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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떤 출가
 최경주  | 2004·07·09 09:35 | HIT : 4,713 | VOTE : 200 |
올 여름 태풍 이름이 민들레란다. 태풍에 민들레가 날린다면 그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혹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해체된 자신의 씨알이 대륙으로 넘나 들 수 있다니. 이러한 태풍이 민들레를 멀리 날리기도 하고 가로수를 뿌리 채 뽑기도 하지만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내가 아는 박형이 그런 경우다. 그 형을 만난 지는 꽤나 오래 되었다. 얼마나 되었을 까? 정토포교원이 홍제동에 있을 때였다. 지금은 서초동으로 옮겼지만. 포교원에 놀러가 여러 법우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그 형에 네게 별 뜻 없는 질문을 하였다. 전부터 아는 사이였지만 얼굴만 알고 있었지 개인적으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어이! 자네는 일하는 것 말고 따로 하는 거 없나. 이를 테면,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낚시, 산행 같은 취미 말이야.”

두꺼운 안경이 뭉뚝한 코에 걸려있는 박형이 느닷없이 내게 말을 건넸다. 긴 탁자를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막 말을 끊겨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질문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해 줄까를 생각하다가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오호! 그림이라 그것 좋지. 그래 무슨 그림을 그리는데? 뭐 볼펜 그림이라고, 그래 그것 좋지. 뭐든 하는 것은 좋아. 볼펜이든, 연필이든 뭐든 해야 해. 사람이 일이 전부가 아니거든. 근데 볼펜으로 뭘 그리는데? 뭔가 그릴 것 아니야? 달마를 그린다고. 오호? 그래 그것 좋아. 달마라, 잘 안된다고? 물론 잘 안되겠지. 자네는 일하는 사람이지 화가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달마를 그리고 있는 것이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계속 그리라고. 진짜 달마가 될 때까지. 혹시 알아, 달마가 살아날지.”

그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 말이 그럴듯하여 뭔가 있어보였다. 달마가 종이에서 나와 살아 움직인다니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몇 장 그려 보지 못했으니까. 달마는 누구나 그릴 수가 있는 얼굴이다. 독특한 형상이니 비슷하기만 해도 달마인지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린다고 달마는 아니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몇 년 전 대학로에서 달마를 제대로 그리는 스님들을 본 적이 있다. 사월 초팔일 행사였는데, 행사장에서 스님 몇 분이 달마도를 그려 팔고 있었다. 스님들이 평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세밀하게 정성을 다해 그렸다. 그 전까지 나는 붓 하나로 재빠르게 순간적으로 그리는 줄 알았는데, 스님들은 몇 십 분을 그리고 있었다. 달마에 생명을 불어넣고 말겠다는 듯.

한 번은 친구 하나가 연말에 회원들에 연하장을 보낸다며 후리펜으로 달마를 일일이 그리는 것을 보았다. 그림이고 글이고 젬병인 그 친구의 낙서 같은 그림이었지만 달마는 달마였다.

달마도의 생명은 눈이라고 한다. 영혼을 뚫어 보는 달마의 눈 말이다. 제대로 된 그림을 보며 쏘아보는 그 눈이 당장에 그림에서 뛰쳐나와 내 멱살을 잡아 흔들 것 만 같은 얼음장 같은 서슬이 느껴진다.

달마는 그렇다 치고 그 자리에 멋진 여성도 한명 있었는데, 그 법우를 볼 때마다 혹시 내가 좋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드는 여인이었다. 흔히 말하는 사랑이 아닐까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녀가 좋았던 것은, 어려서 현장 생활을 하며 아는 것이라고는 현장이 전부인 내게 그 여성은 여러모로 대단해 보여서 일 것이다. 아는 것도 많고, 세상에 대한 열정과 고민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더구나 일류대학까지 나왔으니,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에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감히 현장 노가다가 어찌 이 아름다운 여인을 똑바로 내려다본단 말인가? 그런 여성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 젊은 막노동꾼에게 과분한 일이었다. 후에 그녀는 일없이 떠도는 내게 신문에 난 건설노조 소식을 스크랩 해주며 가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의 노조에 첫 방문을 했을 당시 그녀가 준 신문쪽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게 그런 관심을 가져주는 여성이 있었던가?

딱 한번 그 친구에게 실망한 일이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냄새 때문이었다. 한번은 친구와 둘이서 그녀가 상근 일을 보고 있는 절에 갔다가 점심을 함께 먹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할 때마다 입에서 참기 힘든 숙취가 난 것이다. 간밤에 얼마나 술을 마셨으며 대낮인데도 술 냄새 그렇게 날 수 있는가? 얼굴을 마주볼 수 없었다. 보수적인 내 성격에, 처의 숙취를 풀어주기 위해 국을 끓이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그녀를 우연히 조계사 근처에서 만나 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그녀는 내게 할 말이 있다며 한 말이 바로 결혼을 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국수에서 진한 술 냄새가 났다. 국수의 술 냄새를 맡으며 웃음도 나왔다. ‘여자도 남자와 다르지 않게 현명하며, 세상을 고민하고 논의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최초로 깨달게 해준 여인이 당신입니다. 그리고 술은 조금씩 드십시오. 숙취로 대중을 만나는 것은 실례니까요’라고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다른 말만 하고 헤어졌다.

당시에는 서울 일보다는 지방 현장을 다니면서 많이 할 때였다. 간간히 서울로 올라 올 때면 불교집안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어느 여름날 오후 친구 사무실을 갔다가 그 자리에 와 있는 박형과 그녀를 함께 만났다. 이미 그녀는 결혼 후 첫 아기를 낳고 일을 나온 상태였다.

“어이, 최씨. 나 일주일 후면 머리를 깎아.”

“어! 형, 정말이요. 스님이 된단 말인가요? 정말이야 뭐야?”

함께 있는 여성법우에게 물었다.

“정말이에요.”

이미 모두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옆의 그녀가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짧지만 박형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엘리베이터 무슨 일 때문에 유선배와 나 박형이 함께 탔는데, 그 안에서 혼잣말처럼 자신의 옛 여인을 만나 근황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둘은 고개를 끄떡이며 듣고만 있었다. 늙은 연극배우가 어두운 무대 한 가운데서 외로움이 극에 달한 독백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실실 말을 하는데, 듣고 있던 유선배와 나는 어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박형 이야말로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없는 불치병을 몸에 가지고 있었다. 결국 그 병으로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나하고 짐작을 하였다.

항상 밝고 돌발적인 질문과 거친 논쟁을 하는 형이었지만, 후배들에게는 가슴이 큰 형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박형을 볼 때면 마주앉지 못하고 홀로 돌려 앉아 있는, 등을 보고 상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형은 곧 죽을지 모른다는 선입관 때문인지, 말투가 워낙 강해서 그런지, 대할 때면 부담스러웠다. 나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말이야. 머리를 깎으며 내가 즐겨먹던 개고기를 먹지 못한단 말이지. 그래서 머리 깎는 날까지 개고기를 마음껏 먹고 싶은데 말이야. 오늘 점심은 개고기와 함께. 어때?”

난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몇 칠 후면 머리를 깎는다는데 거절할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나오지 않고, 나와 박형, 그리고 내 친애하는 여성법우와 함께 종로구청 근처의 영양탕 집을 찾아 갔다.

길 쪽에 전면이 유리창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점심을 먹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 몰려 다녔다. 식당 안은 한가했으며, 박형을 마주보고 그녀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신혼살림에 대한 이야기를 틈틈이 하였고, 박형은 머리를 깎아 진정한 무차별의 세계인 공산파를 만들겠다고 일장 연설을 하였다. 기백이 넘치고 막힘이 없는 박형을 보고 나는 그가 얼마나 살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였다. 검은 얼굴과 반짝이는 눈매, 박형을 볼 때마다 형이 지니고 있는 불치병에 대한 연관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암이었나? 아니면 그 조금 더 특별한 뭔가?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폐에 관련된 질환이라고 들었다.

나와 박형은 그다지 자주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 형은 포교원 청년회 소속이었고, 나는 그 산하 단체인 사회교육원 출신이었다. 포교원에 마실 다니면서 얼굴만 알았을 뿐 개인적으로 술이나 차를 마신적은 없다. 몇 번의 만남 모두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내가 곁다리로 끼이면서 얼굴을 본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그 형에 대한 독특한 신뢰가 형성되어 보였다. 가끔 이야기를 들으면 자주 모여 술이나 수련회등을 함께 다니는 것 같았다. 형의 말투는 거칠고 가시처럼 날카롭게 공격적이어서 내 정서는 아니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일부러 피하고 싶을 만큼 싫다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내가 아는 박형은 극히 일부분의 생활뿐이다. 그저 잠깐 잠깐 아는 사람일 뿐이다. 워낙에 성격이나 삶이 개성이 강해 그 몇 번의 만남이 한 줄기 매듭이 있는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다. 박형의 신변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그 주변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다.

박형은 공부에 꽤나 소질이 있어, 서울대에 입학을 하고 일 년인가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에 들어가 유학을 했다고 한다. 금속도장에 관하여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가끔 자기 전공이라며 금의 종류와 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국내에 들어와 직장을 다니다 병 때문에 그만 두고, 뭣 때문에 출가를 결정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깊은 자기고민이 없이는 선택하기 힘든 일인 것은 사실이다. 어찌 내가 그걸 짐작하겠는가!

형이 출가를 하고 나서 딱 한번 본적이 있다. 그 후로는 그 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몇 년이 흐른 뒤였다. 유선배가 홍제동에서 안국동으로 사무실을 옮겨 그곳에 놀러 갔는데 그날 그 사무실에 그 형이 와 있었다. 그 형 법명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법명이란 비슷비슷해서 어지간히 친한 스님 아니고는 구분해서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어이, 사이비 왔나.”

이층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붉으스레 머리를 깍은 얼굴과 승복을 입은 그 형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었다.

“어이고. 진짜 머리 깎으셨네.”

형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본래는 합장을 해야 하는데, 형은 내식으로 인사를 한 것이다.

옆에 있는 유선배가 한마디 했다.

“진짜라니, 그런데 스님보고 삼배 안하나?”

불교집안에서는 주변 사람이 출가를 하고 오면 삼배를 하는 관습이 있다.

“삼배는 무슨, 사이비에다 우리끼리, 근데 우리 개고기 먹으러 가야지.”

“개고기요. 스님이 고기를 드십니까?”

“삼라만상이 불법인데, 못 먹을 음식이 어디 있나?”

바로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형은 호쾌하게 말을 받아 쳤다. 자주 써먹고 있음이 분명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였든 스님은 알아 줘야 한다니까요.”

유선배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건강은 어떠세요?”

“건강 좋지. 좋아. 아주 좋아. 얼마 전에 산에서 아는 스님에게 ‘해*단’이란 환을 두 알 얻었는데, 불치병에 좋다고 하는 귀중한 약이라 그러더라고. 그걸 먹을까 말까 하다가 나와 비슷한 병에 걸린 스님에게 한 알씩 나누어 주었는데 후에 들어보니 많이 좋아 졌다고 하더라고.”

“스님도 한 알 드시죠.”

“죽고 사는 것이 다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갈등은 좀 했지. 근데 내가 먹는 것 보다 그 스님이 먹는 게 더 낳을 것 같더라고. 그때 마음이 그랬어.”

스님의 지나가는듯한 그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뭔가 내용이 있어 보였다. 삶이 보다 진지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럴 수도 있는 충분한 내용인데, 말을 하는 형 얼굴이 웃음은 지어 보였지만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불쾌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깊은 고뇌가, 어쩌지 못하는 인연의 넓고 깊은 강위에 떠있다고 할까하는 인상 말이다. 삶에 크게 집착하고 싶지 않는 느낌도 받았다. 집착이 아니라 병에 애걸하고 싶지 않았겠지.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그 형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그 후, 한 삼년쯤 흘렀나. 오랜만에 조계사 뒤 친구가 상근을 서는 청년회 사무실에 들렀다. 화창한 봄날 이었고, 청년회도 사람들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홍제동에 있던 포교원도 서초동으로 옮긴 후였을 것이다. 그 때가 90년도 중반이나 말쯤 되었다.

친구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였다. 사무실에는 친구와 봉천동에 사는 여성법우가 상근을 보고 있었다. 당시에는 제법 그럴 듯한 사무실이었지만 후에 재정문제로 갈수록 어려워 졌다. 지금은 상근을 섰던 남자 친구는 총무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봉천동 여성법우는 결혼을 해 지방에 살고 있다. 뭔가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튼 그건 후의 일이고 방문한 날 점심을 해먹고 설거지를 하고 차를 한잔 하면서 게시판에 걸린 여러 대자보나 사무실에 보낸 엽서나 편지를 읽다가 낯이 익은 편지가 눈에 띄었다.

절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편지였는데, 기억이 날듯 말듯 한 법우의 이름이었다.

“이 편지 주인을 내가 아나?”

“경주법우 모르셨구나. 그 법우 잘 알잖아요. 작년에 출가 했어요.”

성격이 활발한 여성법우가 차를 들고 다가와 그 친구의 출가한 장소와 때를 이야기 해 주었다.

“몇 년 만에 왔더니 많이 변했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자주 오시지. 그러니까 모르잖아. 그럼 그 스님 돌아가신 것도 모르겠네요.”

여성법우 이야기인즉 박형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여섯 명이나 출가를 했어요.”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큰일이 있었죠. 그 스님 돌아가실 때 신문에 났는데, 그것도 못 보셨구나!”

신문이라니, 모든 게 의아한 이야기뿐이다.

“지난 해 여름 태풍 불 때요. 청년회 법우들하고 스님하고 여수에 수련회를 갔었어요. 그런데 태풍이 불던 날, 스님하고 법우 넷이 밤바다를 보러 갔데요. 그때 해일이 덮친 거지요. 다음날 남은 여섯이 바다에 나가보니까 넷이 모두 바위틈에 죽은 채로 걸려 있었데요.”

“아!”

나는 차를 마시다 순간적으로 깊은 밤 마왕처럼 휘몰아치는 태풍 한 가운데 있는 나를 보았다. 비명소리, 천둥번개에, 거친 바람소리. 삶과 죽음의 무너진 경계, 그리고 불변 속에 소용돌이치는 변화의 절대 진리.

“여섯이 장례를 치르면서 다 출가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는 말이 있더니, 한명씩 출가를 했어요. 경주법우는 오랜만에 와서 몰랐구나.”

죽은 사람, 출가한 사람을 하나씩 말해 주는데 반은 아는 법우들이고 반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해일이 얼마나 큰지 본적은 없으나, 바위에 걸린 박형과 그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고, 산 사람들의 황망하고도 애절한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최근 친구 홍법우를 만났을 때, 그때 출가한 스님 한 분을 만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언젠가 해인사에 일이 있어 갔을 때, 점심 공양을 하려고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밥을 타는데 누가 탁자를 탕탕 두 번 두드리더라고. 가만 보니까 그 스님이야. 아마 해인사에 들어와 공부하는 중이었나 봐. 그때 묵언수행 중이었던 모양이었겠지. 별 말은 안 해도 우린 마주보는 눈으로 모든 것을 알 수가 있잖아. 그래서 그 양반 거기서 봤네. 지금은 출가한 사찰에서 촉망받는 스님이라고 하데. 큰 스님 한 분 우리 속에 나올 것 같아.”

“그래 밥은 많이 주던가?”

“여부가 있나. 듬뿍 담아 주었지. 푸하하!”

홍씨 침이 내 술잔까지 튀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다시 어찌 해 볼 수 없는 면회가 불가능한 지점이라는데 암담함이 있다. 어떤 사상이나 말로 그 차이를 없애거나 더 크게 벌일 수 있어도 한번 죽은 사람은 살릴 수도 살려서도 안되는 게 자연의 섭리다. 분명한 것은 산 사람의 뇌리에서 생전의 마지막 모습 그대로 사진 속에 찍혀있다.

내 지금 나이는 박형의 그때 나이보다 많다.

이 민들레 태풍으로 비가 오는 지금 죽은 박형은 그렇다 치고 출가를 한 여섯 스님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 런지. 우산을 쓰고 어디 산을 걸어가고 있을지, 혹 환속을 하고 속세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선방에 앉아 선 수련을 하고 있을지, 대중모아 놓고 법문을 펼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혹 가슴에 사무치는 화두 한 개씩 가지고 자신은 극한 상황까지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삶의 진지함이란 일정한 규격이 없어 어찌 보면 만만한 듯 보여도 전혀 그렇지가 않다. 꽉 짜여 진 사회 틀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여러 삶의 관계 속에서 숨 쉬는 영혼은 키나 몸무게를 재듯 쉽지가 않아 그 고민의 폭 또한 어림잡을 수도 없다. 누가 내 삶을 제단한단 말인가!

삶이란 무엇일까? 팔만 사천 가지의 답이 존재할 것이다. 간단한 화두 하나도 불덩이처럼 뜨겁기도 할 것이다. 가끔 지금의 내 화두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본다.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정리하기를 포기하기도 하지만, 내가 버린다고 내 화두가 나를 놔두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노동법이 화석화 되어 있는 현장이나, 빠듯한 가정 경제, 틈만 보면 공격해오는 나와 불쾌한 관계의 몇 명 사람들, 더딘 조직화, 어딘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충동, 미친 듯이 뭔가에 집착하고 싶은 욕구들. 같지 않는 것들에게 요구받는 경쟁들. 모두 내 그림자들이다. 해결하기보다는 떨쳐버리는 것이 더 쉬워 보이는 고민들이다.

박형이 이런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언젠가 홍제동 교육원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 늦게 일어난 적이 있다. 불상 아래서 여러 년놈들이 여러갈래로 뻣어 해가 뜰 때까지 늦잠을 잔 것이다. 청춘의 짧은 볕이 들 때만이 가능한 일들이다.

홍씨와 나, 박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 이야기를 하다, 홍씨가 제법 그럴듯한 말 하나를 했다. ‘저 불상 다 거짓이야. 무슨 의미가 있어.’ 그때 박형이 한마디 거들었다. ‘진짜?’ ‘그럼요. 잘 알잖아요.’ ‘그럼 부셔버려. 얼른. 그 정도 패기 없어.’ 나는 옆에서 부셔 버릴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부시는 날에는 손해배상하고 그 절에서 영구 제명이다. ‘형이 부셔요.’ ‘...’ 셋은 조금은 허전한 아침이었다. 그걸 어떻게 부신단 말인가? 지금도 홍씨와 나는 엄두를 낼 일이 아니다. 혹 박형이라면 과감하게 허상이라고 망치들고 덤빌지는 모르겠다.

‘힘을 내, 친구. 하고 싶은 데로 해. 마음껏, 최선을 다해. 죽으면 그것도 못해. 에이 바보.’

박형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형이었으니.

지금 종로에 가보면 예전의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조계사도 여러 모습으로 변했다. 간혹 인사동에 있는 ‘청강’이란 주점에나 가면 옛 사람들 소식을 들을 수나 있을까. 오늘 비오는 휴일 날, 박형의 옛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언제 어디서 옛 친구들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해 보면.

바보, 바보, 바보, 자꾸 박형의 웃음 섞인 그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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