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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공구통과 밥통
 칼럼니스트  | 2008·12·11 00:09 | HIT : 2,169 | VOTE : 235 |
아침에 30층 작업장으로 올라갈 때 연장을 꼼꼼히 챙겨 공구함에 담는다. 연장 하나 없으면 30층을 오르내려야 하니 잘 챙겨야 한다.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다. 다 쓰고 난 하얀 플라스틱 페인트통을 주워 전동공구며 잡자재, 전깃줄과 손공구를 담고 호이스트를 기다린다. 나도 한통 가득 연장을 담아 전깃줄을 어깨에 걸고 안전띠 매고 노란 안전모에 보안경 걸쳐 쓰고 호이스트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피워 댄 담배 연기가 온 계단에 자욱하고, 나는 연장통을 깔고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앞줄 젊은 전공들이 월급을 타면 술을 마시자는 둥, 노래방을 가자는 둥, 컴퓨터를 물려주겠다는 둥, 대화를 나누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었다. 나는 노동자의 글쓰기가 뭔가를 고민하며 늪지대와 같은 질문의 불분명함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관련 단어와 사람들의 말, 글들이 머릿속에 좌우로 나타나 서로 얽혔다 풀어졌다. 실내악처럼 들리는 잡담과 낮게 깔리는 호이스트 기아물리는 소리가 가까워 오고, 나의 심장은 깊은 고뇌에 쿵쾅거리며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닭장 차 같은 호이스트를 탈 수가 있었다. 족히 오십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른쪽 구석 의자에 앉아 조종간을 붙잡고 있었다. 누군가의 연장통이 들어가자 아주머니가 잡아당기며 안쪽으로 더 들어오라며 한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연장통 위에 발을 얹었다.

내가 이 현장에 와서 건물 외벽에 붙은 호이스트를 타고 30여 층까지 오르내리는 게 익숙해질 무렵, 두 달이 넘도록 수많은 건물을 쳐다보고 또 보고 또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얼마 전, 문득 증권거래소 쪽에서 울려오는 코스콤 아침집회 소리를 듣노라니, 그야말로 문득이었다, 저 수많은 증권가 건물과 고급 아파트들, 그리고 하나같이 건물 위에 그려진 로고들을 보면서, 이 모든 건축물에 소유자들이 존재한다는 극명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단 한 조각도 임자 없는 물건이 없다니. 번호가 매겨져있고 칫수가 정해진 모든 것이 말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여의도의, 한강 너머의 모든 건축물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당장 딛고 있는 이 땅마저도. 그때, 반장인 김씨가 와서 뭐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오늘 내가 비로소 진정한 무산자임을 깨달았어. 이 세상에 내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 놀랍지 않아, 어떻게 이럴 수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무산자, 마치 속이 텅 비어 버린 종이 인형 같은 무소유자, 그리고 족보도 없는 무정규직, 나는 그 무엇의, 혹은 그 누구의 돌려쓰는 소유물이었던 것이다. 매일 반복되어야 하는 이 노동도 결국 전혀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침햇살과 바람과 먼지가 나를 유유히 통과하고 있었다.

호이스트가 한 층씩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무산자란 문학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하는, 불편한 가슴을 안고 거의 제일 나중에 내릴 차례임으로 뒤에 서서 내리는 사람들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내 발밑에는 각반을 찬 안전화 사이로 종일 쓸 공구통이 끼워져 있었다. 차츰 호이스트가 비워지고 주변의 낮은 건물들 옥상 위의 냉각탑이나 실외기들, 녹색 헬기장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한강이 도시를 둘러 흐르고 여의도 광장에는 텅 비어 있었다. 호이스트가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대부분 사람들이 내리고 나와 서너 명만 남았다. 아주머니가 연장통을 발로 디디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연장만 있어 어떤 직종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 옆에 있는 젊은 친구들 것 같은데 휴대전화만 보고 있어 아닌가 싶어, 누가 놓고 내렸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자, 호이스트 아주머니가 연장통을 발로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거 누구 밥통이야!” 그때, 옆에 있는 젊은 친구 하나가 놀라며 연장통을 붙잡아 끌어 자기 거란다. 아주머니 말에 사람들이 와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밥통이라니, 그렇게 정확한 말을’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내렸을 때, 나의 고민을 호이스트 안에서 잃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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