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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위대한 만찬
 최경주  | 2004·05·31 03:50 | HIT : 4,510 | VOTE : 182 |
노씨는 다섯 살 아래의 부인과 고등학교 2, 3학년의 두 딸 있다. 노씨는 현장에서 다친 다리로 조금 절기는 했지만 일을 하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는 다친 다리로 받은 보상과 부인의 오랜 행상과 분식점등으로 번 돈, 무엇보다 노씨의 수완 있는 부동산 매매를 통해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그의 나이 오십을 막 넘을 무렵 양천구 신정동 네거리 근처에 4층짜리 주택을 올리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노씨에게 각막염이 생기기 시작했다. 늙는다는 것은 중고차와 같은 것이다. 한군데씩 돌아가며 고장이 나는 것이다. 여기 저기 고치다 보면 어느덧 폐차장 신세가 되어 있겠지. 더구나 세계적으로 노동 강도가 센 오늘 한국사회의 노동자니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미친 듯이 일하는 것이 미덕인, 자본의 야바위인 것을 모르는, 한반도를 이끌어온 중년의 노동 선배를. 오늘의 한국 사회는 가장 밑바닥의 건설노동자의 땀을 쥐어짜지 못해 안달이 났으니 노동일 이삼십년이면 고장이 잦아진다. 어디 몸뿐이겠는가? 가정을 보살필 시간조차 없이 전국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말년에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건설노동자인 노씨처럼 말이다.

어느 날 노씨가 병원에서 눈 한쪽을 치료하고 집에 와보니 집이 비어 있었다. 집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긴데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장사하는 부인이 아니던가? 하여튼 노씨는 느낌이 이상함을 느꼈다. 그날 밤 부인이 늦게라도 들어왔다면 그 기분은 잊어 졌을 텐데, 아주머니는 들어 오지 않았다.
후에 이리저리 알아보니 부인이 바보짓을 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보고 뭐라고 해야 할지. 늘그막에 사랑에 불을 붙었단 말인가? 허리와 배가 구분이 안가고, 얼굴 꾸밀 시간이 없어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녀는 어떤 젊은 놈과 눈이 맞아 도망을 간 것이다. 두 딸과 4층짜리 주택건물, 지금까지의 고생을 날려버리고 이제 살만한데 도망을 치다니.‘더 이상 무엇이 필요했단 말인가? 아둔하고 빌어먹을 여편네 같으니라고’ 노씨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누가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사고 친 어리석음만이 통탄할 노릇이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제사를 잘못 지냈나? 조상을 묻은 묘가 잘 못 되었나? 아니며 원래 사주에 이날 이런 일을 겪을 팔자였단 말인가? 어떤 액운이 덮치고 있단 말인가? 저주가 있나? 내가 잘못했나, 아니면 습관적으로 처가 바람을 피워 오지 않았을까? 하필 왜 이런 때 집사람이 그랬단 말인가?"
노씨의 분노로 눈은 잘 낮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씨는 쉬지 않고 현장에 출근을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씨에게는 빚이 있었다. 주택을 올리면서 얼마간의 은행돈을 빌렸는데 그 이자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노씨의 통장에 한 오천만원 있었는데 그 돈의 대부분을 자신의 처가 꺼내 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도저히 용서 할 수 없어 분노의 불길이 치솟기만 했다.
"이럴 때 일수록 침착하자! 인생의 시련이다. 여기서 나까지 무너지면 끝이다. 딸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침착하자! 침착. 일을 하다보면 잘못될 수가 있다. 흔히 있는 일이다. 잘못되었을 때 잘 생각해야 한다. 한번 오작은 세 번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얼마나 많은 세 번의 오작을 경험했나. 경험 있는 자는 절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집중, 상황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 어디서 잘못 되었고,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무너지면 안 된다. 술을 끊고, 담배도 끊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더욱 더,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미련한 여편네 하나에 내 인생, 남은 세 식구까지 망칠 수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마음을 더 여유 있게 가져야 한다. 이래봬도 월남 참전 용사 출신이다. 생사가 달린 문제다. 기분에 이리 처리 휩쓸리다 끝장이다. 이럴 수는 없지. 그럼, 자! 집중이다. 집중"
노씨는 문득 문득 뿜어져 올라오는 용암 같은 분노를 자제 할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잤다. 현장에는 한 달 내내 만근을 하였다.
생활을 잘 다스림으로서 노씨는 잘 견디어 나갔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심부름센터를 통해 자신의 처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돈이 좀 들기는 했지만 도저히 그냥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기는 힘들었다. 뭔가 확인을 하고 싶었다. 사실을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리 저리 수소문도 해보고 알아보니 부인의 행방을 대충 알 수가 있었다. 봉천동 어느 구석에 단칸방을 얻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은 안 했지만 주소까지 손에 쥘 수가 있었다. 노씨는 마음이 한결 수그러들었다. 왠지 안심도 되었다. 아예 덜떨어진 처가 어느 섬이나 어느 촌구석에 처박혀 인신매매되었거나 죽어 자빠져 있는 것보다 살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처가 집을 나간지도 일 년쯤 지난 무더운 8월 여름 노씨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동네사람들의 호들갑 때문이다. 삼층 주택을 소유한 주인이 혼자 생활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놔두지 않았다. 비록 노동일을 할지언정 돈은 좀 있고 볼 일이다. 곧 그는 동네 사람의 소개로 한 여자를 집안에 들이게 됐다. 혼자된 여자였는데, 나이가 사십 중반쯤 되었다. 첫 인상은 내키지 않았지만 얼떨결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함께 사는데 어떤 형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여자가 보따리 몇 개 싸들고 집에 들어 온 것이 새살림 전부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그녀와 딸들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 딸들을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었는데 딸은 고사하고 그녀는 문제가 좀 있었다. 그녀는 노씨가 일 나갈 때 새벽밥을 챙겨주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아이들의 뒷수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큰 딸의 성적으로는 대학 진학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도시락은 싸 주어야 하는데 그녀는 자기 아침밥도 챙겨먹지 못했다. 그녀가 노씨 집에 와서 하는 일은 마지못해 하는 가사노동과 항상 늘어지게 자는 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는 연속극이 전부였다. 또한 전화세는 평소보다 세배로 나왔다. 무더운 여름 세탁기에 빨래는 썩어가고, 주방에 음식찌꺼기에는 벌레 세상이었다. 그녀가 혼자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가 집에 온지 한 달 만에 노씨는 그녀를 달래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와 헤어지기로 결정이 된 날 그녀는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눈물을 쏟으며 푸념과 욕설, 저주를 끝도 없이 남발하였다. 뒷방에서 수험생 두 딸과 노씨는 난처하게 서로를 바라보면 이 밤이 빨리 가기만을 고대하였다.
사람이 살면서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가는 두 번째 처 아닌 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보따리를 싼지 삼일도 안 되어 그녀의 전 남편이라는 놈이 밤늦게 공갈을 치는 전화를 몇 번 하더니 하루는 집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다. 노씨는 부득이 함께 정글을 누비던 해병 전우회 후배를 동원해 녀석의 내 쫓았다. 9월 중순 늦은 오후 환한 빛이 드는 창을 뒤로하고 고개를 숙이고 문을 나서는 나이 살이나 먹은 중년 양아치와 분을 가까스로 참는 배가 나온 중년의 옛 전우들, 하얗게 질린 딸 둘과 엎어진 가구들, 노씨는 누구를 탓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삶에 대해 탄식만 나올 뿐이었다. 그날 밤 노씨는 늦도록 잠을 들지 못했다.
그 소동이 있은 두 달 후에 고 2학년 3학년 두 딸을 데리고 간단한 여행을 준비 하였다. 여행은 일주일을 계획했는데 전에 없던 일이었다. 아마 가족이 한 번에 긴 여행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시험을 앞둔 수행생을 데리고 여행이라니, 노씨는 두 딸에게 특별히 공부를 원하지 않았다. 첫째는 공부에 큰 집착이나 능력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직 빨리 학교생활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첫째는 사회에 일찍 나가고 싶어 했다. 원하지 않아도 그럴 확률은 백퍼센트였다. 노씨나 첫째에게 고 3이란 졸업생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에 비해 둘째는 머리는 좋아 보이지 않지만 공부에 집착을 하였다. 그 아이는 영화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희망도 있었다. 그러자면 전문대라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씨는 은근히 둘째에게 감독으로서의 사회적 명성과 지위를 기대하기는 했지만 대놓고 말을 하지는 못하였다.
노씨는 여행을 위해 구닥다리 승용차를 비록 중고이긴 하지만 외관으로 새것 같은 중고 승합차를 샀다. 세 가족은 강원도를 가로질러 동해연안을 따라 남해로 다시 서해로 한 바퀴는 돌았다. 그런데 이 여행이 중요한 것은 속초에서 한 중년 여인을 만난 것이다. 그 중년 부인은 노씨와 친분이 있는 여인 이었다.
그녀의 성씨는 최씨로, 전에 김포공항 보수공사현장에서 일을 때, 일을 마치고 가끔 가던 호프집 주인이었다. 최씨는 누구나 호감이 가는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경우가 밝았다. 그녀는 장사가 안 되어 가계를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다가 속초에 놀러온 것이다. 원래 속초에서 1박만 하기로 했던 것을 그녀 덕분에 2박을 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아이들과 금방 친해졌다. 노씨는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전화를 주고받더니 홀연 노씨는 집을 아이들에게 맡기고 강원도로 차를 몰았다. 그로부터 몇 칠일 후, 노씨는 그녀를 데리고 나타나 한 식구가 되었다.
모처럼 노씨는 삶의 안식을 찾는 것 같았다. 최씨는 사십 중반인데 자신을 가꿀 줄 알고, 아이들이나 노씨에 대하는 경우가 있었다. 새벽밥을 했으면 아이들의 수발을 잘 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 갔다. 집이 눈부시게 깨끗해졌으며 무엇보다 식탁이 풍부했다. 노씨는 쭉 빠졌던 살이 살살 오르기 시작했다.
첫째는 졸업을 앞두고 자기 친구들은 시험공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데, 자신은 만화가가 되겠다고 그림 그리기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노씨는 그녀가 만화가 될 성싶지는 않았다. 저러다 시집이나 가겠지 할 뿐이었다. 둘째는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학교만 끝나면 집회장 쫓아다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집안에 곳곳에 집회 포스터와 크고 작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급기야 새엄마를 어떻게 졸랐는지 모르지만 디지털비디오도 장만을 했다. 딸 방의 벽 한 면에는 만화가, 한 면에는 집회 사진이 빼곡했다.
노씨는 이 정도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으나 그건 착각이었다. 삶이란 한 번 뒤틀리며 어떤 흔적이든 남는다. 가정이 안정되었음에도, 딸들의 일상 생활이 좀 이상했다. 그 아이들이 항상 집에 틀어 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을 주면서 나가서 쓰라고 해도 아이들은 괜찮다면 나가지 않았다. 주말이면 자기 볼일 때문에 나돌아 다니다가도 평일엔 학교생활 외에 집에만 틀어 박혀 있었다. 집에 들어오면 근처 가게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른 새벽에 나가 어둑해지면 들어와 그 친한 동네 친구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혹시나 하고 이리 저리 알아보니 녀석들이 자신의 친어머니를 만나고 있었다. 최씨도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알고 있으나 굳이 일부러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으며, 누가 간섭을 해 이래라 저래라 할 만큼 어리지 않다고 판단을 하였다.
노씨도 동네사람 보기가 어려운 것은 딸들 못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노씨는 이곳 토박이였으며 성실한 사람으로 그를 아는 사람이며 다 인정을 하고 있었다. 이웃 간에 얼굴 붉히고 싸운 적이 없으며 어려울 때 형제처럼 의지하며 함께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마누라가 집을 나간 뒤 동네사람들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았다. 자격지심일수 있지만 예전의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특히 자신은 일을 나가면서 현장 일에 몰두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 동네에서 자라 지금까지 자란 딸들에게는 감성이 민감한 사춘기여서 동네사람 보기가 쉽지가 않음이 분명했다. 노씨는 새삼 한 가정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이 오십에 동네 어른 보기도 민망하고 친구는 그렇다 치고 후배들 볼 낯이 없었다. 노씨는 최씨에 안주함이 새삼 사치스럽다고 느껴졌다. 더구나 최씨는 술집을 했다는 것이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술집여자는 다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다닐 수도 없고. 노씨도 자연 집에 틀어박히게 되었고, 세 웅크린 가족을 보면서 최씨는 새 살림을 시작하면서 끊었던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 해 겨울이 깊어 갈 무렵 새해 준비로 세상이 들뜰 때 쯤, 아이들의 친엄마가 돌아 왔다. 처음에 이씨인 자신의 본처를 보고 노씨는 눈을 의심했다. 피골이 상접하여 돌아온 부인은 그야말로 굶주리고 메말라 보기도 노숙생활을 한 것같이 보였다. 집에 들어오는 그녀를 화를 내며 막았으나 최씨의 부탁으로 노씨는 이씨를 거절하지 못했다. 최씨는 아이들을 봐서라도 일단 집안에 들어오게 하여 다른 방도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최씨의 그 행동은 분명 최씨 자신에게는 실수였다. 결국 그 첫 발을 양보함으로 최씨는 그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최씨를 만나게 왜 그랬는가를 물었을 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 또한 완전하게 뿌리까지 부합하지 못하는 가족애에 한계를 느끼고 힘들었다고 했다. 어떤 시점에 본 부인이 들어오면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직감으로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그녀는 나에게 반문을 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경우를 내가 당하다니, 아마 그럴 일을 없을 것이다. 있어서도 안 되고.
이씨가 들어온 날, 노씨는 좋은 말로 달랬다. ‘당신이 여기에 올 처지가 아니다. 이미 다른 여자가 와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같이 나갔던 녀석에게 돌아가라고, 아니 그 새끼에게로’ 하지만 본처는 막무가내였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받아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씨는 아이들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안주인으로서가 아니고 하녀로서 무슨 일이든 할 테니 아이들 방에서 함께 살게 해달라고 노씨에게 매달렸다. 처음에 노씨는 젊잖게 부탁을 했다. ‘네 손으로 끌어내는 추한 꼴 안 보이게 제발 나가 달라고’ 그러나 본처는 완강하게 버텼다. ‘난 여기가 아니면 죽는다. 그걸 깨달았다. 당신이 어떤 여자와 살든 상관하지 않겠다. 그저 밥만 먹여주고 아이들과 있게 한다면 밥값은 하겠다’라고. 최씨는 묵묵히 부엌탁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씨는 가방을 들고 조용히 집을 나갔다. 노씨에게 일이 정리되면 연락만 해달라고 했다. 노씨는 맨발로 달려 나가 최씨의 손을 잡았으나 이미 차가운 최씨의 손 기운이 느껴져 잡지 못하고 보냈다.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이 최씨 등 뒤에 맥없이 흩어졌다.
노씨는 흔들렸다. 사실 본처는 이미 놈에게 단물 다 빨리고 버림받아 들어온 것이다. 그 분노란 참을 수 없기도 했지만 사실 삼십년을 함께 산 부인이다. 판잣집에서 출발하여 이 정도까지 살게 될 때에는 그녀의 손톱이 썩어질 정도의 고된 노동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이었다.‘다시 들어와 죽을죄를 지었다고 빌 것을 왜 나갔단 말인가’ 노씨는 그녀의 아둔함에 미칠 지경이 되었다.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무식한 부인이다. 노씨는 마음껏 그녀를 두들겨 패고 싶었으나 어디까지나 마음뿐이었다. 그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쉽지 않은 판단이었다.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애들 엄마에게 차마 폭력을 써서 밖으로 끌어내지는 못한다. 그냥 나가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미 자신의 마음을 떠난 배신자를 받아들일 수는 더더욱 없었다. 또 최씨는 어쩌란 말인가?
노씨는 다음날 고심 끝에 집을 뛰쳐나와 찾아간 곳이 자신에게 기술을 가르쳐준 김노인이었다. 자신에게 함석과 닥트 기술을 전수하고 살림방을 차려준 그야 말로 사부였다.
이미 건설현장에서 연장을 놓고 은퇴한 상퇴였으며 동네에서 화곡동에서 복덕방으로 하고 있었다. 김노인의 자녀들은 모두 결혼을 했으며 늙은 내외가 그럭저럭 탈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김노인은 노씨를 반갑게 맞아 들였다. 사제지간인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노씨의 속내를 털어 놓았다. 김노인도 노씨와 같은 처지인 적이 있었다. 김노인은 노씨의 심정을 잘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네가 알다시피 지금 살고 있는 내 처가 본처는 아니네. 두 번째 처지. 사람이 살면서 첫 배우자와 끝까지 해로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런 저런 일이 있는지. 때로는 원수처럼 대할 때도 있고, 사실 이혼도장을 찍기 전까지 갈 일도 있지. 현장에서 몇 날을 뜬 눈으로 철야를 할 수는 있지만, 여자는 참 뜻대로 안되데. 어지간히 답답해야지. 내 지금의 처에게 불만은 없어, 좋은 사람이지. 그런데 말이야 이런 이야기 자네에게 처음 이야기 하지만, 늘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첫 마누라와 헤어진 죄책감이야.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반문을 해보는 거야. 진짜 내가 당당했던가! 응? 안 그렇겠나? 그녀가 나와 헤어져서 잘 됐으면 이런 말 안하지, 지금은 어디 촌구석에 끝까지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몇 해 전에 죽었다는구먼. 사람이 사는 것이 뭔지. 자네 생각해 보게. 내가 나가서 다른 여자와 잠 한번 안 잤겠나. 아니지. 수도 없이 잤어. 그런데 딱 한번 마누라가 바람을 피운 것을 용서하지 못했지. 이건 불공평하지 않나? 그때 상황이 되면 내가 그 사람을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아마 지금 마음 같아서는 용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사람이 바람을 피우기 전에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집에 신경을 썼더라면, 내가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조금만 더 가졌더라면, 자식들도 그 사람도 불행해지지 않았을 텐데. 그래, 결국 내가 집안을 그렇게 만든 것 아닐까 하네. 항상 내 머릿속을 괴롭혀. 다시 말하지만 지금 사는 처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네. 내 지금 솔직한 심정으로 자네에게 꼭 부탁하고 싶네. 내가 살아봐서 그래. 죽을죄를 안 졌으면 본처가 제일이네. 그게 맞는 말인 게, 칠거지악을 지었어도 용서할 경우라는 것이 있지 않는가? 함께 고생했거나, 갈 때가 없으면 받아 주어야 한다잖아. 겪어봐야 안다니까. 허허. 이렇게 사는 나도, 그 사람도, 자네도, 자네 처도 안됐구먼. 자네 지금까지 살면서 부정 한번 안했나. 내가 자네를 탓하고자 하는 생각이 아니야. 세상이 그래. 없는 놈까지 있는 놈 흉내 낸다니까. 이렇게 저렇게 어울리다보면 다른 여자와 자게 되지. 여자라고 한 세상을 사는데 다르겠나! 세상이 그런 거야. 자네 애들을 봐서도 애 엄마를 받아들이게. 후회한다니까. 딱 한번만 용서하게. 지금이 힘들 수는 있겠지만 내 말 들으면 후회 안한다니까. 지금 새로 들어온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이해 할 거네. 이게 다 사는 거야. 어쩌겠나. 그 사람도 나가서 잘 되면 되겠지만 평생 자네 그늘 아래서만 산 것을 내가 뻔히 아는데 그 꼴이 뭐가 되겠나. 나이 그냥 먹는 것 아니니 크게 한번 생각해 보게. 허허허. 자네가 나에게 신세 진 것 없지만,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게. 본처 버리지 말게. 부탁한번 하세. 그래야 자네 집에 한번 놀러 가도 편하지 않겠나. 바람피운 것이 죄는 죈데 죽을죄는 아니잖은가.”
김씨는 노씨를 달랬다.
노씨는 혼란스런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갔다. 결국 그는 두 여자를 한 곳에 모아 결판을 짓기로 하였다. 노씨는 스스로 누구를 결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일이 지난 어느 저녁 만찬에 최씨를 불렀다.

그날따라 진눈깨비가 내렸다. 최씨는 검은 코트를 입고 자신이 두 달이나 살던 집으로 돌아 왔다. 셋은 둥그런 저녁식탁을 만들어 놓고 함께 모였다. 노씨와 본처 이씨 그리고 최씨가 식탁 한쪽씩 삼각형으로 앉았다. 저녁은 이미 이씨가 한 상 가득 차려 놓았다.
“오늘 같은 날 술을 마시고 싶네요.”
창백한 얼굴의 최씨는 턱을 괴고 엷은 미소를 짓고 말을 하였다.
“술? 그런가? 냉장고 있나. 아마 있을 거야. 지난 번 제사 때 남긴 술도 있는데. 그렇군. 여기 있어. 당신도 한 잔 한 건가?”
노씨는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꺼냈다. 이씨에게 물으니 이씨는 고개와 손을 함께 흔들었다. 노씨는 잔 세 개를 꺼내들고 탁자로 와서 하나씩 돌리고 술을 따랐다.
“한잔씩 합시다.”
노씨는 서투른 손길로 식탁 가운데 있는 냄비를 열자 본처인 이씨가 신경 써 만든 생태찌개가 붉게 양념된 모습을 드러내며 뿌연 김이 굽이쳐 올랐다. 찌개의 짜고 단 냄새가 부엌에 번졌다.
최씨가 무덤덤하게 일어나 밥통을 열고 밥을 세 공기를 퍼 하나씩 돌렸다.
“나는 죄인입니다.”
셋이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하다 느닷없이 이씨가 수저를 놓고 복받치는 감정을 자제 못하고 말문을 터트렸다.
“죄인?”
최씨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쿡쿡 찍다 말고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작은 소리로 반문했다.
“그래요. 내가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부정한 년입니다.”
이씨가 일어 콩을 볶듯 말을 쏟아 냈다. 노씨는 이씨와 같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이 사람아 흥분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 자!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 다 들어 줄 테니까.”
노씨는 이씨를 앉히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이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을 모아 다리에 올려놓았다.
“밥 먹읍시다. 술도 한 잔 하시고요. 오늘은 운명이 결정되는 날입니다. 진눈깨비 내리는 오늘 같이 우중충한 날에는 소주가 제격이지요.”
최씨가 술잔을 들었다. 술잔 끝에 형광등 빛이 닿아 하얗게 빛났다.
노씨도 덩달아 술잔을 들어 최씨 잔에 부딪쳤다. 이씨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 손 떨어집니다. 잔을 듭시다. 모처럼 한잔 하셔야지요. 오늘 아니고 또 날이 없을 것 같으니. 안 그런가요. 함께 듭시다. 제발 이 첫잔만큼은, 그렇게 불쌍하게 고개 숙이고 있지 말고요.”
최씨가 이씨를 달래듯 애원하듯 잔을 권했다. 이씨는 못 이기고 고개를 들고 잔을 들었다. 이씨 눈가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그래요. 오늘 만큼은 한잔합시다.”
이씨는 금세 기분이 풀린 듯 밝게 목소리를 높였다. 눈에는 눈물 자욱이 이었다. 화장을 하고 있는 최씨에 비해 이씨는 검게 그을린 맨 얼굴 그대로였다. 나이는 비슷한 사십대 후반인데 이씨가 십년은 더 연상으로 보였다. 최씨의 얼굴은 삼십대 후반 같았다. 이씨는 감정이 순간 바뀌어 환한 웃음도 보이고 목소리도 흥분되었다. 이씨는 거칠게 유리잔을 마주치고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최씨는 그런 이씨를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찡그린 얼굴이 살짝 비켜 갔기에 노씨나 이씨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최씨는 곧 얼굴이 담담하게 평온을 되찾았다. 최씨는 반쯤 잔을 비우고 잔을 내려놓았다.
“눈은 어떠세요. 지금도 충혈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최씨는 노씨를 바라보고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노씨는 차분한 최씨에 말에 이씨 때문에 신경 쓰이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 눈, 그래! 괜찮아! 당신이 있을 때는 약을 꼭 챙겨줬는데, 요 몇 칠 정신이 없어 그냥 지나갔네. 눈이라는 게. 참!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가봐. 아참, 당신 술이 비었구먼. 나는 술을 못하니까. 마시기 좀 그렇군.”
노씨는 최씨를 보고 말을 하다 이씨의 잔이 빈 것을 깨달고 술을 채웠다. 이씨는 두 손으로 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오늘은 한 잔 하세요.”
최씨가 거푸 노씨에게 재촉을 했다. 노씨가 최씨 부탁에 잔을 들어 간신히 한 잔을 다 들이켰다. 최씨가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술을 따르고 최씨도 반잔을 마저 들이켰다. 노씨가 최씨 잔에 술을 따르려다 이씨 눈치를 보고 손을 엉거주춤 멈추었다. 최씨는 살짝 웃고는 이씨에게 잔을 내밀었다.
“한 잔 주시지요.”
이씨는 최씨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소주를 들었다. 병 끝이 눈에 띄게 흔들거렸다.
“초면에 경황이 없어 정식으로 인사도 못 했네요. 안녕하세요.”
이씨는 엉거주춤 머리를 끄떡였다. 이씨는 인사를 하고 급하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노씨도 밥을 빨리 먹고 수저를 놓았다. 최씨는 반도 못 먹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최씨가 밥을 다 먹을 동안 침묵을 지켰다. 오 분 여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이씨가 자신의 앞에 있는 술을 훌쩍 들이켰다.
“술 잘하네. 평소 술 한 잔 못하더니, 나가서 술만 늘었어.”
노씨는 소주를 급하게 따르며 이씨를 달랬다. 그 말에 금새 밝았던 이씨 얼굴에 확연한 그늘이 졌다.
“미안 합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눈이 멀었어요. 내가 복이 겨웠던 겁니다. 귀신에 홀렸나 봐요. 저는 죽일 년입니다.”
이씨가 밥을 우물거리는 최씨를 보고 울먹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씨의 말투는 평소보다 빠르게 했으며 발음이 부정확했다. 눈은 뚜렷이 한 곳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으며 어떤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 했다. 눈자위도 붉게 올라왔다.
“그 마음 알아요. 나는 괜찮아요. 나한테 미안 할 것 하나도 없어요. 진짜로. 자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불편하군요.”
최씨는 입을 가리고 입안에 있는 음식을 삼키며 말을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씨가 의자를 뒤로 소리 내 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난 미쳤어요. 하지만 죽기 싫어요. 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내요. 아이들과! 그 애들은 내 새끼들입니다. 난 그 애들의 어미예요. 아무리 죽을 죄를 졌어도 나는 엄마예요. 엄마!”
그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입에서 침이 튀었으며 눈알이 뒤집어 져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닥쳐! 이 걸레만도 못한 년.”
노씨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덩달아 일어서며 고함을 쳤다. 최씨는 노씨의 소리에 놀라 그대로 자리에 굳었다. 노씨는 자신의 손바닥이 이씨 뺨을 향해 날리려다 가까스로 멈추었다. 노씨는 부끄러운 손을 거두어 들였다.
“앉아. 차분하게 말해! 제발. 나 오늘 미친다. 당신만 보면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고 싶으니까 흥분하지 마. 아니지, 이런 말하면 안 되지. 나까지 이러면 안 되지. 당신 차분하게 앉아서 밥 먹어. 응! 자! 앉아. 어서, 당신 집나가고 나서 나 많이 늙었어. 이젠 밥상 엎을 힘도 없어. 그리고 당신한테 지금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없잖아. 그냥 차분하게. 빨리 앉아. 할 말 없으면 앉아만 있던가, 죄가 어쩌니 하는 그 말 좀 하지 마. 자! 앉아, 앉자고. 어서. 거참. 앉으라니까. 어서. 뭐가 잘났다고 자꾸 불쑥 불쑥 나서고 그래. 빨리 앉으라니까(큰소리로). 정말! 아 미안. 글쎄 앉으라니까. 자꾸 소리치게 만들지 말고. 나 당신 때문에 혈압도 높아져서 현장일도 못하게 생겼어. 알아? 자 앉아. 고집부리지 말고.”
“그러니까 난 죄인이라니까요.”
“거 참.”
노씨가 더 참지 못하고 탁자를 손으로 치며 화를 냈다. 최씨가 조금 남은 밥을 뜨고 수저를 놓는데 노씨가 탁자를 치자 수저가 튀어 탁자 아래로 떨어졌다. 스텐 숟갈이 바닥에 몇 번 이리저리 튀다가 뒤집어 졌다. 노씨는 부끄러움과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나 나가버렸다.
“담배하나 피울 께요. 앉으세요. 앉아서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그리고 그런 실수 남자들은 한 두 번 안하고 사는 사람없어요. 알고 보면 큰 죄 아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제 서야 이씨가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이씨가 몇 숟갈 뜨면서 훌쩍이기 시작했다. 최씨는 물을 마시고 손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최씨가 두 번째 담배에 연이어 불을 붙이자 노씨가 다시 들어와 식탁에 앉아 밥을 마저 먹었다. 최씨가 이씨도 밥을 다 먹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한 손으로 그릇들을 모아 싱크대에 모았다. 이씨도 최씨의 그런 행동을 보고 음식을 덮어 냉장고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못 마시는 술 그만 하고 차 한잔해요.”
최씨는 주전자에 물을 얹어 불을 켰다. 그러면서 담배물고 설거지를 해 나가갔다. 주전자에 물이 끓을 무렵 설거지를 마치고 수도를 잠갔다. 7
“커피 한 잔이라. 내 것도 있나. 자! 이리 와서 커피 한 잔 합시다.”
이씨는 잔 두개를 들고 재빠르게 몸을 돌려 탁자에 와서 앉았다. 최씨는 긴 호흡을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 왔다.
셋이 커피를 한 잔씩 나누어 가지고 탁자에 앉았다.
“난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집이 마음에 들어요. 뭔가 편하고요. 특히 아이들도 마음에 들어요. 돈도 좀 있고.”
최씨가 웃음을 머금고 김나는 차를 들며 말문을 열었다. 목소리가 차분하지 못하고 조금 떨려 있었다. 양미간의 힘줄이 돋아 있었다. 아이들이란 말에 힘을 주었다. 이씨는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눈을 주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 뭐라고 내가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 사실 이렇게 모이자고 한 것은 뭔가 오늘 결말을 좀 짓자는 거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와가지고. 이제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라. 사실 난 지금도 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생각만 하면 참을 수가 없어. 새끼들을 버리고 서방질하러 나간 것을 받아들일 수가. 아니지.”
잠시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하던 노씨가 쉬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말을 좋게 합시다. 끝이 좋아야 다 좋으니까. 그래 사실 내 마음을 모르겠단 말이요. 이 사람이나 그 놈을 생각하며 당장 힘줄을 끊어 죽여도 시원찮지만. 근데 죽여 달라고 다시 머리밀고 들어오니, 참 그게 잘 안 되니. 나! 원! 참!”
노씨의 이마에 고민이 역력한 주름이 깊게 생겼다.
“담배하나 필게요.”
최씨는 우유부단하게 불분명한 목소리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을 하는 노씨의 말이 끝나자 담뱃갑을 탁자에 내놓고 한대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는 연기를 천정을 향해 길게 내 뿜었다.
“담배를 아이들에게 안 좋아요.”
이씨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다.
“아이들? 아마 오늘은 이해 할 겁니다.”
최씨는 담배를 맛있게 빨아 다시 한번 천정을 향해 내 뿜었다.
“어떡했으면 좋겠어?”
노씨는 최씨에게 물으려다 이씨를 향해 물었다.
“난 생각하지 마세요. 난 당신들이 함께 살아도 좋아요. 난 그냥 있게만 해주세요. 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어요. 난 죄인이니까요.”
종알거리는 이씨의 말에 최씨는 손바닥에 재들 털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겨워.”
최씨의 그 말에 이씨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근데 왜 들어왔어. 그 새끼 어떡하고 들어왔어. 젊은 놈이 즐겁게 해 줬을 거 아냐. 돈도 벌어오고, 그 좋은 것 어떡하고 이 늙다리 집에 뭔 일로 다시 들어 왔냐고. 이 바보 멍청이 같은. 왜 단물 빨아 먹고 내 쫓든? 엉.”
노씨는 문득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이씨의 목소리만 눈에 들어오면 화가 솟았다.
“난 죄인이라니까요.”
“그럼 닥치고 있어.”
“난 죄인이라니까요.”
“이 갈보년.”
“난 죄인이라니까요.”
이씨는 덩달아 악을 쓰듯 소리쳤다. 노씨는 이씨가 대들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누그려 뜨렸다.
“이 사람아 내 말 좀 들어봐. 응, 당신 바람 피웠어. 젊은 놈하고. 온 동네 소문 다 났어. 나 얼굴 들고 다니지를 못해. 애들은 어떻고 동네 창피해서 나갈 수가 없데. 근데 또 들어와서 이게 뭐야. 당신 이제 이집사람 아니야. 내가 당신 집에 연락했어. 이젠 끝났다고. 이 사람아 사정을 봐가면서 오기를 부려. 내가 지금 당신을 보고 있으면 열불이 나서 죽을 지경이야. 이게 지금 사람이 할 짓이야. 응.”
“내가 뭐라 그랬어요. 죄인이라 그랬잖아요. 죄인. 죄인. 죄인. 젊은 놈하고 짝짝궁 놀아난 죽인 년. 그래서 어떡할 건데. 그리고 당신 담배 꺼! 이집에서는 금연이야!”
최씨는 이씨의 손가락질과 고함소리에 다른 말하지 않고 일어나 싱크대에 가서 손을 털고 담배를 껐다. 손을 씻고 자리로 돌아와 차를 마셨다.
“아무리 내가 이렇게 했어도. 술집 년을 들여와. 애들을 봐서라도 그렇게 할 수가 있어. 당신이 쫓아 낼 년은 내가 아니고 이 년이야! 이양반아.”
이씨가 거칠고 똑 부러진 말투로 노씨를 훈계했다. 그녀의 목에 굵은 힘줄이 섰다. 흥분은 감추지 못하여 혈관이 금방 터질 것 만 같았다. 최씨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한 모금 맛있게 마셨다.
“아니 이, 뭐.”
노씨는 대답을 못하고 눈에 핏발만 세우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모든 게 쓰네요. 커피도 쓰고, 술도 쓰고, 날도 춥고, 머리도 아프고.”
최씨의 관자놀이를 짚으며 약간은 짜증스런 목소리로 느리게 말을 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노씨에게 불만스런 말투였다. 이씨는 그럴듯한 말에 심사가 뒤틀려 콧소리를 질렀다. 노씨는 무슨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였다.
“감기인가? 두통약이라도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하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걸요.”
춥고 두통이 있다는 최씨의 말이 더욱 그녀가 창백하게 보였다. 이 자리가 불편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붉은 입술을 너무 붉게 보였고 진하고 두꺼운 눈썹을 더욱 검게 보였다. 노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나가더니 금방 두통약을 가지고 와 최씨에게 주고 물을 따라 주었다. 최씨는 알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시면서 눈에 불을 켜고 두 사람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는 이씨를 쳐다보았다. ‘생각 좀 해라 이 아둔한 여인아! 지금 남편이 누구를 원하는지. 이럴 때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최씨의 하얀 눈가에 웃음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같이 살아라!”
이씨는 마시던 커피를 최씨 얼굴에 끼얹었다. 탁한 커피는 최씨 얼굴에 끼얹어 지자, 최씨는 깜짝 놀라며 눈을 감았다. 커피가 김을 내며 최씨 머리와 얼굴을 타고 가슴과 어깨에 뚝뚝 떨어졌다. 노씨도 놀라 어쩔 줄 모르더니 수건을 가지고 와 최씨의 얼굴 닦았다.
“마시는 걸 끼얹으면 어떡케 해! 옷 버렸잖아.”
노씨는 최씨의 얼굴을 닦던 수건을 이씨에게 던지며 집안이 쩌렁 쩌렁 울리는 고함을 쳤다. 최씨는 노씨의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웃지 마! 이 술집 년. 내 새끼들을 어떡케 꼬였어. 이 못 된 년.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아니 이 여편네가 완전히 돌았어. 말이면 단 줄 아나.”
“그래 돌았다. 나 바람피웠다. 넌 안 피웠냐! 그리고 이 년은 몇 놈이나 같이 잤겠냐. 이 바보 같은 놈아. 니네 갈이 살게 해주고, 난 새끼하고 살겠다는데 왜 그게 잘못됐어. 다 필요 없으니까. 이 년하고 같이 살란 말이야. 난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니까. 이 걸레하고 같이 살 난 말이야!”
“거. 참 닥치지 못해!”
노씨가 급기야 자신의 커피를 이씨에게 끼얹었다. 최씨는 자신에 날아오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씨가 커피를 뒤집어쓰고 울부짖었다.
“닥치지 못해! 이 년이 뭐가 잘했다고 악을 써. 엉. 닥치라니까!”
최씨는 이마를 짚고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노씨가 더 이상 자제를 못하고 이씨에 달려들어 바닥에 엎어놓고 올라타 손바닥으로 이씨의 머리며 등이며 닥치는 대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럴 거 왜 집을 나갔냐고. 왜. 이 바보야. 이제 와서 사정할 것 왜 나갔냐고. 그 놈이 늙은 네가 좋아서 그랬는지 알아. 왜 그런 것을 몰라. 이 고생을 해서 살만하니까. 서방질하다 쪽 빨리고 와서 뭐 잘했다고 앙칼이야. 앙칼이. 넌 죽어야 해. 죽어. 죽어! 왜 들어 왔어. 엉. 왜! 왜!”
최씨는 둘이 엉켜 붙어 하나는 울고 하나는 두들겨패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가방과 우산을 들고 집을 나왔다.
집 대문 앞에는 두 딸이 어둠속에 서 있었다. 최씨는 그녀들을 외면하고 창백하고 담담한 얼굴로 그녀들을 치나 쳤다. 최씨 뒤로 삼층에는 고함소리가 들리고 하늘에는 진눈깨비가 비가 되어 내렸다.
“아줌마!”
둘째 아이가 첫째의 우산을 뛰쳐나와 최씨에게 달려오며 최씨를 부르자 최씨가 움찔하며 멈칫했다. 그 순간 우산이 기울어지자 빗가 최씨 얼굴에 뿌려졌다. 그녀는 잠깐 멈추어 섰으나 최씨는 이내 괜찮다는 듯 우산을 바로 잡고 손을 들어 아이가 달려오는 것을 거부하였다. 둘째도 최씨의 뒤 모습에서 강한 거부의 마음을 느끼고 그대로 멈추어 섰다.
“아줌마!”
둘째는 작은 소리로 최씨를 불렀다. 최씨 가슴에 깨진 유리를 밟아 베이는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왔다. 그러나 지금 최선은 그 아품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최씨는 둘째의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하게 발을 옮겼다. 우산이 빗물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건들 거렸다. 빗물이 최씨 얼굴이며 옷에 흘러 내렀다.

노씨는 첫째가 졸업을 하자마자 급하게 집을 처분하고 안양 쪽으로 이른 새벽 이사를 하였다. 내가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갔을 때 이미 노씨는 이사를 한 뒤였다.
“어이, 동생 도망이사해서 미안해, 그냥 일찍 했어. 언제 시간을 내서 이곳에 오라고 여기도 좋아.”
노씨의 가정은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고 정상이 되었다. 전보다 더 가정이 화목해진 같았다. 깊은 상처의 위에서 말이다.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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