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 창

 

 

 

 

 

 

>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온 형4 - 내 일당
 칼럼니스트  | 2010·04·19 23:42 | HIT : 2,824 | VOTE : 289 |
하루 일당의 기준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먹고살 만큼의 양, 내가 해야 할 작업량, 아니면 내가 가지는 기능의 가치, 아마 내 일당의 기준은 현실적으로 기능공의 수급과 하도급 구조에 속에 적정하게 이루어진 눈금으로 정해진 것이 아닐까? 거기다 임금을 정하는 실질 당사자의 개인적 판단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지난달 이 현장으로 와서 일한 공수는 총 9공수다. 지난 금요일 16일에서야 받아 쥔 일당 계산해 보니 돈이 담긴 봉투를 찢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근 몇 년간 계좌를 통해서만 임금을 받다가 모처럼 오만 원권 현금이 든 봉투를 받았는데 전혀 달갑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일당이었다. 일당은 내 자존심을 뭉개고 일할 의지를 꺾어 현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어처구니가 없어 분개했고 당장 현장을 옮기려 친구가 있는 부천 현장에 전화 해 하소연을 하고 이야기 하고 그쪽으로 옮기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내 일당은 김소장이 멋대로 정했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내 일당을 정했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할 건더기가 없었다. 평소에서 그렇게 친한 척을 하더니 임금은 지난 몇 년간 받아본 적이 없는 적은 돈이었다. 그 돈을 생각하면 할수록 얼굴이 뜨거워지고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소장이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나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는 그가 내 일당에서 더 주지는 못할망정 깎여 나오다니. 하룻밤을 새우고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에 이야기를 해보고 다시 올려줄 여지가 없으면 당장 보따리를 싸려고 현장에 나갔다.
돈 받은 다음날 토요일에 나가본 현장은 내 이야기를 꺼낼 여지가 없었다. 현장에 나가니 그나마 우리는 돈을 받은 상태였고 돈을 받지 못한 세이크 닥트 설치조인 중국동포들과 몇몇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소장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급 위 회사인 설비회사에서 일한 임금 전부가 소장 통장으로 입금되었는데 하도급 업체인 닥트사장이 임금의 반을 떼어 급한 곳에 먼저 쓴다고 임금을 반밖에 지급하지 못하겠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차마 그 말에 반대는 하지 못하고 이미 임금을 받아간 나와 내 동료에게 불만으로 튀어나왔다. 반으로 떼려면 비록 몇 공수 되지 않는 우리도 떼야지 누구는 떼고 누구는 온전히 다 가져가는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퉁퉁거렸다. 김소장은 현장에 늦게 들어온 우리는 얼마 되지 않으니 먼저 주었고 한달 내내 일한 사람들은 돈이 사장말대로 반을 떼고 나중에 주겠다고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천정이 높은 구석진 지하 창고에서 공구 통 주변에 빙 둘러 서 있던 중국동포들과 우리는 서로 눈길을 피하며 입을 다물고 조장끼리 떠들어 댔다. 드넓은 현장에 흩어져 땀나게 일을 해도 공기를 맞추기 어려운 판에 어째 현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애초 이 현장에는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했다. 어쨌든 여러 문제 중 임금문제가 가장 심하게 걸린 것이다.
돈을 받았든 못 받았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연장을 챙겨 들고 현장으로 올라가 하던 일을 하는 게 하루를 빨리 보내는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베이징 형과 현장으로 올라와 담배를 하나씩 꺼내 물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같은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이었다면 소장을 신나게 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친한 듯하지만 외국에서 품팔이로 벌어먹으며 습관이 된 듯 말조심이 몸에 익어 있었다.
내가 그의 입장이 되어 불만을 쏟아 내니 그도 점차 자기 속내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늦은 임금도 그렇고 일당이 얼마나 나올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일당으로 일을 못하고 다음 주 쯤에 현장을 옮긴다고 하니 자신도 그래야 하지 않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임금을 먼저 받은 것에 베이징 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소장의 힘으로 자국인의 특권인양 돈을 받은 것이 떳떳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들은 이틀을 쉬며 현장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들이 이틀을 쉬었기 때문에 설비에서 임금이 다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돈 나오는데 아무 한 일이 없는 사장이 돈을 반을 떼서 융통하겠다는데 말은 못하지만, 불만이 가슴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나도 돈이 늦어지면 혹시 돈 받는데 골치 아픈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이국만리에서 온 그는 더한 생각이 들 것이다.
그날 오후 점심을 먹는데 식당에서 김소장이 나를 찾았다. 그는 나에게 소주를 한 병 사오라고 이 천원을 건네주었다. 나는 실없이 웃으며 돈을 받아 들고 근처 슈퍼에서 소주를 사와 스텐 잔에 가득 따라 주었다. 일당 때문에 내가 현장을 그만둘 생각을 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안다면 이렇게 태연하게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이 사람이 보기에 내가 평균 단가도 안 되는 이 돈이 내 기능에 적정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헷갈렸다. 남이 봤을 때, 나는 거의 조공 수준이라는 말인가?
“경주, 나머지 반 병은 사무실에 갔다가 놔!”
“이거. 아, 예.”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복잡해지는 머리를 안고 현장으로 들어와 소주를 책꽂이에 놓고 베이징 형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한참 낮잠을 자는데 제연닥트를 하는 유반장이 사장과 통화를 하며 이런 경우는 없다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오후 3시쯤 사무실에 자재를 가지러 갔을 때 소장을 보면 단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사무실 안에 소장이 보이지 않았다. 자재를 챙기고 있는데 사무실 안 아주머니가 쉬는 작은 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김소장이었다. 소주에 취해 잠에 떨어진 것이다. 술이 자신에게 떨어진 문제를 해결해 줄 리가 없는데 문제를 잊으려고 술을 들이키고 잠에 빠진 것이다.
내가 근래 현장에 다시 나왔을 때, 부천 소풍에서 일 할 때 이반장이 가르쳐준 원칙 하나가 현장에 돌아다닐 때 절대로 우유부단한 책임자와 일하지 마라, 였다. 사람이 우유부단하면 매사에 끊고 맺는 것이 부정확하다는 것이 이유다. 줄 것 확실하게 주고 시킬 것 확실하게 시키는 사람이 일하기 좋다는 말이었다. 그런 분명한 사람이어야 셈이 흐리지 않다는 그 말은 현장에서 통하는 진리다.
사실, 내 일당이 적은 것은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잘못을 했었다. 내 일당을 정할 때 데리고 온 김씨 때문에 그의 일당을 조금 높게 정하느라 내 일당은 알아서 달라고 한 게 화근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는 알아서 준 것이다. 애초 내 임금을 정확하게 말을 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어디를 가나 이 정도는 주는 임금이니 당연히 여기서도 그렇게 해주리라 믿은 것이다. 우유부단한 처신을 우유부단한 곳에다 한 꼴이었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토요일 종일 속을 끓이다 내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하루를 보냈다. 베이징 형은 말은 못하고 담배만 피워 댔다. 그는 다른 중국동포처럼 자기들 속에서 일하지 못하고 나와 있으니 더욱 답답했을 것이다. 일을 마치기 직전 김소장이 내게 전화를 해서 자신이 지금 임금 처리 때문에 성남에 있는 공장에 간다고 월요일에 보자고 했다. 단가로 따지면 내가 책임자도 아니고 단지 중기공인데 왜 전화를 해서 인사를 하는걸까? 친근감에 기대어 이용하려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그것이 내 단가를 후려쳐 자기 임금을 높인다면 이용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하루쉬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니 사무실 안 공기가 긴장감으로 터질 듯 팽배했다. 드디어 한국인인 유반장 목소리가 커지고 당장 돈을 내놓으라고 소장에게 항의하였다. 그의 불만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하고 잠도 같이 자는데, 왜 누구는 돈을 떼이고 주고 누구는 돈을 다 주는 거야. 아무리 작아도 함께 떼고 함께 받아야 정이 들고 한 식구지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에 있나? 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 내가 가만있게 생겼어. 누구는 특별하냐, 이 말이야! 소장 빽이 좋아서 그런 거야. 그렇게 현장을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아니거든.”
그 말을 계속 듣고 있는데 얼굴이 뜨거웠다. 모든 불만은 사장에게 있는데 이상하게 불만이 일꾼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사장의 불만보다 차별을 받은 것에 대한 감정이 더 커서 그랬나 보다. 김소장이 자기 일꾼들 생각하느라 몇 공수 되지 않는 돈 먼저 주고 온갖 매를 혼자 다 두드려 맞는 꼴이 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무능력하고 야비하고 비열한 인간이 된 셈이다.
체조를 하는데 우리만 나와서 했다. 돈을 받은 자는 하고 돈을 못 받은 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베이징 형만 뒤에 서서 체조를 하였다. 그는 어차피 일을 나와 함께하니 반쯤은 이곳 남한 사람들을 따랐다. 체조를 하고 창고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중국동포들이 말도 없이 현장으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우리도 아무 말 없이 서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현장에 배치되어 일했다.
임금은 점심쯤에 나왔다. 베이징 형이 나와 함께 식당으로 가고 있는데 중국동포 대장인 김반장이 베이징 형을 불렀다. 나도 그를 따라 가보니 흰 봉투를 내밀었는데 겉봉에 쓰인 숫자를 보니 이백만 원 가까운 돈이었다. 그 돈이면 반만 뗀 것이 아니라 전부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불만을 터트리니 일당을 다 준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간 싸운 보람이 있는 것이다. 사실 베이징 형 것만 봐서 전체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아마 다 나온 것이 맞을 것 같았다.
베이징 형이 받은 돈을 내가 계산을 해보니 그도 자기가 전 현장에서 받은 일당보다 덜 받았다. 하지만, 그는 돈을 다 받은 것에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그가 돈을 받아드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편했다. 소장은 아침에 창고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움을 했던 제연반장과 별다른 안주도 없이 반찬만 가지고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이도 비슷하게 늙은 사람들끼리 화해를 한 모양이다.

낮잠을 한 후에 현장에 올라와 일하는데 한결 부드러웠다. 가끔 쉬면서 베이징 형과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화대혁명 때 무엇을 했는가 물어보니 붉은 완장을 차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당시 사람을 죽여 봤느냐고 하니 그런 적은 없다고 한다. 문화 대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물어보니 그 문화 대혁명이 아니었으면 중국은 더욱 발전했을 거라고 말을 한다. 모주석이 노망이 들었다는 말을 했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자기가 받은 일당이 환율로 따지면어떻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거의 네 배 혹은 다섯 배 가까이 된다고 하였다. 오늘 받은 돈을 환산하면 거의 천만 원 가까이 간다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데 지금까지의 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싹 가시고 말았다. 연봉으로 따지면 일억이 넘을 수도 있는 노동자와 내가 함께 일을 하는 꼴이었다. 맞나? 아마 맞을 것이다.
항상 현장 공구 통 위에 깨끗한 운동화 한 켤레가 있다. 로고가 무슨 유명 업체 같기도 한데 알 수가 없는 깔끔하기 그지없는 운동화다. 중국동포가 신고 다니는 운동화다. 아마 우리네들 중에 가장 좋은 신발일 것이다. 처음 일을 시작한 중국동포 친구가 있다. 아직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젊은 친구인데 옷을 갈아입을 때 보면 사슬로 된 금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금 목걸리이를 했다고 부자는 아니겠지만 나 같은 가난뱅이는 어림없는 일이다. 다 그와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반지하 방으로 갈지 모르는 내가 그들을 걱정할 정도로 그들이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함께 싸우지 못한 것이 면죄되지는 않겠지만, 양심에 꺼리는 정도가 덜해지기는 할 것 같다.
사실 목소리를 크게 하고 싸운 사람은 중국동포가 아니라 그들 틈에 끼어 돈을 받지 못했던 한국 사람이었다.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내려가니 아직도 임금 휴유증이 있었다. 역시 한국인인 세이크 반장이 소장과 욕을 섞어가며 싸우고 있었다. 돈과 배분 문제를 놓고 그런 막돼먹은 경우가 없다고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는 소장의 능력을 탓하며 이 현장은 망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사람들이 말리며 그들을 떼어 놓자 비로소 옷을 갈아입을 만하게 조용해졌다. 다 나가고 우리만 늦게 옷을 갈아입는데 김소장이 나를 부르며 술을 한잔 사달라고 했다. 그는 지쳐보았다. 거의 임금문제가 일단락되었는데 끝까지 낭패를 봤으니 힘이 들만 했다. 그런데 왜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지목해서 술을 사달라고 하는지? 첫 말에 대답을 안 했더니 두 번 세 번을 불러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옷을 입고 나오기 전에 나는 먼저 나와 손을 씻고 버스를 올라탔다. 집에 한참 가고 있는데 그가 전화했다. 나는 오늘 취했으니 다음에 한잔하자고 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일당 더 달라고 하기는 틀렸고, 새삼 우유부단한 행동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삼 두번 세번 새겨야겠다. 그것은 진리다, 진리. 사람이 좋은 것하고 우유부단한 것은 다르며 매사에 분명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자신과 남에게 낭패를 줄 뿐이다. 나는 그 우유부단의 중심에 있으며 그 느긋함과 여유에 젖어 현장이 어려워지는 것을 현장 끝날때까지 볼 것 만 같다.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178   베이징에서 온 형9-플로리다 장씨  칼럼니스트 10·08·15 3015
177   베이징에서 온 형8- 회식  칼럼니스트 10·08·09 3129
176   좀비  칼럼니스트 10·07·14 3222
175   베이징에서 온 형 7-아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칼럼니스트 10·06·18 3293
174   베이징에서 온 형6 - 사장  칼럼니스트 10·04·22 3103
173   베이징에서 온 형5 - p.v.c 닥트  칼럼니스트 10·04·22 3091
  베이징에서 온 형4 - 내 일당  칼럼니스트 10·04·19 2824
171   베이징에서 온 형3 - 양씨 아저씨  칼럼니스트 10·04·18 2723
170   베이징에서 온 형2 -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  칼럼니스트 10·04·18 2767
169   베이징에서 온 형  칼럼니스트 10·04·12 2478
168   한 친구가 다친 날  칼럼니스트 10·01·26 3300
167   신년 산행  칼럼니스트 10·01·02 2796
166   이십팔일째, 씁쓸한 퇴장  칼럼니스트 09·12·30 2907
165   이십일째-작업완료  칼럼니스트 09·12·21 2974
164   열나흘째, 경쟁  칼럼니스트 09·12·11 3112
163   열흘째, 세계를 굴리는 손 2  칼럼니스트 09·12·07 3054
162   나흘째, 민방위 모자  칼럼니스트 09·12·01 3121
161   첫날, 불확실성의 원리  칼럼니스트 09·11·28 3226
160   우울한 날 우울한 소식  칼럼니스트 09·11·27 2974
159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3  칼럼니스트 09·10·19 2764
123456789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