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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상도동 내 친구
 최경주  | 2004·01·25 07:35 | HIT : 4,068 | VOTE : 236 |
우울한,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날 우울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도동 철거 망루에 올라가 있는 친구다. 한 달에 두어 번 오던 전화가 싸움이 긴박해지면서 자주 오고 있었다. 녀석과 십여 년을 한 조합에서 살면서 애증관계가 워낙 두텁게 쌓여 있어 말이 곱지 않은 관계다.
"어쩐 일이냐?"
"새끼, 말투하고는, 오늘이 그날 아니냐."
"크리스마스 이브? 애들이냐?"
"그래도 여기에 있으니, 기분이 그렇다."
"...."
망루 위에서 크리스마스로 들뜬 도시를 바라보는 기분이 어떨까? 수 백 미터 주변은 철거로 부서진 수 십 년 자신의 삶 터일 테고, 놈이 본 세상은 어떨지.
"메리 크리스마스다."
"그래 너도. 몸조심하고."
"끊는다."
"그래…."
 
설을 지내고, 24일 어제 조합에 가니, 안산에 사는 친구가 상도동 철거투쟁이 마무리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상도동 소식 들었냐?"
"아니, 해결 됐냐?"
"정리 됐단다."
월 초 해결이 되거니 했는데 협상과정이 쉽지 않았나 보다. 설 전날 해결 되었다니. 통신을 보니 싸움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망루에서 내려와 경찰차에 타고 있었다. 
오후 쯤 되니, 노량진 서에 면회를 다녀온 선배가 조합에 들렀다. 녀석이 비적 말라 골골하다고 한다. 늘 그랬지만, 망루에서 싸우느라 더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8명 구속에, 8명 불구속이 되었다. 그는 구속되었다. 살인미수라나.
긴 싸움이 마무리되는 이런 날은 홀가분한 기분도 들고, 자본에 대한 분노가 끝도 없이 치솟기도 한다. 여럿이 모여 자본과 정권에 한바탕 성토를 하고 나니 배가 고파진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그가 찾아와 싸움에 들어간다고 했다. 철거싸움은 워낙 길어 일상생활 속에 묻힌 나는 잊고 지냈다. 가끔 그가 전화를 하거나 찾아 왔을 때나 '아! 싸우고 있지' 하고 기억을 하였다. 무심한 나는 상도동이 주점을 할 때나 민중연대 차원으로 집회가 있을 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망루에 딱 한 번 가봤는데, 작년 여름 이사 간 집에서 난로를 하나 주워났으니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조합 실정을 잘 아는 놈이니, 새것과 같은 난로를 보고 그냥 못 넘어 간 것이다. 그 난로를 지금도 잘 쓰고 있다.
그가 철거싸움에 들어가기 전 조합에서 늘 내 골치를 아프게 했다. 놈이 술에 잔뜩 취하면 내게 전화가 온다. '사무국장님 빨리 들어오세요. 친구 모씨가 취했어요.' 조합에 가보면 술 냄새가 사무실 안에 진동을 했다. 누구와 시비라도 붙으면 난리가 아니다. 거기다 비라도 오는 우중충한 날이면.
"딱 한번만 더 걸리면 징계야! 알았어."
그 말을 그에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야! 게는 잘 못 없다. 그 아이 마음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 문제지. 그 만큼 순수한 놈 있냐. 문제가 있다면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법이 서투른 거지."
얼마 전 그 친구 말이 나왔을 때 선배가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술 취해 주체를 못하는 그만 보면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내 친구가. 친구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두 어 달 전인가 어느 날이다.
"경주야 어제 상도동 봤냐?"
어느 날 안산친구가 조합에 들어오자마자 내게 물었다.
"상도동? 싸웠냐?"
"상도동 사진 말이야."
그가 내민 신문을 보니 쓰러진 컨테이너에서 불길을 등에 업고 뛰어 나오는 사람이었다. 영화 '분노의 역류'에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붉게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상도동 싸움이 대대적으로 실렸다.
"조선일보에서 화염포라고 나왔덴다."
"화염포라니?"
"새총인데, 두 사람이 당기더라. 그 새총으로 골프공이나 화염병을 쏜 댄다."
"와! 맞으면 죽겠다."
"당연하지. 철거하는 놈들이 사람목숨 한 두 명 가는 거 신경이나 쓰냐. 게네들한테는 철거 하루 늦는 게 사람목숨보다 중요해. 그래서 철거투쟁은 전쟁이야. 지금까지 몇 사람이나 죽었냐. 게네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상도동 사람들 저렇게 싸우는 게 심한 게 아니야. 저렇게 하지 않으면 개 쫓기 듯 쫓겨난다니까. 헐값에 서민들 쫓아내고 거기서 아파트 지어 그 많은 돈 깡그리 챙기잖아.  비자금 다 어디서 났겠냐? 서민들 피야."
내가 들은 큰 싸움은 그것 외에 두 번은 더 있었다.
 
1970년 아버지 손을 잡고 서울에 처음 올라온 살았던 곳이 서대문구 북가좌동 뚝방이었다. 그곳이 얼마 후 헐값에(당시 15만원이었나 싶다) 철거되어 안쪽으로 들어왔는데, 후에 그곳도 철거되었다. 지금은 아예 철거와는 동 떨어진 부천 외곽으로 빠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철거는 항상 내 주변에 머물러 있다.
상도동 철거에서 거대한 포크레인 삽이 사람을 찍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 사람은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이었다. 다행이 삽이 다리를 긁고 지나가기는 했지만, 철거를 하는 자본의 모든 모습이 그 장면에 다 담겨 있었다. 지금 2004년 1월 어느 날,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이 정도였으니, 저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모습은 어느 정도였을까?
고문보다 지독한 조폭의 폭력, 방화, 강제철거, 죽음 그리고 자본의 높은 이익이 한 묶음으로 한 시대 슬픈 민중의  주거투쟁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경주냐. 나 이번에 들어갈 것 같다. 사식이나 많이 넣어라."
"내가 돈이 어디 있어. 내 면회는 자주 못 가도 한 번은 가마."
"하였든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어쨌든 수고해라."
"너도."
 
내 집이 철거되고, 나는 그 철거된 지역 위에 건설되는 현장에 떠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 현장이 완공되면 다시 갈 일없는 현장을 나와 다른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야말로 우울한, 고되고 힘든 여정이다. 건설노동자라는 것이 생산의 주체는 분명한데 이익의 주체는 아니니. 생산하는 놈은 죽어라 생산만 하고 이익을 챙기는 놈은 죽어라 이익만 챙기니. 나 원 참. 원숭이 새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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