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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온 형 7-아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칼럼니스트  | 2010·06·18 00:15 | HIT : 3,272 | VOTE : 310 |
아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새벽에 컴퓨터를 만지다 보니 출근 시간이 늦었다. 처가 일어나 평소 나가던 시간보다 늦어지자 은근히 오늘 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눈치를 주었다. 근래 반지하방을 면하려 무리한 이사를 한 탓에 하루 쉰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겨우 하루였지만, 평소 같으면 쉬면서 하라고 했을 처였지만 말이 없었다. 평소 스스로 아침을 챙겨먹고 나가는데, 오늘은 늦어서 아침을 못 먹었다고 하니 잽싸게 토마토 세 개를 꺼내 씻어 주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계를 보니 20여분이 늦었다. 쉬고 싶은 마음이 반반으로 밀고 올라왔다. 토마토를 자르지도 않고 그냥 주다니, 하고 속으로 푸념을 하며 하나 집어 칼로 쪼개 씹으며 그냥 하루 쉬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가야지 하면서 외출복을 입고 안방을 기웃거려보니 처가 안방 소파에 앉아 꺼진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었다. 처는 검은 화면에 비친 어떤 것, 아니면 무엇을 보고 있을까? 자신의 모습, 아니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내 모습? 혹시 이 화상이 오늘 결근을 해서 한공수를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가슴을 졸이는 것이 아닐까. 쉬라고 말을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것이 아닐까? 갈수록 버거워져 가는 현실 속에 자신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인사도 못하고 현관을 나오는데, 우두커니 검은 화면을 쳐다보는 모습이 안쓰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제, 현장 소장이 이달 월급도 며칠 미루어진다고 하니, 함께 일하는 형 둘은 돈 줄 때까지 일을 못하겠다고 연장을 집어던지고 통을 깔고 앉아 내 등 뒤에서 휘파람을 불어 댔다. 나는 느릿하게나마 일을 하였다. 열댓이 일하는 현장에 지난달처럼 임금이 미루어진 것이다. 3일 늘어지니 참아달라고 사정을 하니, 당장 들고 일어나기에는 명분이 조금 약하기는 했다. 지난달도 그랬다. 돈이 늘어져 싸움하기로 했는데, 어찌하여 남들 싸울 때 내가 불려 올라가 홀로 일을 하였다. 미안한 마음에 이달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앞장서서 총대를 멘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현실은 제일 먼저 연장을 챙겼던 것이다. 사실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을 하는 축이나 안 하는 축이나 별반 다를 것 없이 태업을 하고 있었다. 소장도 대놓고 말을 하지 못하였다. 다 비슷비슷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일 게다.
어제 오후 이런 식으로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늘 쉬어버린다고 동료에게 말을 하고 퇴근을 했던 것이다. 하루 쉬면서 글도 쓰고 두리반싸움에 지원가야 했지만, 생각뿐이었다. 출근을 하면서 줄곧 쉬겠다는 말이 마음에 거슬리긴 했지만 어쨌든 출근을 했다.
“너 안 나올 줄 알았더니 나왔구나
정형이 체조를 마치고 와서 작업복을 갈아입는 나에게 비아냥거렸다.
“나야 현장 더러워서 하루 재끼고 보따리 싸려고 했지. 근데 아침에 딱 일어나 보니까 애들 자는 모습이 보이잖아. 한 명도 아니고 셋이나. 마누라는 눈을 부라리고 지키고 있지. 그러니 어떻게 안 나옵니까? 그러니 어쩌겠어? 피눈물을 삼키고 나오는 거지.”
그 말에 다들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어제 오후, 잠깐 다른 현장에서 일하는 전형과 전화를 했었다. 브라질 취업이 취소되어 오기로 아프리카 가려고 앙골라 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니, 당대의 최씨를 생활고 때문에 해외로 팔려 피땀을 흘리게 한다고 농담을 했다. 그래서 어려울수록 알(R)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
“알(R), 그렇지. 좋은데. 현실이 뭐냐면, 당장 하루라도 놀면 아이들 먹는 게 달라지고 빚을 갚지 않으면 반지하에, 심하면 진짜 길에 나 앉는다고. 지금의 현상유지조차도 피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돼. 사실이야. 진짜 그렇게 된다고. 내가 지금 그렇다니까.”

지난달부터 브라질에 취업 가려고 한다고 했을 때, 처는 걱정스럽다는 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한없이 밝아졌다. 오죽했으면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표정 관리 좀 하라고 말을 할 정도였다. 처가 그렇게 들떠 있는 것을 전에 본 적이 없다. 내가 지구 반대편으로 간다는 것이 그리 반가울까? 내가 자기 시간을 뺏었었나? 아마 돈 때문이었을 게다. 여기서 버는 것보다 두 배 정도 되니 표정관리가 힘들 정도로 경제적 개념이 우선시 될 나이였던 것이다. 지난 한 달 동안브라질행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여러 그림을 그렸을 텐데 아쉽게도 꿈의 브라질행은 무산되었다. 브라질이 취소됐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의 실망스런 눈빛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시간만 나면 언제 가냐고 묻곤 했는데, 아이들에게 뭔가 색다른 변화를 주지 못하였다. 이번에는 아프리카를 알아보고 앙골a라에 간다고 했더니 처는 그저 고개만 끄떡거렸다. 그다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해외취업을 가서 목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하루 나가서 제대로 공수를 올려놓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브라질도 취소되고, 돈은 돈대로 늦고 a아내의 근심이 깊어만 간다. 자기 직장에서도 인원수 줄인다고 걱정이 대단하던데.

어쨌든 오늘 나가서 비굴하지만, 구렁이 알 같은 한 공수를 했다. 이 배신의 한 공수를 아내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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