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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79년 주베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최경주  | 2008·02·10 06:01 | HIT : 5,661 | VOTE : 341 |
복잡한 현장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궁금한 일 하나가 나를 옥죄고 풀어주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 중동에 있었던 일이다. 70년대 지구상 최대의 역사였다는 주베일 산업항 공사 현장의 폭동 이야기다. 주베일 현장에서 77년 3월 13일과 79년 8월 21일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왜 이런, 그들이 말하는 폭동이 일어났을까? 또 그 큰 사건이 어찌하여 자료화되지 못했을까? 3,000명 이상이 들고일어났다고 하는데.
내가 이 사건에 관해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는 오래전이다. 주베일 현장 옆에 근무했다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전설 같은 그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후에 잊고 있었는데, 거의 20년이 넘은 지금 갑자기 그 사건이 미치도록 궁금해 졌다. 이명박 당선인 때문인가 모르겠다. 그럴 수는 있는데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아마 내가 건설노동자로서 어떤 책무를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늘 가슴에 눌러져 있었는데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당선자가 대권을 잡음으로서 의무가 꿈틀거리며 깨어났나 보다.
그때 그 선배는 저녁을 먹고 난 후, 누워서 쉬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다가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베일 현장 노동자들이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건은 79년도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77년 사건은 뚜렷이 동기와 내용이 정주영 자서전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졌다. 선배는 폭동의 이유가 체불이라고 말을 했다. 회사에서는 집에 돈을 부쳤다고 하는데, 집에 편지를 띄우거나 전화를 해보면 돈이 3개월째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단다. 그래서 어느 날, 중장비기사들 중심으로 모의했다고 한다. 한날한시에 관리자 사무실과 막사를 밀어 버리기로 했다고 했다. 약속한 날 밤, 장비를 일렬로 세우고 관리자 숙소를 향해 앞으로 밀고 나아갔다고 했다. 현장이 불타고 사람이 죽고 다쳤다고 했다. 자기가 현장에서 봤는데 사우디 경찰이 총을 들고 현장을 둘러쌓고 있다가 들어가 진압을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사실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여러 이야기를 보면 사건의 내용이 왜곡되고 부풀려져 알고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며칠째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는데 이번 대선 기간 중 그 사건을 언급하면서 체불이 폭동의 원인이라는 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는 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돌아다니는 이야기 속에 그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숙박시설, 작업자를 몰아붙이는 관리자들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있었다고 한다.
77년에 일어난 노동자들의 분노는 그 자세한 내용이 정주영자서전에 나와 있었다. 덤프트럭 기사들이 다른 회사보다 3배가량 임금이 낮아 태업을 하다가 나이 어린 관리자에게 따귀를 맞았다고 했다. 그 직원이 너무 억울해서 점심을 먹으면서 울며 분노를 터트리자 동료가 함께 들고일어나 항의를 하자, 관리자들이 다 도망을 쳤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대표를 뽑아 근로조건 개선을 합의하고 해결이 되었다고 했다. 그 후 주동자 21명이 소환되어 혹독한 사상검증을 당했다고 했다. 그 책에는 2틀 만에 해결되었다고 나왔는데 그 사실을 조사하려 했던 김준 성공회대 교수 글에는 쟁의가 8일에 걸쳐 일어났다고 한다. 왜 날짜가 차이날까?

-  그들에게는 군번 아닌 직번이 주어졌으며 내무반에 배치되면 관물함이 아닌 사물함을 줬고, 그들은 바로 군기보다 세다는 민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통솔방법에 의한 노무관리를 받아야만 했다. 사원과 기능공 사이에는 입는 옷에서 머리에 쓰는 헬멧부터 차별이 있었지만 급여는 말할 것도 없고 먹는 음식 잠자리까지도 엄격한 차별이 있었으며 사원들은 으레 나이 따위는 아무 상관없이 기능공들을 향해 <해라> 하는 식의 반말로 일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그 변명이 거짓은 아니었다. 업자들은 공사 따내기에 바빴고 근로자는 우선 비행기부터 타고 보자는 마음으로 바빴고 정부는 그 뒷바라지하기에 바빴으니 노무관리에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사실 없었다. 정 주영이 거느리는 현대건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세칭 <3.13사건>으로 불리는 현대건설 주베일 산업항의 취업 기능공 3천여 명이 일으킨 폭동에 가까운 노사·······

·················

사태는 산업항 현장에 국한되지 않고 같이 시공 중이던 해군기지 공사현장 일부와 제1호 석산에까지 번져서 그곳 기능공들도 산업항 현장 운동장으로 집결하기 시작해서 시위에 동조하는 기능공 수는 3천명 선을 넘어섰다. 산업항 현장 운동장에 집결한 3천여 명의 기능공들은 애국가를 제창하고 스스로 질서유지를 외치며 요구조건을 제시하기 위한 자체 수습위원회를 구성했다. 수습위원회는 전기기능공을 대표하는 각 분야별 기능공 2명이 참가하는 20명으로 구성되었고, 그들은 그날 밤 우선 대통령각하께 보내는 메시지 와 16개 항목에 달하는 요구조건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하고 그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하는 한편, 거듭 질서를 유지하고 모든 파괴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도 아울러 결의했다.
-  정주영 자서전

그날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외화 벌이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는 그 중동 현장의 고통스런 작업들, 참기 어려운 모멸감과 분노. 결국 일어난 투쟁과 탄압, 3. 13 때에 계엄이 선포되었다고 자서전에 나와 있다. 해군과 경찰이 함께 진압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때와는 다르게 79년 여름에 있었던 투쟁에는 아예 폭동으로 선언하고 보안군에게 진압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건설회사 사장은 이당선인이었다고 한다. 77년에는 21명이 귀국 조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79년에는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조기귀국조치 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았을까? 당시가 박정권 시절을 고려하면 거의 반 죽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30년 전 이야기다. 세월로 보면 길게 여겨지지만, 나이 30세 이상이 되면 10년 전 일이나 30년 전 일이나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시 건설회사들은 월남특수에 이어, 중동특수로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거듭나는 쾌거를 기록하지만 그 밑에서 차마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일한 노동자들은 오늘도 이 사회 밑바닥에서 웅크리고 손을 놀리며 살아가고 있다. 노동영웅이나 산업전사는 어디에 갔단 말인가? 결국, 주먹뺨이나 맞고 젊은 관리자들에게 최씨, 김씨가 되어 수당도 없는 일당에 죽도록 혹사만 당한 꼴이라니. 자서전에는 두번째 투쟁인 79년 폭동에 관한 이야기는 빠져있다. 다른 책에 쓰여 있는지 찾아보겠지만, 77년은 인도적으로 해결했는데 79년 또 터진 것을 쓰면 난감해서 그랬나 싶다.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 다수는 현장에서 퇴출 당할 연배들이다. 올 해,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현장에 나가 혹시나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이 있나 알아보는 일이라고 다짐한다. 어차피 먹고 살기 위해 나가지만, 그때 그 시절 일을 했던 사람을 만나 기록이나 남겼으면 한다.

조금 전, 조합에 있는 용접사 정씨 형에게, 주변에 널려 있는 게 중동 이야기니까, 러시아의 체호프처럼 시베리아를 횡단하며 수형자들을 인터뷰했듯, 술 그만 드시고 노느니 내일부터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주베일을 중심으로 중동 이야기를 모으자고 하니까, 하는 말이 가관이다. ㅅ시인 처가 르포에 밝으니 가서 쓰는 법 배우고 오란다.
“뭐, 뭐라고……. 나도 르포 쓸 줄 안다고!”
쉰 소리 그만하고 당장에 뭐든 하자고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냉정하게 봤을 때, 최씨는 더 배워야 한다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철학을 배운·····.”
“나, 나도 현장생활 30년이야. 현장 이야기는 안 배워도 뭘 써야 하는 줄 안다니까.”
그 지독한 불분명한 태도를 전화로 당장에 깨부수고 싶었지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덕분에 내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하, 거참 이해 못 하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여전히 형은 내게 할 말이 있었고,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게으른 형, 형에게는 술이 어울려! 술로 글이나 쓰라고!’ 소리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직은 정초였다. 덕담이 필요할 때였다.
중동, 모랫바람이 눈을 가리고 섭씨 50도의 기온이 현장을 달구지만, 누군가 그랬다. 그곳 사막에는 도시와 다르게 마음의 평화가 있다고. 밤이면 갖가지 사연이 담겼을 쏟아지는 별과 지중해의 맑은 바닷바람이 불고 가족 생각에 밤새 그리움을 다스려야 하는 곳. 수많은 노동자가 인간적인 모멸감과 고된 노동을 이기며 꿈을 키웠었다. 노동자의 꿈은 소박하다. 더러는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더러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내 절친했던 어떤 형처럼 끝내는 가정이 깨쳐 죽음의 길을 간 사람도 있다.
그 모래땅에서 영웅적으로 공사해서 돈을 벌어 애국했다는 기업은 많은데 어찌 된 일인지 생사를 가늠하며 일했던 노동자들의 노고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당했을 부당함도 함께 이야기하기가 그래서 그런가 보다. 내가 이 선배들의 울분이 되고 입이 되겠다고 연초부터 결의는 해보기는 하는데, 정씨 형님 못지않게 게으른 내가 가능할는지. 그래 노느니 염불하는 셈치고 해보자! 라고 결의는 해보기는 한다.
올해, 오다가다 주베일에서 일했던 노동자 몇 사람만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아까 근처에서 일했다는 형과 통화를 했는데 내일 조합 윷놀이 때 만나서 실감이 나게 들려주겠다고 한다. 워낙에 들은 이야기란 입과 귀를 통과 하면서 커질 대로 커지고 늘어질 대로 늘어지는 법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 느긋하게 가보는 거야.
누군가 기록을 해야 할 일지요.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08·02·10 09:04   수정

바람 그런일이 있었군요. 가슴아픈......
국민들은 그냥 땡볕에서 외화를 열심히 벌고, 고생하고 있다는 정도로 생각했을텐데......

08·06·08 10:44 삭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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