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 창

 

 

 

 

 

 

>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버지의 형제들
   | 2004·04·12 01:35 | HIT : 5,274 | VOTE : 343 |
4월 5일 한식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향에 시제를 지내러 내려갔었다. 장손 아닌 장손 노릇을 그만하게 되지 않을까했는데, 역시 장손이 오지 않았다. 당연히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다음 서열인 내가 장손 노릇을 하고 올라왔다. 분명, 당숙 말에 의하면 내 조카뻘인 장손이 온다고 했는데 안 온 것이다.
허긴 이 집안에 발을 딛는 순간 제사 전부를 안고 갈 텐데 오고 싶겠는가! 나라도 그런 처지의 장손이라도 오고 싶을 않을게다. 어른들도 이제는 더 긴 말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세상인심이 그런 것이고 무엇보다 넉넉한 집안이 없으니 힘이 안 모인다고 자책들을 하셨다.
시제는 삼년 전부터 지낸다. 그 전에는 시제도 없었다. 집안에 시제나 선산이 없다는 것은 고향에 사는 어른들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화순 광업소에서 광부로 일하시는 당숙이 시간이 날 때마다 족보를 참고로 무등산부터 화순 근처 산을 샅샅이 뒤져 찾은 것이 매년 우리가 모이기로 한 묘이다. 나는 묘의 주인으로부터 7대손이라고 한다. 그 묘에서 대충 시제의 형식을 갖춘 것이 삼 년 전이다. 어른들은 아직 한 가지 못다 한 일이 장손을 바로 세우는 것인데 잘 안 되고 있다. 장손 문제는 잊힌 묘를 찾는 것만큼 쉽지가 않는 모양이다.
그 묘의 시제를 통해 매년 시골에 내려갈 근거가 생겼고 집안 어른과 그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대게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한 10명 된다. 만약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더라면 이런 시제에 대해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 아버지는 그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
가끔 술을 마시다 문득 나도 모르게 '아버지'하고 읊조리게 될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평소 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나는 여래회라는 불교단체에서 몸을 두고 있었다.
하루는 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단체 사무실에 볼 일이 있어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데 유선배가 이층 사무실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가 하는 말이 아버님이 쓰러졌으니 빨리 집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핸드폰도, 삐삐도 없었던 시절이다. 사무실 앞에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오려는데 계단이 기우뚱 휘청거렸다. 아버지는 뇌출혈로 병원에서 한 삼일, 집에서 일주일 정도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내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지만 특별히 좋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먹고 살기 힘든 가정형편에 아버지도 현장에서 품을 파는 노동일을 하고 자식도 노동일을 하니 서로 자랑스러울 일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잘 몰랐었다. 아버지를 둘러쌓고 있는 집안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대신 고향을 집안일로 오고 가면서 우리 집안에 대하여 모르던 것을 알아 가게 되었다.

1970년은 무척 암울한 해였다. 와우아파트 붕괴되었고, 정인숙 피살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한 해였고 내가 서울로 처음 올라오던 때였다. 아버지는 내 손을 끌 광주발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고향 화순에는 늙으신 당신 어머니와 동생 내외가 배웅을 해 주었다. 나로 말하면 할머니와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였다. 지금은 아버지와 나머지 세분도 다 돌아가신 상태다.
기구한 집안이다. 적어도 아버지 대까지는 말이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많은 것을 겪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아버지외 다섯명의 부양가족을 굶기지 않으시려고 여러 가지 직업을 바꾸어가며 돈을 버셨다. 성장해 가면서 내가 지켜본 아버지는 일은 열심히 하시는데 돈을 벌 특별한 재능은 없으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내가 사회에 나와 밥벌이를 하다 보니, 별다른 재주 없이 부양가족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고 새삼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드리게 돈 것은 아쉽게 돌아가신 후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게 물려준 것은 가난과 어떠한 경우에도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철의규율 그리고 맏아들이기에 물려받은 밥 열 세 그릇이 올라가는 제사다. 시간이 지나며 알고 보니 그 제사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도 그렇고. 우리 큰집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에 주인이 따로 있을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순서가 맞지 않다는 것은 집안에 얽히고설킨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집안 어른들은 만나면서 잠깐 잠깐 들어보고 물어보아 이리저리 사건을 맞추어 보니 대략 집안의 내막이 알게 되었다.
아버지 형제는 총 구남매였다. 아들 사형제와 다섯 자매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사내 중 셋째였다. 내가 본 사람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그리고 늙으신 고모들이다. 지금은 형제 네 분은 다 돌아가셨고 몇 해 전 고모 한 분이 돌아가셨다. 남자 형제들 중 아버지가 제일 오래 사셨다. 오십을 넘겼으니, 작은 아버지는 사십 중반에 두 큰아버지는 삼십, 이십대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제일 맏이인 큰아버지는 산에서 돌아가셨고 둘째 큰아버지는 광주교도소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당시 전쟁 전인지, 전쟁 중이었는지 모르겠다. 제일 큰 아버지는 화순부근 무슨 청년단체 회장이었다고 한다. 두 분이 어찌하며 수배가 떨어졌는데 둘째 큰아버지는 도망 다니다 검거가 되었다고, 맏이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한다. 할아버지도 그 즈음 자식들 문제로 충격을 받아 쓰러진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첫째 큰아버지는 결혼을 한 상태였고 한집안의 가장이었다. 산에 들어갈 당신 막 둘째를 낳았다고 한다. 그 자손들이 지금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데 어찌어찌하여 지금은 우리와 남처럼 되어 있다. 그 집은 분명 내 큰집임이 분명하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정작 내가 그 큰어머니를 보게 된 것은 두 분이 생이별을 하지 수십 년이 지난, 몇 해 전 부천 우리 집에서였다.
딱 한번 본 것이다. 그 후에 보지 못했고 아마 또 볼 일을 없을 것 같다. 내가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큰어머니는 이미 팔순 넘긴 노인이 되셨다. 내가 할아버지 이름을 물어보니 잘 기억을 못하셨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이리라. 전쟁 때 헤어지고 난 후 물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테니.

'빨치산'
두 큰아버지는 좌익이었다. 제국들의 잇속과 내부 사상논쟁에 휩싸인 민족분쟁은 한반도를 잔인한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때 우익이든 좌익이든 보는 사람에 따라 선과 악이 되었다. 그 시각의 차이가 어떠했건 결과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잡는 살육을 낳은 것이다. 그 중심에 아버지의 형제들이 젊은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화순과 광주를 잇는 너릿재를 넘나들며 불타는 짧고도 열정적인 삶을 영위한 것이다.
그 동네에 고모부 한분이 계셨는데(그 분은 아버지 매형이었다.), 우익이었다고 한다. 그 분이 구십까지 사셨는데, 살아계실 때 집안일이 생기면 여러모로 돌보아 주셨다.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애를 많이 써 주셨다. 그 고모부가 몇 해 전 돌아가셨을 때는 찾아뵙지 못했다.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남은 좌익이고 매형은 우익이라니. 그것도 한 동네에서. 무슨 사연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건 모르겠다. 언젠가 여동생이 고향에 가게 되었을 때 고모부를 만나면 몇 가지 물어보라고 부탁한 것이 있었다. 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만족할 만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화만 내셨다고 한다. 그때는 뭔가 옳은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첫째 큰아버지가 산에 들어가자 제일 힘이 든 것은 큰어머니였다. 둘째 아기는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았고 집안에는 먹을 게 없었다고 한다. 집안에 어린 시동생과 시누이는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숫자가 여덟에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급기야 큰어머니는 첫째를 시어머니에 맡겨두고 둘째 핏덩어리 업고 큰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큰아버지가 자주 산에서 내려온다는 마을 찾아 간 것이다. 그러나 몇 날을 헤매도 큰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일이 생겼는데, 업고 다닌 아기가 그만 죽었다고 한다. 큰어머니는 죽은 아기를 묻고 개울에 삼일을 앉아 있었다고 한다. 나흘째 큰어머니는 가까운 마을로 가서 어른들을 붙잡고 사정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나는 모씨 아내인데 그 사람을 만나려고 이곳까지 왔다가 애기 죽었다'라고. 그날 밤 큰 어머니는 그렇게 그리던 큰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온 큰 아버지는 큰어머니에게 자신의 저고리를 접어주며 한마디 했다고 한다.
"나는 이미 군복으로 옷을 바꾸어 입은 사람이요. 다시는 찾지 마시오."라고.
삶의 야박함을 느껴 봤는가! 처절하게. 인간이란, 사상이란 무엇일까? 참으로 잔인한 시절에 참으로 잔인한 큰아버지에 참으로 잔인하게 당한 큰어머니다. 자식 잃은 아내에게 옷벗어주며 잊고 돌아가라니. 그게 사람이 할 말인가? 사람이란 가끔 이해 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이 말을 큰 어머니가 부천 집에 오셨을 때 해준 이야기다. 큰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시고 시아버지가 충격으로 돌아가신다. 얼마 후 큰어머니는 당신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것이 전쟁이다. 인간이 인간의 관계로 살아가는 것인데, 그 인간의 관계를 난도질하는 것이다.
시어머니인 내 할머니는 큰어머니를 다른 곳으로 시집가게 한다. 시어머니인 할머니도 제 정신이 아니었으리라. 남편과 두 자식, 둘째 손주를 한 번에 잃었으니, 큰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화순 근처 다른 마을에 시력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재가를 했다고 한다. 후에 그에게서 난 자식들이 돈 벌어 눈을 수술해 주었다고 한다.
집안이 그때부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큰어머니가 재가를 할 때 아이를 두고 갔다면 아쉬운 대로 제사가 제대로 내림을 가졌을 텐데, 큰어머니는 아들은 데려가면서 제사는 놔두고 간 것이다. 그 제사가 고스란히 내게 내려온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36년생이시니 열다섯쯤 되었나 보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가장 아닌 가장되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고 오십 사세 어느 날 한 많은 세월을 끌어안고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차례를 지낼 때면 가정의례란 책을 꺼내 놓고 상을 논다. 차례도 책에 쓰인 대로 따라서한다. 해마다 몇 번씩 상을 차리지만 외워지지가 않는다. 기억력이 워낙에 나빠서 그럴 것이다. 내가 올려 논 밥그릇의 주인공중 아는 사람은 아버지와 할머니뿐이다. 이 제사를 내가 계속 지내게 될지 언젠가 장손이란 조카가 와서 제사를 가져갈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내가 지내야 할 것 같다. 제사 때가 되면 혼들이 오는지 안 오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온다면 서로들 무슨 말을 나눌지 모르겠다. 아마도 다시는 자신들의 삶이 되풀이 되는 세상은 원치 않을 것이리라.
얼굴을 뵙지 못하고 시신도 건지지 못한 큰아버지지만 두 어른의 명복을 빌고 싶다. 두 분의 못다 이룬 민족의 통일이 꼭 이루어지고 우리 가족이 번성하게 축복해주시길 간절히 빌고 또 빈다.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178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630
177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650
176   위대한 만찬  최경주 04·05·31 5366
175   어떤 부부싸움  최경주 04·09·29 3661
174   뿌리  최경주 04·12·19 2916
173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325
172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836
171   위대한 만찬  최경주 04·05·31 5357
170   어떤 부부싸움  최경주 04·09·29 3455
169   뿌리  최경주 04·12·19 3080
168   시가 되어버린 기억   03·11·07 4596
167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313
166   고통, 그리고 광끼  최경주 04·01·19 4678
165   상도동 내 친구  최경주 04·01·25 4069
164   명성 이자녹스  최경주 04·02·12 4430
163   어떤 산행  최경주 04·02·14 5071
162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556
  아버지의 형제들   04·04·12 5274
160   빌어먹을!  최경주 04·04·23 6557
159   은장도?  최경주 04·05·04 5676
12345678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