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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시가 되어버린 기억
   | 2003·11·07 00:30 | HIT : 4,596 | VOTE : 335 |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켜가거나 마주치거나, 같이 거닐거나, 멈추거나, 그렇게 산다는 것은 긴 여정임이 분명하다.
사람을 그늘삼아 쉬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가 되기도하고, 상처를 주고 받기도하는 그런 긴 여정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 타워 크레인이 서있는 현장 안에, 어찌 어찌하다보니 그렇게 십년 쯤 함께 노동일, 조합일을 한 놈을 임진강에 하얗게 뿌렸다.
얼마 후 사무실에서 그의 흔적을 지워나가던 중 옛날 조합 글집에 실렸던 그의 시 몇편을 찾게 되었다.

"형, 나 시 한번 써 봤어요."하고 내밀었던 시다. 그 후로 시를 썼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꺼부정한 키, 불같은 분노, 남의 고통을 아파했던 그런 놈이었다.
"형은 새 가슴이야." 늘 내게 했던 말이다.
어지간히도 술을 마셨었다. 참으로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달리 남의 아픔에 민감했다.

글/ 정인구

제목/ 휴일
과음한 다음날은 휴일이다
어린이날도 현장에 나가야 한다
어린 자식 어리둥절하다
그래도 술 마신 다음날이 쉬는 날이다
우리의 휴일은 항상 과음한 다음날
누구누구 나 쉬는 그 휴일은 언제 우리의 휴일이 될까

* 아들이 하나 있는데 초등학교 일학년이다.

제목/ 합숙소1
작업복이
사물함 문짝에 미친년 치맛자락처럼 걸려있다
바닥에는 뻣정대처럼 널려있다
한켠에는 하이바(안전모) 뒹굴고
재떨이 휴지통 제자리가 없다
들어서면 퀴퀴한 냄새가 어지러운 정경들이 반긴다
불이 나서 돈 들여 만들었다는 여기에
텔레비 한 대 없고
오로지 잠자고 빨리빨리 일터에 가라고
돈 벌어 가정으로 가라고
작업복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지긋지긋한 합숙소. 그곳은 공기조차 특이한, 자본의 감옥이다.

제목/ 합숙소2
철망으로 둘러 처져 있다
출입구에는 눈빛 반짝
세빠또 두 마리
철망 위에는 외눈박이 폐쇄회로
번쩍 번쩍
방문 열면 쾅 쾅 쾅
숙소사용규칙
노동자가 죄수인가?
범죄자인가?

*가난한 노동자가 어디로 갈 수있을까? 돈, 돈, 돈을 요구하는 이 사회는 일본 순사보다 무서운 간수들이다.

제목/ 합숙소3
빨랫줄에 걸려있다
후즐근한 내 삶처럼
빤스, 난닝구, 양말

한잔마시고 누운 날은
더욱 삶을 생각게 한다
누구의 것인지, 누구의 삶인지,
후즐근 하다

나의 인생은 끈끈함, 끈질김
그런 것으로 꾸며져 있다
계속되는 삶의 압박 속에
이어지는 생활의 연속 속에서
나아질 것 없는 속에서
빤스, 난닝구, 양말은 널려있다

이면을 생각하자
이런 것이 평가될 그날
그날은 반드시 올 테니까
오늘도 알코올 냄새 풍기며
고달픈 내일을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97년 천안삼성전관 합숙소에서)

*우리의 그림자가 서로 엮이어 있다. 칭칭감긴 등나무 줄기처럼. 노동에 지친 잠과 꿈,
거대한 빛쟁이에게 삶을 담보잡혀 어쩌지 못하는 저 즐비한 신용불량처럼.

제목/ 인생
자연을 꿈꾸며 살았다
적기 되면 피는 산천에 꽃들을
마음껏 음미하며
들녘에 검은 빛 이마에 반사된
노동을 생활이라 생각하며
빠지는 노동을 달게 느끼며 그렇게 살았다
너와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다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것 나의 것인
이 고달픈 노동이
아버지에게서 또
나의 아들로 이어지는 게
굴욕적인 노동을 더 이상 참을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젠가 올 만들어야 할
아름다운 노동을 생산해야 한다

*삶을 노동을 술을 지독하게 사랑했던 친구였다. 기쁨을 기쁘게, 아픔을 아프게. 조금 아쉬운게 있다면 기쁨보다는 고통이 그에게 조금은 더 가까웠던 같다. 그가 여수 요양소로 떠나기 5일 전 전화가 왔다. 떠나면 못 볼것 같다고, 다음날 아침 떠나려 짐을 싼 그를 불암산 아래 그의 아파트에서 보았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데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불암산이 보이는 사진속에 나는 없다. 나는 사진사로 서너명은 그를 둘러싸고, 그렇게 우리의 얽힌 인생은 어색한 그림 한장 남기고 말았다.
긴 삶의 여정, 모두가 함께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의 생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속에 담고 함께 가던 길을 그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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