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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십팔일째, 씁쓸한 퇴장
 칼럼니스트  | 2009·12·30 01:55 | HIT : 2,907 | VOTE : 262 |
마감 중간에 빠졌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야간에 들어가자는 말이었다. 24일은 성탄전야라 못 들어간다고 버티다 25일 야간작업에 들어갔다. 밤늦게 눈이 쏟아졌다. 야간에 다시 들어가다니, 믿기지 않았다.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될 줄이야. 중간에 빠졌던 이유는 올해 못다 쓴 글을 썼다. 꽤 긴 장편인데 어떡하든 올해 마감을 짓고 싶어 억지에 가깝게 글을 만들어 24일 이후 정리했다. 올해 시작한 글을 내년까지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야간에 들어가니 반장팀만 남기고 털보 혹은 터러기라고 불리던 팀은 그만둔 상태였다. 우리가 주간으로 빠진 이후 며칠 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 모양이다. 넷 중에 둘은 주간에 남아 마감을 하고 김형과 둘이 야간작업에 들어갔다. 나흘째 되는 날, 반장팀은 일요일 쉬고 월요일 밤에 출근했다. 일요일에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기에 월요일 밤에 얼굴을 보자 의아했다. 현장을 빠지는 줄 알았는데 다시 나오다니 할 일도 많이 남지 않았는데.

옷을 갈아입고, 연장을 챙기고 기지개를 하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을 서리며 일할 곳으로 갔다. 반장팀이 나왔기에 편하게 일하다 보따리를 싸면 되겠구나 했다. 어차피 더 해봐야 나온 날 하루 정도였다. 더 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사장 아들이라는 친구도 와서 일하는 지로 나머지 잔일은 그 친구들이 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우리 반대편에서 반장이 외출복에 가방을 싸고 다시 나타났다. 왜 그런가 했더니 들어간다고 한다. 사장이 전화해서 그만두라고 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주간에 일하는 내 친구 이씨와 다른 동료 최씨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 최씨는 현장에 이런 법이 어디에 있나 사장에게 항의하였다.

밤새 일을 하는데 화가 치밀어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 나 온 사람을 가라고 하고, 작업복도 싸갈 여유를 주지 않고 전화를 걸어 나오지 말라고 경우는 처음 겪었다. 반장이 씁쓸하게 악수를 하고 가는 뒷모습이 너무 안 돼 보였다. 내가 사장 경우가 틀렸다고 하니, 동네 선배라 참아야 한다며 웃고 만다. 둘만 남아 천장에 고개를 묻고 일을 하는데 그나마 지하라 덜하다고는 하지만 중앙통로에 입구가 여러 곳이라 찬바람이 쉬지 않고 불었다. 콧물이 닦자마자 흘러내렸다.

밤새 떨며 일을 하다 새벽 5시쯤 정리를 하고 가방을 쌌다. 헤어지기 서운하니 밥이라도 먹자고 해서 식당을 찾아 종로까지 올라갔다. 3가 뒷골목 중간에 식당에 불이 켜져 있었다. 부대찌개에 밥을 먹으니 피로가 몰려왔다. 글 쓴다고 밤낮없이 강행군을 했더니 입술이 터지고 몸살에 기침 감기가 왔었다. 그 몸으로 밤샘작업을 나흘 하니 목이 아파 견디기 어려웠다.
“끝까지 버틴 게 잘못인가?” 아직 어두운 새벽 전철을 타러 가며 김형이 물었다.
“누구 잘못은 아닌데, 못 볼 꼴을 보니.”
“노가다의 비애지. 사장이 우리 팀 전부 오야지급이래.”
“졸라 춥구먼.”

사장이 이 현장에서 손해를 봤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라 그럴 수도 있고 그 손해가 생각만큼 이익을 얻지 못해서 그런 건지 실제 자기 돈을 꼬라 박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봐도 재미없는 현장이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언짢은 것은 사장이 작업복을 싸갈 시간을 두고 정리를 했어야 하는 점이다. 그만큼 공정을 명확하게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경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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