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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신년 산행
 칼럼니스트  | 2010·01·02 14:26 | HIT : 2,796 | VOTE : 294 |






오늘은 신년 산행이 다른 때보다 늦었다. 부지런을 떨며 설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매년 정월 초하루 혹은 그 다음 날 북한산 일로봉으로 산행을 간다. 지도에 그런 봉오리는 없다. 옛날 90년대 초쯤, 조합 친구들 20여 명쯤 모여 위문을 사이에 두고 백운대 맞은 편 작은 돌산 봉오리를 찍어 일로봉이라 이름을 붙였다. 십여 년을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올랐는데 이제는 옛일이고 혼자 오른다. 언제부턴가 혼자 오르고 있다. 분위기 좋을 때는 함께 끌어주고 밀어주고 잡아주고 받쳐주며 정상에 산 아래 세상을 감상했었다. 눈 덮인 왼쪽 상계동과 불암산, 맑은 날에는 한강과 인천 앞바다도 보일 때가 있었고 오른쪽 아래 송추 가는 길과 고양군 어디까지 펼쳐보였다. 그때는 신났었다. 언 귤을 건네며 까먹고 살얼음 낀 막걸리를 마시며 헛소리도 해대며 흥겨웠는데, 이제는 주절주절 지껄이며 홀로 산에 오른다. 그때는 조국통일 노동해방을 외쳤지! 그랬다. 반통일 귀신 악질 자본가 귀신 물러가고, 현장에 체불귀신 산재귀신 하도급귀신 개꼬랑창에 빠지라고, 애 못 낳는 귀신 노총각귀신 다 물러가라고 고사문을 외우고 불살라 허공에 날려 손바닥으로 쳐댔는데. 함께 떠들면 올랐던 그때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더러는 현장을 떴고, 더러는 집에서 화투를 치거나 일출을 본답시고 다른 곳으로 갔고, 조합후배들은 신년 산행을 왜 꼭 북한산이어야 하느냐고 관악산으로 갔다. 그때 저 바위를 일로봉이라고 부르자고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일용노동자들이 올라 정월초 하루 산제를 지내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올 때까지 함께하자는 약속이 없었더라면 나는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다른 산이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집구석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떠들든, 아이들 재롱보거나 마누라의 배를 문지르든, 마지막까지 마신 술에 취해 쓰레기봉투를 뜯는 고양이 배를 걷어차든 다 개뿔도 아니다.

일로봉 정상까지는 혼자 오르기 어려운 산이다. 아무나 그 아래까지 갈 수 있지만, 막판 봉오리는 산 좀 타본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이 올라 당겨주어야 올라갈 수가 있다. 그게 안 되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 바위 모가지 아래 낭떠러지기가 있어 아차 실수 한 번에 떨어지면 사지가 부러져 따로 노는 꼭두각시 인형이 된다. 사람이 줄고 바뀌면서 그 정상에 오르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언제나 다시 그 정상에 올라볼 수 있을까? 그 위에 올라가면 널찍한 바위가 있어 호젓하게 산제를 지내기에는 그만이다. 간혹 암벽을 하는 사람들이 올라와 밧줄을 타고 내려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오직 산제 때문에 그곳에 갔다. 지금도 내 방 어딘가에 그때 찍은 사진이 있을 게다. 검은 하늘, 위태롭게 모인 건설노동자들, 웃음이 음울한 화면에 가늘게 퍼지고 있을 게다.
일로봉으로 가는 길은 과거로 걷는 길이다. 집에서 출발한 때부터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사람씩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며 웃음으로 이어진다. 아, 그래 그때 그 녀석이 있었지. 아, 그때 조합에 내분으로 반만 올랐지. 내가 조합을 떠나려고 했을 때도 있었지. 아, 그 해에는 통합이 있었지. 분위기 좋았는데 그 인간이 헛소리를 시작했지. 조합이 흔들렸어.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개새끼 씹새끼 존만 새끼. 아, 아니다 욕하지 말자, 이 신성한 산에 오르는데. 오늘이 신년 산행 아니던가? 영혼을 씻고 과거를 뉘우치고 용서하는 발걸음 아니던가? 그래 그렇지, 인제 와서 용서 못 할 뭐가 있단 말인가. 그때 모든 잘못이 왜 그 친구들에게만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때 무엇을 했나? 나는 할 말이 있나? 진정하지. 그래도 그때 그 논쟁만 아니었어도. 지나고 나면 다 좆도 뭐도 아니었는데, 그래, 그래, 그래도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그 망할 존만이 만 아니었어도. 내 20년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는데, 이게 뭐야, 아, 아니다, 욕하지 말자, 최경주 욕하지 맙시다! 문명인이잖아? 너 욕쟁이야! 그렇게 살고 싶어? 신년이야, 신년! 오늘 말 한마디가 한해 어법을 좌우한다고. 경주야, 최경주! 이제 두 살 뺀 오십이야! 정신 차리라고, 정신! 다 옛날이야, 옛날,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는! 시발, 그만 떠들라고. 제발, 진정하고, 자 그냥 올라가는 거야.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그래 천천히, 천천히. 자, 올해 얼마나 욕할 일이 많겠어, 안 그래? 품위를 지키는 거야. 욕도 법이 있고 질서가 있는 거야. 아무 욕이나 씨부려 뱉으면 내용 없는 개잡소리가 되는 거야. 우리 삼류 아니잖아, 삼류로 떨어지고 싶어? 쓰레기 취급받고 밟히고 싶냐고? 어떤 놈이 뒤에서 ‘아, 저 새끼 저럴 줄 알았어. 말했잖아, 개폼이었다고. 차 뒷바퀴에 묻은 개똥처럼 있어야 어울리고 스스로 존재감이 느껴지는 허접이라니까! 보라고, 저게 바로 저놈의 본질이야.’ 이렇게 말하는 소리 듣고 싶어? 자 길게 호흡하고 가던 길을 가자고. 또, 슬슬 일어난다. 또 또, 일어난다. 대가리 속에 잡념이 일어난다. 이제 그만하자, 응? 제발 고만하자고! 네 대가리를 주먹으로 갈겨서 터트려야 그 개 헛소리들이 사라지겠어! 엉!

그래 산행을 늦게 시작했다. 거의 11시쯤 되어야 집에서 출발했으니 아마 지금까지 신년산행 중에 제일 늦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먼저 가서 할 일도 없으니 갈수록 늦어지는 느낌이다. 처는 아이들과 자기 고향집에 가기로 했다. 막내처남이 차를 가지고 온다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처도 산행을 좋아하는데 신혼여행으로 설악산에 함께 가고 그 뒤로 한 번도 같이 간 적 없다. 애를 쉬지 않고 나아 대니 자기 발목을 잡고 사는 셈이다. 처를 탓할 일도 아니지만. 막내도 이제 다섯 살이니 내년부터나 함께 다녀야겠다. 처의 친정집 나들이도 꽤 오랜만이다. 그때, 5년 전인가 처남 놈이 산행하다가 실족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화기애애할 텐데, 그 녀석이 죽으면서 차가 집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그 뒤로 장모 돌아가시고 작년에는 어린 조카까지 비극의 그늘로 이어졌다. 처가의 불운이 형제들 감정을 뒤 엉클어 놨다. 처는 울며불며 다시는 친정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큰 처남이 끈질기게 쌀을 보내주니 처의 마음이 흔들렸나 보다. 자기는 아니라고 할 테지만 내가 보기에는 쌀 서너 가마의 힘이 어려운 걸음을 만들었다. 지금도 쌀보고 걱정하는 사람은 이해하리라.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산층이며 사는 형편이 나은 것이다. 처가 친정집과 등지고 살 때 참 편했는데, 그럼 올해부터 또 행사 때마다 찾아다녀야 하나? 아, 헛소리 그만하자. 그래 산행이 늦었다.
방송에서 영하 13도라고 나발을 불어대니 옷을 두껍게 챙겨 있었다. 캠핑 전문점에서 일하는 막내처남이 보내준 독일산 등산용 윗옷을 입고, 그 친구가 반값에 판 프랑스산 등산화를 신고, 산에서 일을 당한 처남이 사준 오리털 파커를 입으니 준비 땡이다. 제대로 내 것은 팬티밖에 없다. 등산용 양말도 처남이 보내준 것이다. 몇 년째 쓰는 아이젠은 처가 결혼하면서 가져온 것이다. 처는 많은 것을 가져왔지만 나는 예비군복 가방과 작업복 가방만 두 개만 가져갔었지. 그러고 보니 처가에 잘해야겠군.
집에서 역곡역까지 버스로 30분을 가서 전철을 타고 서울 역으로, 서울 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수유 역까지 갔다. 수유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 중앙 차선으로 가, 120번을 타고 도선사 입구까지 가야 한다. 차비가 얼마 들었을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거의 헐값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에 비하면 그렇다. 환승제를 도입한 이후로 차비 걱정이 줄었다. 이건 거의 혁명수준이다. 차비만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일당을 뛰는 사람에게는 거의 더 그런 것 같다. 언제부턴가 경기도 일대까지 숙식이 제공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하루 일당의 1할 가까이 교통비로 날아가야 하는데 그 돈이면 어딘가. 왜 이런 가장 서민적인 제도가 진보진영에서 나오지 않았나? 나왔는데 모르고 있었나? 문제가 많은 제도인데, 아직 그 문제가 터지지 않고 있나? 진보진영이 모든 것을 해 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이것저것 까대기도 바쁜데. 하여간, 산행이 늦었다.

버스에서 내려 슈퍼에 들어가 늘 사는 것을 샀다. 황태 한 마리, 사과 하나, 팩 소주 하나, 인절미는 도선사 입구에서 사야 한다. 다른 떡은 안 된다. 난 주로 인절미만 먹기 때문이다. 도선사입구까지 쉬지 않고 걸어가 인절미를 찾았지만 살 수가 없었다. 인절미를 파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할머니가 있었는데 회사 로고가 찍힌 종이가 들어가 있는 제품이었다. 손수 잘라 파는 인절미를 아니어서 사지 않았다.
혼자 일로봉에 갈 때는 쉬지 않는다. 딱 한 번 백운산장에 들러 국수를 먹을 때 빼고는 말이다. 이날도 버스 종점에서 도선사 입구까지 올라갔다. 입구에서 커피 한 잔 뽑아 마시고 다시 인수봉 아래까지 단숨에 올라가 잠깐 인수봉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시 내려가다 꺾어 올라가 백운산장까지 쉬지 않고 갔다. 머릿속에서 끝없이 나불거린다. 여기서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지, 그놈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때 녀석의 아가리를 콱 조사 버렸어야 했는데, 아, 그놈이 지금은 그렇게 되었지, 그 자식은 또 어떻게 되었나?
그놈의 마누라는 도망을 갔지, 그게 누구 탓이겠는가 놈이 술에 빠져 정신을 잃은 탓이지. 산 입구에서 인수봉까지 가보면 늘 생각나는 한가지 사건이 있다. 한번은 조합에 한 예쁜 여성 노무사가 들어 왔었다. 그 친구는 북한산 아래 덕성여대를 나왔다고 했다. 북한산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자기 이야기를 했다. 북한산 정기를 받아 여학생들이 남성적이라고 했다. 일을 거칠게 했으며 무슨 일을 해도 거침이 없었다고 한다. 성품도 북한산을 닮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산을 오를 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날도 눈이 얼어 빙판이었고 계단이 조금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그 친구가 내가 앞뒤로 갔는데 갑자기 못 오르겠다고 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몸을 틀며 말이 없었다. 아, 아이젠, 그렇지 아이젠이 하나만 있어서 그렇구나. 어떤 놈이 주려면 두 개를 다 주지 하나만 빌려 주었나? 그래 그럼 내 것을 써, 난 거의 없이 다니니까, 나는 괜찮아. 자, 내려와, 괜찮아. 내가 채워주지. 그렇지 이제 한결 나을 거야?
나는 그 친구 앞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쯤에서 따라오지 않고 쇠줄을 붙잡고 접착제 붙은 병정처럼 서 있었다. 왜, 그래?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 그때 아이들이 장난치며 내려왔다. 애들아, 천천히 내려와라. 너 몇 살이니? 일곱 살, 그래 씩씩하구나! 노무사, 아이젠이 안 맞나? 아파? 아니라고,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왜? 우리가 다시 내려오려면 4시간 걸린다고. 가만, 두려운 거야? 그렇다고. 설마! 여긴 그냥 계단이야. 걷기만 하면 올라가는,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가 없는. 아니 다리를 떨고 있잖아. 아, 맙소사! 이 작은 계곡이 무서워서 그래? 농담이지. 진짜라고. 아, 아, 잠깐, 생각 좀 해보고. 그렇지, 자 이렇게 하자고. 여기만 올라가, 내가 뒤에 설 테니, 떨어질 리는 없잖아.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 줄게. 믿어. 한발만 떼 봐. 애들아 천천히 내려와라! 자, 다시 한발. 나는 억지로 그 친구를 밀어올리며 생각을 했다. 백운대를 지나 좌측 바위 길을 타야 하는데 이런 계단도 떨면 어쩐다! 그 계단을 통과해 천천히 오라고 말을 한 다음 위로 뛰어 올라가 대한민국 산은 다 다녔다는 동료 둘을 세웠다. 그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눈이 반짝거리더니 100미터를 뛰듯 빠르게 그녀가 기다리는 쪽으로 내려갔다. 그 시간 이후에 셋이 이 발 저 발, 이리 딛고 저리 딛고 떠드는 소리가 산에 울려 퍼졌다.

백운산장 국수 맛은 예나 지금이 변화가 없다. 풋풋한 밀가루 냄새와 따뜻한 육수, 풀린 김 조각과 파와 양파, 옆에 우물이 있는데, 거의 닫혀 있다. 동료들과 함께 오면 국수에 막걸리를 한 사발씩 했다. 그 막걸리 맛이란 혼자 다 마시기에는 벅차지만 일품이었다. 홀로 국수를 먹는데, 멀리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늦게 올라가 붐비지도 않았다. 등산복 스치는 소리와 바닥을 긁는 지팡이 소리, 눈 밟는 소리,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감상하고 있는데 한 여인이 떠올랐다. 그때 막 백운산 장을 떠났을 때, 맨 뒷줄에서 다른 사람 다 떠난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떴는데 그 친구가 마주 오다 눈을 마주쳤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그녀는 운명을 달리한 후배 처였다. 눈으로 인사를 하고 입으로 안부를 짧게 묻고, 그야말로 짧게 인사를 한 후, 서로 지나쳤다.
늘 함께 했고, 앞으로 함께 할 친구로 알았는데 느닷없이 병을 안고 나타났다. 을지병원에서 병명이 나왔을 때, 전화기에 대고 당신 아들 죽는다고 울부짖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인다. 자기 고향인 상계동과 불암산을 사랑했고, 건설노동자의 애정이 끝도 없었던 놈이었는데 운명은 놈의 사랑을 이루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일노봉을 나보다 사랑한 놈이 있다면 그놈이었다. 녀석은 늘 앞장섰다. 바위 정상 모가지 아래서 낭떠러지를 등지고 펄쩍 뛰어올라 바위 턱을 잡고 발을 굴러 올라섰다. 그리고는 밧줄을 등으로 감아 내려주어 사람들을 끌어 올려주었다. 일로봉에 가서 정상에 오르지 않는 것을 수치로 아는 친구였다. 그가 떠나고 나서 정상을 밟지 못했다.
조합에서 건설사무직과 통합문제가 불거졌을 때, 나와 멀어졌다. 나는 별다른 입장이 없었음에도 동조하지 않았기에, 회색분자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 녀석이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꼭 주었다. 근래 현장에 나와 옛 모임을 추스르는데, 아는 사람들은 그놈 이야기를 자주 한다. 지금 그놈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엊그제 신년 인사차 전화를 한 선배가 그놈 이야기만하다 전화를 끊었다. 거의 8년쯤 지난 일인데도 늘 어제처럼 놈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가끔 그 처와 아들 이야기를 듣는다. 주변 친구 몇은 그 가족을 챙겨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불편하기만 하다. 그의 처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것은 왜일까?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그 집에 한두 번 간 것도 아닌데. 그 녀석이 그렇게 된 것에 서로 책임이 있다고 떠넘긴 것이 아닐까? 너무 놈의 공간이 커서 되짚어보기 싫어서 그러나? 뭐가 있어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 스치듯 인사만 하고 지나갔겠지. 산에서 그랬고 노동자 대회 때도 촛불집회에서도 총연맹 엘리베이터에서도 눈인사와 한마디만 했었다. 잘 지내죠? 예! 그럼! 예!
백운대는 쳐다보지 않고 지나간다. 나는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은 위문도 너무 변했다. 백운대 오르는 길도, 건너로 내려가는 길도, 옛날에는 폐타이어 계단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때는 위험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편하거나 인위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있었다면 위문에서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꼭 한 장씩 찍는다. 아마 정상이라 그럴 것이다. 사진을 찍어두면 그 안에 인물들이 언젠가는 하나씩 떠나게 되어 있다. 일로봉 초창기 사진이 그렇듯 말이다. 사진을 본다는 것은 하나 둘 떠난 흔적을 회생하기 위해 보는 것 같다. 생사를 나눈 후배가 셋, 조합에 나오지 않거나 이사 간 사람들, 다른 단체로 간 사람들, 그리고 일로 봉을 잊은 사람들과 산을 바꾼 사람들, 하나 둘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고 나면 나만 남는다. 몇 년 전에 젊은 친구들이 올랐다가 백운대로 죄 올라가 버린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일로봉이 왜 일로봉인지 그곳에서 무엇을 맹세했는지 알지 못한다. 안다 해도 과거의 일들일 뿐이다. 최루탄 날리고 노조 신고필증 따려면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왜 무미건조하고 까다로운 일로봉에 올라야 하는가? 백운대가 진정한 정상이 아닌가? 틀린 말이 아니다. 왜 그 말이 틀리겠는가? 단지 그때에 그런 사람들끼리 그런 일이 있었을 뿐이다.
일용노동자의 산을 갖자. 그리고 산신제를 지내는 거야. 매년 정월 초하루에, 멋지지 않아? 그리고 우리만의 맹세를 하고 우리만의 기원을 하는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다. 멋진 말이었고 백운대를 지나 누군가 그 봉오리를 지목했다. 어렵게 올라 정상에 서서 주변을 내려보았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 늘 그렇게 깨끗하게 있을 것 같은 산이었다. 그전까지 신년 산행을 여기저기 다니는데 정착할 산을 찍은 것이다. 우리는 모여 살얼음 낀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영원히 변치 말자고 결의를 하였다. 그리고 서로 엎치고 겹치며 중심으로 모여 사진을 찍었다. 그 이후 대통령이 몇 번 바뀌었지? 세 번, 네 번? 세월 많이 갔다. 세월에는 모든 게 변하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악질 자본가들이 더 드세졌다는 것이다.
가파르고 눈 덮인 바위틈을 지나 정상 아래까지 올라갔다. 누군가 여기까지 올라와서 머물다 간 흔적이 있다. 누가 왔을까? 혼자 있을 때 정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후배 그 아이가 있으면 모를까. 볕이 잘 드는 바위 아래 조금 넓은 틈이 있다. 그곳에 가방을 내리고 부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가지고 온 황태를 꺼내 비닐을 풀고 사과를 꺼내 삼등분을 한 다음 빈 잔에 놓고 소주 팩을 뜯어 고수레했다. 서너 명만 되었어도 고사 문을 써 왔을 것이다. 고사 문은 늘 내가 썼었다. 산에 오기 전에 마지막 날을 보낸다며 광화문에 가서 한바탕 집회를 했을 텐데, 지금은 가자는 놈도 없고 오라는 놈도 없다. 집회를 마치고 영등포로 와 밤새 술을 마시고 준비해 둔 엷은 한지에 펜으로 글을 쓴 다음 잘 접어 갔을 텐데 말이다. 소주를 잔에 가득 부은 다음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누구에게 무슨 일이 잘되게 해주시고, 꼭 누구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작작해 처먹으라고 말을 하고, 올해는 기어이 내 글 농사 잘되게 해달라고 간곡히 기원을 했다. 그리고 절을 두 번 한 다음 잔에 든 소주를 뿌렸다. 일 년을 굶었을 일로봉 산신께 너무 인심을 쓴 나머지 다 뿌리고 음복할 소주를 남기지 못했다. 빈 잔을 거꾸로 세워 혀를 대니 서너 방울이 똑똑 떨어져 극도로 압축된 알코올이 혀를 찍어 눌렀다.
어디선가 까치 두 마리가 날아와 멀찌감치 나뭇가지에 앉아 쳐다보았다. 놈들이 노리는 것이 사과인 모양이다. 한 조각을 남기고 나머지를 우걱거리며 씹었다. 단물을 씹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사진처럼 바람 한 점 없고 내 귀에 이명만 있을 뿐 고요했다. 멀리 산 아래 사찰이 낮게 앉아 있고 저 멀리 송추 쪽 평지에 눈에 덮인 마을과 도로가 있었지만, 그저 자연 일부에 잠식되어 인간의 관계나 갈등은 사소한 그림일 뿐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산 아래 평지였다. 문득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데 휴대전화가 울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아, 산에서는 진동으로 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일로봉 정상에서 보면 정면에 노고산이 보인다. 저 어디쯤 내가 방위생활을 했던 연병장이 있다. 그 연병장 꽤 뛰어다녔다. 무기고 경계를 섰는데 내가 그곳을 보듯 방위생활 끝날 때까지 무기고를 등지고 소총을 들고 방독면을 메고 백운대를 쳐다보았다. 마치 백운대가 움직이나 안 움직이나 감시하는 듯 말이다. 우리는 백운대를 백운봉이라고 불렀다. 인수봉, 노적봉, 백운봉이라고 했다. 백운대의 눈이 녹고 녹음이 지다가 단풍 물이 들어 다시 흰 눈이 덮일 때까지 고스란히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내가 방위병 출신이라니, 인생 제대로 되는 것 하나도 없군. 노가다에, 방위병에, 중졸에, 늘 그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여자들에게 채이고, 쉬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일하면 돈 잘 안 주고, 노조 하자고 하면 손가락질하고, 글은 허벌나게 쓰는데 맞춤법은 맞지 않는 볼트너트처럼 헐렁거리고, 운전면허는 장롱에 있고, 차는 고사하고 지하방으로 가게 생겼고, 또 한 살을 먹었는데 뭐 생기는 것은 없고, 단지 한 가지 기쁨이 있다면 딸이 나의 영혼은 풍성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 기쁨이 아니었다면 나는 줄곧 우울했을 것이다. 어느 날 딸이 긴 우주여행 끝에 수억 겁을 지나 나를 찾아와 한마디 했다. ‘아빠!’ 나는 그 말에 혼이 떨렸다. 그 아이가 나던 달에 홀로 일로봉에 올라와 나는 진심으로 순산하기를 바랐고, 결코 산모의 건강 때문이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건강하기를 바랐다. 내가 어찌 일로봉에 오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일로봉은 인간의 영혼을 순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키우기도 한다. 산행이 그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산이라 해도 인간사와 떨어질 수 없는 문제가 있어 그럴 게다. 그래서 옛말에 식민지 조국에서는 초목도 자유롭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치가 올바르지 않으면 산천인들 무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어쩌면 뭔가를 풀고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세상이 뭔가를 결의하게끔 되어 있어 좀처럼 마음이 순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나 산을 세속의 고뇌를 잊으려고 오를 것인가? 모든 분노와 결의를 놔두고 영혼을 달래고자 쉬고자 산에 올라야 하는 데. 아직 발아래 세속에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수많은 장치가 날로 늘어나기만 하니 불가능한 업보이다.

하산 길은 올라온 길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격언대로 반대로 간다. 용암문까지 가서 도선사로 내려온다. 오늘따라 산행이 지치지 않았다. 전 같았으면 힘이 들었을 텐데 산행을 하고 도선사까지 쉬지 않고 내려갔는데 피곤하지 않았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눈을 묻히고 빗질한 듯 일렬로 조금씩 사선으로 기울어져 촘촘히 세워진 길을 이리저리 따라갔는데 힘들지 않다니. 몸이 좋아진 건가? 근래 술을 거의 끊다시피 해서 그런가? 어쨌든 별로 힘겹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졸지도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런가? 기름 역으로 와서 전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역으로 가서 2호선을 갈아탔다.
홍대역을 피해 갈 수가 없다. 그곳에는 한 작가가 외롭게 싸우는 곳이 있다. 유채림 작가는 인천작가회의 신임회장이 되었다. 이제 평범한 사이가 아니다. 얼굴이 두꺼워져서 어지간한 일은 그냥 넘어가는데 그럴 처지가 아니다. 어디다 대고 회장 처지를 뭐라고 떠들어도 떠들어야 할 처지다.
근래 모두 들떠 있는 성탄 전야에 일이 터졌다. 24일 기독교 집사인 그가 덩치가 큰 사내들에게 처와 붙잡혀 생계를 잇는 살림이 털릴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늘 이 가장이 문제다. 이 지구 끝까지 도망가도 가장의 역할은 변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한번 가장은 죽을 때까지 가장이다. 가정을 패대기친 가장이야 아니면 끝까지 지킨 가장이야 둘 중 하나다. 그 가장이, 소설가가 조폭 앞에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세입자 들어내는 전문집단 앞에서 소설가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가? 대 건설업체 앞에서 이 시대 작가가 무슨 의미를 부여받은 것인가? 그보다 처 앞에서 소설 쓴다고 개수작을 떨며 폼잡고 살았는데, 바로 눈앞에서 살림을 거덜내는 어린 사내들 앞에서 손 내리고 서 있어야 하는 그 마음이란? 무슨 말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믿고 사는 처를 위해서. 지금까지 글 좀 써보겠다고 살림은 뒷전이었는데, 이럴 때 한번 가장이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거 안돼요, 우리 장사해야 해요! 좀 심한 거 아네요. 나이도 어린 사람들이. 상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체면 좀 봐 주세요. 나 작가예요. 작가. 소설가요. 나 대한민국의 소설가라고요. 그렇게라도 꿈틀거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처는 용역들이 살림 내보내고 철판으로 가로막은 가계 주변을 4시간 동안 서성거렸다고 한다. 성탄 이브 밤이 얼마나 추웠던가! 작가는 손 찔러 넣고 허리 구부리고 가슴을 치며 우는 처 뒤를 따르며 사내의 쪽팔림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한발 한발 느끼면서 따라다녔겠지. 주윤발도 이연걸도 아니고 효도르는 더욱 아니고 개폼 똥폼 작가라는 개수작으로 점철된 허우대는 날아가고 빈약한 한 사내만 남았겠지. 앞에서는 하늘보고 눈물을 흘리고 뒤에서는 땅보고 콧물을 흘리고.
사람은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비로소 땅을 짚을 수가 있고 땅을 짚어야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 닳지 않던가! 그래서 저 바닥에 가봐야 인간은 진실해진다. 그래서 지선 스님이 사람은 자기가 넘어진 땅을 짚고 일어선다고 하셨다. 작가가 작가답게 되려면 현실을 사는 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긴급 문자를 받고 인천작가들과 홍대에 갔을 때, 작가는 철판을 뜯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스티로폼을 깔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그때 상황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마치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상황을 벗어난 듯, 그 장면의 충격으로 모든 과거가 흔들려 그 자체만 남아 헛도는 테이프처럼 반복했다.
한때 국보로 감방생활도 했고 활동도 했지만, 철거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다. 철거는 용산 전에도 오산 전에도 상도동 전에도 의정부 망루 투쟁 전에도 실제 원시전쟁이었다. 전부터 사람이 죽었으며 불에 그슬렸고 지져 죽었고 사지가 부러졌다. 철거에는 법도 없고 일반 현장에서 쓰는 운동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그곳은 애초 이 시대 화구였던 것이다. 외면했을 뿐, 언제나 사람이 던져지고 타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그리고 그 위에 아파트 짓고 들어가 살고 있다.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수많은 여지 속에 이제 갓, 한 작가가 주먹 쥔 자기 그림자에 놀라며 엉거주춤 서 있다. 그 뒤에서 친애하는 홍 사무처장이 당당하게 서 있고, 또 다른 홍이 담배 물고 사무처장 어깨를 걸고 서 있다. 맨 뒤 어디쯤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로 내가 서 있다.
주인인 작가는 가슴에 소설가라는 명패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있다. 녀석들이 그 종이를 인정할지 침을 뱉고 발길로 걷어찰지 모르겠다. 그냥 길에 나 앉을 수 없어 빈집에 들어가 버티는 것뿐이다. 야, 이 자식들아! 나 작가야, 소설가라고.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이 시발놈들아! 이 개시발놈들아! 이 존만은 것들아! 여기 작가가 있다고! 작가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물론 회장은 품위가 있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속으로 할 것이다.  
사람의 생계만큼 우선하고 중요한 것이 있을까? 법, 어, 한 획만 바꾸면 밥이 되는군. 밥과 법이라. 멋진 발견이군! 하여간, 신년에, 신년 산행에, 왜 이리 욕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생 양아치들이 판치는 세상이라 그런가? 나도 그들을 닮아가나? 의젓하게 점잖게 훈계를 해야 하는데, 진실의 펜을 휘둘러야 하는데, 아이들이 보기에 뭐 하나 배울만하게 써야 하는데, 쓰다 보니 또 이 꼴이 나고 만다. 처음에는 뭔가 잘 나가더구먼, 결국 욕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올해도 허접한 것들이 권력의 힘을 빌려 개수작을 부리고 더러운 침을 튀기며 이것이 진리라고 개 설레발을 다 까고 다닐 것은 눈알을 씻지 않고도 확연히 볼 수 있는 사실이다. 글로 거짓을 파할라치면 몽둥이로 머리통을 까 재끼며 한마디 하겠지.
“네가 작가야? 그럼 글이나 쓰지 정치가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잘 알아? 혹시 작자 아니야? 개작자. 그치? 엉, 엉! 졸지 말고. 똑바로 서. 글 잘 쓰냐? 뭘 쓰는데? 뜨신데 처 앉아서 꼴리는 글이나 긁적거리라고! 개뿔 나대지 말고. 마누라가 타 주는 커피나 마시면서 구라나 치지 왜 나와서 지랄이야. 지랄이. 뱅아뱅아 시뱅아! 작가는 무슨, 내가 다 오줌 싸것다.”
2010년이다. 벌써 하루가 지났다. 어쨌든 오늘도 갈 것이다. 그래 가자. 땅을 밟고, 산을 가니 온통 눈 밟는 소리뿐이다. 바로 내 존재, 내 무게를 확인하는 소리가 아니던가. 현실에 대한 인식이 나의 눈을 뜨게 해 줄 것이다.

벗들이여 땅을 힘차게 밟고 한발 한발 앞으로 가자. 구렁텅이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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