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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온 형6 - 사장
 칼럼니스트  | 2010·04·22 23:47 | HIT : 3,103 | VOTE : 270 |
4월 22일

오늘도 조금 늦었다. 양천 문화센터 앞에서 602번 버스로 갈아타니 거의 7시가 다 되었다. 버스 안에는 어제 온 노인 한 사람이 앉아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볍게 목례를 했으나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이가 측정이 안 되는 늙은 노동자였다. 그는 어제 아들과 함께 현장에 출력했다. 가만히 보니 아들도 아버지도 눈에 익는다. 어디선가 함께 일을 했을 텐데 굳이 기억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소문에 아들이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종종 일을 나오지 않는다더니 하루 만에 결근을 한 모양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현장에 나와 일을 하더니,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특이한 경우를 바라보고 있다.
밤새 잔 비가 내려 현장에 들어가니 다져 놓은 황토 길이 질퍽거렸다. 노인은 버스를 제대로 내렸지만 1단지 입구로 들어서야 하는데 다른 출구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쫓아가서 데리고 오려고 하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쪽 입구로 들어가도 찾아 갈 수 있었다. 아들이라도 있었으면 길을 헤매지 않았을 텐데 아침부터 길을 헤매는 곤란을 겪게 생겼다. 건물 지하로 들어서려는데 붉은 황색 굴착기 한 대가 입구 앞쪽에서 땅을 파고 있었다. 질퍽거리는 길이 굴착기 바퀴자국에 파헤쳐 걸어가기가 불편했다. 이른 아침부터 굴착기가 물길이라도 트려는지 흙을 다지는 옆을 지나 지하실로 들어갔다. 노인은 어디서 헤매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다른 건물로 들어가지 않았기를 바랬다.
사무실로 들어가며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소장의 출근 여부였다. 역시 우려했던 대로 소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김 소장이 이틀째 무단결근을 하였다. 공포가 뭔지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친구인 정씨가 옷을 갈아입고 입상을 세우는 유반장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정씨는, 오늘 일을 마치고 한번 들러봐야겠다고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여러 사람을 둘러보니 그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함마드릴을 챙겨 3층으로 올라가는데,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시계태엽에 축이 툭 하고 부러져 나가자 톱니들이 갑자기 헐렁해지는 느낌이었다. 톱니가 퉁기어 나가듯 각기 자기 자지로 흩어져 갔다.
현장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아 부평 김형과 담배를 피웠다. 그도 소장이 안 나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물었다. 그는 이곳이 불안하니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이틀 사이에 서너 번은 들은 이야기다. 나는 소장이 안 나오면 안 나올수록 현장에서 버텨야 된다고 말을 해주었다. 돈이 불안한 현장에서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돈 받는데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역시 소장이 나오지 않으니 문제가 생기는지 오후에 사장이 왔다. 기계실에 지원을 나가 무거운 소음기와 챔버 설치를 하다가 창고에 갈 일이 생겨 들어갔더니 사장이 와 있었다. 그는 소장 책상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반쯤 벗겨진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기계실 김씨와 세이크 김반장, 입상 유반장, p.v.c 기술자가 앉아서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장이 그의 톤이 높은 목소리로 소장이 아프다니 지금 하는 데로만 하자고 말을 하고 각 반장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였다. 그가 대책이라고 내 놓은 복안이란 임시처방이었다. 그는 소장을 만나보겠다고 했다. 사장의 고뇌는 우리보다 심각할 것이다. 소장의 공백이 있는 동안 현장은 빠르게 진행이 되고 우리는 더디게 진행이 되어 공정이 늦추어지고 있었다. 늦추어지면 질수록 다른 공정이 미리 작업을 하고 나서 하는 일이라 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만큼 품이 많이 들어가고 사장의 주머니에서 일당이 흘러나와야 한다. 지금 사장은 출혈하는 중이었다.
나라면 더욱 강력한 처방을 내겠지만, 사장으로서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듯했다. 현장에 할 일은 한없이 펼쳐져 있었고 처리는 갈수록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반장들도 다 알고 있겠지만,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로도 무리해서 그 모든 짐을 지고 싶지 않은 생각이 있거나 지금으로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다음 달부터는 이 현장에서 나오는 돈은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이 현장 임금을 우선 처리해 주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말만큼은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다시 사장은 떠났고 현장 일꾼들만 남았다. 총괄처리를 할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각기 자기 할 일들 하느라 또 흩어졌다.

노동일을 30년쯤 하니 노동자로서 내 운명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고 현장에서 느리게 걸어 다니는 사장들의 운명도 눈에 보인다. 내가 현장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없듯 하도급 사장들도 돈을 벌 수 없다. 내가 궁핍한 사장들을 얼마나 봐 왔던가? 돈 본 사장이 있었나? 누가 돈을 벌었다고 자부하던가? 닥트 사장이 말이다. 있기는 하겠지만 아마 특수한 경우일 것이다. 그저 영세한 설비 하도급 사장일 뿐이다. 내가 일 년에 서너 번 현장을 옮길 때마다 만난 사장들은 경제적으로 존경을 받을 만큼 돈을 번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름과 기술 생긴 모습이 모두 다르지만, 그저 일하는 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은 명을 달리한 시흥에 황사장이 있다.
올 1월 중순쯤 황사장의 부고를 받았다. 황사장이 남태령 터널을 지나자마자 앞차를 들이받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했다. 발전기 닥트를 함께 했고 향남제약단지와 안산에 있는 제약회사에서 황사장을 따라 일을 다녔었다. 그를 소재로 ‘발전기 소사’란 소설도 쓰기도 했다. 마지막 현장에서 일하고 두 달 반 동안 돈을 받지 못해 심하게 말다툼을 했었다. 곧 화해를 하고 때때로 전화를 주고받았지만, 그에게 일은 가지 않았다. 가끔 전화를 해서 도와 달라고 했지만 나는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돈 때문에 그러냐고 했지만 아니라고 했다. 사실은 돈 때문이었다. 나는 한 두 달 늦게 받아도 될 만큼 형편이 부드럽지 않았다. 그도 사장이라고 하지만 늘 돈에 쪼들렸다. 공사를 서너 개씩 하고 있었지만, 돈이 궁한 것은 극복하지 못했다. 상주와 김천에 일을 갈 때 그는 졸음운전을 했었다. 상주에서 일할 때 쓰러지듯 누워서 잠을 자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그는 지쳐 있었다. 하루 이틀 쉰다고 풀린 그러한 피로가 아니었다. 그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 졸며 운전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늘 구제금융 때 부도를 맞지 않았더라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을 거라고 말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영세 사장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큰돈을 떼이며 자신의 사업자 등록을 유지하고 있다. 그때 부도 아니더라도 그의 영세함은 별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영세 사장들이 황사장과 같이 길바닥을 피로에 지친 몸을 끌고 차를 몰고 있을 게다.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는 경쟁이란 말을 제살깎아먹기란 말로 대신 쓴다. 이 바닥에서 머리가 좀 돌아간다고 느끼는 친구들은 누구나 제 살 깎아 먹기 틀에서 온 신경을 몰두해 집중하고 있다. 마치 멈추지 않는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 폭탄을 안으면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다 죽을 때까지 폭탄을 돌리는 것이다.
나 같은 밑바닥 하급 노동자가 일하려면 공구라는 연장을 쓰지만, 사장들의 연장은 두렵게도 나 같은 노동자들이다. 내 공구가 소모품인데 사장의 공구도 그와 같을까? 한마디로 내가 그런 사장들의 형편을 고민할 처지는 아니다. 단지 우리가 버려지듯이 사장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건설된 현장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건물이 어떻게 쓰이든 누가 주인이 되 든 건물은 수십 년은 거뜬히 남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것이다. 누구의 희생으로 그 건물이 존재하게 됐는지는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 상태로 사람들은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할 것이다. 어쨌든 이 사장은 이 건축물이 완성되게끔 일을 해야 하게끔 발을 묻고 있었고 우리 또한 노동이라는 올가미에 코뚜레가 걸려 있었다. 정말 자본주의 사회란 마법과 같이 그럴듯하게 꼭두각시를 흔들어 대는 경이로운 힘을 가졌다.

이 현장에서 첫 주 토요일에 작업하게 되었을 때 이 현장 사장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내가 일을 하면서 겪어온 사장 대부분처럼 현장 출신이었고 어찌하여 수원 근교에 닥트 공장도 가지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오십 대 중반쯤 보이는데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육십은 넘어 보였다. 누군가 입심이 좋아 쉼 없이 떠들어 대며 당장 드러나더라도 그럴듯하게 말을 하여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고 했는데 말이 쉼 없이 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날 늦게 통이 들어왔는데 반쯤 남아 그 일을 했다. 남아 늦게까지 일을 한 덕에 저녁을 핑계로 회식하는 자리에 낄 수가 있었다. 사장은 시 경계를 넘어 부천 작동까지 건너가 숭어 횟집으로 끌고 갔다. 이렇게 멀리 걸어올 줄 알았으면 그냥 갈 것을 하고 후회하면서 따라가 피곤한 몸을 앉히고 술잔을 기울였다. 사장은 열 사람쯤 되는 사람에게 술잔을 일일이 돌리며 목소리를 크고 밝게 하며 자기의 장황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소주를 두어 병 비우더니 무슨 쓸개 주라는 술을 시키니 붉은색을 띠는 술이 나왔다. 맛이 약간 비릿했다. 사장 혼자 떠들어 대는 이야기를 거의 두 시간쯤 듣자 나는 몸을 뒤틀리고 자리를 일어나고 싶었다. 오직 부평 김씨만이 더욱 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싶어 했다.
부평 김씨는 근래 이 현장으로 오면서 일을 맡아 하는 오야지가 되고 싶다고 도와 달라고 했다. 그의 기능 정도로 봐서도 현장에서 퇴출을 당하기 전까지 번듯한 기능공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천박하나마 이런 기능공으로 대접을 받으려면 허리띠가 배꼽 아래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뱃살부터 빼고 맨발로 뛰어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김씨는 자기가 오야지가 될 수 있게끔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고 생각을 했는지 이 현장에 오려고 몇 번의 부탁을 했었다. 어렵사리 이곳으로 와서도 그 말을 몇 번이고 했다. 그런 차에 사장을 끼고 술을 마시게 되니 바로 옆자리에 앉아 술시중을 들었다. 하지만, 사장은 그의 기능 정도와 말투가 영 아니다 싶었는지 번번이 내미는 술을 거절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술을 얼마든지 마셔도 좋으니 내일 지장 없게 하라고 일러 주었다. 부평 김씨는 절대 그런 일이 없으며 자기는 술 때문에 실수하지 않는다고 장담을 했다.
나와 옆 자리의 기계실 김씨가 핀잔을 주며 그쪽 높은 자리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눈짓 손짓을 했으나 그는 눈치 채지 못하고 그쪽을 귀찮게 했다. 어찌 내가 그 마음을 모를까마는 현실은 사장의 입담처럼 철저히 개인적인 이야기고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가십거리일 뿐이었다. 가끔 부평 김씨가 자신을 도와 달라고 하면 나는 오야지의 꿈이 얼마나 가소롭고 허황한 것인가 말을 해주곤 했는데 그는 수십 년 밑바닥에서 노동일을 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 하찮게 여겨 배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발과 비즈니스로 오야지가 되면 기술을 아무 소용도 없으며 그저 일 잘하는 친구만 끌어다 부리기만 하면 된다고 믿고 있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다지 그 일을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회식 다음날 결근을 했다. 그가 결근하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몇몇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인생은 개그가 아니지만 이런 웃기는 일이 너무 자주 벌어진다는 것이 개그보다 더 개그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이 하루 고된 노동을 잊을 때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일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는데 아침에 출구를 못 찾아 헤맸던 아버님이 갈수록 작아지는 키에 헐렁한 옷에 들어가듯 외출복을 입으며 기계실 김반장을 붙잡고 지나가는 말로 함께 가자고 했다. 나가는 길도 헷갈리다 는 말과 함께. 나보고 들으라는 말 같기에 그를 슬쩍 내려보니 그는 안경너머로 나를 힐끗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콧잔등에 걸려있는 그의 두꺼운 안경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그의 머리가 앞으로 수그러졌고 머리의 무게에 어깨도 덩달아 앞으로 기울어 허리께가 뒤로 물러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세월이 무자비하게 삶에서 현장에서 퇴직을 재촉하고 있지만 그는 부득이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현장에 나와 있었다. 그의 연표 어디에 긴 닥트 오야지의 기록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구 못난 꿈을 꾸며 어느 덧 오늘까지 육신을 끌고 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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