를 때렸다. 바바리는 머리를 잡고 몸을 구부려 손을 휘저어 노인의 손을 막았고 노인은 두어 걸음 걷다가 숨을 몰아쉬며 다시 주저앉아 신음을 지르다 누워 호흡 곤란이 일어난 듯 심장을 주먹으로 쳤다.
“아, 여기가 어디야. 또 머리가 아프고 뜨거워지기 시작하는군. 저 미련한 바바리, 녀석 때문, 내 이 중요한 인생을 낭비하고 있어. 여기가 어디야? 아다다, 말해줘 봐! 법원은 아직 멀었나? 안양천을 넘지 않았나? 저런 미련한 놈들 때문에 기어이 고향을 못 보고 말겠어. 내 몸이 뉘 울 곳은 그곳뿐인데. 저런 무지한 놈팡이 놈 때문에 말이야. 해가 뜨기 전에 가야 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해가 뜰 때 끝날 테니까.”
노인은 몸에 열이 나는지 이마를 닦는 시늉을 하고 목덜미 옷을 열어 바람이 들게 했다.
“아아저씨, 여여기는 아직 문래동이에요. 오오목교는 더더 가야 해요.”
“아, 아다다, 내가 인정이 있다면 나를, 내 숨이 멈추고 영혼이 빠져나가기 전에 이 몸을 법원 그림자 아래 뉘어 주게나? 그곳에 내 삶의 모든 흔적이 남아 있다네. 내가 첫 호흡을 쉬기 시작한 그곳에서 숨을 거두고 싶어. 제발, 그렇다면 자네들이 그토록 원하는 내 통장을 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노인이 그 말을 하고 더 참지 못하고 땅에 누워 경련을 일으키며 신음을 내고 가슴을 움켜쥐고 간간이 고통스럽게 짧은 비명을 지르는데 아다다와 바바리는 노인의 죽음으로 희망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공포를 느꼈다. 둘은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장 어디 골목에서 김사장이 흉기라도 들고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리가 후둘 거렸다. 노인은 더욱 아픈 표정을 지으며 굳은 표정을 지으며 후배들을 올려다보았다.
“자, 가자, 아들들아! 저 차갑게 서 있는 법원으로, 건물이 누르는 그 뿌리에 내가 눈을 떴고 감을 곳으로.”
바바리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오목교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고 아다다는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다.
“음흉한 노인네 같으니. 죽어가면서까지 나를 부려 먹으려고 머리를 쓰는군. 자, 아다다 태우자! 시부럴 것.”
아다다는 바바리에게 리어카를 잡고 노인을 끌어다 태웠다. 둘은 느릿하게 노인의 상태를 봐 가면서 리어카를 끌고 오목교 쪽으로 길을 가기 시작했다. 얼마를 가자, 역시나 꼭 기분이 그랬는데, 길을 헤매고 있던 김사장과 마주친 것이다.
“이 거렁뱅이 자식들, 시체를 파먹고 사는 구더기 새끼들, 이완용 같은 놈, 인간적 신의를 길바닥에 눌린 껌보다 하찮게 여기는 놈들, 거지 똥구멍에 낀 콩나물을 빼먹을 놈들, 죽여 버린다.”
김사장은 그들을 보자마자 비밀봉투를 내려놓고 고함을 치면서 달려와 다고 짜고 바바리의 멱살을 잡고 공중에 선을 그리며 주먹을 휘두르려고 하였더니 바바리도 이렇게 맞기만 하다가는 뼈도 못 추리고 혹시 버림받으면 아예 이 행운에 끼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함께 멱살을 잡고 엉키어 붙어 밀리지 않으려고 버텼다. 둘이 힘을 주고 옥신각신하다가 김사장이 바바리를 깔고 앉았다. 바바리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 배신자 새끼, 네 마누라 사타구니로 들어가 썩어 뒈지란 말이야. 나를 빼고 도망을 쳐! 너 오늘 죽어봐라!”
“시부럴, 다시 왔잖아.”
바바리도 어디서 그런 용기와 힘이 나는지, 아마 욕망 때문에 그렇겠지만 어쨌든 김사장 팔을 잡고 껴안아 뒹굴었다. 한 바퀴 구르니 다시 김사장이 배 위에 올라섰다.
“왜, 아저씨가 통장을 안 주디, 다시 오게?”
“그래, 법원까지 데려다 주면 번호 알려 준단다. 시부랄 것.”
“뭐, 그게 정말이야? 아저씨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김사장이 주먹을 쳐들었다가 생각을 해보니 이러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이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고 촉각을 다투는 일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다니, 그것도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바보들하고 말이다. 김사장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아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김사장이 아다다를 올려 보았다. 믿을 놈은 그래도 아다다가 바바리 보다는 나았다.
“마맞아. 아저씨가 그그랬어.”
“가다 죽어 버리면?”
“다다 날아가는 거거지. 하지만, 왜 그런 소리를 해, 바보같이. 어차피 데데려다 주기로 했잖아! 소손해볼 것 없지. 이이밤에 다달리 할 일도 어없으니, 빨리 가가자고.”
“추우니까 소주나 한잔하고 가자. 오목교까지 올라가려면 언덕이 있으니, 염병헐. 어쨌든 다시 만나니 반갑다. 이 망할 자식들아. 다시 한 번 도망이라도 치면 토막 살인으로 뉴스에 나오게 해준다.”
김사장은 넥타이를 고쳐 메며 공갈을 치고 소주를 꺼내 바닥에 놓았더니 아다다와 바바리가 달려들었다. 아다다도 노인을 힐끗 보더니 노인이 숨을 고르게 쉬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둘에게 다가와 쭈그려 앉았다. 김사장이 소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바바리에게 건네주었다.
“아껴 마셔라. 다 돈이다. 네가 낸 돈이기는 하지만.”
말을 하고는 바바리 어깨를 치면서 웃어 보였다.
“자기는 반을 마시고, 남에게 아끼래. 시부랄 것.”
바바리가 침을 뱉고는 병 입구를 소매로 문질러 닦고는 벌컥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김사장이 땅콩을 꺼내 비닐을 뜯어 바닥에 놓으며 몇 알 입에 넣고 오드득 거리며 씹었다.
“근데 말이야, 통장 확인해 봤냐?”
바바리와 아다다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항상 일이라는 게 선후가 있어야 하는 거야. 내가 번번이 헛물만 켜서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 세상에 가장 믿을 수 없게 사람이고, 그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게 운명이며 문득 주어진 행운이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기거든. 뒤통수를 맞게 되고 남 좋은 일만 하게 돼. 빌어먹을, 그래서 하는 말인데, 먼저 통장을 확인해야 해, 괜히 밤새 헛고생한단 말이지. 진짜로 너희 통장을 못 봤어?”
“보기는 누가 봐! 주먹맛이나 두 번씩이나 봤지.”
“아다다, 너는?”
“마말만 들었다니까?”
“혹시 아저씨가 거짓말을?”
김사장 말에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며 리어카에 기대어 앉아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김사장은 이마를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다른 소주 한 병을 더 꺼내 입에 들이켰다.
“아저씨가 사기 치는 거야. 음흉하기는, 세상을 저렇게 살아오고도 남았을걸. 쓰지도 못한 돈에 무슨 사연이 있어도 단단히 있겠구먼. 암, 당연히 그러고도 남을 양반이지. 우리를 시험하는 거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아다다, 바바리! 노인이 통장에 돈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만약 부랑자 가슴에 1억이 든 통장을 지니고 있다가 죽는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개가 웃을 일이지, 안 그래? 멍청한, 인간이 같지 않아서 끝까지 곯려 먹으려고 사기를 치는 거 아니겠어. 설사 있다고 치자고, 무슨 사연이 있어서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죽기 전에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럴 리가. 노인네가 그럴 리가, 우리에게 왜 돈을 주는데? 작은 돈도 아니고 몇백, 몇천이 아닌, 억일 수도 있는 돈을 말이야. 지금 이 밤에 무슨 쇼를 하는 거냐고,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나?”
“확인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 아냐? 시부랄 것.”
“오 바바리, 오 바바리, 오 바바리, 뭘 확인하게, 거짓말이라는 것, 우리가 이 밤중에 사기당하는 것. 아직도 노인네 어떤 사람인 줄 모르겠어? 저 양반이 인간의 허위에 대해 연극을 하는 거라고. 그래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저 노인네가 지금 바바리 너와 나, 아다다를 가지고 노는 거라고 죽기 전에 말이야. 인간이 얼마나 돈에 미치고 환장하는가? 시험을 하려고 말이야. 안 그래? 응?”
“거거짓말 아니야. 아아저씨가 분명히 말을 해했어.”
“그래서 아다다. 나의 친애하는 아다다, 분명히 봤는가 말이다? 통장에 억대의 돈이 찍혀 있는 것을 봤는가 말이다?”
“드들었다고. 누누굴 의심하는 거야? 자꾸 우우리 속을 떠보지 마말아, 김사장. 지지금 우리끼리 소소속이면 안 돼. 우우리는 결백하다고.”
“이제 다 제정신이 들어오는군. 그런데 조금 전 너희의 그 행동을 보고 솔직히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어 아다다. 이 바보야, 혀가 돌아간, 비뚤어진 내 친구 아다다. 눈은 멀쩡하겠지. 자식을 고아원에 맡기고 거리를 떠도는 내 친구, 아다다! 돈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가 아닌 눈으로, 이 명확한 눈으로 노인의 통장을 봤는가, 알고 싶을 뿐이다.”
“드들었다니까? 거짓말 아니야, 정말.”
“그래 거짓말로 들린다. 그만두자. 무식한 놈, 너희는 돌이야, 돌, 모든 관계를 저버리고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고 굴러다니는 돌, 돌 이상으로 지금 무슨 상황인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어.”
아다다도 두 손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김사장이 무시하고 모욕을 가한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지만, 그저 주머니에 손을 구겨 넣고 입을 다물고 공장 벽을 걷어찼다.
“시부랄 것. 잠이나 잘 것.”
바바리는 김사장이 마시고 남은 소주를 입에다 부어 벌컥거리며 마시며 어디 잠잘 곳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이 기우뚱하게 보였다.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는 씁쓸한 웃음과 여기까지 따라온 것에 대한 후회 다시 잠이 몰려들었다.
“리어카 콱 오목교에 처박아 버리고 어디 구석진 곳에 가서 잠이나 자자고. 나 취침시간 지났단 말이야. 시부럴.”
“그그래 어디 파파출소에 버버리고 가자고. 너무 추춥다고. 기김사장 안 그래?”
그 말을 듣고 김사장이 소주를 마시다 말고 큭큭거리고 웃었다. 참지 못하는 듯 그러다가 이내 배를 잡고 뒤로 누워 소리 내서 웃고 말았다.
“아다다, 네 속을 알고 싶어? 오히려 나를 떠보려고 그래? 그그래, 이 망할 자식들아, 잠이나 자자고 여기서 말이지. 내가 한마디 할까? 내가 저 아저씨가 친형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니지만, 꼭 이 빈속에 병든 몸으로 오목교를 넘어 법원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다. 쉬었다가는 것도 아니고 파출소에 갖다 놓자니, 물론 그게 가장 현실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6개월을 함께 끼닛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관이나 성당 교회, 쉼터를 돌았는데 죽기 직전인데 그런 말을 하다니. 내가 한마디 할까? 너희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알아? 죽어도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거야. 응. 이 거리에서 너의 뼈를 묻을걸.”
“추워, 추우니까 그렇지 시부랄 것. 아까는 의심스러우니 뭐니 헛소리 하더만.”
“그건 통장 이야기고 지금은 인간적 도리 이야기하는 것 아니야. 이 잠충아.”
“오늘 자야 내일도 돌아다녀야 할 것 아니야.”
“오, 바바리, 콜롬보야. 너는 왜 부랑아가 되었는지 말해줄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네 눈깔에 다 씌어 있단 말이야. 그 눈깔은 나는 애초 부랑아요, 하고 굵은 글씨로 새겨 있어. 딱 봤을 때부터 그걸 알 수가 있었단 말이야. 그 눈에는 게으름과 나태함, 무기력, 그저 숨을 쉬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누가 밟으면 밟힐 그럴 의지밖에 없단 말이야. 네 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비굴하게 남의 발끝이나 쫓으면서 소줏값 하나 얻어먹으면 그걸로 만족하는 패배자의 모습이 잔뜩 긁어 뗄 수 없는 녹슨 때처럼 끼어 있단 말이야.”
“김사장도 할 말 없어. 시부랄 것.”
“왜 할 말이 없어, 이 새끼 새끼, 이 띱때끼야?”
“김사장 눈깔은 사기꾼 장사꾼, 날 강도 눈이야, 동태눈이고 맛도 없을 거야. 노인네가 지금이라도 통장에 돈이 있으면 목을 졸라서도 뺏으려고 하잖아. 우리가 모를 줄 알아, 시부럴.”
“그래서?”
“차라리 버리고 가는 사람이 났지, 생각하는 척하면서 강도질하는 것이 나쁘다는 거지.”
“이 자식 봐라! 오늘 결국 난장에서 죽을라카나. 생각하는 척하면서 강도질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인정으로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의리가 있지, 너처럼 사람 심부름시키고 아저씨를 빼돌려는 배신자 같은 행위는 하지 않는다.”
“돌아왔잖아. 끝이 중요한 것 아니야?”
바바리가 고개를 여우처럼 내밀며 소리를 질렀다.
“어이고 아버지! 이 말도 되지 않는 개새끼, 콱 이 병으로 마빡을 갈겼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부디 그렇게 기회를 주시오.”
김사장이 화가 치밀어 병을 거꾸로 들고 발딱 일어서 바바리를 후려칠 자세를 취하자 바바리는 기겁하고 두어 발 물러나는 꼴이 가관이었다. 김사장은 화를 참지 못하겠는 듯 발을 구르며 남은 소주를 입에 톡톡 털어 넣었다.
“내가 너와 같은 부랑아로 보이니? 응, 내 눈을 잘 봐, 잘 보라고 자, 자. 그래 지금 이렇게 얼굴 숙이고 검게 칠하고 모자 눌러쓰고 길바닥에 누워 자니까 쓰레기로 보이는 모양인데, 천만에 내가 친 사고만 잠잠해지면 집으로 돌아갈 거야. 알아 이 노숙자 새끼야. 그리고 아저씨가 돈을 이야기하지 전에 내가 먼저 법원에 데려다 주자고 했지. 돈보고 했어? 그리고 아다다 너도 잠을 자고 싶으면 어디 짱 박혀서 꼬꾸라지란 말이야, 알았어? 내가 노인네 끌고 법원에 데려다 주고 갈 테니까. 모든 것을 나 혼자 차지하여 이 차가운 바닥에 더 등짝을 붙일 일도 너희 지겨운 상판도 더 볼 일이 없을 테니.”
“그래 시부럴, 우리는 안가. 김사장 혼자 다 쳐 먹어.”
“따라오지 마! 돌들아, 배신자들아!”
김사장이 화가 난 표정으로 일어나 노인 쪽으로 가보니 노인은 여전히 추위의 부들거리면서 간간이 발에서 떨었다. 김사장이 자신의 가방에서 이불을 꺼내 완전히 노인을 덮었다. 김사장이 혼자 비적 거리며 리어카를 끌고 오목교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김사장이 서서히 멀어져 가자 둘은 그대로 서서 구경만 하였다.
“호혼자 오오목교를 오올라 갈 수 있을까?”
아다다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손수레를 보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아마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알아서 하겠지. 도로에 엎어지던가, 골목에 박아 버리던가, 혼자가 잘난 척하니 잘해 나가겠지.”
“아아니 그래도 이이게 아니지. 나나난 김사장을 따라가겠어. 바바바바리.”
아다다가 바바리를 놔두고 자리를 떠서 김사장이 갔던 자리로 가려고 하는데 김사장이 사라진 곳에서 한 여인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 왔다. 삼십 대 초쯤 되는 머리가 길게 묶은 여인이었다. 가방을 꼭 껴안고 뒤뚱거리며 뛰어오는 두 사람을 보고 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무슨 일입니까?”
아다다가 물었더니 젊은 처자는 창백한 얼굴로 뒤로 돌아 김사장이 사라진 곳을 가리키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기겁할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때리고 있어요.”
사람을 때리고 있다니, 그렇다면 김사장이 노인을 때리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두 사람은 달려서 그곳으로 가보니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김사장이 리어카를 세워놓고 노인을 내리 누구고 옷을 뒤지고 있었고 달려온 그들을 보고도 자기 하던 일을 했다. 노인은 거의 실신한 상태로 김사장에게 몸을 맡기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들이 다가가자 품속에서 천이 감긴 뭉치를 꺼내 잽싸게 노인에게서 물러나 두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게 손을 저었다. 노인이 모로 누워 두 손과 발을 바르르 떨었다.
“뭐 하는 거야 김사장! 지금 강도질하는 거야!”
“강도짓은 무슨 통장이 있나 확인하는 거야.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도 이게 뭐야, 아저씨를 때린 거야? 시부랄.”
“무슨 헛소리, 바바리 보지도 않고 막말을 하지 마라.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나, 그냥 확인하려고 뒤지는데 노인이 몸살을 해서 끌어내린 거지.”
“거짓말, 시시심한 것 아니야? 김사장.”
아다다가 노인을 부축해 앉히며 참을 수 없다는 듯 화를 내었다.
“심하기는, 확인을 한다고 했지 갖는다고 했나. 자, 풀어서 보고 확인하고 돌려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한 말은 끝까지 책임을 진다고 노인을 법원 앞까지 데려다 줄 거야.”
김사장은 푸른 꽃무늬 스카프에 쌓인 물건을 둘둘 돌아가며 풀어내자 통장과 도장 카드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가 나왔다. 그가 통장을 들고 흥분되어 떨리는 손으로 펼쳐들었다.
“아아저씨에게 도돌려 줘.”
“일단 확인만 하고.”
“지지금.”
아다다의 얼굴이 붉어졌다.
“혀 짧은 미친놈. 확인만 한다니까.”
“뭐뭐라고?”
김사장이 화난 아다다를 보고 히죽거리며 비닐봉지를 뒤적거리자 아다다가 뛰어들어 잡아채려고 하는데, 김사장이 슬쩍 피하며 발을 걸어 아다다를 넘어뜨렸다. 아다다는 엎어지며 김사장 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김사장이 발을 털어 아다다를 떨어뜨리려고 하자, 이때 바바리가 비닐봉지를 채려다가 그만 봉지가 노인의 가슴에 쏟아졌다. 놀란 김사장 노인의 가슴에 있는 봉지를 집으려고 하는데, 노인이 어느 틈에 잡더니 등 뒤로 쓱 숨겼다. 여기서 물러날 김사장이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사장이 뛰어들어 노인의 팔을 꺾어 기어이 팔을 앞으로 꺼내 비닐봉지를 잡아당겨 통장을 뺐었다. 비닐봉지가 반으로 찢기며 통장이 김사장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김사장이 근처에 있던 각목을 꼬나들고 일어나 덤비려고 하는 아다다와 바바리에게 한 대씩 후려갈겼다.
“정신 차려 이놈의 자식들아, 지금 죽을 때까지 길에서 살고 싶은 거야. 엉,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라고. 자자, 진정을 하고, 나를 믿어. 나 혼자 가질 생각이면 더 악랄하게 했을 거야. 응, 진정하라고. 아다다, 너 그대로 서 있어, 이건 눈물 징징 흐르는 연속극이 아니야,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해. 이 통장만 있다고 돈이 되는 게 아니야. 비밀 번호가 없어. 응, 이제 시작이라고.”
바바리는 그 말을 알아듣고 아다다를 진정시켰다.
“그래, 아다다 흥분하지 말자. 김사장도 생각이 있을 거야. 일단 어떻게 하나 지켜보자고.”
아다다는 그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아다다가 진정을 한 것을 확인하고 김사장도 각목을 버리고 통장을 확인하려고 했다. 김사장은 가로등 아래로 가서 흥분되는지 킥킥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김사장이 통장을 펼쳐들고 읽으려고 했으나 어둡고 눈이 침침해 작은 숫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이거 무슨 자야. 삼백이야, 삼천이야? 어휴 어두워!”
김사장은 두 손에 꽉 쥐고 바바리 앞에 내밀었다.
“글쎄 공이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잘 안 보이는데.”
“이런 너도 노안이냐? 아다다 이리와 봐! 이거 공이 몇 개야, 여섯 개야 일곱 개야?”
아다다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했다. 어둡기도 했지만, 그도 눈이 나빴던 것이다. 가까이 있는 게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쪽에서 젊은 여자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나타나 노인 쪽으로 가서 살아있나 살펴보았다. 여자를 본 김사장은 바바리와 아다다를 밀치고 여인을 불렀다.
“어이, 청바지 입은 아가씨, 이리와! 이것 좀 읽어주지.”
“예?”
“이것 좀 읽어달라고. 돈이 얼마나 되는지?”
여인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혹시 아가씨, 경찰에 신고했어?”
그 말에 김사장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시면서 둘러보았다.
“예.”
“이런 염병할, 그게 아니라니까? 아가씨 우리는 지금 이 아저씨를 도와주려는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큰일 났네.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야, 바바리, 아다다 경찰이 오면 다 틀어진다. 빨리 아저씨를 리어카에 실어라!”
김사장은 통장을 자기 주머니에 넣고 리어카를 잡아 노인 쪽으로 댔다. 둘이 노인을 일으켜 리어카에 싣고 급히 오목교 쪽 골목으로 숨었다. 김사장이 길에 서 있는 여인을 보고 손짓을 하며 말을 했다.
“아가씨 돈 벌고 싶으며 이리 따라와, 이것 좀 읽어줘.”
“예?”
“우리는 강도 아니야, 그냥 일행인데, 노인이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경찰이 오면 골치 아프니까 이리 와서 이것 좀 읽어 줘봐! 1억인지 2억인지.” 김사장이 자신의 가슴을 탁탁 치며 여인을 불렀다.
“억이요?”
여인이 머뭇거리는 사이 영등포 쪽에서 경찰차가 불을 반짝이며 시장 길로 들어서자 여자가 경찰차가 오는 쪽으로 나아갔다. 여자가 나가는 동안 김사장은 골목에 숨고 여인만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잠시 후 차가 다가오고 여인에게 신고를 했냐고 물었다. 여인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바보가 아닌 이상 말을 해 줄 수가 없는 거라, 그래서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도림천 쪽으로 갔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경찰은 상황을 더 물어보니, 여인은 자신이 오해한 것 같다고 말을 하고 자세한 것은 어두워서 잘 모르겠다고 하니 경찰은 서로 무슨 말인가 나누더니 차를 끌고 도림천 쪽으로 사라졌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김사장과 바바리 아다다는 안도의 숨을 쉬며 리어카를 끌고 가로등 아래로 모여들었다. 가로등 아래서 리어카를 한쪽에 세워두고 넷이 머리를 맞대고 통장을 펼쳐들었다. 여자는 통장을 슬쩍 훑어보았다.
“얼마야?”
김사장이 여인을 보며 재촉을 했다.
“말하면 얼마 줄 건데요?”
여자는 당돌하게 김사장을 보면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했다.
“엄마가 아파서!”
여인이 재차 끝이 수그러지는 말을 하는 꼴이 심히 맹랑하기 짝이 없었다. 그 말에 셋 사람이 실소를 터트리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냐고? 숫자를 읽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아가씨 초등학교는 나왔겠지?”
김사장이 통장을 가슴에 집어넣고 말을 했다. 여인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리어카를 노인을 쳐다보았다.
“저 아저씨는 어떻게 할 건데요?”
“아가씨, 저 노인은 곧 죽을 목숨이요.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아가씨가 살릴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뛰어난 의사가 와도 아마 죽음을 막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굳이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아저씨가 아저씨 뜻에 따라 조용히 눈을 감게 해주는 것뿐이지. 지금 저 아저씨의 유언을 들어줄 거야. 법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게 아저씨의 유언이지. 아저씨를 데리고 가다가 우연히 이 통장을 발견한 거야. 아가씨가 법원까지 같이 가고 돈을 찾는 것을 도와주면 아가씨에게도 돈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 같군. 어차피 우리도 공돈이니 말이야.”
김사장이 팔을 벌려 바바리와 아다다의 어깨에 두르고 흔들었다. 그리고 별로 멋있지도 않고 듣기 좋은 웃음도 아닌 돼지 끌끌 거리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 돈 아저씨 돈 아니잖아요?”
“할거야, 말거야? 염병.”
여인이 잠깐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자 김사장이 옆에 있는 각목을 살며시 집어 들었다. 그 각목이 어떻게 쓰일지는 여인의 말 한마디에 달렸다. 여인의 얼굴에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꿈틀거리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역력했다. 여인이 달리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무가 딱딱해 보이는군요.”
“말이 많아, 아무도 없는 길에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말이야. 아가씨는 현명한가? 바보인가?”
김사장은 히죽 웃어 보이며 나무를 건들거리며 여자에게 바짝 다가섰다.
“3억 들었어요.”
그 말에 김사장은 나무를 놓고 통장을 다시 한 번 쳐다보며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바바리와 아다다는 귀를 의심하며 재차 물었다.
“3억이요.”
여인은 다시 한 번 또렷하게 말을 해 주고는, 측은하듯 노인을 쳐다보았다. 김사장이 노인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몇 발 떨어진 곳에서 아다다와 바바리는 두려움과 느닷없이 주어진 기회로 기쁨에 떨었다.
“이이젠 비비밀번호가 있어야 하하는데, 아아저씨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을 거거야. 법원까지 데려다 주주지 아않는다면 말이야.”
“김사장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데. 저 악귀 같은 인간이. 시부랄 것.”
“고고문을 하하겠지. 그그런데 아아가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지집에 가지 않고 말이야!”
“저 김사장이라는 분이 돈 액수를 알려주면 가지 돈도 준다고 했어요.”
여자는 대담하게 눈빛을 반짝이며 조금 전의 두려움은 애초 있지도 않았다는 듯 낮고 가늘게 이야기를 하더니 함께 갈 얼굴로 한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김사장은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듯 노인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리어카를 잡고 끌기 시작하고 뒤를 돌아보며 아다다와 바바리에게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바바리와 아다다는 얼떨결에 놀란 표정으로 의외라는 듯 웃기는 표정으로 빠른 걸음으로 김사장이 부르는 쪽으로 달려갔다. 여인도 잰걸음으로 따라가기 갔다. 오목교 다리를 건너는 동안 넷은 몸을 움츠렸다. 노인은 더욱 경련을 일으키며 팔과 다리로 가슴과 배를 감싸고 부들부들 떨었다.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김사장은 오목교를 건너더니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목동 사거리를 거쳐 법원 쪽으로 꺾어지는 게 났다고 판단을 했는지 곧장 가려고 리어카를 이끌었다. 사거리에 도착해 꺾어지려 하자 노인이 기침을 심하게 하며 눈이 뒤집히며 손을 흔들었다.
“주죽으려나 봐!”
아다다가 노인의 손을 잡으며 김사장을 둘러보았다. 김사장도 법원 쪽을 쳐다보았다. 김사장은 아다다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아저씨 비비밀번호는요?”
아다다가 낮은 소리로 급한 마음에 아저씨에게 물었으나 아저씨는 신음하며 고개를 돌렸다. 김사장이 아다다 턱을 어깨로 치며 끼어들어 아다다가 가까이 오는 것을 막고 어깨를 밀었다.
“빨리, 법원으로 가자!”
김사장은 곧 죽을 것 같은 노인을 태운 리어카를 끌고 잰걸음으로 뛰다시피 끌고 법원 쪽으로 뒤뚱뒤뚱 오리 궁둥이를 흔들며 끌었다. 세 사람도 자기 밥값이라도 하려는 듯 김사장을 도와 리어카를 밀며 따라가는 꼴이 어둠 속에서 우울한 그림처럼 그려졌다. 그들의 작은 모습 위로 멀리 서서히 법원의 그림자가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버법원이야!”
아다다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더욱 빠르게 걸었다. 리어카는 법원 측면이 보이는 건물 반대편 으슥한 길목에 세워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노인을 둘러 싼 이불을 벗겨 냈다. 노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렸다.
“아저씨, 법원입니다.”
김사장이 노인이 잘 보이게끔 리어카를 돌려세우는 동안 다른 이들이 노인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리어카와 노인을 잡았다.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법원을 쳐다보았다. 노인은 고개를 끄떡이며 이불을 끌어 턱까지 덮고 부르르 떨었다. 노인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김사장이 귀를 가까이 대었다. 노인이 손가락을 올려 공중을 가리키며 무엇인가를 말하였다. 김사장은 노인이 부정확한 발음을 말하자 따라 읊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건물 안까지 데려다 달라고, 이런 노인네가 미쳤나? 아까 내가 그랬다고 화가 풀리지 않았나. 안 돼. 여기까지야. 더 어디를 간단 말이야. 경비가 그냥 서 있는 줄 알아. 여기까지 데려다 줬으면 할 일 다 한 것 아니야. 길바닥에서 얼어 죽는 것이 불쌍해 여기까지 데려다 줬건만, 고작 이따위 말로 약을 올려.”
김사장이 리어카를 발길로 걷어차며 화를 불같이 냈다. 그리고는 죽이겠다며 리어카에 누워 있는 노인의 목을 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노인이 숨을 쿨룩거리며 몸을 비틀자 보고 있던 아다다와 바바리가 그의 손을 떼어 놓았다. 김사장은 손을 놓고 자신의 화를 삭이기 시작했다. 두어 바퀴 제자리를 돌며 숨을 몰아쉬며 바바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손으로 막고 다시 노인에게 다가가 간절하고 애절하게 말을 꺼냈다.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으로 처참하게 사정을 하는 꼴이었다.
“아저씨, 죄송, 죄송해요. 자, 생각해봐야. 법원에 가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병원에요. 경찰서 앞에 던져 줄까요. 어디를 원해요. 집이요? 자식들이 있나요? 어디로 데려다 드릴까요. 말만 하세요 다 해 드릴 게요. 근데 아저씨가 여기를 원했잖아요. 아저씨가 여기에 살다가 쫓겨났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설마 서초동 대법원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겠죠. 네? 네? 어디요. 천천히 말을 하세요. 지옥이요. 이런 망할 노인네가 지금 장난하나. 나를 가지고 장난을 해! 그래 그럼 직접 보내드려요! 그냥 돌로 찍어 버릴까요? 지금 사람을 놀리는 겁니까? 아, 아저씨, 제발 저저저 좀 도와주세요. 이젠 돌이킬 수가 없어요. 저를 부랑자에서 살인자로 만들지 마세요. 지금까지 잘 지내왔잖아요.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어디요? 다시 말씀해보세요. 장난 아니고요. 그래 뭐라고요? 예, 예, 예? 아저씨? 아저씨가 여기를 원했잖아요, 이곳으로요. 근데 저 안으로요. 어떻게요? 정문으로 이 몰골로 들어가라고요. 날이 서서히 밝고 있는데, 저기서 지금 이놈들 뭐하나 보고 있는데요. 그리고 놈들이 우리를 잡아 정신병원에 넣을 때쯤 아저씨 숨이 넘어가고 난 후, 번호를 알려 주실래요. 그렇게 못 합니다. 안에 들어가면 번호? 아니 그럼 필요 없어요. 그냥 여기서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저씨 목을 졸라 버릴게요. 예. 돌로 각목으로 머리를 깨버릴까요? 아저씨가 선택하세요. 법원 앞에서 피를 흘리면서 머리통이 깨진 채 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예? 이것 보이세요. 이 각목, 몇 대면 아저씨가 갈 것 같아요. 자, 더는 저를 돈에 환장한 놈으로 만들지 마세요. 제발, 아저씨, 번호를 알려 주세요. 아시잖아요? 자요. 자, 말을 하세요. 아니면 한 대 맞던가요. 딱 한 번 기회를 드리죠.”
“아유, 시부랄 놈의 노인네가, 번호를 냉큼 말해 주지 않고. 한 대 갈겨버려. 이리 줘 내가 아주 보내버리게.”
그때 이 광경을 애타게 지켜보던 바바리가 갑자기 돌변해 미친개처럼 뛰어들어 침이 튀는 말을 하더니 김사장의 몽둥이를 빼앗아 노인을 쳐 죽일 태세를 취하였다.
“가만있어 봐!”
김사장이 바바리의 허리를 잡고 채서 뒤로 던져버리자 어이쿠 하면서 나가떨어졌다. 김사장은 각목을 놓고 노인을 애절하게 쳐다보았다. 주먹을 쥐었다 풀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을 했다. 숨을 몰아쉬고는 차분하게 말을 하였다.
“아저씨, 자, 돈 때문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아저씨가 그런 돈이 있는 몰랐잖아요. 아마 아저씨가 끝까지 비밀을 지켰다면 지금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저 바바리나 아다다가 그냥 영등포역에 놔두자고 했을 때 차라리 그래 버릴 걸 그랬어요. 그럼 이런 모진 꼴 서로 안 봤잖아요. 저 두 친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저 혼자라도 이곳까지 데려오려고 했잖아요. 지금도 제 진심입니다. 아저씨가 원하신다면 저기 안으로 업고 갈게요. 하지만, 불가능해요. 가다 잡혀요. 저기는 법원이에요. 법원 알잖아요.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는지 아저씨가 모르시나요? 말로 통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도덕이 통해요? 진실이? 우리말을 귀 기울까요? 아저씨, 예. 아닌가요. 그래도 아저씨 때문에 여기까지 왔잖아요. 아, 아저씨 영등포에서 숨을 거둘 게 뻔한 것 여기까지 데려다 준 보답을 해 주세요. 제발, 아저씨. 비밀번호를 놔두고 가세요.”
그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김사장의 어깨를 매만졌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자 김사장이 노인의 걸걸거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고개를 숙이었다. 노인은 차분하게 안간힘을 쓰며 그가 원하는 것을 들려주었다.
“8, 8라고 아예, 1이고, 3, 그다음에 3라고요. 예 813이고 한 번만 더, 예예 6이라고요. 8136이요. 틀림없습니까? 정말이에요. 아저씨,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부디 천국으로 가세요. 그곳에서는 행복하실 겁니다.”
노인은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며 차츰 숨을 뿜는 양을 늘여갔다. 큭큭 거리며 길게 숨을 내 뿜기를 몇 번 더는 숨쉬기가 한계에 다다른듯했다. 김사장은 어떡할까 망설이다 노인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김사장은 진실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노인은 김사장의 시선을 외면한 채, 그의 말대로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는 눈이었다.
김사장은 주변을 살펴보더니 법원 정문에 있는 금전출납기가 있는 은행창구로 급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바바리가 겸연쩍은 듯 둘러보더니 아다다에게 같이 안 가는가 묻고는 아다다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흔들자 알았다는 듯 끄떡이고 몸을 돌려 김사장이 있는 쪽으로 무단으로 길을 건너갔다. 노인에게는 여인과 아다다만 남아 있었다.
“왜, 왜 안 따라가세요?”
아다다는 몸을 움찔하며 갈까 말까 망설이는 여인을 보고 말을 했다.
“나나는 됐어요. 아아저씨하고 함께 있으려고요. 기김사장에게 가가 보세요.”
여자는 망설이다 몸을 그쪽으로 돌리고는 미심쩍은 눈길로 김사장을 바라보았으나 결국 김사장이 간 쪽으로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아다다는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아저씨를 리어카에서 끌어내려 둘러업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노인을 법원 쪽으로 가서 울타리 아래 길옆에 뉘었다. 노인은 누워 법원의 차디찬 건물을 올려보더니 이내 서서히 눈을 감았다. 아다다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 잠깐 묵념을 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노인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었다. 손에는 몇 가지 물품이 쥐여있었다. 아다다는 무릎을 꿇고 노인의 손을 잡았다. 노인의 손과 아다다의 손이 꼭 잡고 떨어줄지 몰랐다. 노인은 눈을 부르륵 떨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아다다는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어깨에 묻고 무단으로 길을 건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 정문 쪽에서 경비 둘이 무슨 일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주고받으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명이 오는 새벽 하늘에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법원이 서서히 회색빛으로 물들어 갈 때, 아다다는 차츰 눈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김사장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법원 뒤쪽으로 오자 그곳에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막 떠나고 이었다. 김사장이 그 광경을 보고 멈추어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의 뒤에 아다다와 여인이 서 있었다.
“아다다는 어디에 갔어? 시부랄 것.”
“도망갔겠지. 이런 낭패가 있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김사장의 얼굴이 죽을병에 걸린 노인처럼 얼굴이 노랗게 변해갔는데 보는 사람도 놀랄 지경이라 그는 안타깝게 때 묻은 손에 반으로 구겨진 통장이 꽉 쥐여 있었다.
“어떻게 카드와 도장을 흘린 것을 못 본 거야. 저 구급차 어디로 가는 거야?”
김사장과 바바리 여인은 멀거니 차가 사라지는 곳으로 쳐다보았다.




3
아다다는 안경을 쓰고 퇴원 서류를 작성한 다음 안경을 벗고 차를 가지고 오는 원장 수녀를 바라보고 웃어 보이니, 그의 등 뒤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검은 외투를 입은 옷깃 안에는 흰 셔츠가 빛나고 있었다. 아다다의 흐뭇한 웃음이 곧 원장수녀도 기분이 좋은지 같이 웃어 주며 커피가 건네주었다.
“신앙이 진정으로 있으시다면, 아마 있으시겠지요, 그래서 기적이 함께 하신 겁니다. 성모님은 늘 가난한 자와 믿음이 있는 자를 보살피고 계시니까요.”
“그그럼요. 가감사합니다.”
아다다는 차를 받아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아 한 모금 뜨거운 차를 마셔 보았더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역 기둥에 앉아 수많이 스쳐가는 사람들이 무심히 바라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소리와 스피커에서 열차 도착과 발차 시각을 알리는 소리, 서로 부르는 소리와 사람과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과 도착하는 사람, 그리고 무심히 흐르는 시간과 시간들 좁고 넓히지는 공간과 공간들, 빛의 산란과 먼지, 그곳에 길게 쳐다보고 있었다.
“서류는 다 작성하셨나요?”
“아, 예. 여여기.”
“소영이는 축복을 받은 아입니다. 영특하고 밝고 아름답습니다. 다시 아빠의 품으로 간다니 제가 다 눈물이 나는군요. 성모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가감사합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젊은 수녀와 아다다의 딸 소영이가 원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두 부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소영이가 달려와 아빠를 부르며 안기었다. 2년 만에 이루어진 부녀의 상봉을 무슨 말로 표현할 것인가! 헤어진 게 꿈이었던지, 다시 만남이 꿈이었던지 아다다와 딸 어린 소영이는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속으로 맹세를 했다. 상봉을 지켜보던 원장수녀와 젊은 수녀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기부도 해주시고 그야말로 성모님의 은총입니다. 달리 무슨 말을 할 수가 없군요.”
원장은 복도를 지나 운동장에 서 있는 승용차가 있는 곳까지 가면서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했고 운동장에는 눈이 내려 승용차 위에 쌓이고 있었다. 아다다는 소영이를 태우고 다시 한 번 악수하고 차를 타고 보육원을 빠져나오는데 운동장에 자동차 바퀴 자국이 까맣게 그어졌다.  
“아마 복권이 당첨되었을 거야!”
원장 수녀가 손을 내리며 말을 하자 젊은 수녀가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를 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사람의 운명이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


갈대의 노래
갈대밭에 난무하는 저 바람은 누가 일으킨 것인가? 바람은 흔적이 없고 그림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나를 부르고 무엇을 시키는가? 태양은 하늘에 박혀 있고 땅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그 어떤 바람이 갈대밭은 휘감아 지나가는가? 위선과 가식, 속임수와 폭력을 진리수호의 이름 아래 거침없이 휘두르는 바람의 주인은 태양을 등지고 서서 갈대밭을 짓누르지 못해 안달하는데, 너의 몸을 감은 그 찬란한 옷가지는 태양을 가리지 못하고 제 몸 하나 간수 못 하는 넝마에 불과하니 이내 너의 기름진 몸이 타올라 흩어지는 재가 되어 갈대밭 위에 뿌려질 것이다. 마른 갈대는 긴 겨울을 버티고 새싹이 자라는 봄이 되면 옛일을 기억하게 되리라. 지난겨울 위선과 가식 속임수를 진리처럼 떠들고 칼을 휘두르는 자들이 있었으니 불 바람을 일으켜 태양을 등지고 만물의 주인행세를 했었다고, 자,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어보렴, 그때의 넝마집단들은 자기도취에 빠져 들쥐처럼 휩쓸며 다니며 풀뿌리를 갉고 또 갉아 황무지로 만들었건만, 여전히 갈대는 흔들리고 그 그림자는 무겁고 깊으니 새로이 들녘을 뒤덮고 말았다고. 가식과 위선 폭력의 수호자들은 습기 찬 둑에 번성하는 곰팡이처럼 습기 찬 바람 따라온 들녘에 번져 갔지만 결국은 태양을 가려 빛을 읽고 진리를 염원하는 작은 불꽃으로 너무도 쉽게 불에 타 휘황찬란한 탐욕스런 금빛 비단 옷깃을 태우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으니, 그 누가 자멸의 길을 누가 슬퍼하고 누굴 탓할 것인가를. 두려움만큼 허망한 것이 없고 공포만큼 헛된 것이 없음을 살면서 늘 확인하고 확인하니, 갈대밭에 나부꼈던 넝마의 주인이여, 너의 묘지에 비명을 너무 요란하게 썼구나! 끝을 알았더라면 헛된 힘을 삼가고 좀 더 갈대 앞에 자신을 낮추고 자숙했을 것을. 재가 되어 날리며 갈대뿌리 사이에서 사라질 때는 이미 늦은 것을.

땅따딱 딱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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