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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발전기 소사
 최경주  | 2008·01·22 13:12 | HIT : 5,600 | VOTE : 259 |


    1월 초, 한강 하류에 인접한 서울 서북쪽으로 강변도로를 따라 잠이 잔뜩 실린 트럭을 타고 달렸다. 3년 됐다는 장축 트럭에서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망가진 엔진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부족한 잠에도 아침을 거르고 새벽부터 나왔노라고 투덜거리는 박사장이 운전하고 조수석에 김씨 형님이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나와 조씨 아저씨가 뒷좌석에서 졸고 있었다. 아침바람을 가르고 마주 오는 차와 엇갈려 달리는 트럭 짐칸에는 우마 2틀과 연장, 덕트 통 7개가 한계 중량을 넘긴 이삿짐처럼 단단하게 밧줄로 매여 흔들거렸다. 우리는 김포 근교의 한 아파트 현장에 발전기 덕트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얼마나 달렸나, 문득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건설노동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아파트 현장 한쪽 귀퉁이를 기우뚱거리며 들어가고 있었다. 탁 트인 벌판에 서 있는 신축 아파트 단지가 겨울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에 반짝였다. 트럭이 선 길목 왼쪽으로 함바가 있었고 그 옆에는 2층짜리 건축사무실이 있었다. 젊은 관리자 하나가 계단을 내려오면 우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겨울 들녘을 쓴 찬바람이 불고 조경으로 파헤친 땅이 얼어 있었다.
우리 옆으로 지게차가 자재를 들고 흔들거리며 지나쳤다.
오른쪽에 발전기실로 들어가는 작은 입구가 직삼각형으로 입구가 솟아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돌아내려 가는 계단을 있고 계단 끝에 방화문을 통과하면 높고 넓은 전기실 나왔다. 전기실 안을 가로질러 지나면 한쪽에 발전기실이 보였다. 발전기실은 사방 폭 6미터 세로 10미터쯤 되었다. 발전기실 중간에 발전기가 놓였고 크기는 중형 승용차만 하다. 몸체가 둥글고 중간 허리가 잘록하고 여러 호스가 엉키어 꼭 메뚜기 비슷한 곤충처럼 생겼다. 그 몸집 앞부분에 프로펠러가 있어 열이 나는 라디에이터를 식혀 준다. 그 라디에이터 탱크 안에는 ET의 혈액 같은 파란 부동액이 담겨 있다. 이 라디에이터는 승용차 라디에이터보다 서너 배가 크다. 발전기를 돌리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프로펠러가 돌아 경유냄새와 연기와 열기를 앞으로 뿜어낸다. 우리가 할 일은 덕트 통으로 라디에이터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열기, 기름 냄새를 창밖으로 빼내는 일이다.
작업복 가방을 들고 전기실 한쪽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음으로써 지루하고 바쁜 하루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안전화를 신고 장갑을 두 켤레를 겹으로 끼고 귀마개를 하였다. 김씨 형님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조씨 아저씨와 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아저씨는 추운 겨울날을 탓하며 밥 먹고 일을 시작하자고 했다. 다른 현장을 들렀다 오느라고 거의 점심때가 다되어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시작 전에 미리 밥을 먹자고 했다. 사장도 그러자고 했다.
함바로 가서 점심을 먹고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 사장 사정이기는 하지만 발전기 덕트는 하루에 일을 마쳐야 적자를 면할 수 있기에 일꾼인 우리가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조씨는 하루도 빠듯한데 다른 곳을 들러 왔다고 입이 나와 투덜거렸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한 대씩 피운 다음에 짐을 부리고 발전기실로 날랐다. 발전기실에는 배관이 작업하고 있었고 전기실에는 페인트가 칠을 하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바닥에는 전기선과 용접선들 쓰고 있는 공구들이 널렸고 용접작업과 도장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닥트도 끼게 생겼다. 우리는 차에서 물건을 내려 전기실로 나르기 시작했다. 사장도 잠깐 거들더니 전화를 받으며 작업장에서 사라졌다. 전기실로 짐을 다 내린 다음에 어떻게 일할 것인가 논의를 했다. 통을 창부터 바닥으로 달아 내려오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러려면 발전기와 창 사이 좁은 공간에 우마를 2단으로 설치를 해야 했다. 설치를 해보니 천장 높이가 7미터쯤 되어 2단 우마도 낮았다.
“2단이면 충분해?”
김씨 형님이 아래서 물었다.
“아니지. 사다리가 있어야 해.”
내가 발판에 올라서서 손을 들어보니 천정에 닿으려면 1미터 이상의 디딜 것이 필요했다. 김씨 형님이 사다리를 올려 주었다. 나는 2단 우마 발판 위에서 사다리를 펴고 올라서니 사다리가 흔들거렸다. 안전난간대도 없는 우마에서 사다리를 펴고 작업하는 일은 경험에 의존한 위험한 일이다. 큰 현장에서 이러다가 걸리면 여지없이 현장에서 쫓겨나야 하지만 이런 작은 곳에서는 더한 일도 있다. 김씨 형님이 작업할 공구를 올려 주고 사다리를 잡아 주었다. 함마드릴을 들고 사다리에 올라가니 작은 발전기실 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창에서 스며드는 붉은 햇빛과 발아래 발전기실을 가로질러 매달린 전구가 발전기실을 밝혔다. 발전기실 안에는 우리 셋과 배관사가 네 명쯤 일을 하였다. 용접사 하나가 우마를 차리자 잘 되었다는 듯 오르내리며 배관을 연결해 창으로 뽑고 용접을 해댔다. 꾸물거리는 일꾼들과 파란 용접 불꽃과 안개처럼 흐르는 용접가스, 널린 선과 바닥에 엎드린 발전기 모습, 모두 하루 일당을 벌고자 먼지 속에서 부지런히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뿌연 용접가스가 창에서 흘러오는 바람에 더디게 흩어졌다.
나는 함마 드릴로 천장을 뚫었다. 요란한 기계음 소리와 시멘가루와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구멍 난 자리에 스트롱 앵커를 때려 박았다. 푹 들어가 박힌 앵커에 전산을 연결해 통을 매달 준비했다. 조씨 아저씨다 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셋이서 어렵사리 소리를 질러가며 첫 통을 걸었다. 가로세로 1미터가 조금 넘는 사각 통이 천장에 바짝 매달려 다음 작업을 기다렸다. 잠깐 들어온 사장은 어렵사리 매달아 놓은 첫 통을 쳐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일꾼들이 요령 피우지 않고 곧잘 해 주는군, 하는 눈치였다. 나는 다시 통 달 준비를 하고 김씨 형님은 앵글로 통을 받힐 다릿발을 만들고 조씨 아저씨는 발전기와 덕트 통을 연결하려고 캠퍼스를 준비했다. 캠퍼스를 채우는 것은 발전기와 덕트 통을 한 뼘 정도 천으로 연결하여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덕트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일 달아야 할 통은 7개인데 우마 위에서 3개를 개 달고 발판 하나를 해체했다. 다시 2개를 수직으로 내려 달고 나머지 발판 하나도 해체를 했다. 통은 S자 형태로 바닥에서 구부러져 창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마지막 발판을 해체하는 동안 환갑을 넘긴 조씨 아저씨는 캠퍼스를 연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함께 거들어 주면서 자기 일을 하기 때문에 늦을 수밖에 없다. 아저씨는 노쇠한 망아지 같았다. 아저씨는 내 어머니와 비슷한 세대이다. 내 어머니라면 내가 저 아저씨에게 일을 그렇게 세게 시킬 수가 있을까? 아저씨의 불룩 솟은 어깨뼈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대비되어 생각난다.
“최박사 일을 왜 이렇게 일을 몰아붙이는 거야. 사장은 어디 갔어? 일이 이리 바쁠 때 손 하나 거들어 주면 얼마나 좋아, 그냥 이렇게 떨어뜨려 놓고 오늘 안에 끝내야 하니까 집에 가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는 거야!”
아저씨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아저씨가 오늘 종일 불만을 다 쏟아 내려면 아직 멀었다. 모든 상황에 맞게 뱉어 놓을 불만이 커다란 창고에 종류와 용도별로 차곡차곡 잘 쌓여 있었다. 아저씨는 혼잣말처럼 했으나 분명히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나는 아저씨를 보면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잘하면 퇴근 시간 안에 끝날 수 있었다.
“조금 쉬었다 하죠.”
마음이 급했지만 진정이 필요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아. 내 말은 사장이 기본이 안 됐다는 거야.”
아저씨의 바짝 마른 몸으로 힘겹게 작업하는 손이 예리하지 못하다. 내가 재차 쉬자는 말에 아저씨는 힘겹게 허리를 펴며 살짝 웃었다. 이렇게 떠들어야 말을 알아듣는다니까, 하는 낯빛이었다. 김씨 형님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는 잠깐의 휴식에도 몸을 쉬기 위해 고무로 된 박킹을 끌어다 앉자 두 사람도 따라 하며 마주 앉았다.
“아저씨는 일 그만하시고 쉬어야 해요. 아저씨 스스로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화초나 가꾸고 동네 할머니들하고 게이트볼이나 치고 복지관 가서 사교댄스를 추셔야 한다니까요. 이게 뭡니까? 카드 갚을 걱정이나 하고, 언제까지 이 일 하실 거예요. 그 마이너스 카든가 통장은 왜 써서 이 고생을 하세요.”
“최박사 남 말 하지 마! 작년에 애 낳잖아. 자네는 칠십이 아니라 팔십까지 일해야 해. 그때 가면 누가 쓰기나 하는 줄 알아. 어쩌려고 그래?”
아저씨는 나를 쳐다보며 고소하다는 듯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래서 노조 가입하라니까, 김씨 형님은 가입한다는데 왜 아저씨는 안 하시는 거예요. 아저씨 칠순 때 잔치 한 번 하게요.”
“난 틀렸다니까. 내일이라도 그만둬야 하는데 무슨 노조를 해.”
김씨 형님이 아저씨보다 열 살가량 아래고 내가 김씨 형님보다 일곱 정도 어리다. 나이 차이가 크지만 실상 일을 할 때는 거의 동년배처럼 허물없이 일을 한다. 의식이 아닌 몸을 쓰는 일이라 최소한의 예의로 사회적 격식에 관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 힘쓰는 일은 내가 하고 뒤 단두리는 김씨 형님이, 잡일은 아저씨가 함으로서 적절한 조를 이루었지만 환상적이지는 못하다. 내 또래 김씨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비하면 일이 많이 늘어졌다. 일들은 잘한다고 뻐기기도 하지만 나이에 의한 퇴보된 감각과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손이 맞지 않았다. 그보다 피곤한 일은 없을 것이다. 매번 의견을 나누어야 하고 남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아 정리하여 일을 마칠 무렵이면 목이 아프다. 서로 티격태격하면 알게 모르게 감정도 싸여 한동안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작업은 대부분 내가 이끌고 나가는 편이지만 딱히 직함이 있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젊고 기능도 게 중에 나아 그렇게 된 것이다. 조씨 아저씨의 고집스러움과 김씨 형님은 사장 친구로서 책임감 때문에 자기 의견이 있었고, 늘 서두르는 나와 셋이서 이렇다 할 접점 없이 불가피한 팀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에게 일을 맞추자니 형님과 아저씨가 죽을 맛이고 내가 조씨 아저씨의 요구대로 일을 맞추자니 일이 더디었다. 아쉽게도 나는 아저씨에게 일 능률을 맞추지 못한다. 사장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따오고 우리는 거기서 이익을 남겨야 한다. 그 이익 중에 극히 일부가 내 몫이다. 그 몫이란 잔인하여 내가 하루에 벌어야 하는 밥벌이는 열다섯 끼니다. 그래야, 다섯 식구가 하루를 넘길 수 있다. 누가 세끼 먹기가 쉽다고 하는가!

통을 달아 놓은 상태에서 마지막 하나만 달면 대충 야간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야간은 돈벌이를 떠나서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현장에 나오는 순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은 왜 일까, 사실 가 봐야 또 일을 나와야 하는데 왜 매일 그렇게 집에 가는 게 절실한지 모르겠다.
캠퍼스 채우는 일이 빨리 되어야 마무리 작업이 들어가는데 아저씨는 힘이 약해 그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힘에 벅차 보였다. 천을 고정하려면 드릴로 직결나사를 철판에 박는데 아저씨가 하나씩 박을 때마다 안간힘을 쓰며 손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윗부분을 다 박고 아랫부분을 할 때는 더 힘들어 보였다. 허리를 완전히 굽힌 상태로 아래쪽을 박아야 하는데 그걸 기다리다가는 아저씨의 마음처럼 일찍 가기 어렵게 된다. 보다 못한 내가 경로우대보다는 답답함 때문에 아저씨를 비키게 했다. 아저씨와 김씨 형님이 양쪽을 잡고 나는 보란 듯이 힘차게 나사를 박았다. 첫 번째 나가가 거뜬하게 빨려 들어가듯 쑥 박혔다. 나사가 박힘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잠깐 혹시 내가 사람보다 일을 너무 중요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최박사라니까!”하고 아저씨가 은근히 추렴을 넣어 부추긴다. 내리 한 다섯 개 쯤 박았을까, 한 두어 개만 더 박으면 일이 마무리 되었다. 그때였다. 실수로 드릴이 튀면서 라디에이터 앞 가는 날개에 푹하고 박혔다. 검은 가는 날개가 찌그러지며 하얀 알루미늄 자국이 나타냈다. 서두르면 반드시 이런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손가락으로 흠집이 난 곳을 대충 펴 원래대로 하고 다시 나사를 박는데 왼쪽 옆에서 뭐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것을 보는 사이에 한 방울씩 흐르던 것이 줄줄 흘러 배수구로 빠져나갔다. 그 음울한 느낌이란, 마치 내 안에 진액이 빠져나가는 기분 나쁜 생각이 들어서 엎드린 채, 드릴 질을 멈추고 손으로 옆으로 새는 파란 물방울을 장갑으로 받아 보았다. 손으로 비비니 투명한 기름 같았다. 이상하다, 왜 여기서 흐르지? 지금까지 괜찮았는데, 나는 밝은 전등으로 나와 장갑에 묻는 기름을 살펴보았다. 그때 옆에서 천을 잡고 있던 아저씨가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박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빨리 혀, 집에 안 가고 야간 할 거야?”
“그게 아니고, 뭐가 새잖아요!”
“뭐, 뭐가?”
나는 혹시나 하고 박았던 드릴을 역회전시켜 나사를 빼 보니 작은 나사 구멍에서 파란 물줄기가 아들놈 오줌 줄기처럼 나를 향해 쭉 뻗쳤다. 나는 내 얼굴이 파랗게 얼굴이 변하는 것이 느꼈다.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상상이 펼쳐졌다. 뒤틀린,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불가피한 일이 떠올라 악몽처럼 사라지며 호흡을 멈추게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면 필요한 것이 책임당사자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빨리 손을 뗄수록 사고처리에 도움을 준다.
“형님! 사, 사장 오라 그래요, 빨리요!”
“저거 부동액 아냐? 저게 왜 흘러?”
조씨 아저씨는 느긋한 마음을 거두고 신경질적으로 말을 했다.
“빨리 박사장 오라 그래요.”
내 고함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조씨 아저씨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발전기를 빠르게 나갔다. 나는 뚫렸던 구멍에 다시 나사를 박아 구멍을 메웠다. 계단을 뛰는 소리가 들리고 발걸음 소리가 거칠게 다가오더니 사장이 들어와 내 곁에 섰다. 그는 상황을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을 했다.
“이, 이게 왜 새지?”
박사장 얼굴도 차츰 사색이 되었다. 돈 100만 원짜리 공사를 하다가 돈 1,000만 원짜리 기계에 구멍을 뚫었으니 기겁을 할 수밖에.
“이게 왜 새냐고.”
사장은 앉아서 보고 다시 한발 떨어져 라디에이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설비업자가 다가왔다.
“탱크에 구멍 뚫었네.”
옆에 있던 설비 업자가 구멍을 보더니 화가 날 정도로 당연한 말을 했다. 그가 애써 말하지 않아도 눈치 챈 말이었다. 처음부터 새지 않았던 것은 위쪽에는 부동액이 거기까지 차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고 아래쪽은 구멍을 막아 가면서 구멍을 냈기 때문에 새지 않았다. 나사가 튀면서 안쪽 10밀리나 될 것 같은 얇은 관에 박히면서 액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탱크가 왜 밖에 나와 있는 거야.”
사장을 혀를 차며 탱크를 손으로 치며 못 믿겠다는 듯 실물을 확인했다. 나도 이리 저리 자세히 보니 역시 탱크였다. 왜 이걸 판단하지 못했을까? 사장은 우릴 보고 탓하지도 못했다. 그건 자신이 그렇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고 자랑삼아 몇 번을 이야기했고 지난번 화성교도소에서도 이 방법으로 하지 않았다고 김씨 형님과 아저씨가 혼났었다. 탱크에 백 개의 구멍이 났어도 그건 사장 탓이었다. 아저씨는 우린 책임 없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아무도 아저씨를 탓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이를 먹으면 그런 자격지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주변에 침묵이 흐르고, 일하던 배관 사들이 구경을 하려고 혹은 아는 척을 하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도움 되는 말은 없고 실수를 탓했다. 상황을 도와주려면 입 다물고 고민하는 사장의 집중력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했다. 사장은 흐르는 부동액을 받으라고 말했다. 우리 부동액을 빼내는 밸브를 열어, 마치 그것을 다 받아 내면 해결되는 것처럼 한 방울도 바닥으로 흐르지 않게 빈 통을 가져다 받아 냈다. 두어 말쯤 받아 내자 부동액이 완전히 빠져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사장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듯했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왜, 이 기계가 이따위로 생겼어. 덮개도 안 씌우고 말이야.”
박사장이 멋진 대안을 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별다른 대안이란 따로 있을 수는 없었다. 위에 보고해서 발전기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맡기는 게 상책이었다.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똑같은 방법으로 몇 개의 발전기를 하는 동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그날 그곳의 발전기가 외제였기 때문이다.
“이놈들은 어떻게 하는 거야, 우리처럼 안 하나?”
박사장은 영문으로 검은 탱크에 흰색 돋움체로 두껍게 쓰인 유명한 로고를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망할 기계가 있나! 그는 침묵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배관 업자가 용접기를 끌고 사장에게 다가와 자신이 때워 주겠다고 했다. 별것을 가지고 다 고민을 한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홀다 선을 어깨에 걸고 다가오더니 담배를 물고 아스 선을 걸어 우리를 물러나게 했다.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의 모든 행동을 놓치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가 덕트 밑으로 기어 들어가기 전에 담배 연기를 뿜어 맵다는 듯 눈을 찡그려 보였다. 그 당당한 모습에 우리는 ‘아이코 살았구나!’ 싶었다. ‘역시 어디에나 선수들이 있다니까. 저게 바로 선수야. 기술자라니까.’ 사장도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사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내가 다 알고 있었다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잘 때워, 표시 안 나게.”
초조해 하던 사장이 담배를 피워 담배 연기를 뿜어내자 연기가 그의 얼굴을 가렸다. 그는 천길 벼랑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위로 올라서는 기분을 느끼며 쓴 담배 맛을 음미하였다.
“알았으니까 검정 페인트나 준비하셔.”
키가 작아 박사장의 목까지 밖에 안 오는 배관 업자는 능숙하게 허리를 구부리고 구멍을 살피더니 용접면을 쓰고 용접봉을 구멍에 댔다. 그는 숙련된 짧은 동작으로 몇 번 테크를 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옆에서 봐도 접촉이 잘 안 되어 불꽃이 기대만큼 튀지 않았다. 그는 용접면을 벗으며 사장에게 아스가 안 된다고 다른 곳에 물게 했다. 굼뜬 사장도 거든다고 장갑을 끼고 아스선을 다른 곳에 물었다. 결과는 똑같았다. 불꽃이 시원스럽게 튀는 것이 아니라 깨알만 한 불꽃들이 피우다 말았다. 몇 번을 시도하더니 면을 세우고 바짝 바닥에 엎드린 그는 대단한 것을 깨우치거나 발견한 사람처럼 외쳤다.
“이거 용접이 안 돼, 알루미늄이야! 알곤으로 해야 해!” 그는 황당한 휘둥글 한 눈으로 사장을 올려 보았다. 담배연기를 내뿜던 사장은 흠칫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알곤이라고, 그건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였다. 사고를 해결할 영웅은 신화 속으로 사라지고 거기에 초라한 작업복을 입은 키 작은 용접사 하나가 난처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잠깐 핏기가 돌던 사장과 내 얼굴은 다시 하얗게 변하더니 파랗게 물들어 갔다. 배관업자는 자신이 하고 싶지만 기계가 없다고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알루미늄이라고 뚜렷이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마치 안타깝다는 투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슬그머니 자기 일을 하러 갔다. 발전기실 안에 드라이 창에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먼지를 일으켰다.
다시 강관 자르는 컷팅기 소리가 들리고 어떤 대화도 오고 가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집에 갈 시간이 다되어 있었다. 그냥 갈 수도 있고 캠퍼스를 연결한다면 옷을 갈아입기까지 한 시간이나 시간 반 정도면 되었다. 모든 덕트 작업은 정지되어 더 일을 해야 할지 그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더 하자니 헛일이 될 게 뻔했고 그만두자니 뭔가 개운치 않았다. 판단은 사장이 해야 했다. 사장은 우리는 번갈아 가며 눈을 마주쳤다. 깨진 공사비가 문제가 아니라 자칫하면 차까지 팔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사장이 충격을 받을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초 이 발전기는 손대는 게 아니었다니까요, 라는 말을 할까 했지만 역시 그 말도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지난가을 포천에서 트럭을 끌고 밀리는 길을 서서히 따라 나올 때 누군가 전해 준 발전기 일을 받고는 좋다고 했던 사장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해요? 마무리 지어요, 아니면 철수해요?”
조씨 아저씨는 짜증스럽게 물었다. 아저씨는 역시 현실적이다. 나는 모르니까 너희 알아서 였다.
말을 더듬으며 박사장은 배관 사장과 이야기를 하더니 근처에 있던 발전기 설치 업자를 찾아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랬더니 발전기 업자는 잠시 후 야간에 발전기 설치에 관해 승인받아야 하니 그냥 있는 상태에서 매듭을 지어 놓으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집에 갈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아저씨는 쉬지 않고 불만을 터트렸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아저씨의 투정을 참고 견디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오직 내 어머니를 생각하며 인내했다. 나사를 박지 않고 캠퍼스를 채우고자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렵사리 마무리 지어 놓았다.
“최박사 저거 어떻게 하냐?”
사장은 내게 물었다. 목소리가 편치 않았다.
“알루미늄이라면서요. 그럼 그냥 알곤은 안 되고요, 알루미늄이 되는 특수용접기가 있어야 해요.”
조합 상근 시절 용접사가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솟아 나왔다. 그간 용접사와 어울려 조합생활을 하면서 들었던 풍월들이 이렇게 아는 척하는 데 쓰일 줄은 몰랐다. 내친김에 친구를 불러다 때우려다 그만두었다. 책임소재도 아직 불분명한데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도 발전기 업자에게 말을 했으니 마무리된 거나 다름없었다. 발전기 설치부터 마무리 작업은 발전기 설치 업자의 몫이었다.
우리는 9시가 다 되어 퇴근했다. 그날 다른 날보다 피로가 갑절로 느껴졌다.

그 후로 한 일주일이 흘렀다.
문래동 사우나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작년 말쯤에 일한 현장인데 사고가 나서 빨리 오라고 해 가 봤더니 여자 목욕탕에 불이 나서 탕 안이 다 타고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아무도 없는 자정쯤 사우나에서 열을 내는 난로 하나가 과열로 불이 났는데 불길이 솟자 스프링클러가 터져 불이 잡혔다. 문제가 된 것은 스프링클러에서 터진 물과 그을음이었다. 여자 목욕탕 전부가 그을음에 꺼멓게 변해 있었고 천정은 물로 푹 젖어 있었다. 연기는 그 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불이 나자 제연닥트가 작동을 해 다른 방으로 옮기는 것을 차단하고 급속하게 연기를 밖으로 빨아 낸 것이다. 뜯긴 천장과 벗겨 낸 타일이 꺼멓게 변했고 덕트가 까맣게 타서 보온지가 흉측하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스프링클러가 터지기 직전 잠깐 사이에 그렇게 된 것이다. 첫날 우리가 가서 한 일은 보온지를 벗겨 내고 다시 싸는 일이었다. 하루가 매출에 직결되는 곳이라 일을 서둘러 해 달라고 했다. 일이 바쁜 만큼 여러 직종이 그 좁은 공간에 한 번에 몰려 바닥이고 천정에 올라가 북적거렸다. 그러다 배관이 잘못해서 작업 도중에 스프링클러가 또 터졌다. 일을 하고 있는데 물이 뿜어져 나오고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물벼락을 피해 밖으로 도망을 쳤다. 그 물로 불이 나가고 빠르게 서둘러 작업한 천정이 젖었으며 덕트도 지장을 받았다. 덕분에 공사기간이 며칠이 더 늦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당장 할 수가 없었다. 현장 관리자들이 뛰어나와 소방밸브를 잠그지 않고 일 한 것을 탓했다. 우리도 생각이 없다고 수군거렸다. 곧 소방밸브가 굳게 잠기고 다시 일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을 더 진행할 수가 없었다. 물이 쏟아지면서 덕트 보온지에 물이 젖어 보온지에서 물이 다 빠져야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철수를 했다. 다시 간 것은 이틀 후였다.
아침부터 유리솜과 씨름을 하며 보온을 하고 있는데 오전 10시가 지날 시간에 사장이 나를 찾았다. 김포 근교 현장의 발전기를 다음날 시험 운전을 한다고 했다. 그때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사장은 지금까지 뭐를 한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대형 사고를 치고도 가만있었다니, 만약 그냥 돌려보기만 했어도 발전기는 열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을 것을. 사장도 나오면서 말을 했기 때문에 그네들이 알아서 하거니 하고 잊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일 시험 운전을 한다고 고쳐 놓으라고 배관업자에게 연락이 왔다. 박사장은 문래동에서 구한 용접사와 그의 알곤 장비를 싣고, 근처에서 부동액도 한 통 사서 한강 강변도로를 타고 서북쪽 문제의 아파트 현장으로 달렸다. 보기만 해도 차갑게 느껴지는 한강을 따라 달렸다. 차는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 요란한 엔진 소리를 지르며 한강 따라 한참을 달리다 그 악몽을 꾸게 해주던 현장으로 도착했을 때는 점심때가 다 되었다. 나와 사장과 용접사는 공구를 들고 전기실을 통과해 발전기실로 꺾어져 들어갔다.
발전기실 그전처럼 요란하지 않고 어지럽지도 않았다.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고 조용했으며 안전화 딛는 소리까지 들렸다. 안에는 전기가 길게 여러 색깔의 전깃줄을 깔아 놓고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가자 의아스럽게 보았다. 분명히 일이 다 끝나고 마지막 선을 잇는 작업을 하는데 우리가 들어가니 궁금해 했다. 가장 우리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던 험상궂게 생긴 감리였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사장은 기겁했다. 감리는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뒷짐을 지고 전기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닥친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려고 왔냐고 물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사장 뒤로 빠졌고 사장은 덕트에 몇 가지 손볼 일이 있다면 얼버무리더니 어설픈 동작으로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감리는 바지에 손을 찌르고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감리인 자기가 하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승인을 한 곳에 하자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업자들이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손을 보러 왔다는 말에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는 둘러보며 억지로 몇 군데 미흡하다고 지적을 했다. 다행히 라디에이터의 흉터는 발견하지 못했다.
“사장님이 보셔도 완전한 것은 아니죠? 금연인 거 몰라요, 저기 경유도 있는데.”
“아예.” 한쪽 옆에는 정말 시험 운전을 하려는 듯 노란빛이 띠는 경유가 몇 통이 놓여 있었다. 사장은 겸연쩍은 모습을 보이더니 나가서 피우겠다면 밖으로 나왔다.
“하필 이 시간에 감리가 저기에 있을 게 뭐냐. 큰일이네. 저 인간들 점심 먹으러 갈 때까지 기다리자.”
기다리는 동안 용접사와 나는 선을 깔기 시작했다. 일반 선으로는 약해서 알곤기를 돌릴 수 없어 직접 배전반에서 끌어야 한다고 했다. 선을 끌어 놓고 바닥도 고르지 않는 현장 밖에서 점심때가 되기를 기다렸다. 하나 둘 나오고 함바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밥 먹고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나오지 않았다. 혹시 밥도 안 먹고 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있을 수 없는 일까지 생각을 했다. 사장은 두 개째 담배를 피우고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다. 머리 뒤통수가 허옇게 벗겨져서 그런지 늘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다. 아침마다 무스를 바르는지 반짝거렸다. 말투만큼이나 동작은 느렸지만 늘 정확하고 꼼꼼한 것을 좋아했다.
“감리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통째로 갈아야 하나. 이거 완전히 군사작전이네.”
용접사가 뭐가 좋은 듯 싱글거렸다. 자신은 통신병 출신으로 강원도에서 육군으로 근무했고 군대에서 알곤 기술을 배운 것을 자랑했다. 그에게는 이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마가 반짝이고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는 것이 무섭게 일할 사람처럼 보였다. 귀에는 이어폰이 끼어 있었고 목소리는 힘이 들어갔다. 함바에서 밥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 햇볕을 쬐려고 죽 늘어서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거의 정오가 되자 감리가 뒷짐을 지며 지하 계단에서 올라왔다. 그 뒤로 전기공들이 나왔다. 감리는 우리에게 밥 먹었는가, 물어보자 내가 입맛을 다시며 그렇다고 했다. 사장은 전화하면서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감리는 우리를 지나쳐 검은 승용차를 타고 현장을 돌아 나갔다.
우리는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1시간 안에 모든 작업을 마쳐야 했다. 용접기와 가스통을 내려다 놓고 선을 지하로 끌어내렸다. 용접사는 현역군인처럼 능숙하게 움직였다. 사장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번 실수로 돈 40만 원 날렸다고 투덜거렸다. 40만 원이면 작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라디에이터 안 갈아 주는 것에 비하면 운임도 안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며 속 좁은 사장을 탓했다.
용접사는 가지고 온 선은 연결하고 스위치를 올리자 알곤기 돌아가는 소리기 났다. 그는 고대를 끌고 덕트 아래로 들어가 뱀처럼 고개를 쳐들고 구멍을 메우기 시작했다. 사장과 나는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초조한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리저리 엎드려 가며 용접을 하더니 곧 한 구멍을 어렵사리 때우고 통 아래에서 나왔다. 영 개운치 않은 눈치였다. 용접이 이상하게 잘 안 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용접한 곳을 보니 뜨거운 열로 구멍 난 곳을 떡을 쳐났는데 말끔하지 않았다.
“알루미늄이 확실합니까?”
그가 되물었다. 그때 알루미늄이라고 자신 있게 판단한 배관업자의 생생한 말투가 생각났다. 그런데 쇠를 만지는 일급 용접사가 쇠 재질을 덕트에 물어보면 어쩌자는 것인가? 쇠에 관해서는 그들이 전문가인데 말이다.
“알루미늄 맞는 거 아닙니까? 그때 배관업자도 그렇다고 했는데. 그랬잖아요, 사장님. 여기 하얀 것이 알루미늄 아닌가요?” 나는 되물었다. 솔직히 나도 모르고 남이 그랬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알루미늄인데 이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때 배관업자가 그랬듯 아스 선을 다른 곳에 옮겨 집었다. 사장과 나는 그게 무슨 재질이었든 사십 여분 만에 일을 해치웠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니,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조금 다른 쇠가 섞였나 봐요. 용접물이 안 붙거든요.”
그는 갸우뚱하더니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혼자 무슨 말을 중얼거려 가며 애를 써서 나머지 구멍까지 다 막았다.
“솔직히 자세도 안 나오고 힘드네요. 자세만 좋으면 일도 아닌데. 그리고 쇠가 뭔가 이상해, 때우기는 했지만 결과를 100퍼센트 장담 못합니다. 발전기가 돌아가면 탱크에 압력이 걸리거든요.”
그는 용접면과 장갑을 벗으며 말을 했다. 추운 날씨에 땀이 흘렀다.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마 괜히 출장을 나왔다 싶은 얼굴이었다. 사장은 혹시나 모르니 부동액을 붓기 전에 물을 부어 보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식당을 달려가 물을 떠다가 라디에이터 탱크에 붓기 시작했다. 두 통째 붓고 또 물을 뜨러 가자 사장이 식당 쪽으로 왔다. 물을 그만 뜨라는 것이다. 손을 댈 수 없는 곳에서 샌다고 했다. 사장은 급하게 어디로 전화를 하고 나는 물통을 던지고 아래로 뛰어갔다.
“때운 곳은 새지 않는데 저기 안쪽 관에서 새는데요.”
그가 랜턴을 비추면서 안쪽에 눈을 바짝 대고 나에게 말을 했다. 그의 머리에 내 얼굴을 붙이고 살폈다. 사실 때운 곳도 불안하지만 그가 손을 대지 못할 곳 그 한군데서 새고 물이 송송 샜다. 생각을 해보니 드릴 질을 할 때 한번 드릴 끝이 튀어 안쪽을 쑤신 곳이다. 그때 그 가는 관을 찍은 모양이었다. 일부러 찍으려고 해도 찍기 어려운 그 자리에 구멍이 나다니, 놀라운 우연이다. 사실 그게 아니어도 어차피 일이 커지기는 했다. 용접사는 재빠르게 판단을 했다. 그건 자기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돈을 다 안 받겠으니 손을 떼겠다고 했다.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시간을 보니 12시 45분이었다. 우리는 철수하기로 했다. 나와 용접사는 장비를 끌어내고 사장은 직접 책임자에게 발전기 업자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우리가 연장을 싣고 현장을 빠져나오자 전기들이 오후 작업을 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바로 가서 점심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들고 찬바람 부는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소득 없는 군사작전이었다.
사장은 트럭을 운전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할 만큼 했다는 말을 몇 번을 나에게 했다. 나에게 만이라도 인정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일꾼이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다. 사장은 아무리 봐도 영업이나 관리보다는 그저 일꾼이었다. 잦은 일에 대한 간섭으로 일꾼들과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가 꼼꼼한 것은 좋은데 일은 일꾼에게 맡겨야 하지만 그게 잘 안 되었다. 눈에 걸린다는 것이다.
“아, 그 인간, 애초에 알지도 못하면서 알루미늄이라고 말을 해서 여럿 불편하게 하네. 그래도 우리는 할 만큼 다 했지, 안 그래 최박사?”
“당연하죠. 이런 일을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관리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했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 다 떠넘기려고만 하지. 하도급업자가 봉이지 뭐. 돈이나 제대로 주나, 그저 일 시켜 먹으려고 눈에 불이 나 켜지.”
“사장님은 일은 둘째고 첫째가 다른 업자들에게 돈 안 뜯기는데 골머리를 썩여야 한다니까요.”
내 말은 한 달씩 미루어 돈을 주는 사장을 탓하는 말이었다. 그것 때문에 조씨 아저씨는 거의 광적으로 헐뜯었다. 마치 내 불만이 듣기 싫으면 돈을 완불해주고 해고해라라는 심산인 듯 보였다.
“그러게.”
한강을 끼고 달려 문래동으로 돌아오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용접사를 공장에 내려 두고 그의 일당을 지급했다. 그도 깔끔하게 일 처리를 못 해 반값만 받는다고 했다.
다시 출발을 했던 문래동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곳도 막바지 보온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안 왔으면 이곳도 늦게까지 일을 할 뻔했다. 일을 마치고 연장과 자재를 옮기고 나니 5시가 다 되었다. 지친 몸을 끌고 화장실로 가서 세수하고 현장 탈의실로 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려는데 사장이 불렀다. 불길한 불음이었다. 역시나 또 김포에 가자고 말했다. 왜 그런가 물으니 발전기 설치 업자가 전문가를 보냈는데 뒷일을 거들어 줘야 한다고 해 짜증이 났지만 달리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작업복을 입은 채 외출복 가방을 들고 그의 트럭에 올라탔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트럭은 강변도로 쪽으로 달렸다.
“근데 왜 처음부터 그 전문가가 안 왔던 거요?”
“글쎄 말이야. 발전기 업자에게 연락했더니 처음부터 자기에게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거야. 발전기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났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다 간단한 방법이 있었던 거지. 사실 우리가 발전기에 관해 알게 뭐야. 다 그 배관업자 때문이지. 중간에서 골치 아프니까 덕트가 사고를 쳤으니 알아서 해라 그랬던 거지.”
“그래도 그렇지 관리책임이 있는데, 만약 이이게 문제가 되면 어쩌려고. 발전기 업자도 분명히 그날 그 자리에 있었잖아요. 일을 처리했나, 안 했나, 미리 확인도 안 하고 오늘 지랄들이야.”
“배관 업자가 문제야. 뭔가 문제가 있어. 지금 지난 10월부터 올 초까지 10군데를 했는데, 돈 한 푼 안 받았다니까. 발전기 업자는 연말에 돈을 다 줬다는데 그 자식은 아까까지도 돈을 안 받았다고 우기네. 양아치 같은 자식들. 내일 결산을 보기로 했으니까 뭔 결단이 나겠지.”
“아, 아니 그럼 지금까지 석 달이나 공으로 일을 해주고 다닌 겁니까?”
“준다니까 기다렸지. 또 하도급 업자가 돈 받으려면 고분고분해야 하잖아. 물량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지금까지 돈을 못 받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돈에 관해서는 사장도 믿지 못하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사장들은 늘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게 능력으로 믿고 있다. 사장끼리도 안 믿지만 일꾼들도 사장 말을 믿으면 안 된다. 그들은 그것을 영업비밀이라고 한다. 일꾼들에게는 월급이 늦을 수 있기 때문에 늘 적자라는 말로 보완을 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는다. 사장은 항상 돈이 늦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곤 했다. 몇 차례의 속 보이는 거짓말과 늦은 돈으로 신뢰는 거의 바닥이었다. 애초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겨울 저녁의 어둠으로 들판에 선 아파트가 검게 변해 있었다. 현장 사무실과 전기실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전기실 입구에 가니 기술자라는 이가 이 난제를 해결하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키에 목이 두껍고 말이 걸걸하니 시원스러운 모습에 일을 잘 할 것 같아 믿음이 갔다. 그는 알곤으로 손을 댔다는 것을 알고는 실수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마치 아이들 장난으로 일이 더 커졌다고 강조를 했다. 마치 세상에서 자신만이 그 일을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앞에서는 우리 둘이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발전기는 알루미늄이 아니라 신주라고 했다. 신주는 납땜해야 한다고 했다. 그와 현장으로 내려가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발전기실에는 아직 전기들이 작업하고 있었다. 그날 밤까지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랜턴으로 흉측하게 때워진 곳을 이리저리 보더니 곧바로 우리가 듣고자 하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자신이 이 상태로는 일할 수가 없으니 라디에이터를 뜯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는 자신이 늦은 밤에 할 수가 없으니 내일 하자고 말했다. 사장은 그 답을 내릴 처지가 아니었다. 사장은 그 결정을 발전기 설치 업자에게 미루었다. 기술자는 발전기 설치 업자에게 전화하니 내일은 안 된다고 했다. 감리가 몰라야 하고 시험 운전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 오늘 밤에 해 놓으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는 일리가 있지만 기술자는 오늘 밤에 할 수 없다고 버텼다. 마치 흥정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밤에 일하기 싫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장은 그저 그들의 통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후, 결정은 뜯어 가서 고쳐는 놓되 설치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된다면 우리는 밤샐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말 따라 셋이서 라디에이터를 뜯어 나오기로 했다. 연결 부위를 풀어 간단하게 분리를 했다. 역시 라디에이터 기술자다웠다. 그의 지시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끌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기술자와 내가 들고 나오는데 성인 두 사람쯤 되는 무게였다. 계단 두 개 층을 들고 올라가야 했다. 그는 계단 입구까지 가자 드는 게 힘든지 자신이 등으로 지고 올라가겠다고 했다. 가능해 보이지 않았지만 판단은 그가 할 수 있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었고 그가 전문가였다. 라디에이터는 족히 150킬로그램은 나갈 무게였다. 그는 힘겹게 업더니 띄엄띄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턱까지 숨을 몰아쉬며 올라갔다. 밖으로 나가자 찬바람이 불어 이마에 바짝 올라온 땀을 식혀 주었다. 그는 등에서 내려놓고 100미터를 전력으로 뛴 사람처럼 헐떡였다. 입김이 담배연기처럼 빠르게 흩어졌다. 다시 잠깐 숨을 돌리고 둘이 마주 잡고 전기실 입구에서 트럭까지 울퉁불퉁하게 얼어붙은 황토 더미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밤 7시가 넘어 보안등이 있어도 발밑 흙더미의 굴곡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라디에이터가 구멍 났다고 못쓰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까다로운 감리는 교체하라고 해요. 그렇지 않은 감리는 그냥 깨끗하게 손질을 해 오라고 하는데. 거기 조심하세요. 축대가 있어요. 됐습니다. 여기에 내려놓고요, 잠깐 쉽시다.”
그는 숨을 돌리는 순간에도 발전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려고 했다. 나는 숨을 돌리고 곧 차에 실었다. 그는 발전기를 가지고 자신의 공장으로 떠났다. 발전기 업자의 말로는 자신이 분당에서 현장으로 오면서 영등포를 들러 발전기를 가지고 온다고 했지만 분위기상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가 그렇게 말을 한지라 우리는 기다리기로 했다. 근처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으며 라디에이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 라디에이터 때문에 늘 보던 연속극 8시 반에 하는 ‘미우나 고우나’를 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상주에서 일꾼들하고 잠깐 머물면서 보기 시작한 연속극이다. 밤에 별일 없으면 처와 꼭 보게 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 연속극 보기인데 이걸 못 보는 것을 아쉬워하다니.
밥을 다 먹고 현장에 가서 쉴 동안 아무 곳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납땜이면 금방 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납땜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쇠에다 회로판에 콘덴서나 꽂는 납땜으로 구멍을 메우다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사장은 느긋하게 앉아 어두운 들판을 바라보며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중장비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다가 기름 만지는 것이 너무도 싫어 덕트를 한 이야기였다. 조금 전 그 사내의 온몸에 기름이 배겨 있었다. 그를 보니 옛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덕트 일을 하다 돈을 벌어 과천 쪽에 33평 아파트를 샀으나 부도 맞아 판 사건과 절을 돌아다니며 2년간 방황한 과거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였다. 벌써 몇 번을 들은 이야기지만 재미는 있었다. 이런 하도급 업자들은 부도를 무슨 연례행사처럼 맞는다. 이번 일도 3단계 하도급을 하고 있다. 언제든 부도까지랄 것도 없이 빈손이 될 가능성은 너무 컸다. 이런 불확실한 일을 하다니 그냥 일당이라도 벌자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당장 하찮은 사고 하나로 일당은 고사하고 뒤로 까지는 데 말이다. 오늘만 버린 내 품이며 용접사에 준 일당을 합하면 이 현장에서 먹을 것이 없다. 사장의 인생사가 거의 끝나고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들판 너머에 멀리 불을 밝힌 아파트들이 서 있고 한강 쪽으로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아직도 전기실에는 일하는지 가끔 일꾼들이 들락거렸다.
얼마나 기다렸나, 거의 9시가 되어 갈 무렵 발전기 업자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를 받고 우리가 가서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자신이 늦어서 우리에게 찾아 가지고 가면 자신들이 와서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영등포 라디에이터 공장에 전화해서 그가 다 고쳤는가를 확인하자 곧바로 오라고 했다. 사장은 영등포 쪽으로 오늘만 두 번째 차를 몰았다. 강변도로를 달리는 동안 사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생각하는가 싶었다. 이런 날에는 호젓하여서 여러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늘 같은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되풀이되는 생각과 감정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사장은 자신은 살아 있는 내비게이션이라고 장담하곤 했는데 돈이 없어 설치하지 못한다는 말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전화로 알려만 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어지간한 길을 꿰뚫고 있었다. 길에 대한 나름대로 철학이 있을 것이다. 모든 길에는 길이 있고, 큰 길이 있으면 샛길이 있게 마련이다, 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을 게 확실했다. 그런 면에서 나와는 딴판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나는 길눈이 어둡다. 늘 다니던 길만 다녀야지 그렇지 않으면 헤매게 된다. 얼마나 많은 길을 잘못 들어왔는지 처음 가는 길을 제대로 가면 그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의 머릿속은 확실히 나와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사장은 영등포 로터리로 들어와 근로복지관 뒤를 돌아 정확하게 가르쳐 준 곳으로 찾아갔다.
입구에서 전화하니 공장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사장은 보란 듯이 나에게 다시 한 번 살아 있는 내비게이션이라고 말을 했다. 내비고 지랄이고 일이나 제대로 시키고 돈이나 밀리지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다른 차들 틈으로 비스듬하게 대고 불꺼진 공장들 사이로 불빛이 밝은 공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공장 입구는 좁은데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고 높았다. 주변에는 갖가지 라디에이터가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몇 번을 되풀이 후회를 한 일이지만 분명히 처음부터 이 사람이 왔어야 했다.
그는 그곳에서 호이스트로 발전기를 공중에 매달아 놓고 납땜을 하고 있었다. 흑표범같이 날씬한 라디에이터가 자신의 넓이보다 넓은 사각 물통 위에 매달려 있었다. 왜 라디에이터가 물 위에 매달려 있는가를 몰랐다. 기술자는 능숙하게 30센티 만한 막대 같은 납을 들고 산소 불로 납을 녹여 칠을 하듯 엷게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구멍은 다 메웠고 알곤사가 녹인 곳을 두껍게 납을 입히고 있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다 했는데 자신의 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올라왔음을 증명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자꾸 되풀이해서 납을 녹여 입히고 물을 붓으로 적셔 식혔다. 다시 그 위를 납을 녹여 부었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리듬감이 느껴지는 능숙한 동작이었다. 예술적인 것을 봤으니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빨리 집에 가야 한단 말이야 아저씨, 내 마음은 예술을 감상하고 싶은 생각보다 아이들 재롱 속에 몸을 눕히고 싶었다.
그는 손을 멈추고 몇 번을 한 설명을 다시 중계하고 다시는 알곤을 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마치 두고두고 써먹을 말임이 분명했다. 누가 어디서 탱크를 구멍 내고는 알곤으로 때우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누군가에게 줄곧 읊어 댈 것이다. 신주와 알루미늄을 구분 못 하는 바보가 현장에 기술자라고 돌아다니더란 말이다, 하면서.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그게 신주로 되어 있는 줄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검은색으로 도장이 되어 있었고 나사로 뚫었을 때는 흰색으로 보였다. 사실 그 배관 업자가 알루미늄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건 신주가 아니라 알루미늄이었던 것이다. 그 멍청한, 그래 배관의 단순한 말을 믿은 우리는 바보나 마찬가지였다. 확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기술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사장도 발전기 라디에이터를 알아봤어야 한다. 그는 자동차 센터에 가서 라디에이터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바꾸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그들은 자동차 부품을 교체 수리하는 사람들이었지 발전기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는 호이스트를 내려 물속에 라디에이터를 잠그고 공기가 새는지 확인을 두어 차례 하더니 드디어 그 검은 탱크를 가득 물이 담긴 사각용기에서 꺼내자 물이 흘러내렸다. 물의 용도는 납땜이 제대로 되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물기를 말리고 리스로 검은색 칠을 하니 흉측하게 구멍을 뚫은 흉터는 남았지만 기능상 문제가 없었다. 역시 모든 일에는 전문가가 있는 법이다. 그는 기름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돌아서기 전에 설치할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해 주었다. 우리는 부리나케 트럭에 싣고 다시 현장으로 달렸다. 올라가는 길은 세 번 째 달리는 길이었다.
“배관 업자 이 인간 때문이야. 알지도 못하면서 알루미늄 때문이라고 하다니. 그리고 이 일을 왜 나에게 미루고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거야. 용접사인 자신이 못하는 일을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사장은 벌써 오늘만 20번은 했던 말을 또 내뱉었다. 나는 골프채 같은 20밀리 배관 파이프에 90도 엘보를 연결해 그 누군가의 머리통을 치는 상상을 했다.
“배관보다 발전기업자가 책임이 크다니까요. 그날 그 자리에 있었잖아요. 근데 왜 오늘에서야 이런 일을 만드느냐고요. 하도급이 문제라니까요. 일만 하도급이지 관리까지 하도급을 준다고 생각하고 이 간단한 문제를 이렇게 꼬이게 하죠.”
“글세, 돈도 못 받고 이게 지금 뭔 짓을 하는지.”
사장은 이빨을 깨물었다. 나는 집에 늦는다고 전화를 해 주었다. 두 돌이 되어가는 딸이 애타게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다시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10시가 다 되었다. 나는 속으로 지하철 시간 안에만 끝나기를 기다렸다. 발전기실에 도착을 해보니 아직 전기들이 작업하고 있었다. 현장으로 와 있어야 할 사람이 발전기 업자와 배관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지도 않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발전기 업자는 다른 볼일이 있어 온다고 했는데 전화 건전지가 떨어졌는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게끔 그들이 벌을 내린 것이었다. 가뜩이나 허리 아프다고 끙끙대는 사장과 이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사장에게 할 수 있겠는가 물어보니 별수 없지 않은가, 반문을 했다. 그래 이게 다 나나 당신이나 팔자거니 해야 지 어쩌겠습니까, 하고 둘이 발전기를 들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장은 사력을 다해 들었다, 자신을 욕망을 들듯. 몇 번을 쉬어 가며 긴 계단 지하 발전기실까지 갈 수 있었다. 끌고 내려가는 내내 사장은 신음을 크게 질러 짐승 우는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기공들이 우리를 이상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도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만 모른 척했다. 사실 간섭할 일도 아니었다. 거의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러 조립설치를 하고 탱크 안에 부동액을 채울 수가 있었다. 우리가 일을 시작할 때 전기는 철수하기 시작했다. 전기 소장이 문을 잠가야 하니까 빨리하라고 재촉을 했다.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장갑을 버리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을 때는 11시간 반쯤 되었다. 아직도 현장 사무실에 불이 밝혀 있었다. ‘저 인간들은 퇴근도 없나? 주 5일째는 말뿐이고 실적 때문에 근무시간이란 개념이 없어졌다는데.’나도 그 시간이면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기에는 빠듯했다. 차를 올라탔을 때 신나게 달릴 줄 알았던 차는 달리지 않았다. 막 떠날 무렵 발전기 업자의 처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남편 전화 건전지가 다 되어 연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분당에서 일을 마치고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얼굴을 보고 가라는 것이다. 사장도 그를 만나 돈에 관해 결산하고 싶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사장의 인생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사업이 있잖아, 부도 한번 맞고 자빠지면 일어날 수가 없어. 대부분 그걸로 끝이지. 근데 나는 어렵게 일을 해가면서 일어나니 대단한 거야. 안 그래 최박사? 자나? 아니야? 눈 좀 크게 떠. 음악이나 듣자고.”
“사장님 ‘밤을 잊은 그대에게’ 틀어 봐요. 지금도 하는지 모르지만. 이 밤에 이렇게 호젓하게 라디오 듣기는 간만이네.”
눈앞에 넓은 어둠이 있지만 그 안에 모든 사물이 꿈틀거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 빈 아파트도 조만간 하나 둘 입주자들이 들어올 것이다. 그들은 서로 얹히고 맞대어 살면서 갖가지 사연을 만들어 갈 것이다. 들판의 추위도 잠들 무렵 이렇게 여기서 무엇하나 싶었다. 히터에서 밀고 올라오는 후끈한 바람으로 졸음이 슬슬 왔다.
자정이 다 되어 갈 때 조용히 음악이 나왔다.
얼마 있자 조용한 현장에 승용차 한 대와 트럭이 정면에서 다가왔다. 전조등이 꺼지고 문이 열리며 지친 듯한 사내 몇이 내렸다. 야간을 하고 와서 밤샘을 하려는 사내들이었다. 내리자마자 몸을 틀고 기지개를 켰다. 쩍 벌어진 입과 더딘 걸음 그들의 어깨에 파고든 피로가 느껴졌다. 승용차에서 발전기 업자가 내리더니 사장에게 전화를 빌려 전기소장을 불러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보통 배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빨리 와서 당신이 문을 당연히 열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투였다. 자신들이 내일 시험 운전을 위해 할 일이 있으니 잠깐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작은 몸집이지만 다부져 보였다. 조금은 꾸부정하고 짧은 상고머리에 두툼한 볼을 가졌다. 그에 둥글게 쳐진 귓불과 짧고 뭉뚝한 손톱은 고집이 센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잠깐 힐끗거리는 눈이 매섭게 느껴졌다. 하도급이 저 업자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하도급을 받아 내려주고 돈을 관리하고 있었다. 첫날 이곳에서 일하다 배관 업자에게 어음을 가지고 다투는 것을 보았다. 배관 업자는 말을 붙이고 본전도 뽑지 못하고 꼬리를 내린 모습이 떠올랐다.
발전기 업자가 우리 차 뒷 자석에 올라타더니 사장과 견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은 중간에서 하도급을 준 설비 업자에게 지난 석 달째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푸념을 했고 발전기 업자는 자신이 줄 금액을 설비 업자에게 전부 건넸다고 했다.
“아니 돈을 안 받고 지금까지 일했단 말입니까?”
알고 말하는지 모르는 척을 하는지 발전기 업자는 사장을 보고 놀랐다는 듯 말을 했다.
“결산 본다는 말만 하지 자신이 돈 받았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니까요.”
사장은 애들처럼 자신의 처지를 목소리 높였다.
“그 사람 어디 사는지는 아세요?”
“근처는 알아요. 서로 믿고 하는 거죠.”
“믿는 것은 좋기는 한데. 왜 그랬을까? 여기 자료를 보세요. 이곳 모든 일을 250만 원에서 공사를 해야 해요. 발전기 배관 닥트, 연도까지. 솔직히 내가 여기서 먹는 것은 10퍼센트 띄어 먹고 나머지로 하거든요.”
“그게 말이 됩니까? 닥트하고 배관 자재 값만 그 정도가 될 텐데요. 여기 닥트만 130 넣거든요.”
사장은 자신의 자료를 들이 댔다.
“이 일이 원래 그래요. 그러니까 배관 업자와 진작 해결을 봐서 일하셨어야지 어쩌자고. 그리고 이 일만 그래도 그렇지 저에게 처음부터 전화만 줬어도 간단한 문제예요. 배관 업자가 박사장님이 다 알아서 한다고 해서 그러거니 했던 거죠. 이게 뭔 고생입니까?”
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발전기 업자의 잘못은 없었다. 그는 먹이사슬 상층에 존재하는 육식짐승과 같았다. 초식동물이 풀 조각을 입에 붙이고 무슨 항변을 한단 말인가! 애초 그럴 여지가 없는 구조인데. 자비로 칼자루 쥔 주재자가 푸념을 너그러이 들어 주는 것도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가 여기까지라고 말할 때까지는 늘어놓을 수가 있었다. 이번 소란도 내가 보기에는 발전기 업자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상황은 어려움에 처한 사장을 도와주러 온 사람 꼴이었다. 사장으로서는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그는 논리적으로 강한 사람이다. 박사장이 더 말을 해봐야 스스로 바보가 되는 꼴이었다. 구조적으로 사장이 위치한 곳은 싸움을 벌이기에 불리했다. 사장도 발전기 업자에게 푸념은 할 수 있지만 돈을 달라고는 할 수가 없었다. 중간에 배관사장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 언짢은 말들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거짓말과 흥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얼마나 참고 듣고 있으니 서로들 할 이야기를 했는지 떨어졌다. 잠시 후, 전기소장이 잠옷 차림으로 차를 몰고 나타나고 발전기 기술자들은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현장을 빠져나왔다.  
“라디에이터가 해결되니 속이 다 편하네.”
“돈이나 잘 해결 하세요. 저 업자들 보니까 사장님이나 내가 빨가벗고 덤벼도 못 이길 만큼 강해 보여요. 저 눈 째진 것 보세요. 최경주선수 저리 가라지.”
“골프 최경주를 말하는 거겠지?”
“골프죠.”
차는 텅 빈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신월 나들목을 지나 국립과학 수사 연구소 앞길로 올라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작은 다리 앞에서 나를 내려주고 그의 다시 어둠 속으로 차를 몰았다. 사장은 한번 말을 해 줬는데 잘도 찾아간다. 마치 이 동네 사는 사람처럼 말이다. 집에 도착을 해보니 처가 막내 조끼를 만든다며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막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처가 타준 뜨거운 커피와 사과 몇 조각을 먹으니 힘겨운 하루의 피로가 사라졌다. 두 번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사장은 며칠 전에 하자보수를 보러 갈 때 말하길, 앞으로 발전기 덕트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과 최종 결산을 보는데 자기가 넣은 견적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들 임의대로 돈을 끊더라는 것이다. 처음 간 발전기 현장에 다른 덕트 일꾼들이 일을 하다 말고 팽개치고 갔듯이 그렇게 사장도 손을 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사장 견적보다 반은 손해를 본 것 같았다.
“어디 벼룩시장에 광고를 내겠지. 아무나 멋모르고 달라붙으라, 이거지.”
“사장님처럼요?”
“그렇지. 불쌍한 하도급 업자들. 돈 버는 사람은 하나야. 발전기 일을 따서 업자에게 던져주면 다 알아서 하거든. 나중에는 인건하청을 하지. 나도 이번에 완전히 물렸어. 이 바닥에는 도가 존재하지 않아.”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 석 달 돈 몇 푼을 보태려고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끔찍했던 모양이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알아? 최박사 말대로 큰 것 한 건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 오야지랍시고 이 짓을 몇 십 년을 했는데 어디 가서 일당을 받고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야, 오야지라 써 주는 사람도 없고.”
그 말이 일정 사실로 보였지만 그 말을 반만 믿는다. 그래도 일당보다는 나으니까 하겠지 싶었다. 이제 또 다른 덕트 업자가 꿈을 꾸고 달려들게 뻔하다. 그런 일이 어디 발전기 덕트 뿐이겠는가, 그날 분당 군부대에 하자 보다가 배관업자와 한바탕 다투었다.
“야, 그러지 말라고. 일을 개 부리듯 여기저기 열나게 뛰어다니게 하고 계산할 때는 나 몰라라 하는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나?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이사장!”
사장이 나와 움직이지 않는 몸을 굴리며 일하다 말고 한마디 하자
“나도 누구에게 그 말을 하고 싶어요. 나도.”
배관업자는 자리를 뜨면서 혼자 나불거렸었다.
나도 은근히 화가 났지만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진흙탕에서 아무리 흙덩어리 던지고 싸워 봐야 그저 진흙탕일 뿐이고 승자일수록 더 흙을 뒤집어쓸 것이다.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수록 몸만 더 빠지고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에잇, 개양아치 새끼들.” 사장은 볼트를 조이며 혼잣말을 했다. 마치 무슨 일에 혼쭐이 나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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