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 창

 

 

 

 

 

 

>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고통, 그리고 광끼
 최경주  | 2004·01·19 19:18 | HIT : 4,678 | VOTE : 336 |
검붉은 구름이 도시의 하늘에서 광기를 부린다. 살기 띤 바람이 땅과 하늘을 어지럽히고 짐승들이 이유 없이 울부짖는다. 살이 낀 날이다. 애꿎은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그런 날 말이다. 경험이 있는 자만이 살을 피할 수 있으리라. 특히 이런 날은 전화를 조심히 받아야 한다. 잘못 걸린 전화에 경을 칠테니.

사십 중반인 그 양반은 술에 취해 집에 온 시간은 대략 저녁 열 시경이었다. 집안의 부인도 텔레비전을 보다 밤 열시라는 것을 알았고, 그 양반은 초인종을 누르며 시계를 보니 열시였다. 문을 열고 남자를 맞이한 부인은 밖의 공기와 더불어 찌든 사람의 냄새가 불쾌감을 느꼈으리라. 그럼에도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다. 부인으로서의 예의가 아닐뿐더러 노골적인 남자에 대한 불손은 남편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그는 넥타이를 당기며 마누라를 밀치고 들어왔다. 구두를 대충 벗고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늦으셨네요.”
부인이 늘 하던 대로 사내의 얼굴을 살피며 한마디 하였더니, 이유 없고 갑작스럽게 파고드는 눈길을 느낀다. 기세를 휘어잡는 냉소적인 코웃음.
“너 바람피웠지?”
사내는 문을 잠그는 부인을 뒤로하고 거실 중앙에서 옆구리에 팔을 대고 서서 문책하는 일본 순사처럼 한마디 올려 붙인다.
부인은 남편의 말이 흘러가는 귀 울음, 혹은 잡음인줄 알았다.
“네에?”
바람피웠지? 란 말이 부인의 귀를 어지럽히며 떠돌았다. 이런 잡음이란, 불쾌한 냄새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눈이 여인을 얼굴을 샅샅이 살핀다. 세밀하게, 잡음이 아닌가? 여인은 문득 의문스럽게 잡음을 되뇐다. 사실인가? 한마디 한마디를 되짚어 본다. 음색까지, 철저히, 아까 무슨 말이었는가? 그러나 바람 피웠지? 역시 그 말이었다. 여인으로서 준비되지 못한, 전혀 별개의 다른 언어가 뇌에서 심장으로 뚫고 들어온다.
“놀라기는, 왜? 찔려?”
거친 언어. 호흡, 날카로운 기세, 분노.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부인의 심장이 퍼뜩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부인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조여지는 압박을 있다. 어지러움이 온다. 몸과 마음은 이미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도망치며 뛰기 시작했다. 마음은 바람처럼 빠르나 그림자는 느리게 자신에게 끌려온다. 이미 뛰기를 포기한 사슴처럼. 범에게 쫒기 듯. 그러나 부인은 남자를 달래려는 듯 다가섰다.
“여보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세요.”
부드러운, 부드러운, 지독하게 부드럽게.
“농담? 그럼 안 피웠단 말이야!”
여인은 남편의 발아래 짓밟히는, 반항하지 못하는 인형이 된다. 남편은 약간은 머쓱하고 웃는 얼굴이다. 여자의 머리는 순간 몇 년 전 어느 비 오는 날을 떠 올렸다. 이와 비슷한 문제로 아는 여자가 밤새도록 두들겨 맞고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설마 나에게. 오! 하느님. 용서하시길, 이 시련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여보!”
부인은 남자에게 강하게 부정을 했다. 남편의 말을, 상상을, 지금 이 순간의 예상되는 직감을, 예리한 칼로 난도질 쳐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람이라니’.
“어디서,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소리를 질러... 너! 바람피웠잖아!”
남편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말투만으로 그의 뒤에서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여인은 남편의 목소리가 커지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농담인가? 진담인가? 뭔가 떠보려는 속셈인가? 알 수가 없었다. 사내의 어깨를 매만지려던 손이 딱딱한 어깨에 닿기 전에 가늘게 떨었다. 두 사람이 사이가 전혀 별개의 두 공간으로 갈라진다.
“여보, 무슨 일 있었어요?”
‘그래 무슨 일이 있었지?’ 남자는 눈을 꼭 감았다. 마음이 중심 없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콧속에 나오는 뜨거운 날숨은 이성이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입술이 가볍게 경련을 일으켰다. 맥없는 한 숨을 쉬었다. 양미간의 혈관이 헐떡거렸다. 감정이 뒤섞여 이유 없이 갖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붉고 검은 실선이 분노와 공포가 되어 통로 없는 공간에 갇힌 빛처럼 몸부림치며 머리 깊숙이 뚜렷한 잔상을 그린다.
부인은 그의 뒤에서 주저 하였다. 남편의 혼란스런 정신이 눈에 보였다. 뒷목의 주름은 언제 저렇게 졌을까? 젊은 시절의 패기와 용기는 이미 사라진 아픈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늙음은 더 빨리 진행될 것이다. 자신과 함께. 어깨도 쳐져 있었다. 정이 넘쳐 그를 따라 결혼을 했었다.
“여보 오늘 약주가 과하셨나 봐요? 일찍 주무세요.”
부인은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래, 그런 것 같아. 내가 취했어.”
남자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바닥없는 축으로 거꾸로 떨어지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부인은 허겁지겁 걸어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위에 이불을 폈다. 서른 평 남짓 아파트 안에는 밴 자민 화분과 얻어 쓰는 소파와 구형 텔레비전, 소박한 가구들이 정리되어 있어 수수함이 엿보였다. 여자가 들어간 방안에는 세 칸짜리 장롱이 있었다. 장롱 옆 전화기 옆에는 직접 수놓은 받침대가 있었고, 창에 걸린 커튼도 여자가 직접 손으로 뜨개질한 것이다.
남편은 현관 앞에 있는 식탁 의자에 앉아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바람을 피우다니, 그럴 리가 없다. 절대로 그럴 리가. 착하디착한 저런 여자가 감히 바람을 피우다니, 나 이외의 남자에 안겨 그 짓을 했을 리가 없지. 암 그렇고 말고.’ 남자는 그렇게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여보 이리오세요. 이리로요?”
부인이 남편의 손을 끌어 안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래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남편은 여자의 손에 안방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끄떡였다. 남자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얼핏 고통스러웠지만 얼굴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취했다. 취했어. 내 인생의 삼각지는 어딘가.’ 남자는 고개를 끄떡이며 노래를 띄엄띄엄 읊었다.
부인은 남편을 자리에 뉘이고 양말과 웃옷을 벗겼다. 술 냄새와 고된 노동 후의 땀 냄새, 발 냄새가 은은하게 방안에 퍼졌다. 남자는 누워서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눈에는 저 칠십 년대 청년시절이 뇌리에 한 두 장면이 그려지더니, 이내 군대생활과 첫 사회생활, 신혼의 즐거움과 삶의 미래, 아련한 추억들이 느릿느릿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적들이 나타난다. 회사 내의 경쟁자들이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을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있었다. 적들, 모두가 적이다. 놈들은 어두운 방에 자신을 넣어놓고 문을 닫는다. 마지막 빛 한줄기가 문에 가로막힌다. 고립, 폐쇄, 나락, 먹잇감, 발악, 자신과 남에 대한 분노.
부인이 방의 불을 껐다. 그때 남편의 생각은 적개심에 분노가 극에 달해지는 순간이었다.
“망할 새끼들.”
누워서 양손에 주먹을 쥐고 침대를 쳤다. 부인은 깜짝 놀라 자리에 그대로 섰다. 사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짐승의 신음 소리를 냈다.
“난 끝났어. 혼자야. 배신자들, 독한 놈들. 잔인한 새끼들.”
남편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로 몸서리를 쳤다. 덫에 걸린 짐승 그 자체였다.
부인은 동정심이 일어났다. 그가 지쳐있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를 달래고 싶지만 가까이 가는 게 무서웠다. 상처받은 짐승이라고 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리라. 짐승의 스트레스는 자기 자식을 뜯어 먹는다. 은근히 도망치고 싶은 원초적인 감정이 일었다. 부인은 문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당기며 거실로 몸을 뺐다.
그때 남편은 눈을 크게 뜨고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부인을 쉽게 나아 주려는 운명의 질긴 장난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내의 눈에 밝은 빛을 뒤로하고 서있는 통통한 한 여인이 육감적으로 보였다.
“어디가?”
“예, 잠깐.”
“이리와 봐!”
“뭐해? 이리 오래 두. 왜 싫어? 그럼 나가던가. 엉!”
머뭇대는 부인의 행동으로 남편의 말끝은 끝내 거칠게 올라가고 말았다. 나가라는 남편의 말에 부인은 문을 그대로 둔 채 마지못한 얼굴로 쭈빗거리며 남편에게 다가갔다.
“앉아.”
남편은 자리를 내주며 자신의 처를 왼쪽에 앉혔다. 부인이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벗어.”
“예?”
“벗어보라니까.”
“여보 당신 오늘 좀 이상해요, 아니 너무 피곤하신 것 같아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또박 또박 말대꾸는.”
“여보 당신 오늘 좀 왜 그러세요. 악!”
부인은 다음 말 대신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남편의 육중한 몸이 산처럼 일어서더니 손을 높이 들었기 때문이다.
“벗으라니까! 내가 벗으라고 말했잖아! 앙.”
남편의 짧은 말투에 역겹기가 지독한 술 냄새가 그녀의 호흡에 타고 들어왔다. 남편은 그녀의 배에 발을 대고 그녀를 침대로 넘어뜨렸다. 부인은 마지못해 위의 티를 아래에서 위로 벗었다. 남편에 대한 순응만이 오늘을 무사히 넘길 것이다. 그녀의 느릿한 행동은 은근한 반항기가 있었다. 부인은 아니더라도 남편이 보기에 그랬다.
부인은 남편의 혼잣말에 흠칫 놀라 남편을 올려보았다. 남편이 평소에 하지 않던 어떤 상욕을 하는 것을 어설피 들은 것이다. 문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불빛으로 본 남편은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엉클어진 머리가 귀를 덥고, 작은 눈은 여자를 놓치지 않을 집요함에 빛났다. 엷은 볼은 붉게 달구어져 있었고, 코는 보기 좋게 위로 굳게 솟아 있었지만 오늘은 본능만이 빛나는 굶주린 야수 같았다. 입가에는 어떤 감정이 극에 달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 가는 입술과 자잘한 이빨들이 오늘만큼은 잔인하게 연약한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말 것 같았다.
“여보.”
여자는 뭔가 치욕적인 일이 벌어 질 것 같아 옷을 벗다말고 무의식중에 가슴에 손을 모았다.
“이년이.”
남편은 침대에 거칠게 올라서더니 여자를 깔고 앉아 손을 벌렸다. 그리고 속옷을 손가락으로 움켜쥐고 뜯기 시작했다. 부인은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작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려 둘아 누웠다. 남편의 우악스런 손길을 벗어 날 길 없는 부인의 윗몸이 그대로 들어났다. 남편이 보고 싶고 원하는 것은 여인의 앞몸이며 밝게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근데 몸을 돌리다니, 이런 불경스런 일이 어디에 있는가?
“이런 망할!”
남편의 혀끝에서 독이 나온다. 이내 어깨와 등에 주먹질이 시작되었다.
“여보 잘못했어요. 벗을 게요.”
부인의 그 대답은 남편이 원하는 답이었다. 남편이 보기에 여편네가 몇 대 맞더니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어야지. 진작. 여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바지를 벗었다. 남편은 부인의 서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부인은 팬티를 벗기 직전 망설였다. 남편이 바지를 벗다 손을 멈춘 채 그대로 서있는 것을 본 것이다. 먹이 감을 앞에 둔 짐승 같았던 남편은 머리가 혼란스러움에 빠졌다.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벌벌 떠는 마누라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어지럽다. 약간 구토가 느껴지기도 하고. 속이 울렁거린다.
남편은 부인을 밀치고 침대에 앉았다. 성욕이 일순간 가시고 만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속을 달랬다.
“더러운 년.”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부인에게 던지고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무엇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신체나 정신에서 오는 고통을 누가 함께 할 사람이 있겠는가? 부인은 바지와 웃옷을 들고 황급히 밖으로 나오며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남편이 벗다만 바지를 무릎까지 걸치고 침대에 벌렁 눕는 모습을 보았다.
부인이 올가미에 걸렸다가 빠져 나온 동물처럼 안도의 숨을 쉬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뭔가 뭔지 정신이 없었다. 오늘 저 방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 어디로 갈까. 일단 다른 곳으로 피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옷을 입다가 전화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전화는 깨질 듯이 벽면 한쪽에서 요란하게 울었다. 빨리 받으라는 소리였다. 부인은 혹시 남편이 깰까봐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남편도 전화소리에 눈을 떴다. 오밤중에 무슨 전화인가? 어두운 방안에 전화소리가 요란히 크다. 자신의 영혼에 뭔가를 깨우쳐주기 위한 음성만큼이나 크다. 거실에서 부인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나 싶었다. 처의 작은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고. 쓸데없는 전화면 빨리 끊을 것이지 자신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처의 작태가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저런 밥벌레 같은’ 사내의 심사에 은근한 짜증이 밀려 올라왔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전화를 빼앗아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인은 한손으로 수화기를 가리며 말을 하다 남편과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뭐야! 어떤 놈이야!”
눈이 마주치자 부인에게 다고 짜고 윽박지르며 소리쳤다.
“네에?”
남편의 막무가내의 몰아침에 감이 둔하고 심성이 여린 부인은 놀라서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그 놀라는 표정이란, ‘이것이 진짜 바람피우나? 이 동네 것들 대부분 애인이 있다는데’ 사내가 다가서는 동안 부인은 전화를 들지 못했다. 전화를 든 사람은 그의 남편이었다. 그가 다가가 부인 앞에 떨어진 전화를 들고 귀에 대니 벌써 끊겼다.
“어떤 새끼야?”
그는 마치 바람 난 현장을 잡은 듯 전화를 던지듯 처를 몰아 세웠다.
“무슨 말이세요? 흉측하게.”
부인은 기겁을 하며 얼굴색이 바뀌었다. 도대체 모두가 속이려고 든다. 음모 없이 무슨 일이 되겠는가? 자식은 부모를 속이고 부부는 서로 딴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선후배 의리는 고사하고 딴청부리며 씹히고 만다. 빌어먹을 세상’ 남편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데 전화가 다시 울렸다. 온 신경을 세워 고통의 극을 주는 소리다.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자신을 경멸하고 모멸하는 소리다. 부인은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부인은 머뭇거렸다.
남편이 전화를 받으려는데 처가 남편보다 빠르게 전화를 들었다. 그리곤 다음에 하라는 말을 짧게 남기고 얼른 끊는다. 이때 남편의 어이없음이란. 그의 뇌리에 젊은 매끈한 놈 하나가 떠올랐다. 뜨거운 술기운이 가슴에 꽉 차고 머리끝에서 분노가 솟았다.
“그게 아니고, 청계천 친군데, 당신이 좀 취한 것 같아서.”
부인의 변명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부인의 허둥대는 모습은 분명 어떤 사내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노는 꼴이 의심스러워 물증만 잡기를 기다렸건만, 이것들이 이제 자신의 눈앞에서 전화질이라니. 남편은 떨리는 손으로 주체를 못하고 마누라에게 달려들었다. 발길로 처의 머리를 찼으나 그만 처가 깜짝 놀라 피하는 바람에 벌러덩 자빠졌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지러 졌다.
사내는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어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쓰러진 자신과 두려움에 떠는 마누라가 경멸스러웠다.
“매정한 것들.”
사내는 넘어진 자신을 추슬러 의자에 앉혔다. 그는 파도치는 자신의 자존심을 감당하며 이를 물고 눈을 꼭 감았다.
“네가 나를 철저히 짓밟는구나.”
사내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어떤 고독감이 등줄기를 감싸왔다. 사내는 마누라의 연약한 손에 의지에 앉았다.
“여보 괜찮으세요.”
부인은 남편보다 놀란 모습으로 남편에게 무릎으로 기어 다가섰다.
“누구냐?”
남자는 다가선 처를 보지 않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 용서할 것 같은 목소리였다.
“예에? 누구라니요?”
“그 놈?”
“여보, 도대체 무슨 말씀 이예요?”
답답한 표정을 짓는 여자의 말투가 짜증스럽게 끝이 올라갔다. 그 짜증스런 말끝이 그를 순간 더욱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가급적이며, 좋게 말하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었는데 이 년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부인은 남편의 얼굴에 박힌 작은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다시 무슨 말이고 변명을 대려는데, 단단한 남편의 손이 자신의 얼굴을 때렸다. 머리에 벼락을 맞은 듯 번쩍 하더니 한쪽 볼이 부서져 내린 것 같았다.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앉은 자세에서 옆으로 쓰러졌다. 악몽이 되살아 나 두려움과 또 맞아야 하는 불만이 서로 섞여 자신의 감정을 어지럽혔다. 그녀의 마음 한구석이 명확히 느껴지는 것은 분명 그때 악몽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인은 애원하는 얼굴로 들어 남편을 보니 이미 남편은 일어나 전화통을 들어 자신의 머리위에 던지려 하고 있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전화기는 그녀의 머리가 아니라 등짝을 때리며 튕겨져 나갔다. 그녀는 가슴에 충격을 받아 숨이 막혔다. 부인은 처참하게 뒤로 자빠졌다. 그 와중에서도 아픈 것 보다 남편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여보 살려주세요.”
여자의 숨넘어가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의 거친 발길질이 그녀의 허벅지와 옆구리를 연속으로 밟아대고 질러대었다.
“그래 이 년아 소리 질러라. 더 크게 더 크게. 오장이 다 터지게.”
부인은 비명이 나오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막무가내로 차고 들어오는 발을 몸으로 받으며 방바닥에 굴렀다. 몇 바퀴를 그렇게 구르고 나니 소파에 부딪쳤다. 부인은 소파다리에 막혀 어디로 피하지 말고 고스란히 남자의 우악스러운 발길을 그대로 다 받았다.
결국 부인은 결사적으로 남자의 발을 두 손으로 잡았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남자는 부인에게 발을 잡혀 더 이상 발길질을 못하고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헉, 너까지 나를 무시 하냐? 크악 퉤, 그래 내가 다 됐다 이거지. 쓸모없어 보인다 이거지. 그렇지. 응. 헉헉. 너까지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야 되겠냐? 너 조금 있으면 나 죽이겠다. 팔자 고쳐보려고.”
남편은 가슴을 쥐어짜며 말을 했다.
“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다 잘못했어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은 오직 남편을 달래야 했다. 부인은 옆으로 누워 아픈 곳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남편의 마음을 달래려고 하였다.
“그래 말해봐! 어떤 놈이냐? 헉, 아이고.”
남자는 소파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며 마누라를 재차 캐기 시작했다.
“여보,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아요. 무슨 천벌을 받을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야! 네가 거짓말한단 말이냐? 아까 내 눈으로 뻔히 봤는데. 그리고 내가 너를 모르냐. 응, 내가 일만하는 게 아냐. 다 보고 있어. 너 노는 것. 숨 쉬는 것 까지. 나 바보 아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뭘 봤다는 거예요?”
“이런. 네 년이 기어이 오늘 죽자고 하는 구나. 그래 오늘 같이 죽자.”
남자의 왼손이 발을 잡고 있는 처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오른 손바닥으로 얼굴과 머리를 닥치는 대로 때리기 시작했다. 부인은 느닷없이 때리는 남자의 손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남편의 발을 놓고 머리를 감쌌다. 부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 이빨을 앙다물었다. 남편의 손이 머리 이곳저곳을 치더니, 때리는 것이 시원치 않았던지 머리채를 잡아채고 소파에 찧기 시작했다.

초인종이 울렸다.
때리는 남편과 맞던 부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남편은 부인의 머리채를 손에서 놓자 한 줌의 머리칼이 손에서 떨어졌다. 부인은 그 어떡하든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이 일어서지지 않았다. 여자는 소파에 엎드렸고 남편은 문을 열기 위해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영숙아.”
문밖 이웃집 아낙이 방학 중에 시골에 가 있는 아이 아이를 부른다.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다.
“누구세요.”
사내는 문을 열지 않고 물었다.
“은영이 엄마예요. 무슨 소리가 나서.”
“아! 예 좀 다투느라고, 별일 아닙니다.”
“아! 예, 그저 단지 무슨 소리가 나서.”
“예,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여자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사내는 그녀가 머물렀던 문 밖에 더러운 말을 내 뱉었다. 그녀의 애인은 순진한 그의 남편만 모르고 온 동네가 다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부인도 그녀가 남자를 소개해 주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피가 거꾸로 올라 양미간의 혈관이 솟아올랐다.
남자는 부엌에서 젓가락과 칼을 꺼내어 들고 여자에게 갔다. 겁을 줘서라도 남편을 속이고 유린한 부부의 신의에 대한 죄를 물어보고 말 태세였다. 그래 죄를 받아야 한다. 내가 어떻게 너를 위해 살아왔는데 배신을 하다니. 이 집을 불살라서라도 네 실토를 받아 낼 것이다.
그는 소파에 엎드려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걸어갔다. 여인은 문득 고개를 들어 남편을 보았다. 그리고 남편의 손에 들린 칼과 쇠 젓가락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여보.”
부인의 외마디 비명은 가망이 없는 순간에 일어나는 절망어린 절규였다. 바로 남편이 원하는 그대로였다. 남편의 등 뒤로 비취는 거실의 등은 어둠보다 더 어둡게 여인의 눈을 가렸다. 공포, 그녀는 칼의 날카로움에 자신이 난자당하는 상상을 하였다.
“살려주세요.”
이미 여인은 손끝은 떨리고 입술은 파랗게 질렸다. 가슴은 오그라들고, 자신이 앉아 있는지 서있는지 판단이 들지 않았다. 뾰족한 칼은 이미 그녀의 정신을 도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여보.”
여인은 남편을 부르는 말 이외에 그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남자는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이토록 자신의 부인이 겁을 먹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래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누구냐?”
“네? 여보 아니에요. 제가 어떡케 그런 짓을 해요. 난 당신밖에 없어요.”
남자는 젓가락으로 그녀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거짓말, 거짓말 네 년이 지금 사실대로 말할 리가 없지. 죽을 테니까.
“누구냐니까. 말하기만 하면 돼. 다 끝난다니까. 끝까지 거짓말로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마라. 네가 쭉 네 꼬락서니를 지켜봤다니까. 네 한마디에 다 들어 있었어.”
“여보 아니에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니에요. 애 아빠, 진정하시고 절 믿어 주세요.”
“어휴! 왜 그러니, 정말, 내 성질 모르냐. 나 꼭지 돌아버리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정말 너 죽는다. 제발 있는 사실만 이야기해라.”
“여보! 살려주세요.”
“살고 싶으면 말하라니까.”
“여보! 제발.”
여인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빌기 시작했다. 살기위해 일그러진 부인의 모습이 너무도 추해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가 땀에 젖고 얼굴과 이마가 퉁퉁 불어 있었다.
“그만.”
“여보!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 네.”
“그만, 그냥 아무나 말해. 바람 피웠다고.”
“여보! 아니에요. 나 그런 것 몰라요.”
“야! 네 친구 년들 다 애인 있다고 네가 말을 했는데 너라고 멀쩡하겠냐. 응. 네가 천사야.”
“아이고. 여보 살려주세요. 전 몰라요.”
“이년이 그래도.”
남편이 자리에 앉은 채로 여자의 가슴을 발길로 걷어찼다. 부인이 뒤로 나가떨어지더니 곧바로 일어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손을 빌었다. 남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그런데 왜 바람을 피우는가 말이다. 두 번째 발길이 나가고, 여인은 다시 뒤로 나가떨어졌다 제자리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손을 빌었다. 그는 왼손에 젓가락을 들고 오른손에 칼을 들고 일어서 머리와 어깨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부인은 숨이 막혀 신음도 못 지르고 남편의 발길질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발길질을 해 댔나 남편은 움직이지 않고 온갖 폭력을 받아 내는 부인을 놔두고 돌아섰다. 그는 지친 것이다. 그는 칼과 젓가락을 소파에 던지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실을 걸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거야! 응. 왜 나를 악마로 몰아세우는 거야. 제발 말을 해. 네가 바람을 피웠다고. 네가 알고 내가 알고 하늘이 아는 것 아니냐. 응. 넌 바람을 피웠어. 넌 나를 비참하게 깔아뭉갰단 말이야. 왜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얼마나 이렇게 패야 말을 제대로 하겠어.”
남편은 울부짖으며 고통스럽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엎어져 움직이지 않는 마누라에게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여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말 해. 제발, 말! 애인이 생겼다. 능력이 있고 젊고, 힘센 새끼가 생겼다고. 말. 그리고 다 끝내자. 응. 생겼지. 그렇지.”
소리를 쏘아 대던 그가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의 상처에 신음하는 부인에게 달래듯 애원을 했다.
“아니에요. 절대로.”
남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것은 막다른 곳에 몰린 짐승이 지르는 신음이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 내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부인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머리채를 잡고 냉장고를 지나 화장실로 갔다. 여인은 이를 물고 남자에게 질질 끌려 그대로 화장실 안 차가운 타일이 깔린 바닥으로 갔다. 남자는 그녀에게 대야에 받아 논물을 뒤집어 씌웠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그는 손이 집히는 대로 대야며, 바가지며 비누 할 것 없이 처에게 던졌다. 여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가 온 집안을 뒤 흔들었다. 남편은 수건으로 그녀의 입에 쑤셔 넣고 목욕 파란 타월로 입에 재갈을 물렸다. 처의 몸이 어깨와 이마에서 찢겨져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내는 다시 그녀의 다리를 끌고 밖으로 나와 소파가 있는 곳에 갖다 놓았다.
“말해. 누구야? 어떤 개새끼냐?”
여인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남자는 숨을 몰아쉬며 배란다. 창고로 가서 연장통을 끄집어냈다. 녹슨 연장통 안에 여러 가지 공구가 들어 있었다. 망치와 녹슨 펜치, 렌치, 못과 철사 등 잡다하게 모여 있었다. 그는 망치와 철사를 들었다. 사실 그는 처를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녀가 겁을 내어 모든 진실을 말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부인으로서 사실 여부를 떠나 바람피우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연장을 들고 다가오는 남편을 보자 여자는 턱이 떨렸다.
“오! 맙소사.”
여자는 눈을 감았다. 어지러웠다. 이것이 꿈이었다면. 그건 순진한 바램이었고, 설사 꿈이라 할지라도 쉽게 깨어날 꿈이 아니었다. 머리채가 잡히자 부인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이 년아 눈을 떠라. 이걸 봐.”
부인이 남편 말에 눈을 뜨자, 남편 손에 든 망치가 탁자를 내려치고 있었다. 부인은 놀라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수그렸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남편은 머리채를 잡은 손으로 탁자를 보게끔 힘을 주고 있었다. 탁자에 구멍이 뚫리고 조각들이 떨어져 바닥에 흩어졌다. 부인이 아끼던 탁자는 그렇게 다시는 못쓰게 된 것이다. 사내는 그 망치를 자신의 처 머리위에로 번쩍 들었다. 부인은 사내의 광기어린 눈과 마주보았다. 검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부인은 혼이 나가는 것을 느꼈다.
물을 뒤집어쓴 부인은 기절을 하였다. 머리카락은 이마와 볼과 목에 헝클어져 이리저리 붙어있고, 얼굴은 퉁퉁 부었다. 뺨과 목에도 붉고 퍼렇게 피멍이 들었다. 윗몸이 반쯤 드러난 채 옷은 벗겨져 있었고, 치마는 흉하게 허벅지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내는 철사로 부인의 발목끼리 묶고 팔은 팔대로 팔끼리 수갑을 채우듯 묶었다. 꼼짝없이 어찌할 수 없는 죄인처럼 두발과 양손이 포박을 당한 것이다.
부인은 한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사내는 마시다만 독일산 위스키를 잔에 가득 따르고 냉장고로 가서 조각얼음을 꺼내 잔에 넣었다. 반잔쯤 들이키자 목과 위, 장이 불을 삼킨 것처럼 뜨거워 졌다. 마시고 나니 마음이 진정 되는 것 같았다. 한손에 잔을 들고 한손에 걸레를 들고 물젖은 거실을 이리 저리 닦았다. 깨진 탁자 조각은 한쪽으로 쓸어 모으고 연장은 한쪽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는 마저 남은 술을 다 마시고 잔을 설거지대에 놓고 물을 틀어 채워놓았다. 손에 물기를 닦고 소파에 와서 앉았다. 처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고 있다. 이 년을 목욕탕에 처넣으려다 참았다. 그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괴로워 하다가 리모콘이 눈에 띄어 텔레비전을 켰다. 채널을 이곳저곳으로 돌려보니 바둑을 채널이 걸렸다. 속기바둑이었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예와 백전노장의 바둑대결이다. 사내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일급을 두는 실력이었으나 그 이상 오르지 않았다. 영원한 일급이 된 것이다. 자신의 인생처럼 모든 것은 어느 순간 정체된 것이다. 정체는 곧 나락을 의미하는 사회가 아니던가.

“여보!”
부인이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이 자신의 팔과 다리를 묶어 놓고 소파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어처구니없기도 했지만 남편이 진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여보?”
부인은 남편을 다시 불러 보았으나 깊이 잠들어 있었다. 창으로 아침 햇살이 이미 거실 깊숙이 들어와 전날 밤의 전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수치스러운 부부의 밤이었다. 부인은 손을 이리저리 비틀고 입을 이용해 자신의 팔과 다리를 풀었다. 묶인 팔과 다리를 풀고 일어서려는데 온 몸이 아파 그대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얼굴도 자신의 얼굴이 아닌 듯 눈을 감고 뜨기조차 힘들 정도로 아팠다.
부인은 경찰서에 전화를 했으나 떨려서 띄엄띄엄 말을 하였다.
그때 사내는 무슨 소리가 나는 듯 해 눈을 떴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였다. 그가 눈을 퍼뜩 떴을 때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아프게 했다. 앞을 보니 모습이 흉한 자신의 부인이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화 속에 분명하게 남자의 목소리를 들려오고 있었다.
“이년이.”
부인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야?”
남편은 부인의 손에서 전화를 빼앗아 자신의 귀에 대니, 처음 듣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여보세요?’를 한다. ‘이럴 수가. 이 년이 진짜. 그 틈을 못 참고 또 서방질을 하려고’ 사내의 손을 떨렸다.
부인은 뒤로 주저앉았다.
“이, 이년, 왜 네 기둥서방에게 고자질하려고.”
사내는 옆에 있는 부엌칼을 집어 들었다. 이미 자신의 머리는 하얗게 비었고, 가슴은 분노의 바람이 자신의 온 몸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손발을 이용해 뒤 걸음 치는 부인에게 다가서 그는 칼로 부인의 아랫배에 찔러 넣었다.
여인은 놀라 비명을 지르며 배를 움켜쥐고 몸을 돌렸다.
“오! 하느님. 하느님.”
사내는 칼을 빼어 던지고 손을 떨고 부인의 다리를 감쌌다.
여인은 다리를 오그리고 새우처럼 쓰러지고 남편은 부인의 다리사이에서 나오는 붉은 피를 보고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오! 하느님.”
부인도 남편도 울었다. 남편은 무릎으로 기어 전화를 들고 119를 눌렀다. 이미 그들의 인생은 처절하게 운명을 달리하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게. 왜 간밤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불행한 밤이었다.
“빨리 와 주세요. 내가 마누라를 찔렀어요. 빨리요. 우리 집사람 죽어요.”
남편은 다급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이른 아침 아파트 현관에 경찰과 119구 구급차가 동시에 도착을 했다.

해가 뜬 도시의 하늘은 광기는 사라지고 맑기만 하였다. 광기어린 밤이 오기 전까지.
/끝/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178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630
177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650
176   위대한 만찬  최경주 04·05·31 5366
175   어떤 부부싸움  최경주 04·09·29 3661
174   뿌리  최경주 04·12·19 2916
173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325
172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836
171   위대한 만찬  최경주 04·05·31 5357
170   어떤 부부싸움  최경주 04·09·29 3455
169   뿌리  최경주 04·12·19 3080
168   시가 되어버린 기억   03·11·07 4596
167   건설, 건설노동자  최경주 03·12·01 4313
  고통, 그리고 광끼  최경주 04·01·19 4678
165   상도동 내 친구  최경주 04·01·25 4069
164   명성 이자녹스  최경주 04·02·12 4430
163   어떤 산행  최경주 04·02·14 5071
162   광양이라? 그래 그곳에 광양제철소가 있지.  최경주 04·02·24 5556
161   아버지의 형제들   04·04·12 5275
160   빌어먹을!  최경주 04·04·23 6557
159   은장도?  최경주 04·05·04 5676
12345678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