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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명성 이자녹스
 최경주  | 2004·02·12 07:23 | HIT : 4,430 | VOTE : 328 |
명동성당 들머리에 가면 왼쪽에 이자녹스란 거대한 간판이 보인다. 그 간판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꽤 오래 되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 만해도 족히 몇 년은 되니. 어제 수요 집회가 있어 가보니 여전히 그곳에는 이자녹스란 간판이 건물 옥상에 하늘 한편을 가리고 서 있었다.
언제였던가? 98년경 여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명성에 경기서부 동지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텐트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그 당시 98년 여름에는 내가 속한 서울지역건설노조에서 텐트를 치고 있었다. 건설일용노동자의 생계대책을 걸고 한 농성이었다. 그때 이백하고 몇 칠 더 텐트를 쳤었다. 농성 중이던 여름은 오살 맞게 길었던 것 같다. 거의 겨울이 깊어서 연말 쯤 농성이 끝났던 것 같다.
어느 여름 밤 텐트에서 저녁을 먹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누군가 당시 인천 사는 부위원장을 보고 농담을 하였다.
“부위원장님은 밥 먹고 나서, 저 이자녹스보고 담배 한 대 맛있게 피운단 말이야!”
그 말을 듣고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건물위로 거대한 간판이 있었다. 그 간판이 이자녹스였다. 서양여자가 간판 거의 전면을 가득채운 채 명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인이었다, 담배가 절로 빨릴만한. 어제도 보니 기본 구도는 그대로였다. 명동에 가면 이자녹스를 꼭 한 번 보기 바란다. 이자녹스와 노동자의 농성은 아직 진행 중이다.

98년 당시 우리가 농성할 때, 몇몇 농성단이 함께 하거나 바뀌었다. 한총련 대의원들과 이갑용 총연맹 지도부가 함께 했었다. 그리고 유명한 은행퇴출 사건인 은행 3개의 집행부가 함께 했다. 그때 학생들이 이런 말을 했다. ‘일용노조 형님들의 잠자리와 은행 형님들의 먹을 것만 있으면 몇 년도 버티겠다.’ 아마도 총연맹 조직 중 우리만큼 농성텐트를 잘 치는 조직은 없을 것이다. 밖은 텐트지만 안에는 거의 안방 수준이다. 얼마나 많은 조직들의 농성장 바닥을 깔아주러 다녔던가. 명동성당 계단에 마루를 까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전문 목수가 있어야 한다.
낙엽이 떨어지고 명동을 휘감고 흐르는 여인들의 옷이 길어지고 두터워 질 때쯤엔 한총련대의원들과 우리가 명동을 지켰다. 은행도 가고, 총연맹 지도부도 갔다. 쓸쓸한 명동들머리에 간간히 들러 끊임없이 괴롭히는 매정한 명성 신자들과 어떤 한 신부가 텐트를 뜯어달라고 화도 내고, 가끔 물리력을 동원해 우리를 압박했다. 성직자에게 죄인 취급을 받다니, 원 세상에. 이번 경기서부 동지들이 텐트를 칠 때는 성당에서 텐트를 못 치게 해 십 여일을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혹독한 겨울밤을 보냈다. 나중에 친 텐트가 어제로 65일째였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다.
명동성당 들머리엔 유달리 바람이 많이 분다. 춥기도 하고, 남산 끝자락이라 그런다고 하다. 몇 칠전 회의 때문에 텐트에 갔을 때, 서부 위원장에게 그 말을 했더니 한마디 재미있게 거들었다.
“여기서 백일만 이렇게 난장농성을 하면 성인이 된데요.”
“그래요. 성인 될 날 몇 칠 안 남았네.”
명성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옛날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직도 명성들머리는 약한 자를 품어주는 곳이다. 언제고 텐트를 뜯으라는 압박이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명성은 때리지는 않아 버틸만 하다.
언젠가 명성에 가게 되면 한번쯤 계단에 앉아 들머리에 스며든 수많은 영혼들의 흔적과 접촉을 하기 바란다. 그들의 눈물과 비명, 환호, 구호와 노래, 그리고 기나긴 밤마다 꿈꾸었을 사소한 행복과 고뇌들을.

삼동 퇴출 때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서 집회를 하던 사무직 노동자들이 생각이 난다.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권영길 위원장 총파업 당시 신년 첫 날 집회를 그곳에서 한 적이 있었다. 친구 하나와 명성들머리에 갔을 때 눈발이 한껏 날리고 있었다. 신년 첫날이라 그곳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개가 흰머리 성성한 원로들과 각 단체 상근자들이었다. 집회를 하는 중에 눈발이 사선으로 비끼며 어른들의 흰머리와 어깨에 수북이 쌓이는데 그 장면은 내 개인적으로 그 어떤 사진이나 그림보다 소중하게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보물이다.
명성에 텐트를 칠 때는 거의 전국적인 탄압이 있는 상황이다. 일반적인 사건 같은 것으로 텐트를 친다면 받아 주지도 않을 것이다. 기본이 수배여야 한다. 건설노조 십 수 년 역사에 이런 탄압은 처음이다. 건설노조가 그 만큼 성장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탄압은 여러모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가파른 들머리 돌계단에서 삶을 챙기는 동지들의 호흡은 여러 갈래로 전국의 건설노동자들과 이어져 있다. 탄압은 날카로운 바람처럼 우리를 후려치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다. 명성 들머리는 잠시 거쳐 가는 곳일 뿐이다. 얼마 후면 다른 텐트가 그 곳에 있을 것이다. 다른 노동자들이 이자녹스를 보고 무슨 생각이든 하겠지.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길까 아니면?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건설노조 운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현장에 노동자가 있고, 노예적 삶이 있고, 자본가가 있다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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