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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뭐라, 환란이라고?
 칼럼니스트  | 2008·10·09 06:49 | HIT : 2,010 | VOTE : 185 |
   환란이라? 이 공포는 어디서 오는가! 분명 내 돌아가신 아버지의 땀 흘린 노고를 순수하게 여기는 고로, 그 이름을 걸고 나와 내 친구들이 만든 것이 아님을 맹세하노니, 이 붉고 검은 저승사자의 망토같이 요란하게 펄럭이는 예지의 공포는 어디서 오는가? 미친 소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흰 거품 같은 파도가 몰려오는 저 바다 건너 동풍을 타고 왔나, 그것은 이유일 뿐, 섬 아닌 섬인 이 땅 내부에 노동을 다스린 시장의 불순물이 쌓이고 쌓여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성수대교 교각처럼 무너지기 직전인가? 평생 대를 이어 땅을 파왔고, 땀을 흘려 시멘을 비벼왔던 내가 알 수가 있나! 그저 두렵다고 이빨만 마주칠 뿐.
어쨌든,
작은 흡혈귀들이 공포에 떨며 찍찍대며 정치판을 아수라장 만들고, 시장이라는 능멸자들이 서로 목을 누르고 심장을 도려내어 맨손으로 움켜쥐고 날로 뜯어 먹는, 무수히 날리는 쇠파리들이 안개처럼 흐를 때, 그래, 어쩌면 이것이 기회일 수가 있겠어. 그래 그래, 기대가 되는군! 10년 아니 100년 만에 왔다는, 떠나고 나면 늘 전설이 되어버린 검은 배가, 이물을 앞세우고 생각지도 않은 날, 느닷없는 새벽에 뭍에 올라와 전염병보다 무서운 공항, 공항병으로 생명을 갈취해 가는 것 같이, 선지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된 이 시기가 내 고된 운명의 시계를 돌려 놀 기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옛말에 ‘거리가 피로 물들 때, 주식을 사라!’했는데, 조금 더 기다렸다가 보따리 하나 들고 슬슬 걸어 다니면서 휴지조각처럼 뒹구는 주식이나 채권을 줍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느긋하게 강물에 떠다니는 망연자실 황망한 눈을 뜬 시체들이 물고기 밥으로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거야. 노인들은 자빠지고, 여자들이 흐느끼며, 아이들이 신음하는 긴 밤이 지나면 곧 날이 밝겠지. 그때에 내 운명에, 내 후손의 영광이 될 밝은 그림자가 밝혀지고, 내 성씨의 커다란 나무는 초원에 거대한 뿌리를 내려 장구한 삶을 꿈꾸리라! 자,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려면 현금이 필요한데, 어쩐다! 처지가 궁색하여 돈 쓸어 담을 보따리조차 없으니, 그렇다면 마누라 족쳐서 야간 철야가 있는 휴대전화 껍데기 만드는 공장이라도 보내고, 초4 큰놈에게 난장이라도 깔아주어 자기 밥이라도 벌게 하고, 둘째 셋째 어린놈은 당분간 어머니에게 보내 쌀을 아끼고, 나도 밤낮으로 관리자를 상전 모시듯 굽실거리면서 일을 해야 해, 그래도 일이 없을 테니, 속을 다 빼내고, 남보다 서너 배는 더 일을 해야겠지. 숟가락 전쟁이거든, 걸리는 놈은 죄 쳐내면서 독하게 버텨내야 해. 정 안되면 전셋집을 빼내어 현금으로 만들고 당분간 처가와 보호소, 나는 어느 역사 그늘로 가서 눈비를 피해야 해, 발가벗은 채 3개월 언 땅에서 버티는 정신으로 말이지. 그래 이제 헤어져야 할지도 모르겠어, 아이들의 놀라 흐르는 눈물과 꼭 움켜진 손으로, 이 모든 게 꿈이라고 말하는 아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원하는 눈빛이 보여.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환란이 더욱 환란 같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때에 이르면, 날카로운 쇠붙이를 들고 능멸자들의 불야성을 이룰 강 건너 소돔으로 가야겠지. 땀내 배긴 핏물이 채 씻기지 않은 그들의 황금 더미에서 한 조각 취하고자 말이지. 그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말이지, 앉아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영혼들을 관망하며 잔치를 벌일 능멸자들의 열락에 든 소리를 들으며 처자식들 눈 뜨고 시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없지 않은가!


- 80년 도 초에, 중동전쟁으로 노동자들이 하루에 수백 명씩 김포공항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현장에서 일을 잡지 못하고 떠 돈 적이 있었다. 그때 광양제철소에 내려가 내 직종이 아닌 다른 직종 일을 하며 긴 겨울을 버틴 적이 있었다. 광양에 내려가기 전에 삼성전자 현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3개월 정도 누워 있었던 적이 있었다. 가족들이 있었음에도 반 가장으로서 절실하게 느낀 것 하나가 일을 못하면 굶어서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처절함이었다. 힘든 시기였다. 그 후 십 수 년이지나 구제금융시기가 되어 죽겠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그때 84, 5년 도가 더욱 어려운 시기였다. 구제금융 시기에는 일당이 반 토막 났어도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일도 없었다. 광양만에서 3개월 버티고 체불되어 올라왔을 때, 연대 앞에 살던 절친한 선배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셋방을 떠났고 그해 가을이 되어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광양에 간 후에 방세를 못내 구로동 어느 병원에서 피를 팔아 고향 내려가는 고속버스비를 했다고 했다. 일이 없어 거의 우울증에 걸리다시피한 어느 날, 머리가 돌았는지 강 건너 강남에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하던데, 젊은 혈기에 강도질이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과일 깎는 칼로 며칠을 사람 찌르는 연습을 하다 왼쪽 검지 손톱 살점이 툭 하고 베어져 피가 났다. 그때 그 피를 보면서, 아, 내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칼을 집어던진 적이 있었다. 설마 내가 강도질이야 했을 리 없지만, 멀쩡한 사람도 이런 마음이 불쑥 들 때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다 시대가 어려운 탓이었으리라!
요즘 새벽에 일어나 출근 직전에 인터넷을 켜고 뉴욕타임즈를 본다. 영어는 알파벳을 간신히 뗐을 뿐이나, 새벽부터 미국신문을 보는 이유는, 1면에 다우존슨 그날 시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 보니 빨간 글씨가 쓰여 있다. 어제 ‘바람의 화원’을 보고 자기 직전에 오르는 것을 봤는데, 한바탕 위아래로 요동을 치더니 결국 또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오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칼날은 떨어지고 있으며, 힘없는 개미들이 두렵게, 맨손으로 떨어지는 칼날을 잡은 자신을 상상하며, 나처럼 저 차트를 보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매일 점잖게 말을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100년 만에 온 금융위기가 이 정도에서 끝나버린다면, 150년씩 기업을 이끌어온 명불허전에도 간판을 내린 미국기업들이 얼마나 서운하고 억울하겠는가! ‘위대한, 그 이름 헛되지 않으며, 가장 존경하고 친애하는 각하, 말이 아닌 현실적 방안을 지도해 주십시오. 노가다도 매일 뉴욕타임즈를 본단 말입니다. 비록, 그림과 숫자, 차트, 그리고 거의 매일 나오는 오바마의 사진만 보지만 말이오. 차라리, 개인재산을 털어 놓으시겠다던가, 그래서 9억 이상의 모든 자산을 가진 자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납하도록 이끌어 내겠다는, 말 안 들면 모조리 세무조사 하겠다는 이런 멋진 방안을 왜 아니 만드시는지 참. 그래 곧 그렇게 하리라 믿기는 하지만.’
구제금융 직후, 환율 2000, 주가 200이란 말이 흘러다녔는데,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살아서 세 번째 어려운 생활을 직면하고 있는 꼴이다. 어머니는 사람이 살다 보면 세 번 난을 겪는다는 말을 하곤 하셨는데, 그 말이 아주 틀리는 말이 아닌 모양이다. 내 삶이 언제는 구제금융을 떠나보기나 했겠느냐마는, 두어 번 겪으니 새벽부터 마치 월드컵 경기를 생중계로 보는 양 관심을 두게 된다.
그나마 나에게 이 어려운 시기가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지나고 나면 사회가 변한다는 생각이다. 80년 중반을 거쳐,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였고, 구제금융 이후에 그토록 고대하던 정권이 바뀌었고,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진보정당이 생겨 내 통장에서 매월 만원씩을 빼가는 일이 생겼다. 이번에 실물경제가 재구성되는 상황까지 온다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올지 안 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흔들리는 지진계와 바닥에서 주식차트를 잡아당기는 중력 정도를 봤을 때는 분명 오리라 믿지만. 정치 지형도 바뀌지 않을까. 내 권리가 더욱 악화하던가 아니면 좀 더 여유로워질 것이다. 아마도 주식에 쓰는 말대로 표현하면 보합은 없을 것 같다.
이 엄중한 시기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 지지부진한 생계에서 못 벗어나고 할 일을 못 찾는 자신을 한탄하며, 저 암울한 구름 혹은, 맑은 바람을 안았을지도 모를 새벽을 맞이하는 기분이 영 쓰디쓰다. 하여간 오늘 개미들이 고통받는 하루가 될 생각을 하니 딱하기만 하다. 그중에 내 선배들이 몇 들어가 애를 태우다니. 그 돈을 차라리 노조에 후원이나 하지. 팔자에도 없는 주식을 한다고 거품을 물고 택도없는 소리를 하더니, 하여간 오늘 하루 일이 없어 쉬니 일찍 일어나 별 글을 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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