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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온 형
 칼럼니스트  | 2010·04·12 22:05 | HIT : 2,478 | VOTE : 267 |



며칠 전 집에서 가까운 현장으로 옮겼다. 현장 일은 시작한 이후, 집에서 가장 가까운 현장이다. 인근 동네에서 짓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병원 현장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현장이고 아직 조경공사를 시작하지 않아 현장 안까지 다져진 진흙을 밟고 가야 했다. 눈이나 비가 올 때는 진창으로 변해 질퍽거렸다. 병원은 거의 골조가 다 되어 두어 층만 더 올라가면 뼈대를 갖추게 된다. 봄이 지나고 한창 더운 여름까지는 할 것 같다.
현장을 옮기면서 하는 일이라 일과 사람이 바뀌는 것이 별다른 일은 아니지만, 이곳에는 다른 현장과 달리 중국동포들이 여럿이 있었다. 한두 명과는 일을 해 봤지만, 전체 열 댓 중에 반이 넘는 숫자가 중국동포인 곳은 처음이었다. 아파트 현장에서 설비 직종 외에 목수나 철근을 보면 전체 인원 중에 중국동포가 전부이거나 적어도 반수가 넘곤 한다. 식당에 서명하는 장부가 국적별로 따로 있을 정도다.
다수가 중국동포인 현상이 이미 십 년을 넘어가 익숙 할만도 한데, 여전히 그들과 한곳에서 일할 때면 반감이 꿈틀거린다. 내가 내 동료를 데리고 와서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말투가 이상한 그들이 와서 대신 벌어먹고 있거나 이들 때문에 내 일당이 깎인다는 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러 현실과 내 처지, 나아가 막판에는 남북해외 3자 연대에 근거해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동포는 한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머리를 물들여보지만 역시 반감이 깨끗하게 씻기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함께 하려는 내가 그 정도면 다른 이들은 거의 마음속에 적의가 뚜렷하게 새겨 있다. 그들은 바다 너머에서 건너와 남의 집에 들어와 밥상에 앉아 수저로 자신의 밥통에 밥을 떠먹는 광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좁은 창고에서 함께 옷을 갈아입고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섞이어 일하지만, 한통속의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 서로 말도 하지 않고 한 탁자 앉지 않으며 일을 할 때는 끼리끼리 하려고 한다. 이질감이 한쪽이 있으면 다른 쪽도 있게 마련이다.
처음 갔을 때, 옷도 갈아입고 연장도 넣어두는 창고 겸 사무실이 비좁아 다 같이 쉴 수가 없었다. 특히 현장 일을 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새벽 출근을 해서 그런지 낮잠을 잔다. 마치 그것도 일과인 잠을 찾아 자는 것이 일인데, 장소가 좁으니 늦게 들어간 우리는 먼저 들어온 친구들이 잠자는 것을 지켜보며 앉아서 꾸벅거리며 졸았다. 이틀쯤 지나 내가 구석진 곳에 작은 틈을 찾아 몸을 비벼 넣고 하루 낮잠을 곤하게 잤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작업복을 입고 한 줄로 누워 있는 맨 끝에 새우처럼 기어들어 가 모로 누워 자면서 점차 자리를 넓히면 자리가 만들어지고 고정적인 내 자리가 되는 것이다. 하루는 내가 늦게 들어가니 다른 동료가 그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것을 본 그는 한쪽으로 몸을 밀며 작은 틈을 내 주었지만 내 몸을 억지로 끼워 넣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밖으로 나와 햇볕이 드는 곳에 골판지를 깔고 누워 낮잠을 잤다. 며칠을 그렇게 하다가 날이 흐려 기온이떨어진 날, 더는 밖에서 잘 수가 없어 안으로 들어가 다른 자리를 노렸다. 침상에 생각해 놓은 자리가 하나 있기는 했다. 일렬로 자는 사람들 발밑에 가로로 누워 있는 베이징 형님 옆자리가 한 사람이 넉넉하게 누울 수 있었다. 그 자리는 남들 다리 밑이라는 약간 기분 나쁜 곳이라 아무도 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 몸을 뉘었다. 확실히 그 자리는 명당은 아니지만 그다지 나쁜 자리는 아니었다. 내가 없을 때도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내가 그렇게체면을 무릅쓰고 눕자 나보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 두어 명이 내 발밑에 몸을 뉘었다.
한 주일쯤 지나자 사무실 침상에는 함께 들어온 동료가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였다. 동료가 한 자리를 차지 할 때마다 중국동포가 한 명씩 밖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한 3주쯤 지난 지금 사무실에서 자는 사람은 내 옆자리 베이징 형과 현장 반장인 김씨뿐이었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나올 법한 동물들의 서열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으레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듯 중국동포는 식당 앞 아파트 의자 앞에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고 우리는 그들 앞을 지나 사무실로 들어와 몸을 거나하게 누워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함께 몸을 눕는 베이징 형은 현장에서 누구 못지않게 친하게 되었다. 그 형은 내가 현장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책임자가 그에게 나를 붙여주어 둘이 한 조가 되어 일하게 되었다. 베이징 형은 영남 사투리에 조선족 억양 억세어 신경을 쓰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 들기가 어려웠다. 처음 그는 나와 함께 일을 하게 되자 울상으로 기절할 듯 경악을 하였다. 그는 4월 말쯤 본토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는 9월이라고 했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책임자로서그가 언제 떠날지 모르므로 그가 하던 일을 나에게 인계받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을 쫓아내려는 것쯤으로 인식했던 모양이다.
그는 첫날 아침부터 어찌나 흥분하고 일을 서두르는지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였다. 연장통 속에서 연장을 찾는데 선풍기처럼 손을 빠르게 놀렸다. 마치 호랑이 우리에서 갇힌 사람이 성난 호랑이를 뒤에 두고 쇠창살을 뜯어내려는 것 같았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연장을 제대로 집지 못하는 두 팔을 꼭 움켜잡고 침착하라고 말을 했다. 그는 잡힌 손을 뿌리치며 나에게 항의하듯 강한 영남 사투리에다 빠르게 더듬으며 말을 했다. 그의 신경질적인 말이 너무 빨라 음반을 빨리돌린 듯했다.
“채채채책임자가 빠빠빨리 서서서두르라고 하잖아요!”
바로 앞에 있는 바이스를 잡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곳을 뒤적이고 있었다.
“이렇게 설친다고 빠르지 않아요. 내 말 들어요. 천천히. 그리고 내가 연장을 찾을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아니, 내가 찾는다니까. 가만히 있어요. 나를 믿어요. 내가 일을 빠르게 할 줄 알아요. 나 닥트 일 도사예요.”
나는 그의 손을 천천히 놨고 그는 잠깐 그대로 있더니 갑자기 또 손을 연장통 안에 넣고 휘젓기 시작했다. 휘둘러대는 그의 손에 의해 연장이 통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어깨를 잡으려고 손을 얹었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말 몇 마디로 풀어질 만큼 여유가 없었고 뜨거운 철판 위에 맨발로 서 있는 듯 가슴이 날뛰고 있었다. 나는 그의 상태를 인정하고 스스로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한나절을 그렇게 일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일을 하는데 어느 순간 얼굴을 마주쳤다. 그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일이 그의 생각처럼 빠르게 진행되었고 내가 생각보다 상당히 부드럽고 반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일 것이다. 둘째 날 오전이 되어 그의 손을 이끌고 담배를 피우자고 하며 앉아서 쉬었다. 나는 그가 나보다 서너 살이 많은 것을 알고 형님으로 불렀다. 그는 형 소리에 미심쩍은 듯 못 들은 척하며 돌아서서 담배를 피웠다. 오후 들어 일이 순조롭게 되자 그는 자청해서 담배를 피우고 여기저기 전화도 하기 시작하더니 끝나기 십여 분전에는 아예 연장을 챙기고 앉더니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베이징에서 왔다고 했다. 가족 전부가 왔으며 친척도 꽤 많다고 했다. 이런저런 말을 해 가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친하게 되었다. 그의 가족 전부가 남한에 들어와 있으며 베이징에 한국 돈으로 5억에 해당하는 집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고생해서 일한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나는 우중충한 봄추위가 활개를 치는 뒤집힌 황토 언덕 아파트 현장을 바라보았다. 날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황사가 쓸고 간 하늘에는 비가 올 듯 흐려 있었다.
베이징에 5억짜리 집이 있다. 나는 근래 전세가 만기 되어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사는 집이 팔려 새로운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돌려놓았다. 나는 이 집에 월세로 살고 싶지도 않고 막내가 커가면서 좁아 더 살 수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 우리 형편에 반지하로 가야 하지만, 처는 반에 반짜도 못 꺼내게 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지상이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도리지만 현실은 사막에 버려진 이방인처럼 막막할 때가 있다. 엊그제 처가 시키는 대로 보험약관 대출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 의미 있게 세상을 살아간다고 자부하지만, 경제적 문제만 생각하면 내 처지가 이 사회에서 구두 밑창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베이징 형님은 돌아갈 희망이라도 있지만, 나는 이 옹색한 반도 땅에서 희망마저 상실해 가고 있지 않나 싶다. 아니 희망이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한풀 꺾이며 되지도 않는 이 사회에 꿀리며 살 나도 아니지만,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도 있다는 것이다. 빨리 겨울도 봄도 아닌 이 초봄 틀에서 부리나케 뛰쳐나가고 싶다.
하루는 닥트 통에 바람이 얼마나 새는지 시험하는 누기 시험을 하고 있었다. 베이징 형과 내가 하는 주 업무 중의 하나가 누기 시험을 준비하는 일이라, 긴장되고 바쁜 하루였다. 오전이 지나고 오후께 시험 볼 닥트 두 개 남기고 더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베이징 형을 불러 내려가더니 올라오지 않았다. 혼자 누기 시험을 하면서 사무실 직원에게 왜 그 형이 올라오지 않는가 물어보니 형사 둘이 와서 데려갔다는 것이었다. 대전 근방에서 무슨 통장을 만들었는데 잘못되어 확인하러 갔다는 것이다. 황당한 말이었다. 함께 일을 하던 사람을 대전에서 형사가 올라가 데려갔다니. 분명히 형은 합법적으로 취업했다고 했는데 경찰이 데려갔다니. 현장 소장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며 하루만 기다려 보면 대충 상황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했다. 객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마음이 휑했지만 달리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저 쉬쉬하며 여러 가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며칠이긴 했지만, 손발이 잘 맞고 성실하고 겸손한 형이라 다시 출근해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다음날 그 형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전화를 해 봤지만, 전화벨은 울리지만 그뿐이었다. 두어 시간마다 몇 번씩 했는데 나중에는 그마저도 불통이 되었다. 같은 중국동포들은 그가 추방될 거라는 말을 했다. 베이징 형 대신 온 김씨는 거의 몸에 감속기를 달아 놓은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그에게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머리가 흔들거렸다.
“형, 일당 적다는 말하지 말고 일을 할 때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내가 뭘 시켰을 때는 이미 늦은 겁니다. 내가 일에 대해 계속 말을 해야 하잖아요. 한 발, 아니 반발만 형이 먼저 움직이면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노동이 되는 겁니다. 쌩 막노동이 아니라 우아한 춤을 출 수 있는 거라고요. 이렇게 계단을 오르듯 착착 일이 돼야 하는데, 우리 지금 이 간단한 일을 서너 시간 째 죽 쑤고 있잖아요. 토 좀 달지 말고요. 형은 게기고 있는 거예요. 밥 먹을 때 식은땀을 그렇게 흘리는 형 이마에 땀 한 방울 나지 않잖아요. 나하고 할 때는 뛰세요. 아니면 사람을 바꿀 겁니다.” 그는 내가 데리고 온 사람이었는데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처럼 늘어졌다. 형은 이 현장으로 따라올 때 내게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로 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늘 그 형에게 소리를 질렀으며 형은 그대로 감수를 했다. 아마 남이었다면 발길로 턱을 걷어찼을 게다. 사실 지난 연말 그런 적도 있었다.
베이징 형은 이틀째 아침에 살짝 웃으며 지각해 들어오는 나를 한쪽 구석에서 반겼다. 대전 경찰청에서 하룻밤을 꼬박 채우고 나온 것이다. 그는 친척에게 통장을 만들어 주었는데 친척이 그 통장을 잘못 사용해 문제가 생겨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고 나온 것이다. 내가 베이징 형을 반기며 소리를 지르자 다른 사람들이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다른 중국동포들은 나와 그를 짝꿍이라고 불렀다. 중국동포와 짝꿍이라니. 듣기 나쁜 말은 아니었다. 남들이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는 씩 웃으며 멀리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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