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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빌어먹을!
 최경주  | 2004·04·23 01:01 | HIT : 6,557 | VOTE : 249 |
밤 11시 쯤, 신월7동이 종점인 중부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환영이 보인다. 눈은 쓰려 감은 채로, 맨 뒤 좌석에 앉아 등받이에 깊숙이 앉아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감은 눈 속에서 사람의 얼굴이 붉은 점과 빛으로 되어 가물가물 흔들린다. 남자의 얼굴이다. 그러다 사라지고 붉고 흰 불 빚이 금가루 뿌려진 듯 눈을 어지럽힌다.
버스가 오목교쯤 오자 내 주변에 앉았던 사람들이 다 내리고, 오목교에서 여학생 둘이 탔다. 고등학생쯤 되는 것 같았다. 서로 욕을 하면서 주고받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나중에는 그 소리가 귀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맴돌다, 급기야 환각 속에서 그네들이 내 의식 속에 들어와 떠들어 댄다. 한참을 그렇게 비몽사몽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 눈을 떠보니 여학생 혼자서 전화를 걸고 있다. 대충 이야기 인즉 자신의 여자친구가 집을 나갔는지 알았는데 잘못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날이 흐리고 기온이 낮았다. 신월동에서 국립과학 수사연구소를 지나 고강동 은행단지까지 걸어 오는데 다리도 기분도 무겁다.

몇 시간 전에는 제물포 상가 집에 있었다. 오후 6시쯤 되었나. 통일운동을 하는 아는 사람이 부친상을 당한 것이다. 돌아가신 어른이 아흔이 넘으셨다. 이 정도면 호상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슬픈 얼굴들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어른께서 예수님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셨던 모양이다. 국화를 영전에 바치고 고개만 숙임으로 예를 갖추었다. 하마터면 절을 할 뻔했다. 셋이 국화를 올렸는데, 두 사람은 경험이 있는지 절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걸 모르고 무릎을 반쯤 구부리다 잽싸게 다시 폈다. 사실 절을 한다고 누가 뭐라 그럴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혼자 하기가 영 아니었다. 이틀 전 할머니 제사였는데, 아들 놈 둘과 제사를 지냈다. 나는 정식으로 하는데 일곱 살 큰 녀석과 다섯 살 둘째 녀석은 끝까지 장난이다. 털썩 엎어지며 절을 한답시고 엎드려 키득거린다. 처와 어머니는 그것도 대견한지 잘한다고 칭찬이다. 사실 오늘 제물포 상가에는 못 올 뻔했다. 오늘이 발인이라고 잘못 알아들었는데, 다행이 제대로 가르켜 주는 사람이 있어 올 수가 있었다.
어쨌든 오늘은 피곤한 날이다.

오늘 오전에는 분당에 있었다.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 말이다. 어제 오후에 들어와 오늘 점심밥 먹고 그 곳을 나왔다. 국군수도병원에 처음 들어와 본다. 시간을 보내면서 수도병원 연병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장병들과 환자들의 하루 움직임을 보았다. 병원 안에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밖도 물론이다. 담배를 유일하게 피울 수 있는 곳은 연병장 한 끝, 축구골대 뒤였다. 청색 플라스틱 쓰레기통 세 개를 놓고 시간에 맞추어 환자복들이 모여 담배를 피워댔다. 일반인인 우리는 연병장 계단에 앉아 병사를 운동하는 것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오늘 오후 2시부터 민방위 훈련을 한다고 안내 방송도 나온다. 아마 이번 15일에 총선이 있어 연기된 모양이다.
병원 안에 직원들과 방문객이 이용하는 식당이 있었는데, 식사는 그곳에서 했다. 아침은 저녁은 천오백원이고 점심은 삼천 원이다. 오늘 아침 식사는 영양죽이 나왔다. 고춧가루에 버무린 깍두기와 영양죽은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늘 한 두공기 밥을 먹고 출근을 해야 하는 건설노동자들에게 죽 한 그릇이라니, 수저를 가지고 떠먹을 필요도 없었다. 단숨에 마시면 끝나는 것이었다. 허긴 이 식당이 건설노동자를 고려해 식단을 짜지는 않을 것이니까, 이해를 해야지 어떡하겠는가. 점심때는 11시 반부터 가서 먹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있던 동료 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지독하게 배가 고픈 아침이었다.

어제 저녁은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을 숱하게 다녀본 고참으로서 신참들에게 기술을 하나 물려주었다. 나 말고 네 명의 동료들이 있었는데 나보다 한 살 적은 김형 말고는 다 후배들이었다. 조합생활 십여 년에 갖가지 일로 병원에 다녀본 결과 터득한 단순한 방법 하나가 잠자는 것이었다. 이틀째 중환자실을 지키고 있는 동료에게 간밤에 어떻게 잤는가 물어보니 의자에 쭈그려 앉아 잤다는 것이다. 맙소사!
새벽 1시쯤 되어 사람들을 이끌고 병원 로비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 밤을 새려면 몸을 눕힐 수 있는 소파를 찾아라!’ 이것이 핵심이다. 차를 가지고 왔다면 다행인데, 때에 따라서는 차가 있어도 가서 잘 수없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때는 중환자실이나, 영안실을 고집하지 말고 좀 더 반경을 넓게 잡아 소파를 확보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소파를 몇 개 잡아 자리를 잡아주니 금방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함께 자던 후배 녀석은 모기 때문에 잠을 못자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래 근처 잡지를 하나 꺼내다가 얼굴을 덮는 요령도 일러주었다. 살이 드러나 손은 머리를 배면서 감추고 말이다. 그런데 녀석은 그럴 수도 없었다. 반팔을 입고 온 것이다.
놈은 밤새 모기와 전쟁을 했다.

그저께 조합사무실에서 상근자들과 점심을 먹는데, 화제는 부천 엘지백화점의 리모델링 건물의 안전사고였다. 연맹차원에서 어떤 대응을 나올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아침 연맹 게시판에 뜬 것으로 보아 사망자가 하나 더 발생해 모두 넷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지금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사실 영안실이나 부천 조합에 방문을 해 봐야 하는데 그럴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엘지 사고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 날 아침 동원 훈련을 갔던 교육부장이 다쳤다는 것이다. 교육부장의 지갑에 조합 명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위급하니 집에 연락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날 조합에 들러 말하길 자신이 동원 훈련을 받으러 가니 편집모임에 못 나온 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렇구나! 했는데 난데없이 다쳐서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헬기로 옮겨왔다니. 그 순간까지 국군수도병원은 화곡동 근처에 있는지 알았다. 그 병원이 분당으로 옮겨졌단다. 서둘러 지도를 찾아보고 사무실에 최소인원만 남기고 병원을 향했다.
분당으로 가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뉴스를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뉴스에서 사고 경위가 나왔다. 택시를 추월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세 명이 사망하고 셋이 중태, 그 중태 중 하나가 교육부장이라니. 녀석의 가입서를 내가 받았는데...그 날 간부 둘을 병원에 놔두고 할머니 제사 때문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새벽 두 시쯤 사무국장에게 전화가 왔다. 그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나는 끝났구나 싶어 새벽 첫차를 타고 나간다고 했다. 사실 부천 집에서 신길동 조합까지 나갈 택시비가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사무국장은 그 말에 한 말을 잃었다고 했다. 그래 사무국장은 그 즉시 자신의 차를 몰고 총무차장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새벽 다섯 시 쯤 집을 나서면 병원에 있는 간부에게 전화를 하니 위급한 상황은 넘겼다고 했다. 가서 들어보니 전기충격을 가해 상황을 벗어났다고 했다. 그때가 21일 어제새벽 이었다. 오전에 병원에 들어가니 그의 학교 선후배들이 잔뜩 몰려들어 면회를 하고 있었다. 의사는 오늘이 마지막 고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하루를 무사히 넘기자 계속 흐르던 복부의 피도 멈추고 혈색도 서서히 돌아왔다. 의사는 오늘 일주일을 예상했다. 문제는 뇌였다. 눈 위로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한다. 의식만 깬다면 다른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듯싶다.
밤낮으로 그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제발 깨라! 너는 깨어나야 한다! 제발!
놈도, 작년에 졸지에 암으로 간 녀석도 다 나와 같은 닥트 직종이다. 빌어먹을, 고사라도 단단히 지내야 할 모양이다.
정말 요 몇 칠 죽을 맛이다. 에이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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