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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떤 산행
 최경주  | 2004·02·14 22:24 | HIT : 5,096 | VOTE : 293 |
일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되게 일을 하기 싫을 때가 있었다. 몇 날을 고민한 끝에 어린 마음에 세상을 등지기로 하고 드디어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종로 근처에서 보수 공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팔십 이삼년 되었을 려나.
떠날 결심을 한 날, 집으로 들어가 옷가지를 챙겼다. 오월 경이었는데, 혹시나 해서 겨울 파카도 챙겼다. 아침에 현장으로 출근을 하지 않고 서울역으로 갔다. 손에는 돈이 십 만 원정도 있었을 것이다. 내 나이 스물 둘, 셋 쯤 되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역에서 우두커니 전국 철도가 놓인 지도를 보니, 지리산이 눈에 들어왔다. 지리산이라! 지리산에서 제일 가까운 역을 보니 남원역이었다. ‘그래 지리산으로 가자’ 기막힌 생각이었다. 지리산이라니. 멋진 여행이 되리라. '내 지루한 일상이여 안녕!'
남원으로 가는 열차 표를 사서 시간을 서울역 대합실에 앉아 기다리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가까이 왔다. 그 아주머니가 몇 마디 말을 붙이더니 말세에 대하여 짧고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분명 내가 살아있는 시기에 세상이 심판을 받을 것이란다. 나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다. 달리 할 말도 없었고. 차가 떠날 시간이 되어 헤어질 때 쯤, 아주머니가 손에 들어가는 작은 성경책을 주었다. 녹색 비닐표지였다. 성경책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가방 안에는 집에서 가지고 금강경오가해라는 불경이 있었다.
몇 시간 후 남원에서 버스를 타고 뱀사골까지 도착을 했다. 아직 어둡기 전이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가지고 드디어 뱀사골에 들어왔다. 눈앞에는 벽처럼 둘러 쌓인 녹색 산 뿐이었다. 높고 첩첩 쌓인 봉오리들, 몇 몇 사람들과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려오는 계단식 계곡물과 주변의 매끈한 바위돌. ‘여기가 지리산인가? 그래 다시는 내 뒤 세속으로 내려가지 않으리라’ 그런 마음을 먹었다. 물론 몇 칠 만에 뛰어 내려오고 말았지만.
날은 그리 맑지 않았다. 곧 비가 올 것 만 같았다. 내 느낌에 어떤 사물도 나를 환영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산도, 바람도, 진달래도, 뱀사골 계곡도. 사람들을 따라 올라갔다. 얼마를 올라가니 야영장이 나왔다. 텐트가 간간히 보였다. 밥을 하기위해 코펠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을 보니 더 올라가고 싶었다. 사람들을 피해 왔는데 산속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다니,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얼마나 올라갔을까, 길은 계곡을 끼고 계속 정상을 향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등 뒤로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좋다. 다른 길로 가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침 바로 앞에 계곡이 갈라져서 내려오고 있었다. 왼쪽 계곡이었는데, 그 쪽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 계곡에는 등산로가 따로 없어 계곡따라 미끄러운 바위를 딛고 가야 했다.
어느 정도 올라갔다. 인적이 없는 호젓한 산속이었다. 곧 어둠이 내려 계곡에서 하룻밤을 자야했다. 넓은 바위위에 올라가 가방을 깔고 베개 삼아 베고 누웠다. 하늘에는 별이 강처럼 흘렀다. 서울에서는 어림도 없는 밤하늘이었다. 별들 사이로 별 하나가 이리 처리 춤을 추며 가로 질러가는 것을 보고 혹시 미확인 비행물체 아닌가 했는데 모르겠다. 하여튼 수많은 별들이 눈에 빼곡히 들어왔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너무 추워 잠을 깼다. 가방에서 두꺼운 파카를 꺼내 입고 다시 잠이 들었다. 긴 밤이 지나고 계곡물에서 하얀 수증기가 안개처럼 일어날 때 쯤 깨었다. 하늘에 붉은 해가 높은 산봉우리를 디딤 삼아 떠오르고 있었다. 누워있는 내 몸에서는 뜸을 들이는 밥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올라왔다. 파카가 이슬에 푹 젖었던 것이다.
얼떨결에 보낸 하룻밤에 어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수풀이 바람도 막을 정도로 우거진 속에서 푸른 안개가 피워 오르고, 물기 잔득 머금은 초목이 햇볕을 받아 빛나는 푸른빛에 눈이 부셨다. 계곡에 쏟아지는 물은 혈기 왕성한 청년의 혈관처럼 힘이 넘쳤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일어나자마자 사방에 산신을 생각하며 절을 했다. ‘신이시여, 저 일만으로 사람 잡는 세속에 돌아가지 않을 힘과 용기를 주소서’ 먼 의식 속에 지겨운 도시의 소음이 나를 비웃고 있는 듯한 생각도 그때 들었다. ‘웃기는 군, 최경주 너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려오게 될 거야’라고.
산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낮에는 금강경과 성경을 번갈아 보며 오랜 수도승처럼 좌선도 해보고 소리도 지르며 보냈다. 물론 바위위에서 자는 어리석은 짓은 첫날이 끝이었다. 계곡을 돌아다녀보니 이슬을 피할 만한 바위 골이라기보다는 틈을 찾았다. 두 사람은 빠듯하게 마주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계곡에 흐르는 물과 진달래가 전부였다. 후에 그때면 철쭉이었을 거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하여튼 그 꽃과 물만으로 한 삼일은 보낸 것 같다. 사흘쯤 됐나 너무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좀 사오기로 하고 올라왔던 길로 되 내려왔다. 빵과 라이터를 샀다. 추운 밤에 불을 때기 위해서였다.
그날 저녁 몸이 근질거려 바위틈을 나와 목욕을 하기위해 계곡물을 향해 나섰다. 바위는 이끼가 끼어 미끄러웠다. 한손에는 수건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비누를 쥐고 있었다. 계곡물을 바닥이 훤히 보일만큼 깨끗했다. 계단식계곡이라 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 십 평은 되었다. 낮은 물 쪽으로 가기위해 엉금엉금 바위 위를 기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만 것이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귀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계곡에 빠진 것이다. 물의 깊이는 내 키보다 깊었다. 오! 이럴 수가 ‘난 수영을 못한단 말이야’ 난 죽은 목숨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가로 세로 십 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한 오 미터 사방으로는 한 키가 넘었다. 물속에 빠진 반동으로 몸이 물 위로 솟구쳤다. 그때 저녁놀이 깔린 산 봉오리를 위로 서쪽 하늘에 가득한 어머니 얼굴을 보았다. ‘아!’ 외마디 소리가 절로나왔다. 내 몸은 야속하게 다시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때 드는 한 생각이 있었으니,

구두 일을 할 때였다. 열여덟이나 아홉 되었을 나이다. 구두공장에는 앵글 철재로 된 다이가 있다. 그 철재 곳곳에는 늘 본드가 두텁게 묻어있다. 항상 주변에는 본드와 시너 그리고 전기난로가 일꾼 앞에 하나씩 놓여있다. 한번은 시너로 구두에 묻은 본드를 지우다가 목장갑에 불이 붙었다. 놀란 나머지 그 손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벽을 치니 손이 닿는 곳마다 불이 붙었다. 그 당황함이란, 얼마나 놀랐겠는가. 벽에 불이 한 움큼씩 붙었다. 기절할 정도였지만 손에 붙은 불을 놔두고 쓰러 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경험 많은 선배가 벽에서 나를 떼어 내더니 소리쳤다. ‘침착해라. 침착’ 그 형은 내 손에 장갑을 벗겼다. 너무도 간단히 나를 살린 것이다. 문제는 벽이었다. 벽에 불이 붙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두르지 않았다. 침착하게 가죽이나 포를 가져다 덮어 간단하게 불을 제압했다. ‘침착해라. 불이 났을 때 침착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그때의 교훈은 일생의 지침이 되었다. ‘침착하자. 침착’. 그래 침착하자. 특히 죽음을 눈앞에 두고는.

난 수영을 할 줄 모른다. 하지만 계곡 물이 넓어야 오 미터 전방이다. '그래 침착하자' 그 생각을 하니 마음에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비록 영점 일이초 사이긴 하지만. 두 번째 몸이 솟았다. 세 번째면 죽는다고 했던가. 바로 눈앞에 미끄러져 내린 바위가 보였다. 붙잡으려 하니 손가락에 이끼가 패이며 주르륵 흘러 내렸다. 더 빠지기 전에 있는 힘을 다해 바위를 밀치며 몸을 물 바깥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온갖 수영 동작을 상상하며 몸을 젖기 시작했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가만히 몸을 바로 세웠다. 발끝에 살짝 바닥이 닿았으나 물은 눈까지 찼다. 다시 뛰어 올라 한 숨을 쉬고 허우적거려 그렇게 하기를 몇 번, 살아나올 수 있었다. 숨이 턱에 찼다. 몸을 씻을 기분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이 깊은 산중에서 죽을 뻔 한 것이다. 숨을 돌리고 보니 놀랍게도 손에 수건과 비누가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걸 놓지 않고 내가 여태 허우적거렸단 말인가? 정신이 없긴 없었나보다.
다음날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긴 행렬로 하늘을 가로질러 빠르게 흘러갔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역시 오후 들어 이슬비가 오기 시작을 했다. 주변을 보니 혹 큰 비라도 내리면 물이 바위틈까지 찰 것 같았다. 그래도 빗줄기가 가느니 하룻밤만 더 참기로 했다. 그 공포의 하룻밤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혹시 밤에 추우면 불을 때려고 그런 것이다. 밤을 버틸 만큼 나무를 모아 느긋하게 바위굴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는데, 멀리 이상한 소리를 들리는 것이었다. 라디오 잡음 같은 것이었다. 더 요상한 것은 그 소리가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리면 들리지 않다가 한쪽 방향에서만 그 소리를 들렸다. 혹 바위틈에서 나는 소리인가 했는데,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한참을 들리다 그 야릇한 소리는 어느순간 들리지 않았다.
예전에 어머니가 사시던 전라남도 사평이란 어느 산등성이에서 아기가 죽으면 가져다 묻는 아기당 이란 곳이 있었단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죽은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였다고 했다. 그 생각에 혹시 이 근처에 그런 곳이 있나 싶었다. 아직 어둠이 오기 전이었다. 부슬비가 처량하게 내리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뭔가 이유가 될만한 것을 찾아 보았다. 얼마나 올라갔나, 나무껍데기로 지붕을 엮은 마을이 보였다. 내가 제대로 봤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흙은 탑처럼 세운 벌통 같은 것도 간간히 보이고, 많은 가구는 아니었다. 서너 가구, 그 정도였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 말고, 또 하나 방망이 수류탄을 계곡에서 봤다. 분명 수류탄이었다. 맥주 큰 병만 했다. 계곡 모래톱에 반쯤 잠겨 있었고 녹이 슬고 쇠가 부식되어 속은 비어 있었다. 뇌관인 듯싶은 구리선만 물에 씻기어 반짝이고 있었다. 지리산의 아픈 전쟁의 부산물일 것이다.
내가 찾고자했던 아기당이나 처녀가 죽은 묘지는 없었다. 다시 그 자리로 와서 오늘만 버티고 자리를 옮기자고 마음을 먹고 밤을 기다렸다. 지리산의 밤은 일찍도 온다. 시계가 없어 확인은 못했지만, 아마 여섯시 전에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비가 조금은 굵어지고 계곡 물소리 조용했다. 귀에 익숙해서 그럴까. 그러나 한 가지, 그 묘한 소리가 어둠 따라 시작된 것이다.
아기 울음소리였다. 오후와는 다르게 더욱 분명하고 크게 들렸다. ‘응아, 응아’ 아니다. ‘응애, 응애’였다. 분명하고 또렷한. ‘헛소리다. 환청이다. 내가 너무 굶은 탓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오늘만 버티자. 오늘만. 오늘이 고비인 것이다. 오늘만 버티면 십년도 버틸 수 있다. '세상에는 귀신이란 없다. 절대로. 진짜로' 한 시간쯤 들렸나. 문득 그 소리가 멈추었다. 아직 초저녁일 뿐인데. 불을 지폈다. 불을 지피니 불꽃이 춤을 추듯 이리저리 까불었다. 불빛이 바위틈을 나가 계곡을 비취니 계곡이 살아있는 듯 이리저리 모습을 달리해 나에게 여러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소리도 그 소리를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음을 달리해 들려주었다. 차라리 불을 끄는 게 낳겠다 싶어 불을 껐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있었나. 아마 한 일곱 시나 여덟 시, 그 정도 되었을 것이다. 불을 끈지 얼마 후 ‘응애, 응애’ 아기 울음소리는 아까보다 더욱 크게 들렸다. ‘오! 신이여, 왜 이런 잔인한 시련을 주시나이까’ 맙소사. 이럴 때 금강경이나 성경을 외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두워 글이 보이지 않으니. ‘참자. 오늘만 버티자! 얻는 것이 있을 테니까. 오늘만’ 그러나 내 의지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울음소리도 그렇고.
아기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는데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우는 아이가 굴 안에 같이 있는 것 같았다. 칠 흙 같은 밤, 굴속도 밖도 구분이 가지 않는 곳이었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작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거짓말 처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불을 껐다. 나무도 부족했지만, 춤추는 불빛에 초목의 여러 자태가 무서웠다. 그 검고 푸른 그림자 숲에서 뭔가 튀어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이란, 차라리 애한테 내 운명을 맡기리라.
불을 끄고 한동안 괜찮다 싶었는데,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애 울음소리였다. 고양이 울음은 아니었다. 분명 애 울음소리였으며, 나중에는 동굴 속이 쩌렁쩌렁 울렸다. 귀가 멍멍했다. ‘응아, 응아’ 무엇을 원하는 걸까! 애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는 아이를 손으로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잘 버티다가 딱 한 생각에 벽이 무너져 내리듯 무너져 버렸다.
‘혹시 말이야. 내가 죽는다면, 혹시, 이게 진짜 귀신 울음이라면’ 그 생각이 여러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혼비백산해 죽는 꿈부터, 몇 개월 후 등산객에 발견되는 썩은 시체까지. 문득 오늘 밤에 죽느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자. 세속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고생을 하더라도 오늘 여기서 죽는 것 보단 낳을 것이다’ 생각이란 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다. 난 살고자, 가방을 훔치듯 들고 동굴 밖으로 튀어 나왔다. 환한 낮에도 미끄러워 조심해야할 바위 위를 미친 듯이 달렸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도.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말이다.

차부까지 내려왔을 때 버스하나가 떠나고 있었다. 표를 파는 곳에 물어보니 아홉시 막차가 떠났단다. 귀신은 자정 이후 나타나는데 아무래도 내가 헛것에 시달린 모양이다. 하룻밤 잘 수 있는가 물어보니 잔다면 밥까지 준단다. 돈이 얼마였는지 모르겠다. 한 팔천원이나 만원쯤 했던 것 같다. 밥은 쇠고기 뼈를 삶은 국과 함께 나왔다. 밥에 국을 말아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피곤이 몰려와 옷도 벗지 못하고 누웠는데 입천장에 뭔가 잔뜩 걸렸다. 입천장 허물이 국물에 데어 벗겨진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혼자 한참을 웃다가 잠이 들었다.
산을 내려온 후, 그날 굴에서 밤을 새우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도망치다니, 더구나 그날 이후 어둠에 대한 공포증까지 생겼다. 혼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가 처가에 갈라치면 어머니하고 같이 자야했다. 아니면 피곤해 쓰러질 때까지 불을 켜놓고 텔레비전을 보다 자는 것이다. 조합사무실에서 혼자 잠을 자다가 무서워 비가 오는 영등포 공원을 새벽까지 배회 한 적도 있다. 한 이십 여 년이 지난 얼마 전에 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그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산에 다니는 친구 하나가 산에는 저주파라는 것이 있어 우중충한 날에 가끔 들린다고 했는데,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애 울음소리는 내 삶의 한 단편이다. 가끔 그날 밤을 버텼더라면 더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날 밤은 내 인생에 있어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뼈아픈 패배를 하였다. 혹 그날 밤을 샜더라면 내 인생은 다른 길을 갔을지 모르겠다. 가끔 인생이란 긴 여정에 길을 바꾸는 사건이나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문득 그 생각이 들어 한가한 토요일이라 글을 써본다.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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