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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떤 부부싸움
 최경주  | 2004·09·29 08:28 | HIT : 3,455 | VOTE : 144 |
이씨에게 자신의 삶이란 쓸모없는 검은 천 조각 마냥 가난한 집구석의 발 걸레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상이란 기뻐서 놀라울 일이란 거의 없었다. 늘 비관적이고, 지독한 짜증이 그림자처럼 한 몸이고, 미칠 것 같은 분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애벌레 투명한 껍질만도 못한 연약한 인내, 말 한마디의 어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뛰어난 감각의 촉수들이 공격거리를 찾아 24시간 연중무휴로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되풀이 되는 일상. 어느 구석에서 죽은 쥐가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집안에서 먹고, 자고 오줌똥을 싸는, 땀 냄새 찌든 인간들 속에 바늘에 찔린 바퀴벌레의 간헐적인 몸부림과 고독한 침묵의 비명이 자신을 이루고 있다.
주변의 짧거나 길게 횡으로 종으로 얽인 삶들 중 누가 벗이고 핏줄을 나눈 형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고 너저분한 삶들에 참견할 일도 없는 것이다. 온통 망할 놈의 새끼와 너저분한 계집으로 즐비할 뿐이다. 저 수많은 것들을 누가 싸질러 났을까? 끝도 없이 구물구물 거리는 것들. 인간들이라고 생긴 것들이 썩은 짐승을 파먹는 구더기들처럼 이 세상 구석구석 안 박힌 곳이 없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이씨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쓰디쓴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상계동에 도착이다. 일한지 석 달이 되도록 돈을 받지 못해 급기야 팔자에도 없는 데모를 한려고 평소 같지 않게 느지막하게 출발을 한 것이다.
눈부신 아침햇살이 번거롭다. 이런 햇살은 이씨의 친구가 아니다. 축축한 새벽이슬이나 싸늘한 밤바람이 마음을 편하게 하고 잠이란 들래서 드는 것이 아닌 쓰러져 들어야 살아가는 것 같은데 할일 없는 늦잠은 딱 질색이며 무엇보다 늦잠 자체가 불안하기만 하다. 늦잠을 자다니, 잡것들이나 하는 짓이다. 일없이 살찌우고 혈관을 좁히는 짓이다. 일을 해야 돈이라는 것도 나오지 백날 이렇게 일할 몸뚱이 놀리면 병나는 것이다. 이런 날 하루하루가 삶의 옆구리를 파먹는 것이다.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씨에게는 편안한 아침이 아니라 돈, 돈, 돈이 필요하다. 목마르게, ‘어디 돈 찍어 내는 기계라도 있었으면’ 이씨는 되먹지 못한 말을 지껄인다.
이씨는 간밤의 일을 생각하니 폐가 좁아지는 것 같고, 땅 밑에서 자신을 빨아들이는 무거운 중력이 느껴지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팼다.

“야! 시부랄 자식아! 개새끼야!”
오십을 넘은 여편네의 옹골진 욕설이 귀에 머리 깊숙이 뼈를 근육을 울리며 타고 들어왔다. 지긋지긋한 이씨네 부부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좁은 방안에 술 냄새가 가득했고 한 이틀 청소를 안 해 방바닥에 모래가 장판의 무늬처럼 점점이 눈에 띄었다. 이씨와 고등학생 아들은 그녀를 외면하고 티브이에 집중했다. 눈만 그런 것이다. 몇 가지 욕설이 다시 던져지자 함께 티브이를 보던 아들놈이 턱하니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 잠시 후 현관문이 텅하고 닫혔다. 티브이 아래 바퀴벌레가 꿈틀거리고 나오다가 재빠르게 방을 가로질러 도망간다.
“너 왜 일안해 새끼야! 노니까 좋으냐! 오늘 내 그냥 못 넘어가! 노는 것도 못 봐주겠는 데 왜 맨 날 술 처먹고 들어와서 행패야! 이 시부럴자식아!”
그럴 줄 알았다. 화상이 왜 일을 안 벌이나 싶었다. 진작 씨불였을 텐데 보름 참았으면 많이 참았다. ‘장하다! 이년’ 일을 안 나간지가 보름이 넘었다. 뿐만 아니라 벌써 돈 한 푼 집에 안 가져다 준 것이 석 달이 다 되어 간다. 일 할 때야 이삼백도 가져다주었지만 이렇게 까먹고 있을 때는 쥐 풀도 없어 달리 대책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놀면서 하는 짓이라고는 술과 화투밖에 없었다. 마누라 심정이 오죽 하겠는가? 하지만 마누라가 시비를 붙는 게 단지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어제 일 때문이었다.
집에 있으면서 밥을 제대로 먹어 본 기억이 없다. 마누라가 현장에 나가 일한답시고 밥을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있으면 더 불편하니 어디 땅이라도 파는 일이라도 찾아 일을 빨리 나가라고 괴롭히는 것일 것이다. 그게 마음속에 불만이었는데, 그만 어제 술 취한 김에 마누라를 걷어 찬 것이다. 여편네를 죽겠다고 방바닥에 뒹굴더니 악을 쓰면서 달려들었다. 나름대로 불만이 있는데 빌미를 준 것이리라. 그놈의 술이라는 게 사람을 짐승의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판단이 없는 것이다. 유식한 판단이.
이때다 싶게 달려드는 마누라의 악다구니에 그만 덥석 물리니, 이쯤 대면 서로 체면이고 뭐고 없다. 손에 집히는 것 바닥에 쳐대고 막판에는 서로 멱살을 잡고 쥐어뜯고 이빨로 물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다. 어제 밤의 일이다. 어제는 이씨가 일방적으로 이겼던 싸움이다. 술의 힘이었으리라. 그걸 오늘 백배로 풀겠다는 심산이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다고 짜고 욕이다.
“그래 더는 못살겠다. 오늘 너 죽고 나죽자!”
발을 벌리고 안정된 자세를 잡아 악쓰는 마누라를 살짝 흘겨보니 마누라는 침을 흘리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작고 동그란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마치 쥐새끼의 눈이다. 무슨 생각이 없어 보이는 눈이다. 한때는 예뻐 보이던 눈이었다는 게 믿을 수가 없다. 이씨는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리모콘을 이리저리 누르기 시작했다. 마누라의 발광이 서너 달에 한 번씩 오는 주기적인 행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저 괴물도 그렇게 느끼겠지만, 괴물은 거의 속옷만 남기고 옷을 여기 저기 벗어 던져놓았다. 그 땅딸한 괴물은 노동으로 단련된 단단한 팔로 팔짱을 끼고 일장 욕설과 악이 시작되었다. 이씨는 힘주어 눈을 꼭 감았다. ‘참자! 이 모든 잘못이 분명 자신에게 있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업보다. 못난 업보. 썩어 문드러질 팔자!’ 이씨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괴물의 눈에 띄지 않는.
“젊을 때는 바람피우고 언제 돈 한번 가져왔냐! 왜 일도 안하고 술주정이야! 나 오늘 배 아파서 일도 못했어. 이 개새끼야! 여기 봐 이 멍, 봐, 봐! 눈깔이 있으면 똑바로 봐! 네가 나한테 해 준거니까! 이 새끼야! 돈 안주는 오야지 새끼나 그렇게 해봐라. 이 못난 놈의 새끼야! 요즘에는 자기 강아지도 안 때려 이 새끼야. 근데 마누라를 걷어차! 한번 봐봐 이 새끼야!”
마누라가 자신의 왼쪽 옆구리를 걷어 이씨 머리에 들이 밀었다. 이씨는 ‘허, 거 참’하고는 머리를 밀리며 리모컨을 이리 저리 눌러댔다. ‘가만있으면 될 일이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가만있는데 어떻게 해 볼 수 있냐’ 이씨는 머리통을 툭툭치는 마누라를 그저 참기로 했다. 그 길만이 서로 사는 길이리라. ‘네 년이 아무리 성깔을 부려도 가만있는 데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무식한 년!’ 이씨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마누라는 텔레비전 밑에서 작은 사각 바구니를 꺼내어 이씨에게 확하고 뿌려댔다. 이씨는 놀라 움찔하며 피하려 고개를 숙였다. 바구니에서 뿌려진 것은 종이들이었다. 순간 이씨는 무슨 돌덩이가 날아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피했으나 종이라 다행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약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야! 이게 다 뭔지 알아? 똑바로 봐라! 이 무능한 새끼야! 돈에 환장한 놈들이 맨 날 보내는 독촉장이다. 아주 날 잡아 먹을 놈들이다. 다 너 같은 날 도둑놈들이다. 왜 맨 날 끝도 없이 날아오는 거야! 아주 내 피를 말려라! 네가 어떻게 해야 할 것 아니야! 말 좀 해봐! 어떻게 할 거야! 근데 니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술만 처먹으면 들어와 주먹질에 발질이야! 엉! 왜 때리는 거야! 너나 아주 말려 죽이려고 하지. 그치?”
이씨는 거듭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먹었다. 마누라가 머리칼을 잡고 쥐 흔들었을 때도 말이다. 다 자신이 무능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를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몸을 써서 돈을 버니, 그 돈이 몇 푼이나 되겠는가? 먹고 쓰는데 무슨 돈이 그리 많이 드는지. 아프면 죽어야 되고, 현장에서 품을 팔아 도대체 살수가 없다. 아버지가 작년까지 꼬박 십년을 풍에 당뇨로 중환자실을 드나들더니 돌아가셨다. 먹고 산 여분의 돈은 거기다 다 꼬라박았다. 이제 자신이 아버지를 대신해 누워야 할 처진데, 이제 어떡한 단 말인가? 그런데다 이 어려울 때 석 달째 체불이라니. 불을 콱 싸질러도 시원찮은 세상이다.
“자라! 이 미친 것아! 제발 자라!”
이씨는 생각이 불까지 미치자 답답함에 무심결에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뭐 미친, 그래 말 잘했다. 나 미쳤다! 넌 안 미쳤냐? 그래 오냐 오늘 미친년 맛을 보여주마! 이 개새끼야! 미친것들끼리 한판하자!”
여편네란 괴물은 그때를 기다렸다는 양, 이씨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철저한 책임을 물을 듯 기세로 이씨의 말꼬리를 낚아챘다.
이씨는 더 이상 리모컨이나 티브이를 보기 힘들 지경까지 왔다. 리모컨을 바닥에 냅다 던지려고 머리위로 들어 올렸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그 순간 수북이 바닥에 널려있는 독촉장, 최고장등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일상을 이루는 뼈대와 토대는 빛, 그것뿐이었다. 풍요로운 대지, 꿀이 흐르는 대지는 죽어서나 맛볼 일이었다. 언제 그런 적이 있었던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값이 올라가는 이러저러한 공과금 영수증에 자신을 여생을 바치고 있다니, 종이들은 똑 같은 글이 써 있었다. ‘일을 하란 말이야. 일, 가난한 새끼야! 마누라 말 안 들려, 너는 사람 탈을 쓴 소 새끼야. 인간으로서 티브이라도 보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란 말이야. 딴 생각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알았어!’ 그렇지! 말 따위 나부린다고 다 사람은 아니다.
“덤벼, 그래 날 또 패봐! 자! 자! 발로 차란 말이야!”
거의 실성한 마누라가 이것저것 손에 집히는 것을 바닥에 던졌다. ‘그래 어제 조금만 참았어야 했다. 조금만’ 하지만 너무 답답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돈, ‘왜! 놈들은 일을 했는데 돈을 안 준단 말인가!’ 차라리 그 놈들을 발로 찼어야 했는데, 죄 없는 마누라만 팬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참기 힘들었다. 이씨는 밖으로 뛰어 나가버릴까 생각을 했다. 이 길로 지방으로 내려가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신경 딱 끊고 다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설마 혼자 벌어 못살겠는가? 이보다야 낳겠지 싶었다.
“야! 너 말 안 해. 말 못해. 이리 돌아 앉아 봐. 나 너 때문에 당료 걸렸어. 너와 네 에비 땜에, 까놓고 말해서 네가 늬 에비 병 수발하면서 십년동안 가타부타 말 한마디 하디? 그때 너 뭐했어. 이게 그 병 수발 보답이냐? 그것도 모자라 너 바람피웠잖아!”
“하, 거참!”
이씨는 옆구리를 걷어 보이며 머리를 툭툭 치는 마누라의 손목을 힘껏 쳐냈다. ‘저것 상대해 봐야 좋을 일 하나도 없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마누라는 툭하면 바람피웠다고 윽박을 질러대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자기는 집에서 그렇게 고생하는데 지방 일을 나가 몇 달 혹은 몇 년을 신경 안 쓰고 살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로 그렇게 말했다.
“오늘 말 안하기로 했어. 어제처럼 한번 걷어차라니까? 죽어도 니놈 발에 죽게.”
마누라가 자신의 짧은 발을 들어 이씨의 어깨를 차다가 그만 뒤로 벌러덩 까부라졌다. 마누라 떨어지는 소리가 ‘쿵’하고 나고, 이씨는 모르는 척하고 돌아앉아 티브이에 연예인들끼라 나와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보았다. 무슨 말인지 젊은것들 웃는 모습만 보일 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제 일어섰는지 더 울화통 치민 마누라가 신문이며 옷가지며 바구니를 이씨 머리를 향해 던졌다. 그것도 분이 안 풀리는지 이씨 머리카락을 잡아 뒤로 당겼다.
“놔! 진짜! 이 잡년을.”
“진짜! 뭐? 진짜 뭐? 뭐?”
“제발 그만해라. 이 미친것아. 동네 창피하지도 않냐?”
“동네 창피? 오 너 말 잘했다. 딱 걸렸어. 동네 창피. 그래 나 하나도 안 창피하다. 넌 창피하냐? 오!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마누라 두드려 팼냐? 하나도 안 창피해서? 나 눈이 밤탱이 돼서 일 나갔다. 하나도 안 창피하다. 이 망할 자식아!”
마누라가 옷을 잡아챘는데, 흰 위 속옷이 ‘쫙’하고 찢겨졌다. 속살이 드러나자 마누라가 달려들어 두 손으로 어깨를 잡더니 꽉 물었다.
“악!”
이씨는 비명을 지르며 마누라를 털어 냈다. 마누라가 다시 팔을 잡고 물려고 덤비는 것을 주먹으로 머리통을 힘껏 때려다. 마누라는 한 대 맞더니 뒤로 물러섰다. 이씨는 눈이 퀭해지는 분노가 치밀었다.
“네 년이 오늘 기어이 죽으려고 악을 쓰는 구나. 악을.”
결국 이씨는 서서히 일어섰다.
“오! 그래, 한판하자고? 오늘 나 죽자. 죽는 게 지금 사는 것만 못하겠냐! 제발 나 좀 죽여주라. 이 개자식아! 아이고 머리야. 네 주먹 참 세다. 내 머리통 속 시원히 부셔라! 이렇게 때려가지고 깨지냐? 이 개자식아.”
마누라는 일어선 이씨에게 독사가 개구리 잡는 것 보다 빠르게 달려들어 머리를 이씨 가스에 받았다. 머리에 받힌 이씨는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비명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세게 박았더라면 이씨는 뒤로 자빠졌을 것이다. 재차 머리를 박고 덤비는 마누라의 머리채를 잡고 한 바퀴 돌리니 힘을 못 쓰고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그래 잘 한다. 이제 됐냐! 자 나 가만있을 테니까 발로 차라! 차! 이개새끼야! 자 이 옆구리를 차! 창자 튀어 나올 때까지 차란 말이야!”
이씨는 이를 악 물었다. 머릿속에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도시는 붉은 물결이 치고, 싸구려 노동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아침의 붉은 해가,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저 붉은 태양이 어찌 하늘로 올라간단 말인가! 지구보다 크다고 하던데. 저게 과연 불덩이란 말인가? 거짓말일 것이다. 해란 눈속임일 뿐이다. 일을 시켜먹기 위해 낮을 만들어 놓기 위해 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른 새벽부터 일을 조지다 보면 등 뒤에서, 혹은 바로 앞에서 조립된 폼 너머로 떠오르는 해가 있다. 내 삶의, 무의미한 노동의 톱니를 돌리는 또 다른 톱니는 바로 해다. 그 아침 해가 머릿속에 눈 앞에 서서히 떠올랐다. 언제고 저 태양은 멈출 것이다. 어떻게 항상 저렇게 올라만 간단 말인가? 수백, 수천 년을. 한번은 쉬겠지. 한번은 거꾸로 가겠지.
“악.”
마누라가 옆구리를 쥐고 비명을 지르면 방안에 굴렀다. 이씨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아프기도 하였다. 그는 마누라를 두어 번 더 걷어차고 뒤로 물러섰다. 이젠 그만을 외쳤으나 순간순간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끊어진 실타래처럼 더 이상 어떤 생각의 진전이 없고 하얗게 변해갔다. 이젠 그만을 외쳤으나 결국 또 일을 벌이고 말았다. 마누라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눈에 핏기가 없다. 내일이면 자신의 몸이 왜 아픈지 모를 것이다. 너무 취해 있었다. 늙어 주름진 얼굴에 머리에 살짝 갈색으로 물을 들였다. 곱슬머리가 귀를 반쯤 가리고 있다. 귀불에 뚫린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마누라는 숨을 쉬기 불편한 얼굴이 되어 가까스로 일어나 이씨 멱살을 잡고 입을 씰룩이며 잡고 늘어졌다.
“미친년! 창피한 줄을 알아라!”
그 말에 마주본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바보 같은 놈. 돈을 안 준 사장은 그냥 두고 마누라라나 패는 놈!”
이씨는 그 말에 그녀의 목을 두 손으로 쥐었다. 문틀에 밀어붙였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죽여라! 죽여!”
그녀는 그의 손에 매달려 두 손을 풀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힘이 부족하였다. 그녀의 몸은 이씨에 비해 너무 약했다. 양 손에 맥박이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이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얗게 되었다.
“너 이거 걸려! 고발할거야! 이 개새...끼. 하나도 안 무...섭...다.”
거의 숨이 넘어갈 때 쯤 이씨는 그녀를 놓았다. 그녀는 그의 손에서 바동거리다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그녀는 쓰러지면서 그의 발을 잡고 늘어졌다. 그는 발을 흔들었다. 그녀는 그럴수록 더욱 힘을 주어 매달렸다. 그는 그녀의 턱을 한 번 더 걷어찼다. 그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이씨는 방을 나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시다 만 소주가 반병이 눈에 띄었다. 그는 병 채로 마셨다. 한 모금 쭉 들어가니 몸이 제법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술이 많이 약해졌다. 이젠 한 모금에 술기운이 올라오니. 그는 ‘커억’ 한번 하고 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오늘 마누라를 죽여 버릴까를 생각이 들었다. 칼로, 병으로, 주먹으로 발로. 온갖 상상이 다 되었다. 어차피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자식이라고 반 건달에다 솔직히 놈이 사고 쳐서 들어간 돈만 아껴도 빌딩 삼사층은 올렸을 것이다. 자신도 조금 있으면 현장에서도 퇴출이다. 현장은 중국인들이 다 해먹을 것이다. ‘빌어먹을. 오늘 이 집구석에 불을 싸질러버릴까!’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방에 들어갔다. 오늘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집구석에 기강이 없으니 밖에 일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반쯤 죽여 놔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평소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마니까, 마누라가 갈수록 더한 것이다. 조금 더 있으면 자신은 아예 거실에서 강아지 새끼들처럼 자야 할 것이다. ‘그래 어차피 오늘 일 벌어진 것 끝을 봐야 한다.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게 말이다. 다시는’ 이씨는 결의를 다지며 종이조각 옷가지가 널린 방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소변이 느껴졌다. 이씨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씨는 소변을 길게 보며 벽 옆에 거울을 보았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얼굴을 한 비쩍 마른 나이든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얼굴임에 생소하게 느껴졌다. 한 번도 마주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거울속의 사내는 자신을 원망스레 바라보고 자신은 그를 외면했다. 말 한마디 붙여보고 싶지 않은 인상이다. 거울 속의 남자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소변보는 일만 충실한 그것을 털고 바지춤을 챙겼다. 물을 내리고 화장실문을 나섰다.
방안이 조용하다. 마누라가 혹시 무슨 흉기라도 들고 기습을 하지 않을까해 방안을 힐끗 보니 방 한 가운데 엎어져 있었다. 오늘 자기 죽을 것을 미리 눈치를 챘단 말인가? 그러나 가장인 자신에게 쏟아 부은 배은망덕함을 어찌 그냥 넘기랴! 사내의 수모는 목숨과 같은 것이다. 오늘 진정으로 그걸 알게 하리라.
이씨가 다가가 발등으로 그녀를 뒤집었다.
“너 이 미친년 오늘 죽었어. 다 죽는 거야! 일어나!”
이씨는 나직하게 말하였다. 뒤집어진 마누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야! 이년아!”
이씨는 목의 힘줄이 튀어나오게 고함을 질렀다.
“아니 이년이 아까 그 용기는 어디다 팔고, 이제 엄살을 피우나.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줄 알고.”
이씨는 힘껏 걷어찰 요령으로 발을 뒤로 뺐다. 있는 힘껏 차려 했으나 여전히 마누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이씨는 머리카락이 뻣뻣이 섰다.
“어이! 어이!”
이씨는 이런 저런 생각에 쭈그려 앉아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툭툭 쳐보았다.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이씨는 온 몸에 싸늘한 전율이 느껴왔다. ‘죽었다’는 말이 종소리처럼 머리에 가슴에 울려왔다. 금방 마신 술이 순간 깨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이. 여보.”
이씨는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따뜻하고 단련된 딱딱한 어깨가 느껴졌다. 마누라를 뒤집어 얼굴을 보니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씨는 안도의 숨을 쉬며 자신의 옆구리를 움켜쥐고 술 냄새 풍기며 기절을 했는지 자는지 움직이지 않는 그녀를 한 동안 내려 보고는 불을 껐다.
이씨는 마누라 옆에서 쭈그리고 누워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그녀는 새벽같이 일을 나가고 없었다. 지난밤이 그렇게 갔을 뿐이다. 그는 초조한 가슴을 안고 집을 나왔다. 쓰레기에 널린 집을 뒤로하고. 아마 오늘도 마누라는 또 그렇게 술에 취해 들어오거나 맨 정신으로 들어와 청소를 대충 해 놓을 것이다.

오늘은 돈을 받아야 하는데, 이씨는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숱한 현장의 타워크레인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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