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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온 형2 -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
 칼럼니스트  | 2010·04·18 07:48 | HIT : 2,750 | VOTE : 270 |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 정오가 조금 지나 절대 받아서는 안 될 부고가 문자로 날아오고 현장에서는 오후 작업 중에 작은 사고가 났다. 며칠 전에 앞으로 추위는 없다고 생각해 겨울옷을 집에 갔다 뒀는데 내일 다시 꺼내 입게 생겼다. 오늘 나오기로 한 월급도 벌써 두 번이나 미루어졌는데 내일 모레 나온다고 한다. 이게 다 봄바람 탓이다. 심술퉁이 봄바람이 누군가에게 해코지하고 싶어 안달이 났음이 분명하다. 점심때 잠깐 나갔다가 오는데, 버스 운전기사 둘이 날씨를 탓을 집안 꼴에 비교했다. 나라 꼴이 이 지랄인데 날씨인들 좋겠는가 하는 말이었다. 며느리가 잘 들어오면 집안이 흥하고 잘못 들어오면 어쩌니 하는 말이다. 어쨌든 오늘은 봄바람 광기가 동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비까지 내려 현장에 들어가는 길은 진창이라 구두가 푹푹 빠져들었다. 이런 날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는 날이다. 오전 일을 마쳤을 때 손이 곱아 코일이 달구어진 난로에 저절로 손이 갈 정도였다. 바람만이라도 적당히 불고 그만 그쳤으면 하는 날이었다. 솔솔 부는 찬바람에 기분이 거슬리고 느닷없이 바닥을 쓸어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에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산기슭에 있는 현장이라 그런지, 바람이 남들이 이야기하는 차가움보다 더 차게 느껴졌다.
3층에서 더디게 일을 하고 있었는데 소장이 올라와 통이 올라오는데 도움을 주지 않고 무엇을 하냐고 타박을 했다. 우리는 통이 올라오는지 내려가는지 알지를 못하고 있었다. 나와 베이징 형은 아래로 내려가니 사다리차가 와서 4층으로 통을 올리고 있었다. 부평 형과 다른 김씨가 어설픈 동작으로 통을 올리고 있었다. 부평 형은 그렇다 치고 새로 온 봉천동 김씨는 아직 현장이 익숙지 않아 보였다. 소장이 짜증을 내는 것은 당연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베이징 형이 합세해 넷이 서둘러 통을 사다리차 짐칸에 쌓기 시작을 했다. 4층으로 올라갈 통은 직관과 변형된 곡관으로 수도 없이 많았다. 나는 곧게 뻗은 직관부터 싣자고 말하고 가져오는 데로 차곡차곡 쌓아 첫 번째 짐을 올려 보냈다. 길게 뽑은 사다리가 차 붐대가 흔들거리고 바람이 불규칙하게 불며 짐을 희롱했다. 첫 짐이 불안한지 세 사람이 혀를 두르며 그 짐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주의를 주고 일에 집중하라고 했다. 두 번째 올렸을 때, 짐을 급하게 싣고 있는데다 손발이 맞지 않아 통이 오른쪽으로 비집고 나와 흔들거렸다. 그 순간 알아봤어야 했다. 지금도 그때 불안한 느낌이 남아 있다. 본능적으로 불안할 때 뭔가 되짚어 보고 보완할 것이 없어 살펴봐야 하는데 지독한 봄바람이 휘몰아 쳤다간 사라지고 또 휘몰아쳐 옷소매를 잡아 털어대니 그럴 정신이 없었다.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매질을 당하듯 맨살에 얼음을 대듯 쌉쌀한 통증을 느끼곤 했다. 벌써 수십 번은 날씨를 탓하며 흙먼지 들어간 침을 뱉었을 것이다. 바람이 때리듯 휘감아 칠 때마다 사다리 붐대는 덜컹거리며 통은 몸살을 하듯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봄 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뺏고 정신을 흐려 놓았다.
사고는 세 번째였다. 나는 계속 직관 우선을 고집하며 곡관이 왔을 때는 끌어내리고 직관으로 쌓았다. 그때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지 부평 김형이 곡관 하나를 오른쪽 끝에 올렸다. 나는 그것을 지적하며 직관으로 하라고 말을 하고 쌓았는데 그 문제의 곡관이 얹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 봤어도 사고가 나려고 그랬는지 직관으로 보였나 보다. 분명히 곡관이었다면 내가 잡아 내렸을 것이다. 대충 쌓고 됐다고 운전기사에게 말을 하고 살펴보니 오른쪽이 조금 비집어 나온 것이 보였다. 잠깐만을 외치며 그쪽으로 가서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데 운전기사는 이미 스위치를 눌러 짐칸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도 짜증이 나 있었다. 미친 듯이 광기를 부리는 날씨 탓이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중심을 맞추어 물건을 쌓지 못한 것에 대해 언짢게 생각이 되었지만, 누구를 탓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뒤돌아 다시 깡통을 가져다 놓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통 떨어진다고 소리를 질렀다. 돌아다 봤을 때는 짐은 다 올라가 있었고 떨어진 통을 보지 못했다. 나는 통 하나 버렸구나 싶어 그대로 하던 일을 하는데 운전기사가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을 했다. 나는 통 하나 버려도 괜찮다고 하니, 사람이 다쳤을 수도 있다고 해 나는 고개를 끄떡이고 대수롭지 않게 하던 일을 멈추고 지하 계단으로 갔다.
터덜거리며 지하 주차장 입구 램프로 내려가는데 검은 그늘이 진 입구 쪽에서 직영 반장이 주름진 얼굴로 안전모를 손에 들고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소리치는 그를 따라 가보니 한 사람이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가 성성하게 반쯤 벗겨진 나이 든 아저씨였다. 나는 그 아저씨를 보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한 오십 중반이나 되었을까?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반쯤 나오고 나머지는 쑥 들어가 버렸다.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직영 반장과 나는 그를 부축해 건물을 통과해 로비로 올라가는 야외 계단 아래에 있는 직영 창고에 가서 뉘었다. 반장은 그의 안전벨트를 벗기고 나는 안전화 지퍼를 열어 벗겨 발을 모아 침상에 올려놓았다. 속으로 더 크기 다치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는 머리에서 피가 난다고 피 묻은 장갑을 보이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시 사다리차가 있는 곳으로 와서 일하려고 하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솟아올랐다가 사라져 갔다. 소장에서 연락해 상황을 이야기하고 늦게나마 신호수로 베이징 형을 지하실 주차장 입구로 보내 사람들을 통제하게 했다. 곡관을 올리지 말라니까 하고 소리를 지르려다 참았다. 지금 누구의 탓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설사 곡관을 올리지 않았더라도 통이 떨어졌을 것이다. 단지 운이 없었다고 생각도 했지만, 그건 상황에 기대는 책임회피일 뿐이었다. 몇 가지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이었다. 짐을 반으로 줄이고 한쪽 판을 세워 다시 떨어지지 않게 했다. 4층으로 올라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하고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사고가 난 후였다. 잠시 후, 안전에서 관리자들이 나와 작업을 중단시키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그야말로 골치 아픈 일이 터진 것이다. 누굴 탓할 것인가? 다친 사람도 머리를 감싸고 걸어가면서 자신을 탓했다. 연장을 꺼내려고 하다 떨어진 통에 얻어맞았는데 하필 그때 그 찰나에 그 자리에 있었다고 후회를 했다. 내가 소장도 반장도 팀장도 아닌 그저 기능공이지만 나는 나대로, 소장은 소장대로 사고 난 것에 대해 여러 상황을 되새기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다친 이는 잠시 후 병원으로 갔다. 일을 마치고 현장을 나올 때 소장에게 그 사람 상태를 물으니 아직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현장을 나오는 내내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등 뒤로 현장이 멀어져가고 바닥을 쓰는 바람이 황량하게 내 목덜미를 떠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안전모를 쓴 것이다. 안전모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직영 반장이 안전모를 내밀며 소리친 말이, 안전모 안이 깨질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했다. 나는 정신이 없어 속에 깨진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안전모를 쓰고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봄바람 기승을 부리는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

이틀쯤 지나 다친 하스리공 아저씨가 의정부 부근에 있는 일반외과에 입원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마 그 근처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다행히 큰 병원에 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크게 다친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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