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 창

 

 

 

 

 

 

>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온 형8- 회식
 칼럼니스트  | 2010·08·09 23:40 | HIT : 3,129 | VOTE : 310 |








지난 토요일에 ‘삶이 보이는 창'에 글을 보내기로 한 날이 삼일 후로 다가왔는데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겼다.
금요일에 조금 써놓고 토요일에 다 쓴 다음 일요일에 퇴고해서 월요일 아침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토요일 오후 말복을 앞두고 간만에 사장이 오더니 현장 회식을 하란다. 3월에 현장에 온 이후 회식은 처음이다. 조선족 김반장 하는 말에 오늘 회식은 꼭 가자고 강조를 했다.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회식이니 이번에 찾아 먹지 못하면 다음 해를 기다려야 된다니 중요하기는 했다. 더러는 그런 회식 안 간다고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확실히 현장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회식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내년에도 이 사장과 일을 할 가능성은 맨손으로 인수봉을 오를 정도로 희박하여 이 회식에는 가야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회식을 하러 가는 곳이 신림사거리에 있는 중국식당이었다. 얼마 전에 김반장 처가 개업을 한 곳이어서 한 번 쯤은 가야 했다. 개업 후 두어 번 초대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절했으니 이번에 빠진다면 욕을 먹을 것이다. 5시에 일을 마치고 현장에서 나와 신정동 화물터미널 뒤 차고지까지 걸어가 신림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탈 당시 집에 오자면 그 버스를 타야 하기에 번호를 외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날 많은 술을 마셔서 그럴 것이다.
토요일 새벽부터 비가 온지라 반듯한 우산을 흔들며 신림사거리 다리를 건넜다. 개천을 보니 언제 와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옛날 서울 대에 집회가 있으면 몰래 학교에 들어갈 때 이 길을 이용한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정확하게 위치도 파악되지 않아 전철을 어디서 타는지 물어도 방향 감각이 살아나지 않았다. 개천이 내려온 쪽에 울창한 녹색 산이 보이기에 저쪽에 서울대가 있겠군 하고 생각을 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작은 시장골목이 나오더니 골목 어귀 2층으로 사람들이 올라갔다. 2층에 붉은 간판에 횟수가 많은 한자가 쓰여 있고 깨끗한 유리문 안쪽으로 사람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묘한 기분이 스쳐갔다. 오늘 이 자리를 걸어서 나가지 못할 기분이 들었다. 우산은 한쪽에 세워놓고 장소를 기억해 두었다. 지난번 마포에 갔을 때처럼 우산을 또 잃어버리면 태풍이 온다는데 비를 맞고 다녀야 한다. 조선족이 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내가 다니던 중국집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일단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게끔 되어 있었고, 들어가자마자 반겨야 할 구수한 자장면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대신 매운 기름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자극해 재채기가 나오게 하였다.
나는 맨 끝에 가서 앉고 옆자리에 엄씨가 앉았다. 그는 사십 대 초반인데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얼마 전 나와 일을 하는데 언어의 불소통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눈치가 빠른 친구였다. 늘 사슬처럼 생긴 금목걸이와 고급 시계를 차고 깔끔한 옷차림으로 다니기에 본토에서 무슨 일을 했나 물어보니 선반 밀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좀 더 고상한 직업을 가졌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확실히 사람은 알기 전에는 미리 판단을 하면 안 된다. 현장 조선족 중에 학교 교사가 둘이 있는데, 어찌나 옷차림이 궁색하고 몸에서 땀 냄새 발냄새가 나는지 교사 같지가 않았다. 하긴 교사의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엄씨 옆에는 엄씨 또래의 친구가 앉았다. 본토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는 동갑 친구와 둘이 현장에 와 일을 하는데, 그 친구는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본토에서 빚진 돈을 받아주며 먹고 살았다고 했다. 7대 3이니 6대 4로 이익을 나누었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모진 밥벌이를 했나보다.
건너편 자리에 올해 10년째라는 김반장과 그의 손아래 동서, 그리고 유반장과 김소장이 있었다. 우리는 배고픔을 달래며 여러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더 오지 않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다들 일이 있다며 오지 않았다. 다 왔으면 좋았을 것을, 부득이 그들 몫까지 먹어야 했다.
잠시 후, 기다리던 요리가 나왔다. 은박지에 둘러싸여 지독하게 매운 연기를 뿜으며 나왔다. 은박지를 벗겨 내니 승용차 바퀴만 한 접시에 갈색 소갈비가 기름에 듬뿍 젖어 연기를 뿜어댔다. 나는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연거푸 두 번을 하고 물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좋아 오늘은 삼불통음이다. 첫째 가격을 묻지 않는 거다. 어차피 사장이 낼 것이니 무슨 상관인가?'
“최씨 참이슬을 마실까 처음처럼을 마실까?”
김반장이 나를 보고 물었다. 김소장은 소주를 마시자고 입을 벌리는 순간
“내가 여기에 소주 마시러 온 줄 아나? 여기서 제일 도수가 세고 비싼 술과 음식을 내오셔!”
한마디 하니 김소장도 ‘나도’ 한다. 옆 친구들이 환호를 질렀다.
김반장이 일어서서 술이 있는 찬장으로 가더니 병들을 하나씩 꺼내 가슴에 안았다. 그는 안쪽 깊은 곳에서 종이 상자에 담긴 호리병 하나를 꺼냈다. 김반장도 이 술을 딱 한번 마셨다고 했다. 평소 문자를 즐겨 쓰는 김소장이 받아 보더니 ‘죽엽주군!’ 한다. 한 잔씩 따라 채우니 옆 자리 젊은 친구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첫 잔을 입술에 대니 은근한 죽향이 입안에 차오고, 기울어진 잔에서 흘러나온 미지근한 술이 입안에 닿자 혀끝에 쓴맛이 없는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목구멍으로 흘러내릴 때 뜨거울 거로 생각하고 힘을 주었는데 그렇지는 않고 박하가 목을 씻듯 개운한 맛이 원시림을 통과하는 바람처럼 뱃속으로 흘러들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왔다. 두잔 셋 잔을 마시니 첫 향이고 두 번째 맛이고 간곳없고 그저 술을 마실 뿐이었다. 내리 세 병을 비우니 김반장이 손을 들었다. 다음 선수를 외치니 고량주를 꺼내서 가져왔다. 무슨 홍주라고 써 있었으나 기억이 없다.
역시 김소장이 상자를 벗겨 내고 검붉은 호리병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이 술이 그 술이군 한다.
“'무슨 술인데?”
“공리!”
“뭐라고요?”
“공리가 마시던 수수로 만든 것.”
“아, 붉은 수수밭의 공리, 오줌으로 발효시킨 고량주!”
“그렇지.”'
30년을 현장에서 보낸 63세 영감이 공리를 다 알다니, 공리가 예쁘기는 한가보다.
  
'삼불통음 두 번째 술 양을 묻지 않는다. 내일 방바닥에서 오십 번 구를 각오하자!' 승용차 바퀴만 한 접시가 더 나왔다. 이번에는 해산물이 이것저것 잔뜩 얹어져 있는데 이날 먹은 음식 중에 내 입맛에 맞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김치를 좀 내오라고 하고 싶은데, 솔직히 김치가 내 입맛에 맞을까에 대해 의심스러워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메추리 알고 있고 버섯도 있었으니 다 해산물은 아니다. 옆의 엄씨에게 이름이 뭔가 물으니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잠시 후, 또 한 접시가 나왔다. 이번에는 돼지 엉덩이 살이라고 했다. 다들 맛있다고 했는데 그 두꺼운 껍질 때문에 받아먹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좋은 거라며 내 접시를 가져가 자꾸 덜어 주었다.
조금 있으니 또 한 접시가 나왔는데 그 이름은 한국말로 김반장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생선 대가리라고 했는데, 턱이 상어 이빨처럼 요란한 하게 생겼으니 생선 머리는 맞았다. 참으로 맛있는 거라면 계속 들라고 했다. 그때쯤 술이 올라와 얼굴이 화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형, 술이 올라와 죽을 맛이야. 어떡하지?"
마주앉은 김소장에 말을 하니 태연하다. 그는 벌써 이 집에 세 번째 왔다. 두 번 다 인사불성이 되어 노원까지 갔는데 오늘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한다.
김반장도 중국술은 아무리 마셔도 뒷머리가 아프지 않는다고 마시라고 또 따라 주었다. 나는 몇 번 건배를 거절하다 이내 나도 모르게 함께 마시고 있었다. 내가 중국 말로 건배를 하고 싶다고 하니 건배를 하라고 했다. 중국말로 건배는 건배라고 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으로 본 안주가 나왔는데 세발자전거 정도 되는 작은 접시에 개고기가 나왔다. 내일이 말복이라 나왔다고 했다. 유감스럽게 나는 개고기를 즐기지 않는다. 전혀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먹지 않는다. 확실히 개는 내 취향이 아니다. 먹지도 않지만 기르지도 않는다. 어머니가 몇 번 길렀는데 내 기억에 한 놈도 제명대로 살지 못했다. 병사하거나 쥐약 먹은 쥐를 먹고 죽곤 했다. 예전에 독립해 살 때도 누가 개를 주어 길러 봤는데 역시 장염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누군가 기가 세서 그렇다고 하지만 어쨌든 개는 먹지도 기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누군가 개도 음식인가? 묻는다면 아니다. 약으로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량주가 세 병쯤 나오다 떨어지니 이번에는 생맥주가 나왔다. 중국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다니, 어쨌든 쉬지 않고 생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많은 술을 마시고 어떻게 그 자리를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니 김반장이 속마음을 말한다. 한국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계속 부정을 한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한다.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말이에요. 대하는 것을 보면 진심인지 아니진 않단 말이에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아요. 사람이 그런 게 아니거든요. 내가 십 년을 여기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이라 말이에요.”
10년이면 온갖 멸시를 받으며 고생을 했다는 뜻이다. 먹고 살기 각박한 땅에서 거친 일을 했으니 꽤나 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서로 할 말이 없겠는가?

조선족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들을 차이나 혹은 중국인이라고 부른다. 일당을 깎아 먹는 경쟁자들, 어느 날 옆구리에서 달라붙어 우리의 생계를 위협하는 거머리 같은 존재들. 그들을 누가 내 밥벌이를 하는 현장에 불렀을까? 차라리 정치인이나 수입하지. 왜 이들은 돌아가지 않은 걸까? 언제까지 내 밥그릇을 이들에게 양보해야 할까? 싫어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무서운 존재들이다. 애써 조선족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와 달라야 한다. 같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먼 친척이고 민족이라니. 싫든 좋든 중국인이 되어야 한다. 10년째 생활을 했다니. 도대체 얼마나 내 밥그릇을 축을 내야 돌아간단 말인가? 조선족들. 밥벌이가 넘칠 때는 한 식구 같지만, 지금처럼 현장 생활이 어려울수록 반감은 커질 수밖에 없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같은 한국인끼리도 서로 밀어내려고 하는 판인데 조선족이란 딱지가 있으면 더 할 수밖에.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나도 조선족들과 이렇게 친하게 술을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요즘은 일도 함께한다. 다른 한국인 기술자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조공이면 붙어서 한다고 하지만 나 정도가 되면 거의 함께 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선이 확연히 있다. 밥도 함께 먹지 않으며 잠을 잘 때도 갈라 잔다. 내가 보기에 김반장이 실질적인 책임자지만 그는 그 이상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조선족의 신분으로 현장을 장악하고 끌고 가기는 아직까지 힘들다. 말이 반장이지 그저 팀장수준일 뿐이다.
김반장이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끝에는 무슨 말을 했나 모르겠다. 그의 손아래 동서는 처남 딸이 왔다고 하니까 그 자리로 옮겨버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반장이 몇 마디 하면서 신경질을 부려 기분이 나빴나 보다. 내가 거 촌수는 손아래지만 나이는 한 살 많은데 막대하지 맙시다 하니 막대하지 않았다고 딴청을 부렸다. 김반장은 나보다 한 살이 많은 범띠고, 동서 허씨는 두 살이 많은 소띠다. 허씨 형은 내 친누나와 나이가 같다.
  
'삼불통음 세 번째 시간을 묻지 않는다!'더니, 얼마나 술을 마셨나, 노래방을 가느니 마느니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택시 안에서 토하던 중이었다. 내 안에서 나온 토사물 손으로 받았다. 뜨거운 토사물이 손바닥에 흥건하게 고이고 지독한 술 냄새와 기름기가 역해 다시 토하고 싶었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택시운전기사와 다투고 있었다.
“아까 돈 줬잖아요. 얼마 받았어요?”
“만원이요.”
운전기사는 거짓말을 했다. 만원이라니, 오늘 출근해 확인해보니 2만원 줬다고 했는데.
“근데 왜 찍으라는 거요?”
“아저씨 토해서 냄새가 너무 나, 이제 나 영업 못해요. 택시비 찍으세요!”
“뭐라고 내가 어디다 토했다는 거요?”
확실히 나는 취해 있었다. 취하는 것도 경험인데 이런 경험이 드물었으니 싸움에 약했다.
운전기사가 가리킨 내 발끝에 뭔가 있었다. 나는 뭔가 치밀어 오는 냄새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아알어요. 국립과학수사 연구소까지 갑시다. 그럼 찍을게요. 됐어요?”
지금 생각을 해봐도 기사에게 미안하다. 기사는 아무 말 안하고 기아를 당기고 운전대를 있는 힘을 다 해 꺾어 엑셀을 힘껏 밟았다. 계산을 하고 국과수 다리 앞에서 비틀거리며 내렸더니 처와 아들놈이 나와 있었다. 그 와중에 처에게 전화했던 모양이다. 내가 이토록 취해서 비틀거린 것은 본 적이 없는 가족들이다. 내가 비틀거리며 못 걷겠다고 하니 처와 아들놈이 재밌는지 웃다가 서로 이리 잡으니 저리 잡으니 당기고 밀고 부축하며 고강동 다리 밑을 내려갔다. 김소장은 전철을 거꾸로 타서 노원이 아닌 안산까지 갔다가 택시타고 집으로 갔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칡즙이니 라면 국물이니 얼음물이니 양파니 속을 풀 수 있는 거라면 다 주워 마셨는데 결국 변기통에 얼굴을 묻고 일거에 쏟아 붓고 말았다.
“역시 안주가 문제야! 뜨거운 국물에다 술을 마셔야 했는데.”
“뭐로 마셨는데?”
“중국 음식인데, 다 기름기라 좀 안 맞더라! 아, 김치를 먹었어야 했는데.”
“'왜 중국집에서 회식했어. 조선족들하고 했구나?”
“그 사람들도 동서도 있고 처남 딸도 있고 형부 따지고 삼촌 따지는데 묘하더라!”
“뭐가?”
“몰라. 있어 그런 거 있어.”
“다른 사람들한테 왕따 되는 거 아냐?”
“내버려두라 그래! 바보 같고, 기본도 안 된 예의도 모르는 인간 족속들 같으니. 조선족이면 우리하고 다 한 식구야.”
다른 이주노동자가 보면 국가사회주의자 같은 말이지만, 이 말은 지난 토요일 밤에 김반장이 한 말이었다. 이틀이 지난 지금도 술에 쩐 간이 조금 굳은 듯 딱딱하다. 오늘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탈 때까지 속이 울렁거렸다. 아마 서너 달은 술을 입에 대지 못할 것 같다.
어제 오후에 근처 공원에서 누나와 동생 가족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삶창 원고가 생각났다. 늦은 시간에 미친 듯이 쓰기 시작해 자정을 넘겨서 마칠 수가 있었다. 새벽에 출근시간을 늦추면서까지 퇴고를 하여 보냄으로써 한가지 부담이 사라졌다. 가을 호에 나올 것 같으니 혹시 기회가 되시면 보시고 마감일을 지키려는 불굴의 투지를 치하해 주시기 바란다. 아, 그리고 끝내 우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내일 태풍 영향권에 들어 비가 온다는데 집밖에 옆집 우산 통에서 슬쩍 하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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