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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좀비
 칼럼니스트  | 2010·07·14 06:17 | HIT : 3,222 | VOTE : 306 |
“슬슬 소설하나 쓸까하는데 뭘 써볼까?”
엊저녁 처가 퇴근길에 사온 바나나를 하나씩 까며 가족들에게 한마디 하니 큰 아들이 대뜸
“아빠! 좀비가 사랑을 나누는 소설 하나 쓰세요. 뭔가 될 것 같지 않으세요? 뉴문처럼 뱀파이어나 늑대인간도 사랑에 빠지는데 좀비도 사랑에 빠지는 거에요.”
“어, 그그래? 그거 말 되는데. 글이 좀 되겠다. 좀비가 사랑에 빠진다니. 말 돼. 아직 그런 영화 없었지?”
늘 엉뚱한 생각을 하고 사는 초등학교 6학년다운 말이었다. 올 초 ‘사냥꾼과 마적들’이란 글을 쓰다가 내가 쓸 글이 아니어서 도중도 포기를 했을 때였다. 이 놈이 계속 쓰라고 하는 바람에 어느 정도 쓰다가 역시 도중에 접고 말았다. 북만주를 배경으로 사냥꾼 1명과 마적 60명이 싸움을 하는 이야기였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무협지였다. 북만주 일대를 감싸고 있었던 툰드라의 원시림에 대한 향수와 항일 무장투쟁에 대한 나름대로의 그림이 그려졌지만 역시 1대 60은 좀 억지스러웠고 글이라지만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
“그런데 좀비는 심장이 멈춘 상태로 모든 의식이 정지되어 있는데 사랑을 느끼는 것이 좀 억지가 아닐까? 뱀파이어나 늑대인간하고는 다르지.”
처와 산책을 다녀온 아들에게 다시 좀 전의 이야기를 하니 녀석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인체실험을 하다가 죽지 않는 인간이 된 거에요. 그러니까 몸은 썩어가는데 정신은 살아있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에게 정말 무척이나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던 거에요. 그것을 못 잊는 거죠. 어때요?”
“말 되는데. 그러니까 이 사람은 죽어가는데, 아니 모든 의식을 잃어 가는 것을 알고 있는데 사랑마저 지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야기로 만들면 되는 거야.”
아마 산책 중에 녀석 머리에서 여러 이야기가 부글거리며 끓어 오른 모양이다.
“차라리 네가 써봐라! 좀비는 좀 그렇다.”
녀석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자기 방에 들어가버렸다.

좀비라니, 심장이 멎은 죽은 자도 산 자도 아닌 인간을 뜯어 먹는 사람들. 좀비가 사랑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육욕적이고, 할수록 공허하며 허욕적이고 짜구가 날 정도의 소유 거식증에 사로잡힌 모습일텐데, 그것이 내 주변에 모습같기는 하다. 워낙에 좀비 영화가 많이 나오고 좀비와 비슷한 인간들을 마음껏 죽여도 자연스런 영화들이 나오는 판에 아들의 생각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혹시 녀석의 눈에 현대 사회가 좀비 세상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이익을 위해 뭐가 댔든 아무 감정도 없이 먹어 치우고 한번 입을 물리면 무섭게 전염되는 약도없는 자본주의 좀비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 그러고 보니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좀비의 사랑이라? 자기가 사는 세상에 대한 혐오와 공포 그리고 헤어날수없는 중독.
거참! 출근을 앞둔 이른 아침에 좀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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