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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온 형5 - p.v.c 닥트
 칼럼니스트  | 2010·04·22 00:54 | HIT : 3,080 | VOTE : 241 |
4월 20일
아침부터 지각했다. 집에서 가까우니 거의 7시가 되었는데도 나가지 못하게 집에 붙어 있었다. 창밖은 흐리고 새벽에 내리다 만 비로 시멘트 바닥이 바가지 물을 뿌린 듯 거멓게 젖어 있었다. 우중충한데다 발이 무겁고 기분까지 날씨 흐림이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초여름 기온으로 19도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지난주 온도가 영도까지 내려간 날씨가 갑자기 상승곡선을 했다. 봄은 간데없고 창밖 초여름 흐린 날이 목련과 벗 꽃이 무성한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처가 차를 한 잔 타 주고 왜 이리 늦장을 부리느냐고 등을 떠밀어 어렵게 출근을 하였다. 느지막한 7시 30분쯤 현장에서 2부 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을 피해 뒷길로 지하로 들어가 설비 사무실로 가서 보안카드를 찍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비었을 사무실에 예상과 달리 한 사내가 어정쩡하게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헐렁한 감색 운동복에 흰 운동화를 신고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나이는 오십이 넘어 보였고 중간키에 짧은 머리가 반쯤은 희었다. 커다란 눈에 활기가 있어 보였다. 한눈에 노동일을 오래 한 사람으로 느껴졌고 홀로 있는 창에서 주눅들만 한데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김소장이 누구지? 하고 혼잣말처럼 반문했다. 나는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서며 아마 체조하러 갔을 겁니다, 하니 그는 고개를 끄떡이며 주변을 둘러보며 뭔가를 찾았다. 새로 오셨나요? 하니 그는 전에 못 보던 사람이네요? 하고 대답을 대신한다. 3월 말에 왔습니다, 하니 출근 카드가 없느니 작업복과 안전모가 없느니 하였다. 어쨌든 그와는 초면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는 p.v.c 닥트를 하려고 온 사람이었다. 내가 패기로 뛰어들어 p.v.c 닥트를 하겠다고 설치다가 기계만 고장을 내고만 일을 대신 처리 하려고 온 것이다.
닥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물게 일반 닥트 말고 두 가지 닥트가 함께 있었다. 세이크 닥트와 p.v.c닥트다. 세이크 닥트는 항균 닥트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왜 항균 닥트인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세이크니 판넬 닥트니 하고 부른다. 항균은 병원이나 크린룸에서 자주 쓴다. 소음이 적고 저속으로 공기가 흘러 조용한 교회에서 자주 쓰기도 한다. p.v.c 닥트는 근래 쓰기 시작하는 항균보다 더 드물게 사용한다. 특수한 약품이나 오물처리장, 습기가 많은 곳에서 배기로 함석을 대신해 쓰는데 병원공사인 이곳에 두 가지 닥트가 필요한 곳이었다.
p.v.c 닥트를 하러 다를 사람이 온 것을 알자 마음 한구석에 서운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사라졌다. 내가 현장에 처음 왔을 때, 이미 통을 달고 지나간 자리를 돌아다니며 잘못된 것을 고치거나 변형해주는 잡일이었다. 남들은 한 가지씩 그럴듯한 일을 붙잡고 매일 반복 작업을 하는데 난 별다른 일을 찾지 못하고 이일 저일 뒤처리 하자만 보는 고되고 지저분한 일만 하였다. 계속 이렇게 현장을 생활할 수 없다는 생각에 베이징 형과 논의 끝에 뭔가 분명한 우리만의 일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을 때였다. 그때 내 눈에 띄는 게 1층 계단에 쌓아 놓은 p.v.c 닥트였다. 언젠가 일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친구와 잠깐 했었다. 그때 해본 기억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소장을 찾아가 p.v.c 닥트를 내가 하겠으니 맡겨 달라고 했다. 소장은 내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 모양인지 좀처럼 답을 주지 않았다. 나는 몇 번 조르다가 그만두고 문제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을 하였다.
하루는 출근해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소장이 아저씨 한 분을 데리고 왔다. 비쩍 말라 모자를 쓴 나이 든 아저씨였다. 작은 가방을 오른쪽 어깨 한쪽에 메고 우리를 보고 어깨를 세워 젖히며 씩 웃어 보였다. 안경이 어찌나 두꺼운지 그의 눈이 흐릿해 보이지 않았다.
“젊은 놈을 데리고 나오라니까 할아버지를 모시고 왔네.”
이씨가 나에게 들릴만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할아버지였다. 볼우물이 어금니가 다 빠진 듯 움푹 들어갔고 머리는 검게 염색을 하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의 주름진 얼굴은 어찌할 수 없는 나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안쓰럽고 한 대리가 하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싶은 먼 훗날의 우리 모습 그대로였다. 소장은 내게 노인을 데리고 가서 안전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나는 내가 들어올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끌고 교육을 받았듯 노인을 모시고 설비 창고로 가서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고 블랙 아이 카드를 만들게 했다. 노인이 원청에서 하는 안전교육까지 받고 사무실로 다시 왔을 때는 나는 현장에 올라가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9시쯤 볼일이 있어 창고로 내려갔더니 노인이 가방을 메고 창고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나는 노인을 불러 세우고 왜 그냥 가냐고 했더니 아침에 처음 그랬던 것처럼 뒤로 가슴을 젖히더니 씩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로비 쪽으로 나갔다.
얼마 후 로비 쪽에 나가다가 노인을 다시 만났다. 노인은 경비실이 보이는 건물 입구에 서서 가방을 메고 외다리로 먼 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서 누구를 기다리는가 물었더니 그저 웃을 뿐이었다. 소장에게 말을 하고 가는가 물으니 지금 소장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웃었다.
산을 파헤쳐 황토가 엎어진 조경공사장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이 황량한 들판에 갈곳을 잃고 헤매는 외롭고 병든 짐승처럼 보였다. 맥없이 웃어 보이는 그 뜻은 무엇인가? 아마도 무엇을 묻는가? 친구, 대답을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 나를 번거롭게 하지 말게나! 하는 눈빛이었다. 그 노인이 왔다가 터덜거리며 마른 어깨와 가시 같은 손으로 가방을 붙잡고 가곤 난 후 소장에게 물으니 p.v.c 닥트를 하라고 했더니 자신이 없다며 돌아가더라는 것이다.아마 소장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일이라도 하라고 했을 테지만 이미 자존심을 상한 노인은 손을 들었던 것 같다. 현장을 나가는 그 마음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그 나이가 되기까지는 보류를 해야 할 것이다.
노인이 p.v.c 닥트를 손도 못되고 나가자 소장은 나를 불러 문제의 p.v.c 닥트를 하라고 했다. 나는 옳거니 하고 베이징 형을 데리고 1층으로 가서 필요한 연장을 챙겼다. p.v.c 닥트 전용용접기와 코일 달구는 기계와 공구를 밀대에 실어 1층 자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연장을 깔고 할 일을 베이징 형과 의논을 했다. 나는 베이징 형에게 나무를 주워다가 p.v.c 닥트를 접을 받침대를 만들게 하고 기계들을 연결해 옛 생각을 더듬으며 시험을 해 보았다.한참을 연습 삼아 씨름을 하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용접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용접이 조금 익숙해지자 용접기를 베이징 형에게 넘기고 다른 일을 했다. 베이징 형이 짜 논 받침대에 코일을 연결해 적당한 온도를 찾기 시작했다. 코일 온도를 익히려 이것저것을 해보는데 베이징 형이 용접기를 태운 것이다. 과열로 내부의 회로가 망가져 다시는 펜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모처럼 주어진 기회가 회로가 타버린 용접기처럼 운명이 타들어 가는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창고에 들러 도면을 들고 4층으로 올라가는데 새로 온 p.v.c 닥트 기술자를 만났다. 그는 대뜸 렌탈을 잘 모는 사람을 찾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좁은 방에 렌탈을 몰고 들어갔는데 나오지를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가벼운 웃음을 짓고 지금 렌탈을 잘 모는 사람을 찾기 어려우니 잘은 못해도 내가 해 보겠으니 가보자고 했다. 그는 그 말에 안도의 숨을 쉬며 나를 2층으로 데리고 갔다. 가면서 아주 좁은 곳에 들어가 나오지 못하는구나 생각을 하며 어떻게 나올까? 궁리를 하였다. 하지만,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내가 생각했던 좁은 방에 비하며 김연아가 트리플 점프를 세 번쯤 연속으로 하거나 비보이 크루즈가 온갖 묘기를 보여도 될 만큼 넓은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 렌탈이 외롭게 서 있었고 그곳을 나오려고 온갖 짓을 다 했는지 먼지 낀 바닥에 렌탈 자국이 이리저리 숱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도면을 건네주며 렌탈에 올라탔다.
“여기만 나오면 되는 겁니까?”
“제발!”
올라타 스위치를 밟고 막대 운전대를 잡고 긴 원을 그려 한 번에 좁은 문을 빠져나오자 그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초보자에게는 아무리 넓은 방이라도 기계를 몰지 못하면 나오지 못하는 곳이지만 익숙한 사람에게는 아주 좁은 곳이라도 간단한 스도쿠처럼 답이 뻔히 보이는 법이다. 그가 원하는 곳에 렌탈을 대주니 그는 두 손으로 흰 도면을 건네주었다. p.v.c 닥트도 나는 초보지만 그가 보기에는 아무 일이 아니다. 사실 별다른 기술보다도 숙련일 텐데 나는 기 기회를 저버렸고 그는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겪어온 대가로 렌탈은 못 몰지만 단가도 비싼 p.v.c 닥트 기술자였다.

4월 21일
오늘 세사람이 새로 왔다. 양씨 아저씨가 내가 아는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그는 세이크 닥트 제단사라고 했다. 세이크 제단사라는 말에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일 또한 내가 하겠다고 소장에게 졸라왔던 일이었다.
p.v.c 닥트가 물 건너가자 이번에는 틈틈이 세이크 제작소 안으로 들어갈 궁리를 하였다. 소장에게 그곳에 들어가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세이크 제작소에 자리 하나 나오기를 노리고 있던 차에 엊그제 윤반장이 양씨 아저씨가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돈이 늦게 나온다고 소장과 싸움을 하고 현장을 그만 두었다. 그날 오후 나는 윤씨의 체온이 가시기도 전에 소장을 만나 내가 세이크 제작소에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생각을 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제단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알았다는 소장의 말을 순진하게 믿고 있었는데 양씨 아저씨가 불려 나오고 급기야 오늘 아침에 삼풍백화점에서 만났던 늙은 아저씨 한 분이 세이크 제작을 하겠다고 양씨를 따라 나온 것이다. 결국 나는 현장 끝날 때까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남들이 하다만 일을 도맡아 처리하게 생겼다.
“이 양반이 삼풍상가에서 일을 했다고 하네 그려, 나는 모르는데 자네도 나도 잘 알고 있어.”
양씨 아저씨는 김씨 아저씨에게 나를 소개 시켜 주었다. 아저씨는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손을 내밀며 옛날을 더듬었다. 내가 몇 마디 말을 해서 아저씨에 얽힌 사연을 들추어내자 아저씨는 조금씩 생각이 난다면서 고개를 끄떡이며 반갑다고 했다. 실제로 기억을 했는가는 모르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역사적 건물에서 일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김씨 아저씨가 활짝 웃어 보이자 들어 난 이빨을 보니 옛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의 이빨 뿌리에 온통 까맣게 테가 끼어 있었다. 그러고도 꿋꿋하게 서 있는 이빨이 강해 보였다. 아마 담배 때문에 진이 배긴 모양인데 보통 이빨이었다면 벌써 거덜이 났을 텐데, 강인하게 버티고 있었다. 흔히 떡니라고 하는 아무렇게 자라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뿌리가 튼튼했다.
“빌어먹을!”
나는 4층으로 올라와 담배를 꺼내 물고 아쉬운 듯 바닥을 차며 발을 굴렀다. 단가도 적게 주더니 이 망할 온갖 지저분한 일만 도맡아 하게 생겼다. 기계실도 보내지 않고 p.v.c 닥트도 세이크 닥트도 물 건너가 그야말로 홍반장이 되어 버린 꼴이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소장에게 항의할 수가 없었다. 임금이 늦게 일꾼들과 갈등이 생긴 소장이 술로 며칠을 보내더니 급기야 연락도 없이 일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 소장의 주특기 중의 하나가 잠적을 하는 것인데 아는 사람은 아는 무서운 병이었다. 다시 그 병이 돋은 것이 아닐까 하고 소장 친구 분도 함께 일을 했던 병일씨도 걱정을 했다. 소장이 만약 잠적을 한다면 그를 믿고 온 우리는 꽤 난처해지게 된다. 그 아래 서열이 중국동포인 김반장인데 작업지시를 그가 하게 된다. 현장 통념상 중국동포 반장 밑에서 일을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업지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서로 잘 아는데, 그렇게 되면 최악에는 우리는 그만두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돈이 잘 나오지 않는 이런 현장에서는 돈을 받는데 애를 먹게 된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나는 골머리가 찌근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소장이 하루 결근으로 끝내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벌써 소장이 두 번째 바뀐 난해한 현장에 잠수의 명수인 김소장이 결근을 하다니 아무래도 이 현장에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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