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 창

 

 

 

 

 

 

>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은장도?
 최경주  | 2004·05·04 15:34 | HIT : 5,677 | VOTE : 240 |
1
뜨거운 국물에 혀뿌리가 뜨겁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불기운은 가슴에 이르러 묵직한 아픔으로 온다. 위장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뱃가죽 밖으로 비명을 지른다. 눈을 감고 가슴을 때려보지만 그 잠깐의 뜨거움은 어찌 할 수가 없다. 마치 쇳물을 마신 것 같다.
뇌수가 그 고통의 감당하지 못하고 눈앞이 하얗게 변한다. 저장된 수많은 시간과 공간이 뒤얽히며 전기적 장애를 일으키며 혼절을 한다.

뭐가 보이지?
강열하며 통증이 있는 흰색 빛의 덩어리 속에서 서서히 뿌연 회색 안개로 바뀌며 언뜻 언뜻 모양을 갖춘 사물의 형태가 나타난다. 웃음과 잡담, 조미료 냄새와 술기운도 있다. 여기는 어딘가? 현장에서 굴러먹다 늙어버린 노동꾼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둔탁한 말투와 거친 웃음소리가 머리 위를 덮는다. 후끈한 열기에 귓불이 달아오르고 은빛 파장이 검은 사람의 형상이 눈을 희롱한다. 이내 그 왁자지껄한 잡음과 빛 속은 사라지고 나는 거리를 걷고 있다.
주변에 무리의 발자국 소리와 흥분된 사람의 소리가 있다. 그래 군중의 소리다. 사람이 떼처럼 모여 내는 목소리가 물처럼 흐르는 소리, 외침과 분노, 흥분된 의식의 소용돌이가 느껴지는 군중 말이다. 어두운 의식이 점차 밝아지며 보이는, 사람의 무리가 갈대 잎이 파도를 타듯 이리 저리 쏠리는 모습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도 그들 틈에 끼어 걷는다.
각기 색과 형태가 다른 깃발이 흔들흔들 거린다. 황색 탁한 강을 이룬 갖가지 옷 색과 다름이 옹기종기 모여 하나처럼 떼를 이룬 사람들, 붉은 머리띠와 이마의 흰색 구호. 비틀비틀 끄떡이는 피켓, 대화를 나누거나 노래하는 사람, 격한 분노에 흥분한 사람과 구호, 유인물을 뿌리거나 인도에 서서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 방송 차의 선동 그리고 교통순경과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힌 차들, 차안의 무덤덤한 눈들과 시위대의 눈이 마주친다. 어두워 보이는 가로등이 길 따라 길게 빛을 흘린다. 풍물소리 울린다.
노동자들 혹은 학생,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면 누가 무리를 짓는단 말인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군상의 크고 작은 눈들, 갖가지의 사고들. 그들 서로의 눈에 비친 자신들을 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순간의 자신을 스스로 확인한다.
“어이!”
비슷비슷한 수천 사만의 인파 속에 문득 낯익은 목소리와 얼굴이 기막히게 쑥 들어왔다. ‘어!’ 유 선배였다. 그를 어찌 모르리. 눈웃음이 좋은, 그는 나와 반대쪽으로 가며 내 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었지만 유선배의 손 끝에 내 중지 끝이 향불만큼 살짝 걸리더니 이내 엊갈린다.
“언제 한국에 들어왔어?”
유선배 내 물음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자기 동료들에게 이끌려 사람들 속에 묻혔다. 그는 중동에 나가있는데? 그가 사라지자 다른 친구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불교집안 친구들이다. 자주 볼 수 없는 벗들. ‘어이!’하고 불렀으나 내 목소리는 공허하게 밤하늘 어둠 속에 흩어진다. 그들은 내목소리를 못 들은 듯 군중 속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곧 사라진다. 수많은 밤을 술과 진리와 세상에 대하여 나눈 이야기들. 아무래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멀리 경찰들이 오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둘러 오던 길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질서도 무너지고, 비명소리, 함성소리, 깃발이 방향을 바꾸어 뭉쳐있던 무리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기합 소리, 군홧발 소리, 앞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경찰이 어느새 내 앞에 와 있다. 긴 곤봉과 방패, 검은 헬멧, 넘어진 사람을 뛰어 밝고 다가오는 오는 경찰들, 어디로든 도망쳐야하는데, 사람들이 엉키어 방향을 잃는다. 양들을 모는 사나운 개들처럼 경찰이 곤봉과 방패를 잡아 흔들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여자들의 비명소리에 건물들 사이를 떠도는 공기가 경력을 일으킨다. 나는 등에 살이 찢기는 아픔을 느끼며 앞으로 넘어졌다. 경찰의 방패에 맞은 것이다. 넘어져 올려 보니 전경의 방패가 위로 들려 있었다. 절단기 나를 두 동강이 내기 위해 치켜 들린 것 같았다. 건물들이 밤하늘을 찌르며 솟아있고 가로등 빛은 방패에 끝에 걸려 일출의 태양처럼 빛났다. 문득 시간이 멈추는 듯 했다.
도시의 인위적인 모든 것이 흔들렸다. 딱딱한 길바닥, 건물들, 무장한 사람과 치켜든 방패, 쇠로 만든 것 같은 군화바닥, 비명, 그래 잡음이다. 혼돈스런 소리, 빛과 어둠이 엉키어 공포를 만들어 낸다. 두려움, 빛의 소용돌이, 어두움과 빛의 점멸, 깊은 고통, 약한 자와 소수의 분노. 폭력에 대한 두려움, ‘곧 방패가 내려치겠지’ 나는 눈을 감고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비명을 질렀으나, 목이 막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늘의 어둠이 내 시력을 가린다.
“왜 그래. 최형?”
“응?”
밝은 빛에 눈이 부시다.
방패는 없고, 탁자에 넷이 둘러앉아 있다. 나는 뜨거운 콩나물국을 떠 마시고 있으며 탁자위에 소주 몇 병이 빈 채 서있다. 그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정신을 읽었군. 다 됐어. 술에 장사 없다니까.”
대포 집 천정의 형광등 빛이 웃음소리에 푸드득 떤다.
“그게 바로 술 마시다 기절했다는 거야!”
취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는 껍데기 집이었는데, 어떻게 이집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름이 한 대목 끊긴 것이다. 술 때문에 뇌에 저장된 자료들이 젖었나 보다. 근래에 자주 있는 일이다.

2
현장에 출근 중이었다.
전철 안에서 대부분 졸거나 몇몇은 공짜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철이 1호선 시청 역 승강장을 막 떠났을 때, 중년 여인이 손가방을 꼭 잡고 벌떡 일어나 누군지 대상도 없이 빠른 말과 날카로운 말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연극인 대사를 외우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일어난 자리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건너편 자리의 늙은 건설노동자는 잠결에 놀라 어리둥절 여인을 쳐다보았다. 전철은 여인과 상관없이 달리고 있었으며, 기차바퀴 구르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어둠과 무질서한 어떤 흔적과 두터운 벽체가 전철을 한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볼이 붉어지고 작은 눈은 강열하게 빛났다. 목소리는 울분에 떨고 있었으며 가방이 구겨지도록 가슴에 끌어안았다. 말 내용을 봐서는 남자에게 향해 쏟아 붇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돌발적인 의식에 다른 사람들이 적응 할 무렵, 그녀는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을 차린 것이다. 많은 생각들이 그녀의 당황스러워 하는 눈에 담겼다. 서울 역에 도착하자 그녀는 도망치듯 황급히 차를 내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가 있음이 분명하다. 어떤 강열한 생각이 그녀가 처한 현실을 떠나 이성에 강제된 의식이 풀어졌으리라. 그녀의 비운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지만 이내 나도 눈이 스르륵 감겼다.

“눈 좀 붙이지?”
봉천동 김씨의 말이 꿈처럼 내게 다가온다.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김씨 뒤로 백열전등이 흐리고, 먼지가 은하수처럼 전구의 불빛을 받아 빛이 났다. 눈알에 미세한 먼지가 낀 듯 빡빡했다. 목도 아팠으며, 입안은 쓰디썼다. 귀속으로 멍한 소리가 울렸다. 김씨는 시커먼 엷은 이불을 덮고 스티로폼 위로 몸을 뉘었다. 그의 머리맡으로 배관의 파이프가 수십 가닥이 쌓여 있었고, 파이프 너머에 버린 벽돌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머리위로는 한 아름 배관 파이프고 천정을 뒤덮고, 닥트통도 배관 따라 구불구불 천정에 무겁게 매달렸다. 김씨의 왼편에는 은색함석 통이 무질서하게 너부러져 있고, 이씨 팀원 서넛은 통 안에 들어가 잠을 자거나 서넛은 맨 바닥에서 보온지를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하나씩 덮고 있는 침랑이나 이불은 그야말로 이 현장 끝나면 버려야 할 만큼 납루 했다.
소주 딱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몸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고 나른해졌다.
“왜 안 자? 이리오라니까!”
“아니요. 주무세요.”
“이리오라니까!”
김씨는 자리를 내주며 연거푸 손짓을 해댔다. 이 상황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김씨가 부러웠다. 두 서너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 지금 눈을 붙이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차라리 잠을 안자고 버티는 것이 났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제도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일어나지 못하고 오전 열시께나 되어 일어나지 않았던가. 다른 이들도 책임자가 안 일어나니 기회다 싶어 덩달아 일어나지 않았다.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다 말고 일어나는 것도 쉽지가 않다. 몸 구석구석에 살이 터지는 아픔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코피가 쏟아져도 버텨야만 한다.
어쨌든 오늘 오후 1시까지는 일을 마쳐야 한다. 이 기계실만 마치면 한 몇 칠 쉬리라. 아까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자꾸 눈이 감긴다. 이런 저런 생각도 들고, 집 생각도 난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에이! 자 일어나 돌아다니자. 일어나자. 아니 조금만 앉아 있다가. 앞으로 몇 시간만 고생하면 이 고생 끝이다. 이번 기계실만 처리하면 돈이고 뭐고 쉬어야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집에서 자는 것이다. 아니다 낚시하러 갈까? 낚시! 좋지. 붕어 한 번 잡아봐야지. 지난번 대부도에 갔을 때는 헛손질만 하고 왔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이런저런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잠깐씩 눈을 붙였다.
‘어떡하든 이 기계실 작업을 마쳐야 한다’라는 혼잣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했다. ‘오늘 1시까지 공조기가 돌아가야 위약금을 물지 않는다고 사장이 신신당부를 하지 않았던가! 자지말자! 자면 쓰러진다. 자! 일어나자! 걸어야 한다. 걸어야. 아니 잠깐만 앉아서 눈을 붙일까. 아니다. 아니지. 아까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술을. 다른 생각을 하자. 다른 생각을’ 숱한 잡생각들이 춤추듯 일어나고 내 감정을 천 가지로 펼쳐들었다. 수많은 생각들. 전혀 보지도 못한 알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한다.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꿈이 아니길. 눈을 뜨자 눈을.’
‘영등포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전철은 막 영등포역에 도착을 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물을 보는 사람, 아직도 조는 사람, 내리려고 일어나는 사람. 전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차 밖의 사람들.

3
어느 해 여름, 몇 년 전 친구들과 채석강에 갔을 때였다. 소주도 마시고 물놀이도 하고, 봉고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다 차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었는데 깨어보니 낯선 곳이었다. 어두운 밤에 십 차선은 되어 보이는 도로 곁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여기가 어디지?’ 나는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 미친 듯이 달리는 차들은 또 뭔가?’ 분명 차 안에서 소주 두어 잔 따라 마시고 고속도로로 진입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이 도시 어딘가에 나를 버려두고 갔단 말인가? 그럴 리가! 나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걷다보면 이정표가 나오겠지 했는데, 얼마나 걸으니 지하철이 보였다. ‘그렇군! 서울이군. 그러니까 이런 거대한 건물과 넓은 차선이 있지. 다행이다. 어? 여기는 안국역!’ 그럼 조계사까지는 같이 왔던 모양인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가 넘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 입구에서 계단에 누워 잠을 잤다. 너무 술에 취했다. 얼마나 잤을까? 일어나 보니 여섯시쯤 되었다. 따가운 햇살이 도시를 밝히고 출근길의 사람들은 나를 피해 지하계단으로 총총히 내려갔다. 전철을 타러 승강장까지 내려가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속이 술에 보대껴서 그럴 것이다. 문제는 전철을 탔을 때였다. 사무실이 있는 영등포까지 가려면 종로3가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한 정거장만 가면 1호선 인데, 그 한 정거장 사이에 쓰러진 것이다.
차안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출근시간이라 그런가 싶었다. 경로석이 있는 끝에서 손잡이를 부둥켜 잡고 매달리다시피 있었는데, 갑자기 발끝이 뜨거워 졌다. 발끝을 내려 보니 발등이 붉게 변하는 것이었다. 그 붉은 색이 뜨거움과 함께 무릎으로 허리로 이어 가슴으로 올라왔다. 놀라 소리를 지를 틈이 없었다. 숨이 멈출 것 만 같았다. ‘어!’ 붉은 물인지 불인지 모를 그 선명한 붉은 색 기운은 빈병에 붉은 물이 차듯 발끝에서 머리까지 차 올라오는 순간 난 손잡이를 놓고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사람들이 손잡이를 잡고 빙 둘러 서서 내려 보고 있었다. 어느 한 사람도 손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 ‘인정머리 없는 인간들 같으니’ 나는 스텐 기둥을 두 손으로 붙잡고 가까스로 일어나 다행히 다음 역에서 내릴 수가 있었다. 1호선을 타는 곳으로 오니 마음이 편했다. 속이 뒤틀려 한 구석에 머리를 대고 토악질을 하였다. 쓴 물이 코로 입으로 넘어왔다. 전철을 타기 힘들다는 생각에 종로3가 의자에서 길게 한 숨을 더 자고 조합 사무실로 들어오니 거의 아홉시가 다 되었다.
“위원장님 지금 올라오신 거예요? 근데 차림이 그게 뭐예요?”
총무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래 그러고 보니 97년도 일이다. 채석강은 불교집안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것이다. 당시 ‘일불회’라는 모임이 있었다. ‘일하는 불자들의 모임’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그 모임성원은 아니었지만 준비 주체들이 아는 후배들이라 함께 간 것이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지선스님이 있는 백양사에 가자는 것이었다. 단풍이 좋다는 내장산국립공원안에 있는 백양사 말이다.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조합 일을 떠나 잠깐 다녀오는 것도 좋다싶어 가기로 했다. 백양사에는 한 때 활동을 같이한 누님 한 분이 지선스님이 백양사 주지로 가셨을 때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가 백양사 앞에서 전통찻집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 누나 얼굴도 보고 싶었다. 사실 막상 만났을 때는 별로 할 이야기도 못하고 술에 취해버렸지만.
백양사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친구와 선배 후배 몇몇은 야음을 타고 그 전통찻집에 내려갔다. 사실 그 누나를 얼핏 본 기억뿐이다. 어떻게 숙소로 들어와 잤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 법당에서 아침 예불을 드리는데 법당에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 물론 간밤에 술을 안 마신 사람들 이야기다. 오전에 예불을 마치고 아침을 먹고 지선스님에게 인사를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곳에는 청년회 출신으로 출가를 하신 스님도 계셨다. 그 스님이 이곳 최고의 절경을 구경시켜준다며 우리를 이끌고 뒷산으로 데리고 갔다. 그 스님이 데려간 곳은 산기슭에 있는 고풍스런 한 암자였다.
암자 앞으로 내장산이 한 눈에 보였지만 뚜렷한 풍경에 대한 기억은 없다. 기억나는 것은 암자에 일찍 올라온 객들 때문에 따라 올라와 초에 불을 켠 처자다. 화장끼 없는 얼굴 간편한 법복 생머리를 뒤로 묶었고 눈빛이 예고 없이 방문한 낯선 객들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생생한 눈, 나이는 이십대 초 중반, 절에 가보면 그곳에 일하는 이런 저런 사람을 보면 무슨 사연이 있어 보인다. 그 처자가 지금은 뭐하고 있는지, 인생의 수레바퀴가 그녀를 모질게 다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루 만에 백양사에 나왔다. 백양사를 나올 때 걸어 나왔는데 그 입구 계곡에 사는 물고기들이 백양사의 어떤 모습보다 신비로웠다. 팔뚝만한 금붕어들이 선명하고 찰랑되는 계곡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세속의 찌든 때가 씻기는 듯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참 팔자 좋은 고기들이란 생각도 들었다. 먹음직스럽기도 했지만 누가 잡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내소사를 들렀다가 채석강에 갔다. 송창식의 동백꽃 피는 선운사도 가려고 했으나 아쉽게 시간상 가까운 내소사를 택한 것이다. 백양사에서 내소사를 갈 때 일행은 더 늘어나 있었다. 몇 명이 늘었는지 모르겠다. 한 서넛. 백양사에서 내소사로 출발을 하기 전 앞마당에서 그들을 만난 것이다. 미리 연락을 하고 만나는 것 같았다. 나는 따라만 왔기에 뚜렷이 그들을 어떻게 그곳에서 만났는지는 모르겠다. 생각나는 것은 그 일행 중 한 젊은 처자가 나를 알아 봤다는 것이다.
백양사는 고불총림으로 인정을 받았는지, 받으려고 했는지 대웅전 앞에 고불총림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대웅전 옆으로 크고 작은 법당이나 숙소가 있었다. 막 그곳을 떠나려고 인솔하는 후배가 소리치며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그 중 한 곳에 서서 늙은 스님 한 분이 그린 그림을 구경하였다. 그림속의 스님은 붉은 예복을 걸치고 긴 주장자를 들고 앉아 있는 스님이었다. 늙은 스님이 그린 그림을 보는 기분이 일상 속에서 볼 수 없어 어떤 깊은 신비감에 젖었다. 그림을 보고 대웅전 눈부신 하얀 마당에 들어섰을 때 일행이 떠나려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중 한 처자가 다가온 것이다.
“저, 청년여래회 출신이죠?”
처자는 웃음을 참고 다가와 뜬금없는 출신을 물어보았다. 내가 여래회 출신 이라는 것을 물을 정도면 나를 알고 있다는 말인데, 나는 그 처자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예.”
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보일 듯 말듯 끄떡였다.
“네? 그렇군요. 근데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기억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마 내가 여래회를 떠난 후에 들어온 회원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를 안다니. 내가 그렇게 유명했단 말인가?
“저, 은장도 사건 알아요.”
이십 대 중반은 쯤 보이는 처자는 이래도 내가 당신을 모른단 말인가 하는 투로 한마디 던지고 몸을 돌려 차 쪽으로 달려갔다. ‘은장도 사건’ 그 은장도 사건을 내게 일깨워 줄 정도면 분명 그녀는 여래회 회원이며, 나를 알고 있는 것이다. 욕심으로 배열된 육신을 끌고 닦고 닦아 세운 백양사 앞마당에서 내 의식은 기우뚱 흔들거렸다.
은장도 사건이라고.

4
언젠가 청계천에서 보수공사로 몇 개월 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현장에서는 거의 매일 술에 취했다. 8월 어느 날 그날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종로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동료들을 잃어버리고 길 따라 이리저리 다니다 근처 현장 울타리에 기대어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손을 댄 그 울타리에 한 장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불교 강좌였다. 불교라? 어떤 단단한 인연이 내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묵직한 인연의 밧줄.
다음날 일을 마치고 다시 그 자리에 가 봤으나, 포스터 한 귀퉁이만 남고 찢겨 있었다. 그것으로 그 포스터의 출처를 알 수가 없었다. 곧 종로 2가를 오가며 다른 포스터를 찾았다. 아마 종각 근처 뒷골목에서 간밤에 본 포스터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아버지는 내게 고등학교가 아니라 청계천 제품공장 시다로 인도했다. 솔직히 아버지를 원망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지간한 아버지였다. 그 어린 것을 공장에 내 보내다니. 허긴 그 공장에 초등학교 나온 순임이란 여자아이도 있기는 있었지만.
이일 저일 하다 급기야 건축현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건설일은 우울한 노동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이른 새벽부터 씻지도 못하고 나와야하는 내 삶이 너무도 못나 보였다. 친구도 없고, 그저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먹고 자고, 술 마시고, 같잖은 일로 싸움질하고, 일하고 일하는 것 외에 색다른 일이 없는 지겨운 삶, 그게 노동일이다. 불교 강좌를 받으러 간 후 난 현장 일을 소홀히 하고 그 곳 친구들과 어울린 것은 당연했다. 술 마시고, 교육받고, 집회장에 가고, 돈 떨어지면 일을 나갔다. 파릇한 이십대 중·후반이었다.
어느 해 여름, 불교 강좌를 통해 알게 된 회원들끼리 여름 수련회로 지리산을 가게 되었다. 오는 길에 백무동 계곡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은장도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낮에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하루 밤을 보내게 되었다. 한 열 댓이 되었나? 텐트도 서너 개 친 것 같다. 반은 여성 불자들이었다. 모닥불이 재를 쌓아 깔아 논 돌을 덮을 때 쯤 한 여성이 그 곳에 모인 남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당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인 즉은 이렇다. 어떤 부부가 강도를 당했는데, 남편 보는 앞에서 부인이 강간을 당한 것이다. 후에 이 일을 빌미로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부부의 일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신문에 난 그대로로 보면 여자로서 화가 날 그런 이야기다. 이 사건을 남자로서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한 여성은 개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축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 주변의 남자들은 남편으로서 부인을 못 지킨 처지를 반성하고 상처받은 부인과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대답을 했다. 그 외 대답이 있을 수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난 전혀 다른 대답을 한 것이다. 이야기가 돌고 돌아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무심결에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대답을 했다.
“은장도가 그냥 있습니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저 뻔 한 질문에 뻔 한 대답을 하기 싫었었나? 그랬나? 그래 그랬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머리에 번득 드는 생각을 말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장난삼아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은 대답만큼 기발하지 못했다. 나를 제외한 남자들이 계곡이 울리도록 웃음을 터트렸고 모닥불이 놀라 화르륵 일어났다. 그러나 남자들은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반에 해당하는 여자들의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웃음이 서서히 끝을 흐리자 모닥불만 조용히 톡톡 타올랐다.
질문 하나에 남자들의 대답이 나를 기점으로 끝났고 여성동지들이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모두 나보다 나이가 어렸으며, 게 중에 몇 몇은 나와 상당히 친했다. 그러나 그날 밤은 더 이상 친구도 동료도 후배도 법우도 아니었다. 남자들의 침 넘기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여성들 몇 몇이 비통한 마음으로 배신과 분노와 사람에 대한 실망을 처절하게 이야기하고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진심으로 몇 번을 사과 했으나, 말은 용서한다고 했으면서 그녀들의 파란 눈빛은 가시지 않았다.
은장도에 대한 언급은 다음날 대절한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계속되고, 저녁 무렵 청량리에 도착하여 수련회 평가를 하면서도 계속되었다. 여성들이 상처를 받았음이 분명했다. 그 중 한 여성후배의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살아있다.
“법우에 대해 진심으로 신뢰가 컸는데,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실망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보다 그의 눈빛이 더 처절했다. 나에 대한 신뢰가 컷었다고? 아마 상대적으로 나에 대한 실망을 강조하려는 말이겠지. 나는 그곳에서 진지하게 또 사과를 했다. 아니 사죄를.
오래 전 일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 함께 했거나 함께 하지 못했던 여래회 회원들의 삶은 각기 많이 달라졌다. 결혼을 해서 남편 따라 지방을 갔거나, 이민을 간사람, 사업을 하는 친구들, 여전히 불교집안을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고, 나와 같이 노동판에서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교육원 책임자였던 선배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봉사를 나가 있다. 출가한 사람도 대략 열은 넘는 것 같고 생을 달리하는 형과 친구도 있다. 올 초 이년 만에 만난 선배는 아프가니스탄 생활 이년 만에 두 가지를 강조했다. 우리는 너무 풍족하다는 것이고, 자신은 이제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해다. 탈레반도, 미국도 민중들도, 기독교도, 어린이도, 아랍도, 황폐함과, 굶주림도, 아랍의 밤하늘과, 끝없는 황무지와 질긴 잡초도.
일년에 혹은 이년에 이런 저런 일로 만나는 그 친구들은 한번은 꼭 나오는 이야기가 그 은장도 사건이다. 이 은장도 사건을 알고 모르고는 회원증과 같은 것이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는 한 길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진실이란 푯말은 자기 처지와 명분에 따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했음이 분명했다.

사무실로 들어온 나는 ‘일불회’ 연락을 하는 여성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어? 형 괜찮아. 형 상당히 취했었구나. 조계사에 도착해서 헤어질 때만해도 괜찮았는데. 형이 후문 쪽으로 가서 왔다갔다 헤매더라고. 그때 취한 걸 알았어야 했는데. 그러다 갑자기 우리를 보고 소리치더라고. ‘조계사는 나가는 문이 없냐!’ 하고. 그래서 진수형이 정문까지 바래다 줬더니 잘 가던데. 그리고 다 흩어졌지. 뭐.”
그 전화를 한 친구는 중학교 때 후배다. 지금은 인사동에서 주점을 하고 있다. 주점 이름은 ‘청강에 흐르는 달’이다. 우린 ‘청강’이라고 부른다. 술값은 신길동 선술집 이 천원짜리 막걸리보다 비싸기 때문에 나는 부담 가서 자주가지 못한다. 혹 언제 갈 일 있으면 사장을 불러 내 이름을 대면 혹시 안주 하나 쯤 더 올려줄지 모르겠다. 아니면 ‘은장도 사건’을 이야기 하면 반겨 줄 것이다.

4
어제는 04년 5월 2일 동원차량이 뒤집어져 혼수상태였던 후배는 2일 늦은 저녁 숨을 거두었으며, 3일 어제는 비가 내렸다. 상집 간부들이 검은 양복을 하나 맞추라고 재촉해 검은 넥타이까지 한 벌 장만했다.
영안실은 좁았으며 학교친구와 동네친구 조합원으로 삼일 째 북새통을 이루었다. 조합에서는 그저 말없는 막내였으나 또래 중에는 꽤나 알려졌던 친구였나 보다. 수백은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녀석의 이력도 어제 처음 보았다.
오일장을 하기로 해 오늘도 내일도 가봐야 한다. 이제 스물아홉인데.


5
몇 칠전에는 아침부터 체불된 백형이 속상하다며 우동에 고량주 한 병을 마셨고, 인천조합의 황형이 더덕 한 봉지를 사왔다. 안주를 본 김에, 몇 칠전 민주노동당 승리 축하를 위한다면 조합원이 사다 논 포도주 2병을 꺼내 더덕을 안주삼아 날 것으로 벗겨 먹으니 조합 안이 지금까지 더덕 냄새가 진동을 한다.

6
문득 문득 딴 생각을 한다. 상황에도 안 맞는 의식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사고를 조종한다. 알 수 없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의식이 단편적인 그림이 되어 제 마음대로 꿰맞추어 나를 강제한다.
요즘 내가 너무 피곤한가?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178   빌어먹을!  최경주 04·04·23 6557
177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836
  은장도?  최경주 04·05·04 5677
175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652
174   79년 주베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2  최경주 08·02·10 5644
173   발전기 소사  최경주 08·01·22 5600
172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557
171   위대한 만찬  최경주 04·05·31 5367
170   위대한 만찬  최경주 04·05·31 5360
169   아버지의 형제들   04·04·12 5276
168   어떤 산행  최경주 04·02·14 5072
167   개, 개떼들  최경주 04·08·24 4976
166   고통, 그리고 광끼  최경주 04·01·19 4681
165   어떤 출가  최경주 04·07·09 4680
164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630
163   시가 되어버린 기억   03·11·07 4596
162   위대한 만찬  최경주 04·05·31 4511
161   명성 이자녹스  최경주 04·02·12 4430
160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326
159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316
12345678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